교육공간에 동물이 있다면
두어 달 전, 지역에서 청소년 공간을 꾸릴 계획을 갖고 있다는 한 독자가 출판사를 방문했다. 형식적인 교육공간 말고 십대들이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정말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견을 구하는데, 공간민들레 길잡이 교사와 내가 이구동성 권한 것은 ‘동물이 있는 것’이었다.
경험컨대, 교육공간에 아이들과 동물이 함께 있으면 ‘인간끼리’ 모여 있을 때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마음의 경계를 쉽사리 허물게 해주는 동물이라는 생명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교사보다 탁월한 교육적 역할을 해낼 때가 많다. 자기 생존을 온전하게 맡기는 동물을 보살피며 아이들은 돌보는 법을 배우고, 말이 안 통하는 존재와 소통하고 싶어 온갖 방법을 시도하면서 소통 기술을 배운다. 까다롭고 변덕스런 인간과는 달리 한번 정을 들이면 한결같이 친밀함을 표현하는 동물들과 우정을 나누며 위로를 받는다.
표현에 서툰 아이들은 흔히 ‘몸의 상태’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곤 한다. 특히,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증명해낼 수 없는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며 교무실을 찾아올 때는 대부분 “사랑이 필요해요” 하는 뜻이었다(머리가 아프다면서 다리를 저는 아이도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헷갈린 모양이다). 그럴 땐 차 한잔 나누며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타민을 종이에 싸서 “진짜 잘 듣는 약이야.” 하고 건네면 다 나은 듯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서곤 했다.
그 정도 표현도 먼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상을 유심히 관찰해야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 곁에는 대개 동물이 있었다. 귀여워서 간간이 쓰다듬거나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을 동물에게 쏟았다. 개의 목줄을 잡고 산책을 나서거나 계곡에서 잡아온 올챙이를 페트병에 담아 한 시간씩 들여다보는 건, 그들이 친구 없는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이었다. 민들레를 드나드는 청소년들에게도 동물의 존재감은 컸다. 수줍어서 어른들과는 데면데면하는 친구들도, 고양이 꽃네랑은 금방 가까워졌다(꽃네 입장은 잘 모르겠다).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인간과 달리 동물은 단번에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꽃네는 아기 고양이처럼 애교 한번 떨 줄 몰랐지만, 나른한 표정으로 창가에 앉아 졸고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덕분에 이 공간에도 좀 더 빨리 정이 드는 것 같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는 동물이 사람보다 더 나은 친구가 될 때가 많다. 개와 고양이가 가장 흔한 반려동물이 된 것도 그 때문 아닐까. 물고기나 거북이보다 스킨십하기에도 좋고 적극적인 교감이 가능하며, 의인화하기도 좋은 종이기 때문에.
동물교육, 학교 안으로
최근 사회적으로 높아진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교육계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가 학교를 방문해 동물에 관한 교육을 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소유’의 대상에서 ‘소통’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올해 3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들에게 ‘생명존중 동물사랑교육’을 시작했다. 희망하는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부터 동물원이나 농장을 방문해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교육과정이다.1 경기도교육청은 작년 7월부터 일부 초등학교에 ‘생명살림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힐피도그(Healppy Dog)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동물 매개 상담사와 전문 상담사, 대형견과 소형견이 교실을 방문해 ‘강아지가 불안하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말하기’ ‘청진기로 심장 소리 들어보기’ 같은 활동으로 동물 감수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위기청소년의 정서적 안정과 심리 치유를 위해 강아지를 매개로 한 회복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 동물을 만나는 경험은 건물 뒤편에 토끼나 닭을 가둬놓고 (요즘은 방호원이라 불리는) 소사 아저씨가 돌보면 아이들이 오다가다 이따금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동물 관련 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동물복지교육, 동물사랑교육, 동물보호교육, 혹은 동물매개 생명존중교육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양한 교육들은 대개 동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동물의 권리’만을 옹호하며 당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동물에 대한 이해를 교육적으로 잘 연결하고 있는 곳은 ‘생태 동물원’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동물원2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170만 명이 찾는 이곳은 한 해에 싱가포르 학생의 55.1퍼센트에 해당하는 32만 명이 방문하며, 교육현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동물들을 스윽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생태, 습성, 먹이 등을 학습하고 현대사회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성찰하면서 그 존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매해 학교장들을 만나 설명회를 하고 교사 연수도 진행한다. 교육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데, 동물의 먹이 만드는 곳을 견학하며 그 습성을 익히고 가방과 옷을 만들기 위해 도축되는 동물에 대해 공부하며 동물 보호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가축한테서 얻는 우유와 치즈, 솜털 등에 대한 토론 수업도 한다. 교육과정과 연계해 조랑말 키 재기 등 산술적 활동이나 코끼리 뼈를 만지며 크기나 무게 개념을 익히기도 한다. 인공조형물 없이 최대한 자연 상태에 있는 동물들을 만나는 다양한 활동은 동물원을 단순히 동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예전에 초등 캠프 중에 겪은 일이다. 운동장 한구석에 초등학생 몇몇이 둘러 앉아 잡아온 잠자리의 머리를 똑똑 따고 있었다. 기겁을 하고 만류하니 천진한 표정으로 “왜요?” 하고 묻는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하여 “어, 잠자리가 아프잖아…” 하자 “얘네가 고통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고 되묻는다. 잘은 모르지만 모름지기 모든 생명은 그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으니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감수성’의 문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곤충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모든 척추동물과 낙지, 문어 같은 두족류는 고통을 느끼지만, 곤충은 고등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시스템인 ‘통각’이 없다고 한다.3 생물학 연구가 축적될수록 고통을 느끼는 종이 더 많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갑각류가 실은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나오면서 스위스 연방 정부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요리하는 방식을 금지하는 내용을 동물보호법에 추가했다고 한다. 연구의 축적에 따라 지식이 변하고 있는 현실 속에, 그 지식을 감수성으로 이어갈 교육적 매개가 마땅치 않다. 이 현실은 ‘생명의 존엄’을 당위적으로 강조하기 전에 동물권에 대해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권과 동물권
올해 3월 22일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 주목할 점은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해석의 여지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개정 전 법안에서는 ‘동물을 죽이거나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만을 동물학대로 규정했으나, 개정안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포함시켰다. 혹서·혹한 같은 환경에 방치하거나, 음식이나 물을 강제로 먹이는 것, 다른 동물과 싸움을 붙이는 것4도 동물학대로 보며, 유실·유기 동물을 판매하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반려동물 인구의 증가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변화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고, 약자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는 사회적 흐름과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동물학대와 인간에 대한 학대,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학대 사이의 연결을 인지하고, 이것이 권력과 불평등 사이에 나타나는 거대한 사회적 투쟁을 반영한다는 것도 인지해왔다. 게다가 거의 모든 학대자들은 그들보다 작고 물리적으로 약한 존재들을 희생자로 선택한다5.” 동물을 가축 정도로 여기던 시절, 남성들의 흔한 화풀이 대상은 마당에 묶인 개였다. 화가 나서 개를 발로 차고 두들겨 패는 사람은 언제든 자기 아내나 자식에게도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여성과 어린아이와 동물, 그들의 공통점은 약자라는 것이다. 남편에게 맞은 아내는 신세 한탄을 하며 그 분풀이를 어린 자식에게 하기도 했으니, 강자에게서 약자에게, 약자에게서 더 약한 자에게 대물림되는 폭력이었다.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도 밀접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폭력은 권력의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와 동물학대의 출발점은 같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처럼, 인권운동이나 동물권운동도 약한 존재들이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부속물로 여기던 동물을 한 생명체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동물권’이라면, 동물의 권리 신장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육식을 즐기는 많은 현대인들은 ‘내가 사랑하는 동물’과 ‘고기로서의 동물’을 별개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동물의 서식지와 인간의 주거지가 뒤섞여 있던 고대 사람들은 동물을 일상적으로 대면했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먹는 데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급진적으로 변한 건, 20세기에 공장식 축산이 전면화되면서 가축의 삶터와 고기의 생산 과정이 격리되고 은폐되면서부터다.
도시화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줄어들었고, 역설적으로 더 많은 수의 동물이 인위적으로 인간의 주거 공간 안에 들어왔다. 재산으로서의 가축, 소유로서의 애완동물을 거쳐 반려동물로 인식되기까지, 이제는 인간 곁에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물이라는 존재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으로 접근하며, 생물학적으로 탐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흥미와 관심만으로는 ‘위험한 사랑’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1 / 1학기에는 1, 2학년, 2학기에는 3학년 이상으로 확대해 ‘관심 갖기’ ‘친해지기’ ‘함께하기’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초등 교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동물복지교육 역량 강화 연수도 진행할 계획이다.
2 / ‘싱가포르 학생 절반 이상, 동물원에서 수업한다’, 《한겨레》, 2017.10.9.
3 / 물론 반론도 있다. 벼룩파리에게 열을 가하니 혐오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반응에 따른 뉴런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반응이 통증에 따른 것인지, 열에 대한 반사작용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4 / 민속 소싸움 제외
5 / 『Animals and Public Health』, Aysha Akhtar
장희숙 · 편집장
mindle98@empas.com
교육공간에 동물이 있다면
두어 달 전, 지역에서 청소년 공간을 꾸릴 계획을 갖고 있다는 한 독자가 출판사를 방문했다. 형식적인 교육공간 말고 십대들이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정말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견을 구하는데, 공간민들레 길잡이 교사와 내가 이구동성 권한 것은 ‘동물이 있는 것’이었다.
경험컨대, 교육공간에 아이들과 동물이 함께 있으면 ‘인간끼리’ 모여 있을 때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마음의 경계를 쉽사리 허물게 해주는 동물이라는 생명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교사보다 탁월한 교육적 역할을 해낼 때가 많다. 자기 생존을 온전하게 맡기는 동물을 보살피며 아이들은 돌보는 법을 배우고, 말이 안 통하는 존재와 소통하고 싶어 온갖 방법을 시도하면서 소통 기술을 배운다. 까다롭고 변덕스런 인간과는 달리 한번 정을 들이면 한결같이 친밀함을 표현하는 동물들과 우정을 나누며 위로를 받는다.
표현에 서툰 아이들은 흔히 ‘몸의 상태’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곤 한다. 특히,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증명해낼 수 없는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며 교무실을 찾아올 때는 대부분 “사랑이 필요해요” 하는 뜻이었다(머리가 아프다면서 다리를 저는 아이도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헷갈린 모양이다). 그럴 땐 차 한잔 나누며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타민을 종이에 싸서 “진짜 잘 듣는 약이야.” 하고 건네면 다 나은 듯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서곤 했다.
그 정도 표현도 먼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상을 유심히 관찰해야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 곁에는 대개 동물이 있었다. 귀여워서 간간이 쓰다듬거나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을 동물에게 쏟았다. 개의 목줄을 잡고 산책을 나서거나 계곡에서 잡아온 올챙이를 페트병에 담아 한 시간씩 들여다보는 건, 그들이 친구 없는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이었다. 민들레를 드나드는 청소년들에게도 동물의 존재감은 컸다. 수줍어서 어른들과는 데면데면하는 친구들도, 고양이 꽃네랑은 금방 가까워졌다(꽃네 입장은 잘 모르겠다).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인간과 달리 동물은 단번에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꽃네는 아기 고양이처럼 애교 한번 떨 줄 몰랐지만, 나른한 표정으로 창가에 앉아 졸고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덕분에 이 공간에도 좀 더 빨리 정이 드는 것 같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는 동물이 사람보다 더 나은 친구가 될 때가 많다. 개와 고양이가 가장 흔한 반려동물이 된 것도 그 때문 아닐까. 물고기나 거북이보다 스킨십하기에도 좋고 적극적인 교감이 가능하며, 의인화하기도 좋은 종이기 때문에.
동물교육, 학교 안으로
최근 사회적으로 높아진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교육계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가 학교를 방문해 동물에 관한 교육을 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소유’의 대상에서 ‘소통’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올해 3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들에게 ‘생명존중 동물사랑교육’을 시작했다. 희망하는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부터 동물원이나 농장을 방문해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교육과정이다.1 경기도교육청은 작년 7월부터 일부 초등학교에 ‘생명살림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힐피도그(Healppy Dog)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동물 매개 상담사와 전문 상담사, 대형견과 소형견이 교실을 방문해 ‘강아지가 불안하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말하기’ ‘청진기로 심장 소리 들어보기’ 같은 활동으로 동물 감수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위기청소년의 정서적 안정과 심리 치유를 위해 강아지를 매개로 한 회복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 동물을 만나는 경험은 건물 뒤편에 토끼나 닭을 가둬놓고 (요즘은 방호원이라 불리는) 소사 아저씨가 돌보면 아이들이 오다가다 이따금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동물 관련 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동물복지교육, 동물사랑교육, 동물보호교육, 혹은 동물매개 생명존중교육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양한 교육들은 대개 동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동물의 권리’만을 옹호하며 당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동물에 대한 이해를 교육적으로 잘 연결하고 있는 곳은 ‘생태 동물원’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동물원2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170만 명이 찾는 이곳은 한 해에 싱가포르 학생의 55.1퍼센트에 해당하는 32만 명이 방문하며, 교육현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동물들을 스윽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생태, 습성, 먹이 등을 학습하고 현대사회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성찰하면서 그 존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매해 학교장들을 만나 설명회를 하고 교사 연수도 진행한다. 교육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데, 동물의 먹이 만드는 곳을 견학하며 그 습성을 익히고 가방과 옷을 만들기 위해 도축되는 동물에 대해 공부하며 동물 보호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가축한테서 얻는 우유와 치즈, 솜털 등에 대한 토론 수업도 한다. 교육과정과 연계해 조랑말 키 재기 등 산술적 활동이나 코끼리 뼈를 만지며 크기나 무게 개념을 익히기도 한다. 인공조형물 없이 최대한 자연 상태에 있는 동물들을 만나는 다양한 활동은 동물원을 단순히 동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예전에 초등 캠프 중에 겪은 일이다. 운동장 한구석에 초등학생 몇몇이 둘러 앉아 잡아온 잠자리의 머리를 똑똑 따고 있었다. 기겁을 하고 만류하니 천진한 표정으로 “왜요?” 하고 묻는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하여 “어, 잠자리가 아프잖아…” 하자 “얘네가 고통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고 되묻는다. 잘은 모르지만 모름지기 모든 생명은 그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으니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감수성’의 문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곤충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모든 척추동물과 낙지, 문어 같은 두족류는 고통을 느끼지만, 곤충은 고등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시스템인 ‘통각’이 없다고 한다.3 생물학 연구가 축적될수록 고통을 느끼는 종이 더 많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갑각류가 실은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나오면서 스위스 연방 정부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요리하는 방식을 금지하는 내용을 동물보호법에 추가했다고 한다. 연구의 축적에 따라 지식이 변하고 있는 현실 속에, 그 지식을 감수성으로 이어갈 교육적 매개가 마땅치 않다. 이 현실은 ‘생명의 존엄’을 당위적으로 강조하기 전에 동물권에 대해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권과 동물권
올해 3월 22일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 주목할 점은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해석의 여지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개정 전 법안에서는 ‘동물을 죽이거나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만을 동물학대로 규정했으나, 개정안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포함시켰다. 혹서·혹한 같은 환경에 방치하거나, 음식이나 물을 강제로 먹이는 것, 다른 동물과 싸움을 붙이는 것4도 동물학대로 보며, 유실·유기 동물을 판매하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반려동물 인구의 증가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변화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고, 약자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는 사회적 흐름과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동물학대와 인간에 대한 학대,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학대 사이의 연결을 인지하고, 이것이 권력과 불평등 사이에 나타나는 거대한 사회적 투쟁을 반영한다는 것도 인지해왔다. 게다가 거의 모든 학대자들은 그들보다 작고 물리적으로 약한 존재들을 희생자로 선택한다5.” 동물을 가축 정도로 여기던 시절, 남성들의 흔한 화풀이 대상은 마당에 묶인 개였다. 화가 나서 개를 발로 차고 두들겨 패는 사람은 언제든 자기 아내나 자식에게도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여성과 어린아이와 동물, 그들의 공통점은 약자라는 것이다. 남편에게 맞은 아내는 신세 한탄을 하며 그 분풀이를 어린 자식에게 하기도 했으니, 강자에게서 약자에게, 약자에게서 더 약한 자에게 대물림되는 폭력이었다.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도 밀접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폭력은 권력의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와 동물학대의 출발점은 같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처럼, 인권운동이나 동물권운동도 약한 존재들이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부속물로 여기던 동물을 한 생명체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동물권’이라면, 동물의 권리 신장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육식을 즐기는 많은 현대인들은 ‘내가 사랑하는 동물’과 ‘고기로서의 동물’을 별개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동물의 서식지와 인간의 주거지가 뒤섞여 있던 고대 사람들은 동물을 일상적으로 대면했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먹는 데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급진적으로 변한 건, 20세기에 공장식 축산이 전면화되면서 가축의 삶터와 고기의 생산 과정이 격리되고 은폐되면서부터다.
도시화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줄어들었고, 역설적으로 더 많은 수의 동물이 인위적으로 인간의 주거 공간 안에 들어왔다. 재산으로서의 가축, 소유로서의 애완동물을 거쳐 반려동물로 인식되기까지, 이제는 인간 곁에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물이라는 존재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으로 접근하며, 생물학적으로 탐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흥미와 관심만으로는 ‘위험한 사랑’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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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학기에는 1, 2학년, 2학기에는 3학년 이상으로 확대해 ‘관심 갖기’ ‘친해지기’ ‘함께하기’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초등 교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동물복지교육 역량 강화 연수도 진행할 계획이다.
2 / ‘싱가포르 학생 절반 이상, 동물원에서 수업한다’, 《한겨레》, 2017.10.9.
3 / 물론 반론도 있다. 벼룩파리에게 열을 가하니 혐오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반응에 따른 뉴런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반응이 통증에 따른 것인지, 열에 대한 반사작용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4 / 민속 소싸움 제외
5 / 『Animals and Public Health』, Aysha Akhtar
장희숙 · 편집장
mindle98@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