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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133호] 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 목차


엮은이의 말

누군가에게 가까운 곁이 되어


기획 _ 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은밀하게 위대하게, 교양사회에서의 ‘정상’회담│송추향

‘화목한 가족’은 당연하지 않다│김혜령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일까│부추

다양한 연결을 위한 가족구성권│유화정

외롭지 않을 권리, 생활동반자법│황두영


단상

심리는 물리를 이길 수 없지만│현병호

제언

소는 누가 키우나│김희동

지상강좌

팬데믹이 열어준 놀이의 새로운 지평│편해문

논단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돌봄, 어떻게 실현할까│박경현

살며 배우며

ADHD 아이, 그 곁의 어른들│날필

연재

또 하나의 보금자리, 위탁가정│정은주

톺아보기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노동과 삶│정현주

만남

삶에 용기를 더하는 기술│여기공협동조합

또 하나의 창

기후불평등과 기후정의│유민석

풍향계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다│박민형

서울시 초‧중생, 전남으로 농촌유학 가다│편집실

함께 보는 영화

가족은 ‘동사’다_<어느 가족>│최정현

함께 읽는 책

어린이를 부지런히 존중할 수 있는 세계_<어린이라는 세계>, <부지런한 사랑>│김화수

새로 나온 책 | 독자모임 | 소자보


◉ 본문 미리 보기


일상과 정서를 함께하는 가족이란 관계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짐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존재인 우리에겐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가까운 곁을 가족이라 부른다면, 굳이 ‘혼인, 혈연, 이성애’로 고정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양한 이들과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와 살기, 동물과 살기, 한부모와 살기, 아이 없이 부부끼리 살기….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가족 구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_ 엮은이의 말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라는 가족에 대한 단면적인 인식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로부터 사람을 보호하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을 더 폐쇄적인 집단으로 만들어 위험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웃 간 교류가 적어진 데다 코로나19로 고립되어 있는 탓에 외부와 연결되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가족을 안전한 테두리로만 여기는 관습 탓에 적극적으로 가족 문제에 개입할 제도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가정폭력이 의심된다며 이웃집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남의 가족 일에 참견 말라”는 남성의 말에 사실 확인조차 없이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너무나 위험한 상황임에도 ‘가족끼리 별일이야 있겠어?’라고 쉽게 넘겨짚는다. (…) 가족 문제를 철저히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하고 안전하다고 넘겨짚는 것, 또 가족구성원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 김혜령, <화목한 가족’은 당연하지 않다>

 

어린이들이 꿈꾸는 가족은 수가 많다. 거기엔 당연히 동물도 있다. 온 친척들이 모두 다 같이 사는 모습을 그리는 어린이도 있고, 햄스터며 거북이며 동물농장처럼 많은 동물을 그려넣는 어린이도 있다. 혼자 살겠다고 하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다. 백이면 백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을 꿈꾼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것처럼 그렇게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재미를 따지는 건 어린이들의 당연한 권리다. 이 어린이들이 혼자 살아갈 힘이 생기고,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살고자 할 때를 상상해본다. 그 상대가 누구든, 몇 명이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때는 소소한 행복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가 더 다양해지길 바란다. 부추,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일까?>

 

시설과 마찬가지로 위탁제도 또한 영구적인 가정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임시보호를 위한 위탁이 5년, 10년씩 장기화되는 현실을 생각할 때 위탁가정에 아이들이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시기를 맡고 있는 위탁가정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시급하다. 위기에 처한 아이에게 일정 기간 동안 곁을 내어준 위탁가정의 헌신 덕에 아이들은 평생의 자양분을 얻는다. (…) 위탁가정의 온기는 새로운 가정으로 이어지며, 아이에게 또 다른 가족으로 남는다. 한 아이의 삶에 큰 의미가 되는 가정위탁에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더 넓고 깊어지기 바란다. 정은주, <또 하나의 보금자리, 위탁가정>

 

그간 학교는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며 학생들을 부추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쟁하라고 독려해왔다. 그러나 학생들이 말하는 ‘하고 싶은 것’, 꿈의 실체는 초라하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설문조사에서 계속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직업은 교사와 공무원인데, 그 이유는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이고, ‘건물주나 임대업자’라거나 ‘돈 많은 백수’라는 대답도 꽤 높은 빈도를 차지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이 없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다. (…) 학교는 남을 제치고 성공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돌보고 책임지며 이웃과 공존하기 위한 자질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학교에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노동이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배운다면, ‘헬조선’이 아닌 ‘공화국’의 미래가 열리지 않을까? 정현주, <학교에서 배워야 할 노동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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