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엮은이의 말 다시 봄│장희숙
기획 코로나 팬데믹 3년, 아이들의 삶
몸과 마음을 돌보는 학교 │ 김하준
학교의 주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 김현희
코로나와 함께한 나의 중학 시절 │ 하준수
코로나 시대에도 아이들은 논다 │ 임지원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린이가 있다면 │ 편집실
단상 ‘이생망’ 세대를 위한 교육 │현병호
제언 전환기교육의 동향과 전망 │ 편집실
교사 일기 교실에서 잠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유형 │ 정태윤
톺아보기 말이 느린 아이, 괜찮을까? │ 이정은
지상 강좌 남자 청소년이 저항하는 성교육 환경 다시 보기 │ 이유정
부모 일기 민주주의의 시작, 가족회의 │ 김선우
만남 “채식은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 한국 고기없는월요일
열린 마당 그림책으로 만난 어린이 세계(2)_아빠의 직업 │ 강영아
또 하나의 창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면 │ 이효진
살며 배우며 함께 읽는 공간을 지키는 사람 │ 서경희
함께 읽는 책 자기계발서 읽기를 멈추세요_《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 조이스박
함께 보는 영화 나의 속도를 찾아서 _《행복의 속도》│ 최정현
독자 인터뷰 열여덟 청소년이 읽는 스물세 살 민들레 _ 이랑 독자님
독자 모임 │ 새로 나온 책 │ 소자보
◉ 본문 미리 보기
전문가들은 이번 오미크론 정점을 지나면 코로나는 감기 같은 풍토병으로 자리 잡아 함께 공존하게 될 거라 예측합니다. WHO에서 팬데믹 종료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렇다 해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 지난 3년 동안 생활방식에서 사고방식까지 이미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변했으니까요. 이번 호에서는 코로나가 아이들의 삶과 교육 현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_ 엮은이의 말
어느 중학교 상담선생님은 2021년도에 관심군 학생이 100명이 넘어서 학생 한 명을 1회씩 상담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 다고 했다. 자살 위험군 아이들을 먼저 상담하다 보니 우선 관 심군 학생들은 뒤로 밀려 11월이 되어야 겨우 한 번 상담을 했다는 것이다. 매주 학폭위원회에 참석하면서 기존에 상담하던 아이들까지 상담하느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문제는 양육환경이 취약한 학생이 건 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도 관심군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고도비만이라도 치료를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고, 정서행동에 어려움이 있어도 도움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_ 김하준, <몸과 마음을 돌보는 학교>
학교는 방역의 최전선이 아니다.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들의 집합소도 아니다. 학교는 학습과 생활의 공간이다. 배움과 성장의 장소이며, 성장은 사회적·관계적 경험을 통해 발생한다. 물 론 방역은 중요한 과제이고 학교 공간의 물리적 구획은 앞으로 도 당분간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지침이 학교의 장소성, 학교 의 진정한 주인, 교육의 본질까지 조각내어서는 안 된다. _ 김현희, <학교의 주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남에게 내 얼굴을 내보이는 ‘낯설고 불쾌한 경험’을 차단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도 계속 마스크를 쓸 거라는 친 구들도 꽤 많으니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모르는 나와 친구들은, 어쩌면 코로나라는 평평한 판 위에 우리만의 대화 방법을 조심스레 쌓아온 것 일 수 있다. 탑이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으려면 바닥이 단단히 고정되어야 하니까, 지금의 상황에 맞춰 최선의 대화 방법을 모색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_ 하준수, <코로나와 함께한 나의 중학시절>
잠을 ‘선택’하는 학생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훼손되어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엎드려 있으면서 ‘내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서 공부를 못하는 거야’라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거북이가 등딱지 속으로 들어가듯 아이들은 수업이 자신을 공격할 때 웅크리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엎드려 있는 학생 주변에 투명한 보호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_ 정태윤, <교실에서 잠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유형>
여가부에 대한 반감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여가부가 남성혐오를 조장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근거를 묻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여가부의 존재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어른들이 아이들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요? 성교육에서나마 이를 충분히 다루고 있나요? 온라인에서 온갖 혐오를 학습할 길은 다양하게 열려 있는데, 일 년에 단 몇 시간, 그것도 예방교육 2차시 정도로 의식에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방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_ 이유정, <남자 청소년이 저항하는 성교육 환경 다시 보기>
◉ 목차
엮은이의 말 다시 봄│장희숙
기획 코로나 팬데믹 3년, 아이들의 삶
몸과 마음을 돌보는 학교 │ 김하준
학교의 주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 김현희
코로나와 함께한 나의 중학 시절 │ 하준수
코로나 시대에도 아이들은 논다 │ 임지원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린이가 있다면 │ 편집실
단상 ‘이생망’ 세대를 위한 교육 │현병호
제언 전환기교육의 동향과 전망 │ 편집실
교사 일기 교실에서 잠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유형 │ 정태윤
톺아보기 말이 느린 아이, 괜찮을까? │ 이정은
지상 강좌 남자 청소년이 저항하는 성교육 환경 다시 보기 │ 이유정
부모 일기 민주주의의 시작, 가족회의 │ 김선우
만남 “채식은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 한국 고기없는월요일
열린 마당 그림책으로 만난 어린이 세계(2)_아빠의 직업 │ 강영아
또 하나의 창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면 │ 이효진
살며 배우며 함께 읽는 공간을 지키는 사람 │ 서경희
함께 읽는 책 자기계발서 읽기를 멈추세요_《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 조이스박
함께 보는 영화 나의 속도를 찾아서 _《행복의 속도》│ 최정현
독자 인터뷰 열여덟 청소년이 읽는 스물세 살 민들레 _ 이랑 독자님
독자 모임 │ 새로 나온 책 │ 소자보
◉ 본문 미리 보기
전문가들은 이번 오미크론 정점을 지나면 코로나는 감기 같은 풍토병으로 자리 잡아 함께 공존하게 될 거라 예측합니다. WHO에서 팬데믹 종료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렇다 해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 지난 3년 동안 생활방식에서 사고방식까지 이미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변했으니까요. 이번 호에서는 코로나가 아이들의 삶과 교육 현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_ 엮은이의 말
어느 중학교 상담선생님은 2021년도에 관심군 학생이 100명이 넘어서 학생 한 명을 1회씩 상담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 다고 했다. 자살 위험군 아이들을 먼저 상담하다 보니 우선 관 심군 학생들은 뒤로 밀려 11월이 되어야 겨우 한 번 상담을 했다는 것이다. 매주 학폭위원회에 참석하면서 기존에 상담하던 아이들까지 상담하느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문제는 양육환경이 취약한 학생이 건 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도 관심군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고도비만이라도 치료를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고, 정서행동에 어려움이 있어도 도움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_ 김하준, <몸과 마음을 돌보는 학교>
학교는 방역의 최전선이 아니다.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들의 집합소도 아니다. 학교는 학습과 생활의 공간이다. 배움과 성장의 장소이며, 성장은 사회적·관계적 경험을 통해 발생한다. 물 론 방역은 중요한 과제이고 학교 공간의 물리적 구획은 앞으로 도 당분간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지침이 학교의 장소성, 학교 의 진정한 주인, 교육의 본질까지 조각내어서는 안 된다. _ 김현희, <학교의 주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남에게 내 얼굴을 내보이는 ‘낯설고 불쾌한 경험’을 차단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도 계속 마스크를 쓸 거라는 친 구들도 꽤 많으니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모르는 나와 친구들은, 어쩌면 코로나라는 평평한 판 위에 우리만의 대화 방법을 조심스레 쌓아온 것 일 수 있다. 탑이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으려면 바닥이 단단히 고정되어야 하니까, 지금의 상황에 맞춰 최선의 대화 방법을 모색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_ 하준수, <코로나와 함께한 나의 중학시절>
잠을 ‘선택’하는 학생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훼손되어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엎드려 있으면서 ‘내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서 공부를 못하는 거야’라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거북이가 등딱지 속으로 들어가듯 아이들은 수업이 자신을 공격할 때 웅크리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엎드려 있는 학생 주변에 투명한 보호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_ 정태윤, <교실에서 잠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유형>
여가부에 대한 반감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여가부가 남성혐오를 조장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근거를 묻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여가부의 존재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어른들이 아이들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요? 성교육에서나마 이를 충분히 다루고 있나요? 온라인에서 온갖 혐오를 학습할 길은 다양하게 열려 있는데, 일 년에 단 몇 시간, 그것도 예방교육 2차시 정도로 의식에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방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_ 이유정, <남자 청소년이 저항하는 성교육 환경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