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년 전, 젊은 교사 한 분이 학교에서 세상을 떠났고, 곪은 상처가 터지듯 선생님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없습니다. 교사들의 상처는 외려 더 깊어지고 교직 사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떠돕니다. 무엇이 ‘가르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쏟아지는 잡무, 대책없이 하달되는 교육정책 수습에 파묻혀 아이들 만나는 일이 뒷전이 되는 건 교육계의 오랜 고질병이지만,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기대와 요구를 받아내며 교사들은 더욱 움츠러듭니다. 악의는 없을지라도 ‘내 아이’ 중심으로 쏟아지는 각종 요청은 수십 명의 학생을 대하는 교사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지요. 학부모들의 이런 모습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그 근본 원인을 소비자주의, 어설픈 자유주의, 그리고 감정중심 교육에서 찾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의 큰 흐름을 짚고, 이후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차례
엮은이의 말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속마음 | 장희숙
1부 _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
학부모와 교사,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 김세인
신규 교사들은 왜 학교를 떠나는가 | 박민지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 이세이
설익은 교육정책이 교육을 망친다 | 현승훈
미국의 교사 부족 현상을 반면교사 삼아 | 김예진
2부_그럼에도 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
협력하는 교직문화 만들기 | 문경미
시민을 기를 결심 | 김현희
다시 일어서고 싶은 교사들 | 이세중
그래도 선생님은 훌륭하다 | 장희숙
어떤 교사를 어떻게 양성하면 좋을까 | 현병호
교육 동향
신자유주의가 교사를 길들여온 방법 | 한희정
배움터 이야기
자격증 없는 대안학교 교사의 자격 | 김민지
또 하나의 창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신호였다 | 송다현
부모 일기
엄마 무한책임 사회를 넘어 | 이설기
통념 깨기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의 뒷면 | 김정래
교사 일기
경험중심 교육과 교사의 역할 | 우소연
세상 읽기
일본 사회의 히키코모리가 던지는 질문 | 키도 리에
본문 미리 보기
교사들은 부모가 학교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위해 교육을 포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의 교육계를 관통하는 말이다. 아이들의 무릎이 까지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쉬는 시간에조차 운동장에 나가 놀지 못한다. 아이가 넘어져 다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려는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어도, 친구들에게 자꾸 심술을 부려 교우관계가 엉망이 되어도, 교사가 그것을 교정하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왜 바로잡아 주지 않느냐는 민원을 나는 받아본 적이 없다. 거의 모든 민원은 교사의 가르치려는 시도를 겨냥한다. _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이세이)
교육정책은 교사들이 시행의 주체이고 그 대상이 학생들이라는 점, 한시도 멈출 수 없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시행된다는 점, 그리고 정책의 결과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다른 정책들과 다르다. 그래서 교육정책은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의 합의를 먼저 끌어낸 후 학교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곧바로 성과를 평가할 게 아니라, 정책이 현장에 정착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우리의 정책은 반대로 진행된다. 대부분 ‘일단 실시하고 나중에 설득하는’ 순서다. 정책의 수명도 너무 짧아, 이제는 어떤 정책이 내려오든 ‘어차피 또 바뀌겠지. 얼마나 가겠어?’라는 생각이 현장을 뒤덮은 지 오래다. _ 설익은 교육정책이 교육을 망친다 (현승훈)
교권 확보는 교직 사회의 절실한 요구이지만, 교권이 교육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교육의 책임은 세계를 이어받을 새로운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교권은 이 목표를 향해 학교를 민주공화국에 걸맞게 재구조화할 때 비로소 자연스레 확보된다. 다시 말해, 교권은 공화국에 걸맞는 교육 체제의 부산물이지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다. 교사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방어 능력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 그리고 정치적 실천이다.
나는 결심한다. 어른이 되겠다고. 아이의 감정에 무조건 귀 기울이라는 요구와 압력 앞에서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다고. 교사는 과거의 ‘무소불위 권력자’ 혹은 지금의 ‘고객 횡포에 시달리는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고객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기르겠다는 결단으로 아이들 앞에 서야 한다. 이 결심에서 출발하지 않은 교권 담론, 투쟁과 실천, 아이들과 미래를 향한 약속은 권력과 보신을 위한 사사로운 전략이자 무책임한 위로와 언술에 그칠 뿐이다. _ 시민을 기를 결심 (김현희)
교직을 ‘사명’ 혹은 ‘천직’으로 여기던 시대에서 안정된 ‘직업’으로 여기는 시대로 바뀌었지만, ‘충실한 직장인’으로서의 교사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교직에 들어섰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호의를 갖고 그들의 성장을 도우려 애쓴다. 그러니 학부모 입장에서 교사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날의 학부모 민원이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에 교사보다 믿을 만한 어른은 없다. 부모인 나 말고 아이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어른, 그 낯선 타인이 ‘담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주려 애쓰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_ 그래도 선생님은 훌륭하다 (장희숙)
아이의 말만 듣고 선생님께 바로 전화하지 않는 것. 잠시 멈추어 아이와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분별해보는 것. 아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먼저 살피게 하는 것.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부모로서 그것부터 노력해보려 한다. 선생님도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을 믿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_ 학부모와 교사,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김세인)
VOL.157(2025.가을) 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
책 소개
2년 전, 젊은 교사 한 분이 학교에서 세상을 떠났고, 곪은 상처가 터지듯 선생님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없습니다. 교사들의 상처는 외려 더 깊어지고 교직 사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떠돕니다. 무엇이 ‘가르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쏟아지는 잡무, 대책없이 하달되는 교육정책 수습에 파묻혀 아이들 만나는 일이 뒷전이 되는 건 교육계의 오랜 고질병이지만,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기대와 요구를 받아내며 교사들은 더욱 움츠러듭니다. 악의는 없을지라도 ‘내 아이’ 중심으로 쏟아지는 각종 요청은 수십 명의 학생을 대하는 교사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지요. 학부모들의 이런 모습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그 근본 원인을 소비자주의, 어설픈 자유주의, 그리고 감정중심 교육에서 찾는 글을 통해 우리 교육의 큰 흐름을 짚고, 이후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차례
엮은이의 말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속마음 | 장희숙
1부 _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
학부모와 교사,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 김세인
신규 교사들은 왜 학교를 떠나는가 | 박민지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 이세이
설익은 교육정책이 교육을 망친다 | 현승훈
미국의 교사 부족 현상을 반면교사 삼아 | 김예진
2부_그럼에도 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
협력하는 교직문화 만들기 | 문경미
시민을 기를 결심 | 김현희
다시 일어서고 싶은 교사들 | 이세중
그래도 선생님은 훌륭하다 | 장희숙
어떤 교사를 어떻게 양성하면 좋을까 | 현병호
교육 동향
신자유주의가 교사를 길들여온 방법 | 한희정
배움터 이야기
자격증 없는 대안학교 교사의 자격 | 김민지
또 하나의 창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신호였다 | 송다현
부모 일기
엄마 무한책임 사회를 넘어 | 이설기
통념 깨기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의 뒷면 | 김정래
교사 일기
경험중심 교육과 교사의 역할 | 우소연
세상 읽기
일본 사회의 히키코모리가 던지는 질문 | 키도 리에
본문 미리 보기
교사들은 부모가 학교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위해 교육을 포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의 교육계를 관통하는 말이다. 아이들의 무릎이 까지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쉬는 시간에조차 운동장에 나가 놀지 못한다. 아이가 넘어져 다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려는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어도, 친구들에게 자꾸 심술을 부려 교우관계가 엉망이 되어도, 교사가 그것을 교정하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왜 바로잡아 주지 않느냐는 민원을 나는 받아본 적이 없다. 거의 모든 민원은 교사의 가르치려는 시도를 겨냥한다. _ 교육과 보육, 치료가 뒤엉킨 교실에서 (이세이)
교육정책은 교사들이 시행의 주체이고 그 대상이 학생들이라는 점, 한시도 멈출 수 없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시행된다는 점, 그리고 정책의 결과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다른 정책들과 다르다. 그래서 교육정책은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의 합의를 먼저 끌어낸 후 학교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곧바로 성과를 평가할 게 아니라, 정책이 현장에 정착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우리의 정책은 반대로 진행된다. 대부분 ‘일단 실시하고 나중에 설득하는’ 순서다. 정책의 수명도 너무 짧아, 이제는 어떤 정책이 내려오든 ‘어차피 또 바뀌겠지. 얼마나 가겠어?’라는 생각이 현장을 뒤덮은 지 오래다. _ 설익은 교육정책이 교육을 망친다 (현승훈)
교권 확보는 교직 사회의 절실한 요구이지만, 교권이 교육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교육의 책임은 세계를 이어받을 새로운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교권은 이 목표를 향해 학교를 민주공화국에 걸맞게 재구조화할 때 비로소 자연스레 확보된다. 다시 말해, 교권은 공화국에 걸맞는 교육 체제의 부산물이지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다. 교사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방어 능력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 그리고 정치적 실천이다.
나는 결심한다. 어른이 되겠다고. 아이의 감정에 무조건 귀 기울이라는 요구와 압력 앞에서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다고. 교사는 과거의 ‘무소불위 권력자’ 혹은 지금의 ‘고객 횡포에 시달리는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고객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기르겠다는 결단으로 아이들 앞에 서야 한다. 이 결심에서 출발하지 않은 교권 담론, 투쟁과 실천, 아이들과 미래를 향한 약속은 권력과 보신을 위한 사사로운 전략이자 무책임한 위로와 언술에 그칠 뿐이다. _ 시민을 기를 결심 (김현희)
교직을 ‘사명’ 혹은 ‘천직’으로 여기던 시대에서 안정된 ‘직업’으로 여기는 시대로 바뀌었지만, ‘충실한 직장인’으로서의 교사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교직에 들어섰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호의를 갖고 그들의 성장을 도우려 애쓴다. 그러니 학부모 입장에서 교사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날의 학부모 민원이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에 교사보다 믿을 만한 어른은 없다. 부모인 나 말고 아이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어른, 그 낯선 타인이 ‘담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주려 애쓰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_ 그래도 선생님은 훌륭하다 (장희숙)
아이의 말만 듣고 선생님께 바로 전화하지 않는 것. 잠시 멈추어 아이와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분별해보는 것. 아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먼저 살피게 하는 것.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부모로서 그것부터 노력해보려 한다. 선생님도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을 믿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_ 학부모와 교사,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김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