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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 2019년 1~2월호] 관계의 언어, 호칭

◉ 목차


엮은이의 말 _ 이름 없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 장희숙


기획 특집 _ 관계의 언어, 호칭

우리,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 김성호

내 이름은 땡글땡글 | 권미경

‘선생님’과 ‘쌤’ 사이 | 한희정

너의 성별을 불러주겠다 | 이라영


제언

정상 가족의 신화는 끝났다 | 조이스 박


단상

형식에 눈뜨게 하는 교육 | 현병호


톺아보기

짜임새로 엮는 단단한 삶 | 홍원의


통념깨기

“얘 혹시 ADHD 아냐?”라는 말의 무게 | 김경림


부모 일기

아빠의 이야기 육아 | 김성훈


디지털과 교육

디지털 원주민을 위한 교육 | 이재포


만남

지성의 코뮌을 꿈꾸는 지순협 대안대학 | 편집실


또 하나의 창

발달장애 아동과 함께한 미술놀이 | 김인규


따뜻한 페미니즘

엄마들의 언어가 필요하다 | 이성경


살며 배우며

학생답게 말고 사람답게 살자 | 서한울


열린 마당

온기가 있는 이웃의 식탁 | 양영희


교사 일기

발도르프학교에서 자란 아이들 | 김혜정


함께 보는 영화

개인의 문제는 사적인 것인가 | 성상민


함께 읽는 책

‘곁’에 선다는 것은 | 이현주


새로 나온 책 | 소자보 | 민들레 읽기 모임



◉ 본문 미리 보기


이태 전, 한 일간지에서 대통령 부인을 ‘김정숙 씨’라고 지칭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이니”, “쑤기”라 애칭을 부르면서, 언론사에는 “‘여사’라는 호칭을 쓰라”며 절독 운동까지 펼쳤던 걸 보면, 호칭은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인 듯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이 서로를 ‘쌤, 님’으로 부르라는 ‘지침’을 내린 것에 여론이 들끓은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수평적인 문화를 위해 나름 고심해서 내놓은 안일 텐데 ‘쌤’이라는 호칭 사용 여부만 놓고 논란이 일었지요. 교육청이 추후 다시 입장을 발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는 호칭의 민주화가 비민주적인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한다 하더라도 ‘지침’으로 민주화를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이가 곧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대안학교나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별명 문화, 반말 문화가 민주적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마냥 “존댓말은 권위적이고, 반말이 좋아”라고 이분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처음엔 교사 학생 사이에 평어를 쓰던 어느 대안학교에서 다시 높임말을 쓰기로 한 것은 다들 말과 사고의 관계, 언어의 교육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경어가 ‘표현을 세밀히 나누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우치다 선생(민들레 115호)의 글도 그런 관점에서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_ 엮은이의 말


쌤과 선생님 사이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언제나 깍듯하게 ‘선생님, 선생님’ 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내가 맺어가는 관계를 ‘쌤, 쌤’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맺어가는 관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두가 고유한 관계일 뿐이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력, 삶의 자리에서 각자가 판단한 결과로 선택되는 것이 호칭일 뿐이다. 늘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밴 학생이 사용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서먹하고 서툰 관계에서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같지만 그 결이 다르다. 그것은 관계와 호칭의 고유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호칭만으로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_ 한희정 <‘선생님’과 ‘샘’ 사이>


“이건 화내는 말투잖아”, “이 말은 착하고 예쁘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자신이 내뱉은 말이나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감촉을 섬세하게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존댓말이어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이야기하는 것을 금방 알아챘고, 반말로 이야기하지만 그게 ‘착하고 예쁜’ 말이라는 것을 스스로 구분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존경과 존중은 존댓말이 아니라 존대하는 감정과 내면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사실은 말의 형태보다는 질감, 즉 말에 담긴 태도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_ 권미경, <내 이름은 땡글땡글>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족환경조사서에는 서류를 작성하는 이의 이름을 쓰는 칸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늘 한 칸을 비워두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고 있는 조손가정 아이들은 이 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  2016년 아이가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면서, 유럽 연합 산하 청소년교류단체에 비슷한 서류를 낸 적이 있다. 여기에도 Parent 1, Parent 2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었다. 항상 먼저 나오는 아버지 칸을 건너뛴 후 어머니 칸에 내 이름을 적지 않고, Parent 1에 내 이름을 당당히 써보는 경험을 난생처음 했다. 아이의 유일한 양육자이자 친권자인 내가 16년 만에 해본 경험이었다. _ 조이스 박, <정상 가족의 신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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