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은이의 말] 아이들이 숨도 쉴 수 없도록 뭔가를 끝없이 채워 넣으려 애쓰는 세상에서 틈의 가치, 심심함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수업 시간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를 야단치기보다 그 순간 아이의 내면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와 통찰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렇게 멍하니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야말로 학교가 갖춘 가장 훌륭한 교육시설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살리자면 그 어떤 교재나 첨단 컴퓨터보다 아이들에게 텅 빈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예전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렀지요. 그 힘으로 근대화 과정의 지난 힘든 세월을 헤쳐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교한 기계로 작동되는 놀이감보다 돌멩이나 나뭇가지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 북돋우듯이, 교육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여백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를 만나고 관계를 성찰하는 힘을 기릅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은 어른들이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의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학생주임이 지키고 선 교문 앞을 고무신을 신고 들어서는 누군가의 그 우습지도 않은 ‘일탈’ 행위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상에 짓눌리지 않는 힘을 기르는 뭔가 중요한 교육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른들의 ‘의도’와 ‘의도하지 않음’의 변증법적 긴장관계 속에서 연금술의 마법처럼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런지요.
[엮은이의 말]
아이들이 숨도 쉴 수 없도록 뭔가를 끝없이 채워 넣으려 애쓰는 세상에서
틈의 가치, 심심함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수업 시간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를 야단치기보다 그 순간
아이의 내면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와 통찰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렇게 멍하니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야말로
학교가 갖춘 가장 훌륭한 교육시설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살리자면 그 어떤 교재나 첨단 컴퓨터보다
아이들에게 텅 빈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예전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렀지요.
그 힘으로 근대화 과정의 지난 힘든 세월을 헤쳐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교한 기계로 작동되는 놀이감보다 돌멩이나 나뭇가지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 북돋우듯이, 교육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여백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를 만나고 관계를 성찰하는 힘을 기릅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은 어른들이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의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학생주임이 지키고 선 교문 앞을 고무신을 신고 들어서는
누군가의 그 우습지도 않은 ‘일탈’ 행위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상에 짓눌리지 않는 힘을 기르는
뭔가 중요한 교육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른들의 ‘의도’와 ‘의도하지 않음’의 변증법적 긴장관계 속에서
연금술의 마법처럼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런지요.
부모 일기
너무 절실한 ‘틈’ | 성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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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단상
용꿈에서 해방되기 | 현병호
발도르프 교육(1)
모방과 심심함의 가치 | 베르너 쿠푸스 ․ 변종인 옮김
이 한 편의 시
독서 ․ 한려일기 | 이병철
민들레 논단
지식교육 다시 돌아보기 | 이병곤
슈투트가르트 통신
큰 배움의 길, 大學을 가는 젊은 친구에게 | 한미경
열린 마당
삶을 가꾸는 우리 말 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왕규식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
고무신 의거 | 김희동
함께 길찾기
내 아이, 대안학교 보낼까 일반학교 보낼까 | 권정민
칼럼
우다다가 남긴 이야기들 | 양희창
함께 읽고 싶은 책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고? | 배성호
소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