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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160호 _ 아이들이 잃어버린 '경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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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160(2026.여름) 아이들이 잃어버린 '경험'의 세계

  •             민들레 편집실 엮음
  •             발간일 2026년 6월 1일
  •             ISBN  9791191621273(03370)
  •             책값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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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나치게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경험’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무균실 같은 교실, 사라지는 체험학습, 화면으로 대체된 놀이와 관계를 통해 오늘의 아이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경험에서 어떻게 멀어지고 있는지를 살핀다. 불편함과 실패, 도전이 제거될수록 아이들의 감각과 삶의 힘 또한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동시에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삶의 무게를 일찍 감당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현실도 함께 조명한다. 아이들에게서 제거되고 있는 경험, 그럼에도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살펴본다. 

 

목차 


엮은이의 말 _ 편치 않은 것들을 마주할 용기 | 장희숙


1부 경험의 상실
무균실 같은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얼 배울까 | 한은화
경험은 신뢰 속에서 깊어진다 | 장희숙
사라져가는 체험학습, 그 교육적 의미 | 김지훈
영유아의 모든 앎은 몸을 거친다 | 박창현
화면 속 경험은 어떻게 가치를 얻나 | 김지윤


2부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경험
‘보는’ 세대의 탄생 | 한희정
빈둥플레이, 여백의 놀이 실험 | 최형욱
아이들의 도둑맞은 성장통 | 신선호
‘고통 없는 삶’을 꿈꾸는 세대와 손절 사회 | 이승연
실패할 권리, 다시 도전할 기회 | 김노아

 

제언_ 학교라는 식민지, 교육주체의 해방을 꿈꾸다 | 김현희

단상_ ‘제대로’와 ‘제멋대로’를 넘나들기 | 현병호

또 하나의 창_ 키즈노트를 사양한 어느 양육자의 이야기 | 이미지

배움터 이야기_ 자립에 도전하는 위기 청년들 곁에서 | 이정현

만남_ 교육 격차 해소에 진심인 어른들이 모였다 | 편집실_사단법인 점프를 만나다

 세상 읽기_ ‘무해한 딸’을 꿈꾸는 아빠들 | 이설기

  

본문 가운데 

 

교실은 ‘불만 제로’를 꿈꾸는 친절한 고객센터로 변해가고 있다. 학부모 민원은 마치 잘 드는 가위 같아서, 아이들의 다채로운 경험을 하나둘씩 잘라낸다. 불, 칼 같은 수업도구 또한 학교에선 구석기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사고가 걱정된다는 민원 때문에 요리 실습은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 승부하는 밀키트 조리 대회가 되었다. 수학시간에 원을 그리기 위한 컴퍼스도 위험천만한 흉기 취급을 받으며 퇴출당한 곳이 많다. 아이가 다치면 “선생님은 뭘 하고 있었나요?”라는 질문이 바로 날아오기 때문에, 교사는 그 칼날을 피하려고 스스로 교육과정을 검열한다 _ 한은화 <무균실 같은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얼 배울까> 가운데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체험학습 폐지가 아니라 개선 방안이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단체관광 수준의 경험도 지양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라는 명분으로 깊은 고민 없이 놀이동산을 가는 식의 체험학습이 굳이 학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져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체험학습은 교사의 고민을 바탕으로, 분명한 교육적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도 스스로 그 의미를 깨닫고 내면화할 수 있어야 그 경험이 진정 가치 있는 배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 _김지훈 <사라져가는 체험학습, 그 교육적 의미> 가운데

 

인공지능이 몸을 갖게 하는 데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이때 우리 아이들은 몸으로 세계를 겪을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계가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수만 번 넘어졌다 일어나며 감각운동기를 모방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이 그 감각운동기를 건너뛰고 있다. 기계는 몸을 갖는데, 인간은 몸을 버린다. 이 시대의 뒤집힌 풍경이다. (...) 피지컬 AI 시대에 영유아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AI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AI가 아직 갖지 못한 감각의 경험을 길러주는 일. 그것이 지금 영유아 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_ 박창현 <영유아의 모든 앎은 몸을 거친다>

 

자연의 냉혹한 질서를 보면 살아 있는 존재는 언제나 위험을 마주한다. 이와 달리, 특히 동아시아 문화에서 보호자는 어린 자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위험을 제거해주고 비바람을 대신 맞아주는 것을 사랑과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위험을 제거해주는 것이 곧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험을 제거하면 어린이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스스로 감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겉으로 보기에 거칠고 위험한 놀이터일지라도 건강한 상식을 가진 어른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지하고 바라보는 가운데,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놀이 공간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실험실이 아닐까. _ 최형욱 <빈둥플레이, 여백의 놀이 실험>

 

식민화된 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에게 리스크 관리 대상이며, 교육적 중재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가깝다. 거대 체계가 교실이라는 생활세계를 무차별적으로 잠식했음에도, 교사를 보호할 제도적 방어막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중재 과정에서 갈등이나 민원이 발생하면 아동학대 신고 같은 치명적인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에, 교사는 자신과 문제를 신속하게 분리하는 회피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화해보다 승리가 우선시되고,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유해 요소로 인식하는 비극적 풍토는 이렇게 완성된다. 사회의 거울인 아이들이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권력과 화폐의 논리로 소비하는 현상은 이러한 구조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_ 김현희 <학교라는 식민지, 교육주체의 해방을 꿈꾸다> 가운데

 

부모나 교사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는 대체로 아이의 탄생성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국가로 대변되는 기성 질서가 전복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주어진 좌표 안에서 움직이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좌표를 벗어나기 어렵다. 부모들 또한 아이가 세상과 불화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반항기를 지나면 다시금 순응 모드로 돌아가고, 특출한 아이들 몇몇이 이탈을 감행한다. 다행히 그 정도로도 세상은 새로워질 수 있다. 도구와 완구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하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순응하는 이들 덕분에 세상은 안정되고, 이탈하는 이들 덕분에 세상은 새로워진다. _ 현병호 <‘제대로‘와 ‘제멋대로‘를 넘나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