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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내 자식, 남의 자식?

표지 이야기


믿기 힘든 광경이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 벌어졌습니다.

은근슬쩍 닭장에 들어와 새끼를 낳고 살던 고양이가

어미 닭과 교대로 알을 품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마찬가지로 어미 고양이가 잠시 외출을 하면

암탉은 네 마리 새끼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를 통해,

‘돌봄’의 역할을 나누자는 아이디어를 냈겠지요.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없이 함께 품어내기.

닭과 고양이에게도 가능했던 이 일이

사람에게서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엮은이의 말 _ 내 새끼와 우리 아이의 거리는


사회적으로 ‘공유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주택난이 심각한 도시에서는 여러 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주거 공간도 늘어나고 있고, 필요한 시간 단위로 자동차를 빌려 쓰는 나눔카도 인기입니다.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나누어 쓰는 협업 소비를 기본으로 한 공유경제는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의 충격 이후 새롭게 탄생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내 것’을 사들이기 바쁜 개인주의로 치달았다가 극한 어려움에 처하자, 결국 인간은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내 집, 내 차가 모두의 집, 모두의 차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에 육아와 교육에 대한 인식도 ‘내 아이’를 넘어 ‘우리 모두의 아이’로 여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곳곳에서 드러나며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지요.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마을은커녕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공동체를 제대로 꾸려가기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마을이 사라져 가족을 꾸리기도 힘들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아교육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공동육아나 품앗이 육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런 시도들이 단지 ‘내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한 또 다른 교육소비가 될까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오래 전 척박한 환경에서도 ‘함께 크는 아이들’을 상상했던 부모들의 초기 정신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이번호에는 삐걱거리면서도 ‘함께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품앗이 육아와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도시 아이들을 시골에서 함께 키우는 산촌유학 이야기에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을 때마다 내 새끼를 위한 욕심은 아닌지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한 엄마의 글,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나서야 ‘모두의 엄마’가 되었다는 단원고 엄마들의 안타까운 깨달음도 새해 첫 호에 엮었습니다.


인간관계의 물리적 거리에 대해 연구한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최소한의 공간적 욕구를 갖는다고 합니다. 그 공간을 침범 당하면 스트레스는 물론 생존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거지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정서적 공간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집착하기 쉬우므로)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 때때로 제 분신인 양 헷갈리기도 하는 귀한 자식에게는 더욱 의식적인 정서적 거리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까우면 못 견디고, 너무 멀면 외로운 것이 사람의 사이니 이번 『민들레』가 서로 사랑하기에 적절한 거리는 어느 만큼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칠 것 없던 겨울바람도 때가 되니 한풀 꺾였습니다. 세월호 부모님들이 팽목항까지 먼 길을 나섰는데, 얼른 마감을 끝내고 하루만이라도 함께 걷고 싶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는 남쪽 바닷가에도 살금살금 봄이 오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년 2월 장희숙




목차


표지이야기 005 고양이, 알을 품다

엮은이의 말 006 내 새끼와 우리 아이의 거리는



기획특집


내 자식, 남의 자식?


008 ‘금쪽 같은 내 새끼’라는 욕심이 들 때 | 이현주

016 산촌에서 새로 가족을 만나다 | 홍성희

024 다른 아이를 껴안는 품앗이 육아 | 백찬주

032 돌봄이 가능한 마을살이 | 유창복 


단상 040 돌봄의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일| 현병호

논단 046 가족의 재구성, 새로운 해방의 전략 | 채효정

공부 거리 057 경쟁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 | 김기협

잊을 수 없는, 세월 066 “이제 우리는 모두의 엄마가 되었어요”| 단원고 엄마들


톺아보기 078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다 | 이충한 

제언 086 2015년, 대안교육이 한국사회에 던질 담론 | 하태욱

교사일기 095 교사가 곧 교육과정이다 | 이철국

만남 102 서로를 살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민들레


또 하나의 창 112 대중은 우둔하지 않다 | 존 테일러 개토

살며 배우며 121 공부와 밥과 우정의 공동체, 파지스쿨 | 이희경

살며 배우며 130 엄마,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 원정래


서평 142 이십대의 자화상, 희망이 있을까 | 양미영

열린 마당 146 아이들에게 제 목소리를 돌려주자 | 김동규

통념깨기 152 2G폰 이용 교사의 스마트폰 관찰기 | 박현희


소자보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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