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최근 서울대공원은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애쓰고 있다.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다에 사는 것이 돌고래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돌고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놀이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_오명화, <산에 가면 별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다> 가운데
엮은이의 말
‘논다’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흔히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말로 “놀고 있네”라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좀 놀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비행 혹은 불량 청소년을 떠올리지요.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그냥, 놀아” 할 때의 머쓱함은 또 어떻고요 .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노는 것이 본업인 아이들에게조차 의미있게 놀아야 하고, 창의적으로 놀아야 하고, 교육적으로 놀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 학급 초등학생들 스트레스 수치를 조사했더니 23명 중 14명이 16년차 직장인 정도의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느 학원가에서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어깨에 메지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초등학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지요. 놀면서도 공부 때문에 불안하다는 아이들, 피곤해서 놀 힘조차 없다는 이 시대 아이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현덕의『너하고 안 놀아』라는 동화책이 떠올랐습니다. 1930년대에 쓰인 이 동화에는 한 동네에 살고 있는 노마, 기동이, 영이, 똘똘이 네 아이가 등장합니다. 부잣집 아들 기동이가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으스대다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다시는 안 놀 것처럼 토라져 싸우기도 하지 만 아이들은 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온갖 놀이를 만들어내며 함께 어울려 놉니다. 이들의 생생한 놀이 세계를 가만히 엿보며 가슴 깊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던 건 책 속에 단 한 번도 어른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란 걸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야 알았습니다. 어른이 없는 세계에서 오로지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생기 넘치고 원초적이며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 놀기 위해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사회를 살면서 아이들에게 놀이의 자유를 주고 싶지만 같이 놀 친구나, 놀 공간도 없을 뿐더러 놀았다간 제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흔들리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회적 연대와 구체적 시도가 필요하겠지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그 공간은 어때야 하는지 두 가지 고민을 함께 하다보면 ‘놀이와 놀이터’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번 민들레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담론에서 한걸음 나아가 그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숨 막히는 아이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엮었습니다.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는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갈망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창한 봄날, 한 명도 빠짐없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대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교수님의 글이나 교과서 안의 세상이 답답해 학교를 뛰쳐나와 밀양 할매, 할배들 곁에서 삶을 배워가는 청년의 이야기도 어찌 보면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과 같을 거라 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의 인류 문명은 ‘놀이’에서 탄생되었다는 하위징아의 말처럼 개인의 위대한 역사 또한 ‘신나게 잘 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바, 아이들에 게만 놀이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호를 끝내면 그동안 팽팽하게 쥐고 있던 정신줄일랑 그만 놓아버리고,시절 모르는 한량처럼 놀이 본능을 불태우고야 말겠습니다.
2015년 6월 장희숙 |
목차
표지 이야기 005 돌고래가 바다로 가야 하는 이유
엮은이의 말 006‘놀이’를 결심해야 하는 사회
특집_ 놀이와 놀이터
008 산에 가면 별처럼 빛나는 아이들이 있다 | 오명화
019 제대로 놀아보면 알게 되는 것들 | 한희정
028 위험한 놀이터에서 삶을 배운다 | 편해문
039 어린이 놀 권리 선언| 어린이 놀이헌장 원탁회의
044 놀이터에 부는 새 바람! 순풍? | 편집실
단상 056 놀이 본능을 일깨우자 | 현병호
잊을 수 없는 세월 064 포스트 세월호, 교육의 (불)가능성에 대한 단상 | 이희경
통념 깨기 071‘순수에 대한 집착, 솔로강아지 | 이라영
부모 일기 080 아빠 육아, ‘다시 사는 자’의 괴로움과 즐거움| 신동섭
또 하나의 창 088 대학, 시민성을 찾아서| 김진우
교사 일기 094 탈북 청소년은 미리 찾아온 짝꿍이다 | 박상영
교사 일기 104 담배 별곡 ‘노타바코’ | 방승호
살며 배우며 111 할매, 할배와 밀양을 살며| 남어진
열린 마당 120 새로운 윤리적 세대의 탄생 | 이윤영
열린 마당 130 학교를 넘어서 적정교육으로 | 김재진
다시 읽는 명칼럼 138 길 위에서 즐겁게 공부하기 | 이순원
톺아보기 140 너는 내 인생의 발여자? | 손자연
한 편의 영화 148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다면 | 이용준
서평 154 사랑하는 아이에게 왜 상처를 주게 될까? | 현호섭
풍향계 160 고교 자유학년제, 오디세이학교를 시작하다 |편집실
풍향계 172 눈먼 관광주간, 애먼 단기방학 | 편집실
표지 이야기
최근 서울대공원은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애쓰고 있다.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다에 사는 것이 돌고래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돌고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놀이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_오명화, <산에 가면 별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다> 가운데
엮은이의 말
‘논다’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흔히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말로 “놀고 있네”라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좀 놀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비행 혹은 불량 청소년을 떠올리지요.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그냥, 놀아” 할 때의 머쓱함은 또 어떻고요 .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노는 것이 본업인 아이들에게조차 의미있게 놀아야 하고, 창의적으로 놀아야 하고, 교육적으로 놀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 학급 초등학생들 스트레스 수치를 조사했더니 23명 중 14명이 16년차 직장인 정도의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느 학원가에서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어깨에 메지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초등학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지요. 놀면서도 공부 때문에 불안하다는 아이들, 피곤해서 놀 힘조차 없다는 이 시대 아이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현덕의『너하고 안 놀아』라는 동화책이 떠올랐습니다.
1930년대에 쓰인 이 동화에는 한 동네에 살고 있는 노마, 기동이, 영이, 똘똘이 네 아이가 등장합니다. 부잣집 아들 기동이가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으스대다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다시는 안 놀 것처럼 토라져 싸우기도 하지 만 아이들은 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온갖 놀이를 만들어내며 함께 어울려 놉니다. 이들의 생생한 놀이 세계를 가만히 엿보며 가슴 깊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던 건 책 속에 단 한 번도 어른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란 걸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야 알았습니다. 어른이 없는 세계에서 오로지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생기 넘치고 원초적이며 참으로 인간적입니다 .
놀기 위해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사회를 살면서 아이들에게 놀이의 자유를 주고 싶지만 같이 놀 친구나, 놀 공간도 없을 뿐더러 놀았다간 제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흔들리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회적 연대와 구체적 시도가 필요하겠지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그 공간은 어때야 하는지 두 가지 고민을 함께 하다보면 ‘놀이와 놀이터’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번 민들레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담론에서 한걸음 나아가 그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숨 막히는 아이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엮었습니다.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는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갈망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창한 봄날, 한 명도 빠짐없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대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교수님의 글이나 교과서 안의 세상이 답답해 학교를 뛰쳐나와 밀양 할매, 할배들 곁에서 삶을 배워가는 청년의 이야기도 어찌 보면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과 같을 거라 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의 인류 문명은 ‘놀이’에서 탄생되었다는 하위징아의 말처럼 개인의 위대한 역사 또한 ‘신나게 잘 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바, 아이들에 게만 놀이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호를 끝내면 그동안 팽팽하게 쥐고 있던 정신줄일랑 그만 놓아버리고,시절 모르는 한량처럼 놀이 본능을 불태우고야 말겠습니다.
2015년 6월 장희숙
목차
표지 이야기 005 돌고래가 바다로 가야 하는 이유
엮은이의 말 006‘놀이’를 결심해야 하는 사회
특집_ 놀이와 놀이터
008 산에 가면 별처럼 빛나는 아이들이 있다 | 오명화
019 제대로 놀아보면 알게 되는 것들 | 한희정
028 위험한 놀이터에서 삶을 배운다 | 편해문
039 어린이 놀 권리 선언| 어린이 놀이헌장 원탁회의
044 놀이터에 부는 새 바람! 순풍? | 편집실
단상 056 놀이 본능을 일깨우자 | 현병호
잊을 수 없는 세월 064 포스트 세월호, 교육의 (불)가능성에 대한 단상 | 이희경
통념 깨기 071‘순수에 대한 집착, 솔로강아지 | 이라영
부모 일기 080 아빠 육아, ‘다시 사는 자’의 괴로움과 즐거움| 신동섭
또 하나의 창 088 대학, 시민성을 찾아서| 김진우
교사 일기 094 탈북 청소년은 미리 찾아온 짝꿍이다 | 박상영
교사 일기 104 담배 별곡 ‘노타바코’ | 방승호
살며 배우며 111 할매, 할배와 밀양을 살며| 남어진
열린 마당 120 새로운 윤리적 세대의 탄생 | 이윤영
열린 마당 130 학교를 넘어서 적정교육으로 | 김재진
다시 읽는 명칼럼 138 길 위에서 즐겁게 공부하기 | 이순원
톺아보기 140 너는 내 인생의 발여자? | 손자연
한 편의 영화 148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다면 | 이용준
서평 154 사랑하는 아이에게 왜 상처를 주게 될까? | 현호섭
풍향계 160 고교 자유학년제, 오디세이학교를 시작하다 |편집실
풍향계 172 눈먼 관광주간, 애먼 단기방학 |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