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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 2019년 9~10월호] 홈스쿨링, 언스쿨링, 소셜스쿨링

◉ 목차


엮은이의 말

홈과 스쿨 너머의 상상


기획 특집  _ 홈스쿨링, 언스쿨링, 소셜스쿨링

홈스쿨링이 죄일까│류정렬

홈스쿨링, ‘홈’을 넘다│김형태·박미영

우리는 ‘학업중단자’가 아닙니다│송혜교

홈스쿨링운동을 돌아보다│편집실

홈스쿨링 제도화 방향│이종태


만남

버려진 장난감의 ‘쓸모’를 찾아서│사회적기업 금자동이

열린 마당

사다리에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순 없을까│엄미야

통념깨기

권위를 의심한다는 것│현병호

또 하나의 창

걷기의 교육학│서용하

톺아보기

‘욕심 없는 부모 되기’의 어려움│권미경

부모일기

다운증후군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4 | 최세민

살며 배우며

나는 체벌을 끊었다│문선종

디지털과 교육

디지털 감시사회와 주홍글씨│이재포

배움터 이야기

부적응을 선택했다, 오디세이학교를 마치고│박진슬

함께 읽는 책

로컬, 우리 앞에 놓인 ‘오래된 미래’│김진우

함께 보는 영화

“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최정현

지난 호를 읽고

교육농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옆집

독자마당 │ 새로 나온 책│소자보


◉ 본문 미리 보기


시대의 변화와 함께 교육의 흐름은 점점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학교에서든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든, 배우고 싶은 것을 광범위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을 예견한 존 홀트John Holt는 “스쿨링 해제”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홈스쿨링의 방점이 ‘스쿨’에 있지 않다는 거지요. _ 엮은이의 말


이따금 홈스쿨링에 대해 알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첫 질문이 “시간표는 어떻게 짜나요?”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을까요?” 이런 거예요. (…)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까가 아니라, 가정 안에서 내가 어떤 부모가 될지를 함께 고민해가는 것이 더 본질적인 홈스쿨링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가 얼마나 삶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같이하느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홈스쿨링은 ‘학습법’이 아니라 ‘삶을 전환하는 방법’으로 쓰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_ 박미영·김형태, <홈스쿨링, ‘홈’을 넘다>


홈스쿨링생활백서에서 활동하는 팀원들은 10~20대의, 각자 본업이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입니다. 실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배포하는 일을 청소년지도사도 전문가도 아닌 학교 밖 청소년들이 직접 하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아무런 데이터베이스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품을 팔아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만약 중앙정부 차원에서 같은 작업을 진행한다면 정말 손쉽게 끝날 것입니다.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홈스쿨링생활백서의 소식을 받아보고 있다는 것이 대표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자본도, 전문성도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도대체 나라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_ 송혜교, <우리는 ‘학업중단자’가 아닙니다>


작은아이의 꿈은 교육부 장관이다. 왜냐고 물으니 학원과 시험을 다 없애고 싶어서란다. 사실 아이가 장관보다는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잘대며 꿈을 말하는 아이에게 굳이 현실 운운하며 재를 뿌리지는 않았다. 아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거나,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기특하고 기뻤다. 아이의 꿈이 변치 말기를. 혹시 장관의 꿈은 잃어도 학원과 시험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_ 엄미야, <사다리에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순 없을까>


등굣길, 하굣길은 자라나는 아이에게 흥미진진한 탐험의 대상이자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사회적인 발달 외에도 아이들은 걷는 행위를 통해 다양한 신체적 자극을 받는다. 통학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과 상점들, 굽이지고 경사진 거리, 달라지는 날씨 등은 그 자체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바깥에서 걷는 것이 인지 부분을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 피질을 강화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_ 서용하, <걷기의 교육학>


오디세이학교 설명회나 누군가가 오디세이학교에 관해서 설명해야 할 때 심심치 않게 나오는 질문이 있다. “여기 나온 학생들은 일반학교로 돌아가면 잘 적응하나요?” 글쎄, 나는 일반학교로 돌아가서 잘 적응했던 걸까. 나는 가끔 교육청 민원으로 교사들을 귀찮게 했고, 많은 일반학교 교사들을 혐오했다. 같은 반 친구들 절반 이상을 속으로 몰래 싫어했고, 그들의 놀라운 젠더감수성 때문에 그들에게 공감하거나 동의하기 어려웠다. (…) 일반학교에 들어가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못된 일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_ 박진슬, <부적응을 선택했다, 오디세이학교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