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엮은이의 말│이토록 사소한 정치
기획_거리의 정치, 일상의 민주주의
분노를 넘어 삶을 바꾸는 풀뿌리 정치│하승우
비폭력 직접행동, 유머로 저항하라!│이용석
선 하나를 넘는 용기│채효정
데일리 민주주의│장시내
대한민국 십대, 시민으로 살다│이새해
시국이 시국인 만큼! 청소년들의 목소리│편집실
또하나의창_사려 깊은 반항아로 이끄는 길│알피 콘
제언_교육운동, 한 걸음 더 나아가기│현병호
탐방_전환마을에서 삶과 교육의 전환을 상상하다│태영철
살며배우며_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식당│윤영희
배움터이야기_청소년과 유아, 서로 돌보며 자라는 교육공동체│차상진, 하태욱
지상강좌_읽기는 과학이다│신성욱
삶의인문학_열정적이고 냉혹한 우정을 가르쳐준 루쉰│김정주
교사일기_김영란법에 뒤틀리고 쓰린 속을 다스리며│한희정
세상보기_대학이란 무엇인가│김진우
만남_자퇴생들을 위한 커뮤니티 ‘세학자’│편집실
통념깨기_“여자가”라는 말│여백
부모일기_자연주의 육아의 딜레마, 예방접종│이임주
함께보는영화_사람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김남훈
민들레 읽기 모임 190 시민 정치를 위한 책 198
새로 나온 책 200 소자보 202
엮은이의 말
이토록 사소한 정치
이런 시국에!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시민의 ‘의무’겠다 싶어서 출판사 대문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조그만 피켓을
붙여 놨는데, 어제 출근길에 보니 말끔히 떼어졌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걸어둔 노란리본도 며칠 만에 슬쩍 사라졌었지요.
이따금 마당 정리를 하러 오시는 주인아주머니가 그러신 걸, 안 봐도 압니다. 노란리본 걸어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요” 속으론 ‘위층 아가씨는 엄지 척 하고 갔는데요!’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꾸하질 못했습니다.
세 들어 사는 입장이니까, 부당하다고 생각됐지만 눈을 꾹 감은 것이지요.
지금에야 좀 후회가 됩니다. 노란리본을 떼어내셨을 때 이것이 내겐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의사를 표현했었더라면, 혹은 이 집
대문에 노란리본을 걸 수 있는 권리는 ‘소유한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 ‘실제로 사는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의논하고 조율했더라면 이번처럼 피켓을 또 말없이 떼어버리진 않으셨을 텐데. 어찌 보면 일상에서 소소한 협상을 위해 소통하는 것,
그게 정치의 시작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놈이 그놈이지’ 하며 정치로부터 멀어졌던 국민들이 그 냉소와 환멸의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르고 있습니다. 힘든 이 시간이
그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이겠다 싶기도 한데요. 분노와 상실감에 잠겼던 시민들은 이제 좀더 ‘의식적으로’ 삶의 정치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꾼’들이나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집회는 자기를 표현하고 타자를 만나는 공공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곳곳에서
창조경제를 능가하는 창조저항이 시작되었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던 민주주의 교육도 이제야 생기를 찾았습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집회에 나온 고3 학생에게 시험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라가 더 걱정”이랍니다. 91호 <정치가 꽃피는 교육>이나 103호 <시민의 탄생>을 엮어낼 때만 해도 ‘정치’를
삶으로 데려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악행보살’의 공으로 단숨에 온 국민이 정치적 시민이 되었으니 현장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듯합니다.
거리로 나온 정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위한 이야기들을 엮어보았습니다. 풀뿌리 정치가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한 사례부터 백만 촛불이 넘지 못하는 ‘선’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켜주는 글도 있습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청년이나, 엄마와 갈등하며 거리에 나선 청소년의 글은 물론 마을육아, 어린이식당, 인문학공동체, 자퇴생 모임에서 이미 정치를
시작한 ‘주체적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물쩍 넘어가던 것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귀기울여볼 만합니다.
까칠한 것, 예민한 것은 ‘깨어 있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니까요.
어지러운 시국에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저도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가입해 있는 정당 사람들과 동네에서 작은 책모임
하나를 만들었지요. 이렇게 사소한 게 무슨 정치냐고요? 글쎄요, 이렇게 사소한 게 정치 아닐까요? 어두운 시절이지만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모두 간절히 원하니까,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주리라 기대해봅니다.
2016년 12월 장희숙
엮은이의 말│이토록 사소한 정치
기획_거리의 정치, 일상의 민주주의
분노를 넘어 삶을 바꾸는 풀뿌리 정치│하승우
비폭력 직접행동, 유머로 저항하라!│이용석
선 하나를 넘는 용기│채효정
데일리 민주주의│장시내
대한민국 십대, 시민으로 살다│이새해
시국이 시국인 만큼! 청소년들의 목소리│편집실
또하나의창_사려 깊은 반항아로 이끄는 길│알피 콘
제언_교육운동, 한 걸음 더 나아가기│현병호
탐방_전환마을에서 삶과 교육의 전환을 상상하다│태영철
살며배우며_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식당│윤영희
배움터이야기_청소년과 유아, 서로 돌보며 자라는 교육공동체│차상진, 하태욱
지상강좌_읽기는 과학이다│신성욱
삶의인문학_열정적이고 냉혹한 우정을 가르쳐준 루쉰│김정주
교사일기_김영란법에 뒤틀리고 쓰린 속을 다스리며│한희정
세상보기_대학이란 무엇인가│김진우
만남_자퇴생들을 위한 커뮤니티 ‘세학자’│편집실
통념깨기_“여자가”라는 말│여백
부모일기_자연주의 육아의 딜레마, 예방접종│이임주
함께보는영화_사람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김남훈
민들레 읽기 모임 190 시민 정치를 위한 책 198
새로 나온 책 200 소자보 202
엮은이의 말
이토록 사소한 정치
이런 시국에!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시민의 ‘의무’겠다 싶어서 출판사 대문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조그만 피켓을
붙여 놨는데, 어제 출근길에 보니 말끔히 떼어졌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걸어둔 노란리본도 며칠 만에 슬쩍 사라졌었지요.
이따금 마당 정리를 하러 오시는 주인아주머니가 그러신 걸, 안 봐도 압니다. 노란리본 걸어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요” 속으론 ‘위층 아가씨는 엄지 척 하고 갔는데요!’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꾸하질 못했습니다.
세 들어 사는 입장이니까, 부당하다고 생각됐지만 눈을 꾹 감은 것이지요.
지금에야 좀 후회가 됩니다. 노란리본을 떼어내셨을 때 이것이 내겐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의사를 표현했었더라면, 혹은 이 집
대문에 노란리본을 걸 수 있는 권리는 ‘소유한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 ‘실제로 사는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의논하고 조율했더라면 이번처럼 피켓을 또 말없이 떼어버리진 않으셨을 텐데. 어찌 보면 일상에서 소소한 협상을 위해 소통하는 것,
그게 정치의 시작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놈이 그놈이지’ 하며 정치로부터 멀어졌던 국민들이 그 냉소와 환멸의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르고 있습니다. 힘든 이 시간이
그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이겠다 싶기도 한데요. 분노와 상실감에 잠겼던 시민들은 이제 좀더 ‘의식적으로’ 삶의 정치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꾼’들이나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집회는 자기를 표현하고 타자를 만나는 공공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곳곳에서
창조경제를 능가하는 창조저항이 시작되었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던 민주주의 교육도 이제야 생기를 찾았습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집회에 나온 고3 학생에게 시험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라가 더 걱정”이랍니다. 91호 <정치가 꽃피는 교육>이나 103호 <시민의 탄생>을 엮어낼 때만 해도 ‘정치’를
삶으로 데려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악행보살’의 공으로 단숨에 온 국민이 정치적 시민이 되었으니 현장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듯합니다.
거리로 나온 정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지기 위한 이야기들을 엮어보았습니다. 풀뿌리 정치가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한 사례부터 백만 촛불이 넘지 못하는 ‘선’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켜주는 글도 있습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청년이나, 엄마와 갈등하며 거리에 나선 청소년의 글은 물론 마을육아, 어린이식당, 인문학공동체, 자퇴생 모임에서 이미 정치를
시작한 ‘주체적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물쩍 넘어가던 것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귀기울여볼 만합니다.
까칠한 것, 예민한 것은 ‘깨어 있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니까요.
어지러운 시국에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저도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가입해 있는 정당 사람들과 동네에서 작은 책모임
하나를 만들었지요. 이렇게 사소한 게 무슨 정치냐고요? 글쎄요, 이렇게 사소한 게 정치 아닐까요? 어두운 시절이지만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모두 간절히 원하니까,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주리라 기대해봅니다.
2016년 12월 장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