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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덕후 전성시대

엮은이의 말

쓸모없음의 쓸모


기획 특집_덕후 전성시대

오타쿠에서 덕후까지 | 김성윤

101명의 덕후를 만나다 | 신세인

덕후 탐구생활 | 박경주

재즈 덕후가 겪은 교육 비스무리한 이야기 | 이병곤


제언

대안의 함정을 경계하며 | 현병호

톺아보기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1) | 이찬승

단상

죽음을 바라보는 삶의 자세 | 장희숙

또 하나의 창

사춘기를 주저하며 보내야 하는 이유 | 우치다 타츠루

부모일기

피는 물보다 진할까 | 정은주

기차학교 홈스쿨링 | 김태진

지상강좌

스마트한 시대의 디지털 육아 | 정현선

산촌일기

고라니의 염치 | 채효정

교사일기

핵심역량교육에 앞서 | 김인규

배움터이야기

어제는 밭을 갈고 오늘은 바느질을 했지만 | 들주

살며 배우며

읽으며 나날이 진화하는 삶 | 서용하

생생한성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 조아라

소곤소곤

아빠가 들려주는 적정기술 이야기 | 정해원

함께보는영화

뜨개질,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내다 | 성상민

서평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길은 없다 | 현호섭

책수다

내 마음의 집은 어디인가 | 한수경


민들레 읽기 모임 180 새로 나온 책 188 소자보 190



엮은이의 말


쓸모없음의 쓸모


선선한 저녁, 옛 동료와 공원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예기치 못한 그의 덕력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주인과 산책 나온 각종 반려견들의 종류는 물론 그 혈통과 성격, 유래를 줄줄 꿰고 있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 되어 백과사전을 보며 달달 외웠다나요.

그를 개 덕후로 만든 것이 ‘가정형편’만은 아니라 생각되는 것이 그는 다방면에서 가히 덕후스럽습니다.

도무지 덕질에는 흥미와 재능이 없는 저로서는 이번 기획을 꾸리며 덕후의 자질, 특성, 조건 등을 가늠하기에

그의 존재가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그를 통해 파악하건대 덕후의 특징은 집요하고, 끈기 있고, 세심하고,

무엇보다 남들 보기에 ‘하등 쓸모없는 일(짓)’을 아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덕후는 ‘자기 세계에 갇힌 외톨이’에서 ‘학위 없는 전문가’, ‘한 우물 파는 능력자’로 그 위상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글은 일본의 오타쿠가 한국의 덕후로 토착화되기까지, 중독적 서브컬처 소비자에서

참여형 소비자가 되기까지 문화의 경향성을 짚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덕후들과의 만남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도 엿보실 수 있을 거고요.

덕질로 직업까지 찾으면 좋지 않느냐며 사회적으로 덕업일치를 지향하는 추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덕질의 핵심은 ‘쓸모없는 일을 하는 과정의 즐거움’에 있는 듯합니다. 길지 않은 인생,

“아름다움과연애”하며 살아가라는 재즈 덕후의 조언처럼, 사람은 좋아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 반짝입니다.

나는 무엇을 덕질하며 살아가는지, 남들에겐 쓸모없어 보이지만 내 안의 나를 반짝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쓸모없음의 쓸모를 찾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누군가 저더러 민들레 덕후라기에 발끈하며 정정했지요. 덕후가 아니라 워커홀릭”이라고요).

최근 한 정치인의 발언이 논란입니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정규직이 되어야 하느냐”고 했다가 소란이 일자

“공기처럼 특별한 존재감 없이 지키고 있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해 더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그분 참, 밥하는 아줌마의 존재감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출판사에서 같이 점심밥을 해먹는 게 큰 즐거움인데,

요즘 같은 더위엔 요리할 엄두가 나질 않아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불볕더위에 나 대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 아니던가

감사히 여기면서요. 채효정 선생님의 <고라니의 염치>를 읽고 나선 더욱,

하늘 같은 공을 하늘로 여길 줄 아는 것이 사람의 염치겠구나 생각해봅니다.


2017년 7월, 장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