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엮은이의 말 _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희망
기획 특집 _ 시민의 탄생
양극화에 맞서는 힘, 시민으로 서기 | 곽노현
자율과 공생의 문탁네트워크 | 장희숙
시민은 늘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 | 전주희
시민적 공공성을 위한 교육의 전환 | 조한혜정
단상_ 입장을 함께한다는 것 | 현병호
삶을 나누는 창_ 눈 내린 날, 학교 가는 길 | 김선영
논단_ 우리는 자유로운가 | 이한
열린 마당_ 선거는 왜 19금일까 | 김소아
연재_ 적정 놀이터를 권하며 | 편해문
통념 깨기_ 배우는 기술을 배우기 1 | 데오도르 다이몬
만남_ 시민존엄권을 찾아서,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 편집실
칼럼_ 때론 뒷걸음질로 걸어야 하는 이유 | 이문재
톺아보기_ 평범한 위인을 키우는 덴마크 육아 | 조민경
또 하나의 창_ 마을에서 찾은 공동육아의 가치 | 정가람
지상 강좌_ 공동체를 위한 교육 | 우치다 타츠루
살며 배우며_ 머리에서 발로 이어지는 공부 | 이현주
부모 일기_ 적당한 엄마 되기의 어려움 | 안순아
부모 일기_ 엄마의 버킷리스트 | 신순화
한 편의 영화_ 돼지의 재발견, 잡식 가족의 딜레마 | 김준수
서평_ 사람을 향한 희망의 인문학 | 현호섭
새로 나온 책 186 소자보 188 민들레 읽기 모임 190
엮은이의 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희망
한파가 찾아온 지난 주말 저녁,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느라 한뎃잠을 자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발끝이 얼얼하고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혹독한 추위였지요. “얼마나 고생이 많아요” 하면서 가져간 손난로를 건네자 그걸 받는 학생 한 명이 슬쩍 웃습니다. 둘둘 말린 담요 옆에 이미 보온병이며 도시락이며 과일, 손난로 같은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구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일일 수밖에 없는’ 역사의 무게를 함께 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시민’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시민성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그 감수성의 실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민들레에서 말해왔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도 결국 ‘좋은 시민’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를 확장함으로써 더 큰 나를 만나게 되는 기쁨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안겨지는 큰 선물일 것입니다.
올해 첫 호 특집에 ‘시민과 시민성’ 이야기를 담은 것은, 갈수록 우리 삶을 잠식하는 강한 파국의 기류 속에서 ‘좋은 개인’만으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개인으로 존재하는 이는 ‘좋은 사람’일 수는 있지만 ‘좋은 시민’이기는 어려우니까요.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시민교육이라는 스무 살 청년의 이야기나, 조한혜정 교수가 제안한 시민 공공성을 위한 전환교육, 자치를 통해 공생의 길을 찾는 문탁네트워크의 사례도 결국 사회를 바꾸는 근원은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글들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인지적 노예로서의 국민이 어떻게 하면 평등한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지 이한 변호사의 명쾌한 글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연결된 존재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며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번 호는 혼자보다 ‘좋은 개인’들이 모여 공부하듯 함께 읽으시면 더 좋겠다 싶습니다.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 위의 사람들을 더 서럽게 만드는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갔으면 싶다가도, 추위를 짱짱하게 견뎌내고서야 봄이 올 것임을 알기에 매서운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해봅니다. 휘청거릴지언정 꺾이지 않고 온몸으로 견디어내는 것도 시민으로서의 ‘강한 저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6년 2월 장희숙
목차
엮은이의 말 _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희망
기획 특집 _ 시민의 탄생
양극화에 맞서는 힘, 시민으로 서기 | 곽노현
자율과 공생의 문탁네트워크 | 장희숙
시민은 늘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 | 전주희
시민적 공공성을 위한 교육의 전환 | 조한혜정
단상_ 입장을 함께한다는 것 | 현병호
삶을 나누는 창_ 눈 내린 날, 학교 가는 길 | 김선영
논단_ 우리는 자유로운가 | 이한
열린 마당_ 선거는 왜 19금일까 | 김소아
연재_ 적정 놀이터를 권하며 | 편해문
통념 깨기_ 배우는 기술을 배우기 1 | 데오도르 다이몬
만남_ 시민존엄권을 찾아서,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 편집실
칼럼_ 때론 뒷걸음질로 걸어야 하는 이유 | 이문재
톺아보기_ 평범한 위인을 키우는 덴마크 육아 | 조민경
또 하나의 창_ 마을에서 찾은 공동육아의 가치 | 정가람
지상 강좌_ 공동체를 위한 교육 | 우치다 타츠루
살며 배우며_ 머리에서 발로 이어지는 공부 | 이현주
부모 일기_ 적당한 엄마 되기의 어려움 | 안순아
부모 일기_ 엄마의 버킷리스트 | 신순화
한 편의 영화_ 돼지의 재발견, 잡식 가족의 딜레마 | 김준수
서평_ 사람을 향한 희망의 인문학 | 현호섭
새로 나온 책 186 소자보 188 민들레 읽기 모임 190
엮은이의 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희망
한파가 찾아온 지난 주말 저녁,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느라 한뎃잠을 자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발끝이 얼얼하고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혹독한 추위였지요. “얼마나 고생이 많아요” 하면서 가져간 손난로를 건네자 그걸 받는 학생 한 명이 슬쩍 웃습니다. 둘둘 말린 담요 옆에 이미 보온병이며 도시락이며 과일, 손난로 같은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구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일일 수밖에 없는’ 역사의 무게를 함께 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시민’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시민성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그 감수성의 실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민들레에서 말해왔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도 결국 ‘좋은 시민’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를 확장함으로써 더 큰 나를 만나게 되는 기쁨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안겨지는 큰 선물일 것입니다.
올해 첫 호 특집에 ‘시민과 시민성’ 이야기를 담은 것은, 갈수록 우리 삶을 잠식하는 강한 파국의 기류 속에서 ‘좋은 개인’만으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개인으로 존재하는 이는 ‘좋은 사람’일 수는 있지만 ‘좋은 시민’이기는 어려우니까요.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시민교육이라는 스무 살 청년의 이야기나, 조한혜정 교수가 제안한 시민 공공성을 위한 전환교육, 자치를 통해 공생의 길을 찾는 문탁네트워크의 사례도 결국 사회를 바꾸는 근원은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글들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인지적 노예로서의 국민이 어떻게 하면 평등한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지 이한 변호사의 명쾌한 글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연결된 존재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며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번 호는 혼자보다 ‘좋은 개인’들이 모여 공부하듯 함께 읽으시면 더 좋겠다 싶습니다.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 위의 사람들을 더 서럽게 만드는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갔으면 싶다가도, 추위를 짱짱하게 견뎌내고서야 봄이 올 것임을 알기에 매서운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해봅니다. 휘청거릴지언정 꺾이지 않고 온몸으로 견디어내는 것도 시민으로서의 ‘강한 저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6년 2월 장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