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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28호] 육아에 상식은 없다 외

엮은이의 말 l

흔들리며 끊임없이 흔들리며 l

대안교육 장사
얼마 전에 ‘느낌표!’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책 "우리들의 하나님"을 선정하려고 녹색평론사로 연락을 했는데 김종철 선생님이 ‘우리는 그런 거 하지 않겠다’며 간단히 거절했다고 한다. ‘느낌표!’에 선정되면 몇십만 부짜리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관례가 되다시피 하여 많은 출판사들이 어떻게든 자사 책이 선정되기만 기다리는 마당에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차는 녹색평론사가 이해되지 않았던 방송국 담당자는 저자에게까지 연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님 또한 그 제안을 가볍게 거절했단다. 그 프로그램의 경박함에 대한 정중한 비판이었을 수도 있고, 오락성을 가미해서 책과 저자를 소개하고 가수요를 만들어내어 책을 수십만 부씩 파는 행위가 반생태적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살아갈수록 절감하게 된다. 어느 날 ‘느낌표!’에서 민들레 책을 선정하고 싶다고 연락해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니 좋은 일 아니냐며 자신을 설득해 당장 몇만 부 재판을 찍지 않을 자신이 있나? 자신이 없다. 돈을 벌어서 좋은 책도 더 많이 내고 의미 있게 쓰면 되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기가 쉬울 것이다.
대안교육을 내걸고서 책을 만들어 파는 민들레출판사도 따지고 보면 대안교육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마전 같은 출판유통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그래도 5년 동안 버텨온 것만으로도 잘 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지만 스스로는 그다지 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5년이 되어서도 근근이 버티고 있는 현실을 자각할 때나, 더 늦게 시작해서도 잘 나가는 출판사들을 볼 때면 출판인으로서 무능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출판을 통한 교육운동을 제대로 한 번 해봐야지 마음을 먹다가도 교육운동 마인드로 출판을 하다가는 영영 영세 출판사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아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 든다.
얼마 전에는 한 출판사의 이사라는 분이 찾아왔다. 3년째인 신생 출판사인데 베스트셀러가 두어 권 된다고 했다. 그 출판사에서 대안교육 쪽 책을 내볼까 싶어서 도움말을 듣고자 왔다고 했다. 민들레출판사는 경쟁 출판사라기보다는 교육운동 단체 같은 곳으로 생각해서 편하게 조언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민들레에서 나온 책 판매 현황을 듣더니 대안교육 출판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접는 것 같았다. 적어도 6개월 안에 5천 부 이상은 나갈 책을 내야만 수지타산이 맞다는 그 출판사로서는 대안교육 출판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출판시장 관점에서 대안교육을 바라보는 출판 관계자들을 간혹 만나면서, 대안교육의 사회적 영향력이 이만큼 커졌구나 싶어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대안교육에도 상업주의가 스며들어오나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같은 책장사를 하는 출판업자로서 민들레는 상업적인 출판사와 어떻게 다른가 자문해보게 된다. 제대로 된 책장사꾼이 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알차고 아름답게 만드는 전문성도 떨어지고 독자들이 요구하는 좋은 책을 발 빠르게 내지도 못하고, 격월간지는 발간일자를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애쓴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결함들이 덮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이 만들어 파는 책의 내용에 대해 삶으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장인정신으로 책의 품질이나 독자에 대한 서비스를 책임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출판인으로서 자신이 내는 책의 정신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실리 앞에서 원칙을 훼손하지 않기란 어떤 일에서나 부딪히는 시험 같은 것이리라. 그 시험에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는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다. 대안교육 장사꾼과 운동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대안교육 출판사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되는 장사에는 꾼들이 모인다지만 
대안교육이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린 지 육칠 년쯤 된다. 대안교육, 대안학교란 말을 교육부와 거대 언론에서 선점하면서 대안교육의 의미가 왜곡되는 느낌을 받은 지도 꽤 된다. 일찍부터 교육부에서는 대안교육을 학교부적응 청소년들을 위한 보완책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춰 정책을 추진해왔다. 정부가 학력을 인정하고 재정지원도 하는 특성화학교(인성교육 중심)의 절반 이상이 그런 학교들이다. 정부로서는 공교육의 근본적인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도 인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초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대안교육 확대 내실화 방안’이란

것을 내놓았다. 확인해본 결과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기획안 단계에서 언론에 보도된 것이었지만 머지 않아 그 비슷한 수준에서 법이 제정될 기미가 보인다. 학력 인정이 되는 대안학교 설립이 더 쉬워지면 도시형 대안학교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여기에 가장 먼저 뛰어들 준비 태세가 된 곳은 입시학원들이다.
앞으로 대도시 학원들 가운데 대안학교 간판을 거는 곳들이 여기저기 생겨날 것 같다. 3년 전에 이미 그런 조짐이 보였다. 한참 탈학교 청소년들 이야기가 신문 방송에 오르내릴 때였다. 입시 명문 학원으로 이름난 한 학원의 이사장이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학원건물이 다 비어 있는데 그 건물을 대안교육 시설로 활용할 수 있을지 자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학원 시설부터 한번 둘러보라고 해서 용산이랑 천호동에 있는 학원을 가봤다. 웬만한 단과대학 건물만한 용산 빌딩이 통째 비어 있었다. 천호동 학원 한 층에서는 에디슨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국인 교사가 영어교육을 하고 있었다. 자체 방송국 시설까지 갖춘 그 곳을 둘러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갖춘 학원들이 대안교육 영역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구나 싶으면서 대안교육이 벌써 이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나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 뒤 그 학원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체 시장조사 결과 아직 뛰어들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크고 작은 수많은 학원 관계자들이 대안교육 쪽을 눈여겨 보고 있음을 안다. 그 중에는 건강한 철학을 갖고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려고 고민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

개는 시장성을 엿보는 이들로 보인다. 머지 않아 대안학교까지는 아니라도 대안교육을 간판에 내건 학원들이 곳곳에 등장할 것이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올 여름방학 강좌로 개설한 ‘명강의’ 중에 대안교육이란 간판을 걸고서 논술시험 대비 강좌를 개설한 게 눈에 띈다. 삼 년째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열고 있는 ‘대안학교 교사양성 과정’이 꽤 잘 팔리는 강좌로 입증되면서 논술시험 강좌까지도 대안교육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강사가 자신의 강좌를 그렇게 홍보하길 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문화센터 홍보담당자의 섣부른 ‘마케팅’ 감각이 그런 광고문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광고문이나 간판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학원이나 문화센터 같은 교육시장 영역에 대안교육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될 만한 장사에는 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꾼들이 설치기 전에 이 판을 떠날까 싶기도 하다가 그럴수록 자리를 지키고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지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다. 애써 길 닦아 장사꾼들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싶다가도 같은 장사꾼 주제에 오십보 백보 차이가 아닌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흔들리며 끊임없이 흔들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흔들림의 시대에 홀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어지러워 쓰러지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꼿꼿이 중심을 잡는 외줄타기꾼처럼 장사를 하되 원칙과 철학을 지키는 장사꾼, 자신이 만드는 책에 부끄럽지 않은 출판인이 되는 것, 대안운동이란 게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민들레 단상
개가 개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 현병호

교사 일기
강요된 삶에서 벗어나 내 삶의 주인으로 서기 / 조경미

열린 마당
우리 마을에서 함께 학교를 만들 교사를 찾습니다 / 주창복

대안학교 이야기
이우학교를 말한다 / 이광호·박옥순·김경옥 

살며 배우며 
오뚱이네 배움터 이야기(2) / 이신영 꿈 / 이해강

또 하나의 창
육아에 상식은 없다 / 이케가와 아키라

대안교육 소식
대안교육 확대 · 내실화 방안에 대해 / 편집실 홈스쿨링 법제화 국회 포럼에 다녀와서 / 편집실

민들레 논단
다양성과 공공성의 조화 / 김희동 ‘청소년증’에 대한 탈학교 청소년들의 생각 / 민들레사랑방 

통념 깨기
모기와 맺은 혈연관계 / 조안 엘리자베스 록

민들레가 만난 사람
흙피리 부는 아이 태주네 이야기 / 김창환

소자보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미술캠프 / 과천 무지개 교육마을 교육사랑방 2기 / 대전 대안학교 준비 워크샵을 엽니다 / 우이동 재미난 학교(초등) 만들기 함께하실 분 / 대안학교 별에서 샛별(신입생)을 모집합니다 / 은평씨앗학교에서 자원교사를 모집합니다 / 꿈꾸는 아이들을 모집합니다 / 제2기 서남 발도르프 유아교사 세미나 / 타로 카드로 사람 만나기 / 다시 춤을 춥시다 표현미술 모임을 함께 하실 분을 찾습니다 139 배움의 연대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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