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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31호] 폭력 없는 출산을 위하여 외

엮은이의 말 l

우리는 부자가 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l


불황의 터널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도 점점 20대 80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청년 실업과 명퇴가 사회현상처럼 비치는 요즈음, 그럴수록 경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서 이제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에게도 경제교육을 시키려 드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부모들의 그런 불안심리에 편승하는 장사꾼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지요. 출판계만 해도 어린이 경제교육서라는 이름으로 부자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앞다퉈 쏟아져 나오고 있고 부자 아닌 아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책들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을 일찌감치 돈에 눈 뜨도록 만드는 것이 제 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조바심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 살 길을 찾는 것이 부자가 되어야 가능한 것은 아니련만 마치 부자가 유일한 살 길인 듯 '부자 신드롬'이 온 사회를 휘젓고 있습니다. 먹고살 만한 정도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홀로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빠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눠서 보기 좋아하는 이들이 많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요. 제 멋대로 줄을 그어놓고서는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거냐고 다그치는 이들의 횡포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아이더러 중심 잡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사실 우리 사회의 부자 떠받들기는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그 뿌리가 깊다고 봅니다. 흥부도 결국에는 부자가 되었기에 인정을 받았지 그대로 가난뱅이였다면 흥부전이 결코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부자가 될 수 없던 민중들이 이야기 속에서 제비를 통해서나마 부자 되는 꿈을 실현시켜보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흥부전이 아닐까요. 이런 현상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제비는 박씨 대신 로또를 물어다주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과연 경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푼 두푼 아끼고 모으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을 만큼 아이들도 이제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습니다. 부자 부모나 부동산 투기, 로또의 힘을 빌지 않고 이 땅에서 부자가 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는 이 시대에 저축 운운하는 경제교육이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월급쟁이도 재테크를 잘 하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으니 그런 것이라도 열심히 가르치면 될까요?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위한 경제교육의 기본은 무엇일까요? 자신과 사회를 지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유자적 헤엄을 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올바른 경제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자가 되도록 부추길 것이 아니라 자립할 줄 알고 서로를 도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 오늘을 제대로 건강하게 살면서 돈을 써야 할 때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쓸 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경제교육이 아닐까요.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거시경제의 안목을 길러주는 경제교육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듯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경제교육이 성공할수록 세상은 더 살맛 나지 않는 곳이 될 것만 같습니다.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한 경제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아니, '고민' 따위는 하지 말고 즐겁게 궁리하면서 작은 실천들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새해는 정말이지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폭력 없는 탄생을 위한 출산문화를 소개하는 글들도 눈여겨보셨으면 합니다. 대안교육을 이야기하기 전에 대안적인 출산문화부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사회의 폭력성은 출산 문화에서도 어김없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은 현대 교육의 폭력성과도 맥이 닿아 있으며 죽음의 과정에까지도 깊숙히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병원에서 인상 쓰고 악 쓰면서 태어나, 한평생 숨가쁘게 선착순 달리기를 하다가, 또 다시 병원에서 인상 쓰며 죽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너무 서글픈 인생이 아닐까요.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출산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교나 임신 과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지요. 그러고 보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으려 애를 쓰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들레에서 그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민들레 독자의 대부분이 이미 아이를 낳아버린 부모님들이라,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으라는 말이냐고 항의하실까봐 조심스러웠습니다. ^ ^;
하지만 과거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움직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임신과 출산 과정을 새롭게 통찰함으로써 아이와의 관계 맺기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 둘째나 셋째를 낳을 계획이 있거나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분이라면(또는 그런 분이 주위에 있다면) 출산 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이 과연 어떤 교육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런 교육이 실현 가능한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와 실천 작업을 제안합니다. 대안교육의 내실화를 위해서나 교육 전반의 질적 변화를 위해서 절실한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기존 대학에 기대하기보다 교육주체들이 스스로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연구도 하면서 새로운 교육학을 정립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교육을 위한 연구공간【대안과 실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부모, 학생,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는 연구자들을 위한 자치대학(원) 성격을 띤 이 공간의 목적은 대안교육 현장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서 새로운 교육학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이론을 연구하고 새로운 교육현장에 대해 연구 지원하며, 교사(예비교사)와 부모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 공간에서는 회원들이 관심사에 따라 스스로 세미나를 꾸리고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강좌를 기획하며, 다양한 소모임(교육철학 연구모임, 교육과정 연구모임, 대안교육현장 연구모임, 교과 연구모임…)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 성과물이 출판물로 세상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다양한 기획물을 만들어내고 저서와 번역서를 펴내는 일도 병행할 것입니다. 새로운 교육을 위한 담론을 형성하고자 무크지를 창간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이들이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연구작업과 실천작업을 병행했으면 합니다. 함께하고자 하는 분들은 민들레 편집실로 이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mindle98@empal.com)


31호 차례

엮은이의 말
기획 | 폭력 없는 출산을 위하여
집에서 아이 낳아 보셨나요? / 정연희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 이현진
출산은 기분 좋은 일이다 / 이케가와 아키라
의학적 신화에서 벗어나기 / 미셸 오당
부모 일기
좌충우돌, 개구쟁이 학교 다니記 / 심은희
열린 마당
나 읽기, 세상 읽기 그리고 표현하기 / 현병호
교육과 자연(과학)적 원리 / 이철국
거울 보기
어린이 경제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 / 강수돌
살며 배우며
나무꾼, 산에서 내려오다 / 이해강·이해성
홈스쿨링 캠프를 마치고 / 정준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이들을 돌보는 문화 만들기 / 김희동
통념 깨기  
지구공동체로 귀향하기 / 조안 엘리자베스 록
민들레 논단
평준화 논쟁, 거짓말 또는 멍청함 / 이한
함께 읽고 싶은 책
위험한 녹색, ‘상품화된’ 학교를 뒤집어엎자 / 편집실
교육정보
새로운 교육을 위한 연구공간 <대안과 실천>
소자보
난나학교 예비학교 / 대안교육 모색을 위한 울산시민모임 강좌 / 간디대안교육연수원 4기 연수생 모집 / 인시도자연학교 안내 / 산울림학교 안내 / 대안학교 한들 신입생 모집 / 벼리어린이학교 교사 모집 / 덩더꿍어린이집, 사이좋은 어린이집 교사 모집 / 광주전남 민들레 독자 모임 / 배움의 숲 돌봄선생님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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