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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교육, 마을에서 길을 찾다

마을 살리기와 아이들 살리기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사는 곳을 닮는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마을, 어른들이 살맛 나는 마을을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려 애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살아나야 하고, 또

교육이 살아나기 위해서도 마을이 살아나야겠지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을 그런 마을로 만드는 일,

지금 여기에서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엮은이의 말 | 어디에 있든 그곳에 당신의 발자국을 새길 수 있기를


올 설에도 고향 앞으로 향한 대한민국 사람이 무려 2,8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를 일러

고난의 행군이라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리지만 해마다 어김없이 행군은 이어집니다. 사람들

은 그 이유를 들어 농경문화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가부장제의 힘겨운 샅바싸움이라고도 하고,

가족을 내세워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자본의 마케팅 전술이라고도 합니다. 누군가는 가족밖에

믿을 게 없는 힘든 시대의 반증이라고도 합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이유들이 뒤섞여 2,800만의

이동을 만들어내는 거겠지요.


요즈음 전국에 바람이 일고 있는 ‘마을 만들기’,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슬픈 시대를 넘어설 묘

약으로 이만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사실 ‘마을 만들기’란 말이 좀 어폐가 있긴 합니다. 마을이

란 게 그렇게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언제, 누가 시작한 것인지 알 도리

가 없는, 몰라야 제대로 ‘마을 만들기’일 테니까요.


‘마을 만들기’의 대명사로 떠오른 성미산마을만 해도 그렇습니다. 곁에 살면서 지켜본 제 기억

에도, 성미산마을이 사실 처음부터 ‘마을 만들기’ 운운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맞벌이 부

부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어린이집을 찾다가, 아무리 둘러봐도 딱 맘에 드는 게 없으니 그럼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우리어린이집’이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었고, 같이 마음

모아 아이를 키우려니 가까이 모여 살아야 하고, 그러자니 자연스레 같은 동네에 터를 잡았습니

다. 물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터를 잡는다고 그게 온전히 내 터가 되는 건 아니지요. 그래도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앞집뒷집으로 전세 살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다 아예 눌러 앉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먼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진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됐

습니다. 그 와중에 동네에 문제가 있으면 삼삼오오 모여 의논도 하고, 힘을 모아 같이 싸우기도 하

고, 그렇게 함께 동네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게 누군가 그렇게 처음 그림을 그려놓고, 자, 이

제 이것부터 해보자 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서로 가까이 있어 좋으니까 그렇게 계속 시간과 공간

을 공유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이지요.


마을은 바로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한 시간과 공간의 총체’일 것입

니다.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는 그런 게 아닌. 그런 점에서 마을과 사람은 닮은꼴입니다. 내가 보낸

시간과 공간의 총체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까요. 민들레가 마을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인간의 배움과 성장은 그의 일상적 시간과 공간이 있는 마을에서 이뤄진다는, 이 자

명한 사실 때문입니다. 이번호에서는 이것이 왜 자명한 일인지, 마을 담론에서 잊지 말아야 할 쟁점

들이 무엇인지를 살폈습니다. 각자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 교육과는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작은 이정표 노릇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오늘 어디 계시든 부디 그곳에 발자국을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아 있는 이들의 흔적

을 생각하며 자신의 일상을 가꾸고 동네를 일궈 가시길 빕니다. 당신의 발자국이 새겨진 동네와 우

리 동네가 만나고, 또 다른 당신의 동네가 연결되고, 마침내 우리는 ‘아주 큰 마을’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런 대찬 꿈을 새해 벽두에 꿉니다.





목차


표지 이야기 005 마을 살리기와 아이들 살리기

엮은이의 말 006 어디에 있든 그곳에 당신의 발자국을 새길 수 있기를 | 김경옥



특집 '교육, 마을에서 길을 찾다'


도시고 농촌이고‘마을 만들기’가 유행입니다.

그 중심에는‘아이들 잘 기르기’가 숨어 있구요.

건강한 마을에서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에서 비롯되는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서로 어깨를 걸기 전에 마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008 마을공동체, 그 매력과 두려움 | 유창복

016 마을운동과 교육운동 | 현병호

024 대안학교를 선택했더니 마을이 따라왔다 | 한미정

033 구로아리랑 | 성태숙

052 마을, 어떻게 살릴까? | 임경수

056 환대하는 마을공동체와 그 적들 | 고영직


069 _ 민들레 단상 _ 권정생과 소박한 마을 | 하승우

074 _ 세상 읽기 _ 쿠바, 기로에 선 20대 같은 나라 | 백승우

086 _ 열린 마당 _ 전문가와 전인 사이에서 | 여연

095 _ 열린 마당 _ 모순을 인정하는 사회 | 김기현

104 _ 공부 뒤집기 _ 언어, 주의 깊게 다루기 | 이한


113 _ 통념 깨기_ ADHD에 관한 불편한 진실 | 김경림


126 _ 통념 깨기 _ 획득의 학습에서 물듦의 학습으로 | 박동섭

136 _ 배움터에서 _ 프레네와 이오덕 그리고 비고츠키와 혁신학교 | 이부영

150 _ 교육풍향계 _ 청년, 새로운 교육을 꿈꾸다 | (가)지구마을청년대학 준비모임

152 _교육풍향계 _ 문구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 편집실

154 _교육풍향계 _ 어느 기독교 대안학교의 명암 | 편집실

156 _ 함께 읽고 싶은 책 _ 그들이 보라는 대로 보지 않을 자유 | 강도은

167 새로 나온 책

168 소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