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도서

노래하는 나무

노래하는 나무

  • 저자 한주미
  • 발간일 2000년 03월 20일 
  • ISBN 89-88613-02-3 
  • 책값 9,800원 


"슈타이너 교육은 '나'에게 무엇인가?"

이 책은 영국에서 발도르프 교사양성 학교(에머슨 대학)를 나온 한주미 님이 들려주는 슈타이너 교육 체험기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120여 명의 학생들과 30여 명의 교사들이 함께 꾸려가는 배움의 공동체인 그 곳에서 글쓴이가 지난 3년 동안 체험한 슈타이너 교육의 이모저모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이 아닌,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이 책이 다른 발도르프 관련 책과 다른 점은

에머슨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고부터 논문 발표를 마치기까지 교사양성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체험들과 발도르프 학교에서의 교생실습과정, 그리고 한국에서 발도르프 교육 워크샵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조근조근하게 소개합니다.

리듬과 교육, 예술로서의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발도르프 학교와 교사양성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소개하는 내용이 돋보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이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기보다 발도르프 교육을 자신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나'에게 발도르프 교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깊이 있는 체험과 사색과정을 거쳐 보여준다는 점이 다른 발도르프 교육 관련 책들과 구별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발도르프 교사양성과정을 마친 사람으로서 자신의 체험을 나누는 이 이야기는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차례

1.징검다리를 놓으며

2.작은 마을 큰 학교 - 에머슨 칼리지

3.강가에 나무를 심으려는데요!
생명의 '리듬'
축제, 봄을 열며

4.손과 마음 일깨우기
닭 만들기 시간
내 손이 하는 일을 믿어 보기
유리드미
노래가 가득한 학교
명상하기
나 바라보기

5.아이들 바라보기
울타리 경험하기 - 0 세에서 7 세까지
내가 세상에 우뚝 서기 - 7 세에서 14세까지
자기 표정이 있는 아이들 - 14세에서 21세까지

6.발도로프학교에서 지내보기
명상으로 시작하는 교사들의 아침
활짝 열린 교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예술적 과정
자석 이야기
자석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7.아이들 바라보기 -나의 관찰 기록에서
외로운 아이, 마리까
선생님, 저도 할 수 있어요
학습장애아의 유형과 아이들 돕기
잠 이야기

8.슈타이너 교육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9.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한국에서 발도로프 워크샵을 열며

11.발도로프 교사교육 과정을 보면서
책상이 없는 강의실
발도로프 학교에서는 텔레비젼을 보지 못하게 한다던데요?

12.사냥꾼처럼 일하지 말고, 농꾼처럼 일하라

13.따로하는 이야기
따로 하는 이야기, 하나 - 에머슨 대학의 교사양성과정
따로 하는 이야기, 두울 - 사진으로 담아 본 에머슨 대학
따로 하는 이야기, 세엣 -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물음들


맨 마지막 부분인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물음들'을 소개합니다.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물음들
발도르프 교육을 소개하는 워크샵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오신 분들의 궁금함을 애써 담아 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은 있게 마련이다. 워크샵에 오셨던 많은 분들이 내내 궁금해 하셨던 것들을 간단히 옮겨 보았다. 이 질문들은 발도르프 학교에서 실습을 하는 동안, 방문객들한테서 받았던 질문들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에게 이 질문들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궁금함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이런 문제는 이렇게 본다.' 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 물음들은 '발도르프 교육' 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문제이다. '나' 라는 인간이 여지껏 살아왔고, 살아있고, 또 살아갈 삶의 태도와 관련된 질문이다. 그래서 어떤 질문들 앞에선 참 당황스럽다. 답변을 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렇게 살고 있나?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해도 부끄럽지 않나?' 하는 물음이 커져서 나를 망설이게 한다.
'거참, 속시원하게 술술 잘 설명해 줬네!' 하는 얘기를 들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욕심인 걸 안다. 그래서 물음에 대한 답변 대신 오히려 부탁을 드리기로 한다. 모두 함께 이 질문에 답을 한번 해 보자고! 그리고 내가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건 거기에서 좀더 나아가, 이 질문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그걸 한번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답변에는 망설임과 부족함이 꺼칠꺼칠 삐져나오고 있다. 발도르프 교육을 온전하게 보여 주는 답변이라기보다는 '한주미라는 사람은 발도르프 교육을 이렇게 경험하고 있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그건 편리해서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를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요……
발도르프 학교는 전 세계에 약 7백여 개가 있다. 유치원은 천여 개가 넘는다. 독일, 영국, 스위스 같은 유럽 국가와 미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에 주로 있으며, 아시아에는 인도, 필리핀, 타일랜드, 일본, 타이완에 유치원이나 학교가 한두 개씩 있다.
발도르프 학교는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희망자 모두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1학년에서 8학년까지 한 교사가 내내 담임을 맡기 때문에 그 학년에 빈자리가 있어야 일단 입학 사정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를테면, 내 아이가 6학년에 입학할 나이인데, 마침 6학년 학급에 전학을 간 아이가 있어 빈자리가 있다면 일단 입학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때로 그 학급에 전입학이 잦아 아이들에게 좀 안정된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교사는 더 이상 새로운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
그 다음, 입학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은 입학사정면담에서의 교사, 학부모, 아이의 신뢰 관계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가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의 교육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학 사정에서는 담임과 입학 사정위원회의 면담자들이 학부모와 아이를 '따로 또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면담을 한다. 그리고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작성한 아이의 생활기록부(아이가 다른 학교에서 전학올 경우)와 아이에 대한 부모의 상세한 의견을 비중 있게 검토한다.
부모는 교사(학급 담임과 입학 사정위원)의 면담에서 아이의 성장과정과 또래 집단과의 관계, 가족의 생활 모습과 아이의 건강에 관한 모든 정보를 설명해야 한다. 물론 아이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부모의 의견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아이가 입학할 경우, 부모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교실에서 교사를 돕는 일을 해야 하는데, 부모가 얼마나 이 일에 협력할 수 있는지도 교사와 함께 의논해 볼 수 있다. 또 발도르프 학교에서 강조하는 가정 환경, 이를테면 집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기, 아이와 날마다 이야기 나누기, 아이들 간식 준비와 축제 준비 같은 것들이 부모에게 요청된다.
담임 교사와 입학 사정위원회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와 아이를 함께 면담하는 시간도 갖는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이해 정도, 부모에 대한 아이의 믿음 정도를 알아, 학교가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한다. 학교는, 아이와 부모가 좋은 환경과 관계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 보다는 그 아이와 부모에게 발도르프 교육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 교사와 부모가 아이 교육을 위해 서로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는 교사와 학교에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고, 담임 교사는 아이의 행동과 학습 능력에 대한 간단한 진단을 하게 된다. 이는, 아이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고 입학을 결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이 학교가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정보를 얻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아이가 입학한 뒤. 교사가 그 아이의 교육을 돕는 데 아주 주요한 자료가 된다.
1학년의 경우에는, 입학을 고려하고 있는 부모와 아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사전에 여러 번 이들 예비 학부모와 아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는, 학교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교사와 부모가 무엇을 함께 고민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안내해 줄 수 있을지를 의논할 수 있는 기회이다.
가끔, 부모와 아이의 가정 환경이 교사와 학교가 끌어안기에 어려울 경우, 입학이 안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모나 아이 가운데 어느 쪽이든 특별한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든지, 아이에게 학습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경우인데, 만약 학교가 이를 위한 충분한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면 입학에 문제가 없지만, 재정이 어렵거나 교사가 모자랄 경우, 입학이 안 될 수도 있다.
대강의 원칙들만 소개했는데, 학교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므로 아이를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분들은 해당 학교와 자세히 의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슈타이너의 교육 이론이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요즘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요? 빨리 성장하지요. 그렇군요. 사회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만큼 아이들도 빨리 성장한다면…… . 아마 조금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가 나 있을 거예요.……(중략)"

슈타이너 학교는 1919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처음 세워졌다. 학교를 처음 세울 당시 교사들에게 강조되었던 것은 현재의 사회를 발전시키기 의해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또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어떤 소질이 있으며, 그 힘을 어떻게 계발시켜 주어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이럴 때 비로소 성장하는 아이들의 힘이 사회로 스며들어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고 보았다.
슈타이너는, 교육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인간은 신체를 가진 물질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체 우주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영적, 정신적 존재라고 설명하였다. 슈타이너는, 한 인간은 우주와 인류 역사를 반영한 소우주이며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함을 강조했다. 초기 아동기(7세 이전)를 보면, 아이들은 온몸이 하나의 감각체이며, 세상과 우주와 자신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세상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한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아이들은 나무나 꽃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어른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인류 문명사를 보면, '생각의 힘이 탄생하기 전(르네상스 시대 전)'에는 사람들이 신, 하늘, 정신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많았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서 정신은 더 이상 실재가 아니며, 사람들 개개인의 자각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세상과 자기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7-9세 아이들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이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의 자의식이 더 뚜렷하게 생성되고, 마침내 인간은 과학과 지식으로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형성을 설명하려 하였다. 이것은 정신 세계로부터 물질 세계로의 전환을 보여 준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은 이전과는 달리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사춘기를 거치는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자의식과 그들만의 독특한 표정과도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슈타이너는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형성이라는 원칙에 비추어 한 인간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아주 큰 틀이면서 동시에 아주 섬세하기도 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들이라면 아이들이 언제 기어다니기 시작하고, 언제쯤 걷기 시작하고, 언제쯤 말을 하기 시작하는지 안다. 조금 빠른 아이도 있고, 조금 느린 아이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만 느려도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것 같다. '빠른' 아이가 내 아이의 성장 정도를 재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옆집 아이는 벌써 기기 시작하는데…… 혹시 우리 아이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 뭐 이런 불안 말이다. 병원에서 정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면 좀 안심이 되지만, 그렇다고 옆집 아이에 비해 '늦다' 라는 생각을 떨치기는 힘들다.
이런 불안과 조급함은 사실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게 늘 따라 다닌다. 그러다 보니 뒤집기를 해야 할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두고, 배를 밀며 기어 다녀야 할 아이들을 붙잡아 세워 보려고 애를 쓴다. 부모도 힘들지만 아이들도 힘들다. '뭐 그렇게까지야…… .' 하시는 분들도 아이가 기어다닐 무렵이 되면 벌써 글자가 크게 쓰인 동물이나 꽃 사진을 벽 이곳저곳에 붙이기 시작한다. 소리 하나하나를 즐겨야 할 너댓 살 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준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다닐 무렵이 되면 웬만한 한글은 읽고 쓴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왕따'를 당한단다.
알고 보면, 아이들이 빨리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재촉한다. 이런 현실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 우리에게 발도르프 학교의 수업은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다. 1학년 교실에서는 여전히 이야기 듣기가 많고, 2학년이 되어서야 동화책을 띄엄띄엄 읽고, 중학교 3학년 정도가 되는 9학년 교실에서는 일반 초등학교에서 해 봄직한 과학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좀 여유를 가지고 이들의 수업 과정을 살펴보면 좀 늦거나 유치하다는 걱정이 조금씩 물러난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하는 경험이 참 풍성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지고 있어서 더 이른 시기에 글자를 가르쳐야 한다거나 더 어려운 이론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아이들 교육을 바라보기보다는, 어떻게 아이들이 자라야 제대로 자라는 것인지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오히려 더 느긋하게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고 교육한다. 일찍 글자를 익혀야 더 똑똑하고 성공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글자를 제대로 읽고 쓸 만큼 성장할 때(7-8세)까지 기다린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아이를 기르겠다기보다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조기 교육이라는 것이 어른들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글자를 빨리 가르치기보다는 글자에 대한 기대와 그것을 배울 준비를 더 많이 하게 한다. 어떤 것을 배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고, 또 배움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는 시작하는 시기가 좀 늦더라도 아이들이 더 크면 모두들 문제 없이 글을 읽고 쓰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무조건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아이들 전 존재가 글(문자)과 만나면서 그것을 깨우치고 또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안내하는 데 더 힘쓰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글자를 익혀야 한다는 것은 경쟁에서 아이들이 조금 앞서는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들은 이언 논리를 아예 무시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속이 차도록 세상을 제대로 차근차근 만나 나갈 수 있는 그런 즐거움과는 바꿀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글자를 늦게 배워 뒤떨어진 사람이 되었다는 졸업생들의 불평이 있었다면 발도르프 학교의 교과 과정은 아마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야기의 첫 머리에서 중략한 부분을 다시 온전하게 옮기면서 이야기를 닫는다. 이는 위에 옮겨 놓은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받은 한 발도르프 학교 교사의 답변이다.
"아이들요? 빨리 성장하지요. 그렇군요. 사회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만큼 아이들도 빨리 성장한다면…… . 아마 조금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가 나 있을 거예요. 음…… 사회가 지금보다 더 미친 듯이 성장한다면, 그 땐 아이들이 열 달이 아니라 일곱, 여덟 달만에 태어날 거예요. 모든 게 빨라지니까요. 사회가 급변하는 만큼 아이들이 빨리 자란다면 말이예요.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예요. 그러면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할 거예요. 열 달 만에 태어나는 아이는 늦둥이가 되겠지요. 그렇게 바뀌어야 마땅하다면 말이예요."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담임을 한 교사가 8년이나 계속 맡는다는데, 혹시 그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없는지요?
"평생 한 부모만 모시고 사는 것이 지겹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요?"
발도르프 학교를 돌아본 방문객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래도 몇 분은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이제 막 이이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한 해가 저물어 버려 다른 교사에게 아이를 맡겨야 했던 교사들이라면 한 해 동안의 만남이 얼마나 짧은지 이해가 되리라. 물론 '아이고, 그 골치덩어리, 이제 안 보게 되어 속이 다 시원하다!' 하고 손을 탈탈 터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부모들은 새 학기만 되면 마치 복권 추첨을 앞에 둔 사람마냥 누가 이번에 자기 아이의 담임이 될지 조마조마해 한다. 그럼 아이들은?
8년이라는 기간 동안 한 교사가 같은 아이들을 만난다면, 그것도 교사가 아이와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한다면, 아이들은 부모만큼이나 교사들로부터 이해를 받으면서 자랄 수 있다. 마치 혈연과 같은 만남이 생기게 된다. 올해는 운좋게 좋은 담임 만났다거나 담임을 잘못 만나 아이가 걱정이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만나면서, 부모와 교사, 교사와 아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큰 버팀목이 된다. 교사는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잘 알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감이 커진다. 교사와 부모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이웃이 된다.
8년 동안 한 담임 교사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교사의 교육적 권위를 체험하고 또 배우게 된다. 7세 이전의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안정감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경험한다는 예기를 했다. 이제 7세가 넘으면, 아이들은 또래 집단을 만들면서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알아간다. 아이들은 '자기' 와 '남' 을 구별하며, '자기' 와 떨어진 '거대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즐거운 모험심도 느끼고 때로는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자신을 안정되게 보살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편, 교사는 8년 동안 아이들이 배워야 할 모든 교과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몇몇 과목들, 이를테면 종교, 손공예, 유리드미, 체조, 밭이나 정원 가꾸기, 외국어는 해당 과목의 교사가 따로 있다. 이들 과목을 제외한 학과는 담임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학습 속도와 관심에 따라 교사는 얼마든지 수업 속도와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교사는 아이들이 9학년이 되어 전문 교사에게 수업을 받기 전까지, 아이들이 모든 과목에 충분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고 또 기초를 풍성하게 가꾸어 주는 형태로 수업을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속초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한 학급 담임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학교에 요구해 그렇게 해 보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분처럼 담임을 연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분들이라도 8학년 담임제를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하실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내가 맡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격려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새 학기가 되어 내가 맡았던 아이들과 더 이상 교실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옛날에 만났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기도는 일요일에 교회에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봐요. 어떤 사람을 위해서 가끔씩 마음을 쓰고, 사람들 안부를 진심으로 가끔씩 물어주는 것이 진정한 기도지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큰 기도지요." 내가 만난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자세. 그게 바로 8년 담임제에서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서구에서 발달한 교육 이론이라 우리가 적용해 보기에는 부적절한 것이 있으리라고 보입니다. 혹시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면 예를 들어 주세요.
교과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당장에 우리가 그대로 적용해 보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다. 말하기(Speech)라든가 유리드미(Eurythmy)가 대표적인 예이다. 말하기나 유리드미에서 호흡의 중요성이라든가 공간 느껴 보기 같은 기본 원칙들은 굳이 '한국에서의 적용'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알파벳 하나 하나를 동작으로 만들어 놓은 'Speech Eurythmy' 같은 것은 우리말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도 있다. 3학년이 되면 성서 이야기가 수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우리가 이것을 무조건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서양에서 하는 대로 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불교 문화의 뿌리를 가진 우리로서는 우리 신화를 알아가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한편, 서양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동양의 것으로, 또는 한국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폐쇄성이고 독선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심이나 편견이 너무 강하면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성서 이야기가 3학년 또래의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여, 이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성서 이야기를 3학년 교실에서 소개하되, 기독교 관점에서 단순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자연과 모든 생명 있는 것에 영혼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한 사랑을 알려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로서는, 슈타이너 교육이 '서구적' 이라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보다는 그의 사상과 교육이 내게 생소한 데서 오는 어려움이 더 큰 것 같다. 내 삶에 대한 근본 문제들을 관통해서 보도록 권유하는 슈타이너의 이야기 앞에서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게 잘 된다면, 적용의 문제는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다시 고쳐 써 본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한국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 서구에서 발달한 것이라 동양에서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한국다운 것이 없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내가 이 교육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이 교육을 실천하는 데 내 한계가 많아서일까? 적용은 누가 하나? 슈타이너가? 아니면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이?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부족함에 대한 걱정이 참 많구나.
부족한 점은요? 부적절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문제점이 뭐지요?
아! 이런 마음을 밝고 여유롭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구나.
트집을 잡기 전에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기.
문제점보다는 배울 점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기.
머리, 가슴, 손발이 함께 가기.
누구보다도 나에게 필요하구나!

슈타이너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일반 공립학교를 졸업한 사람들과 비슷하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지내고, 직장을 다니고, 의사, 변호사도 있고, 예술가도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라면, 대학에서 발도르프 학교 교사 교육을 받고 자신의 모교로 돌아오는 졸업생들이 종종 있다는 것. 슈타이너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진지하고 즐겁게 누릴 줄 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와 부모와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꼭 아이들에게만 어떤 특별한 교육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발도르프 교육을 잘 모른다는 걸 뜻한다.
발도르프 학교를 졸업하면 모두가 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금물이다. 발도르프 학교는, 아이들을 이른바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와 성공한 삶으로 데려가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사랑과 믿음과 진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고자 한다.
좋은 음악회에 가족이 함께 간다고 생각해 보자. 음악회가 끝나고, 누군가가 "이 음악회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지요?"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살며시 웃어 보이리라.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체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체벌을 해야 아이들 교육이 바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체벌 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하다. 체벌을 하지 않아도 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나 벌이 없이도 교육이 가능하다.
발도르프 학교에는 체벌이 없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아이를 꾸중하거나 체벌을 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도 없다. 아이가 산만하고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할 경우, 체벌보다는 그 아이가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두 번까지 주의를 준다. 그래도 또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면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상담교사실에서 상담교사와 시간을 보낸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상담실은 반성문을 쓰거나 매맞는 곳이 아니라 학급 조력실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수업 시간에 학급에서 쫓겨온(?) 아이들은 상담교사와 이야기책도 읽고 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왜 쫓겨왔는지 같은 물음은 아이에게 하지도 않으며, '벌'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이미 자신이 학급에서 분리된 것에 위기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더 자극해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교사와 집중해서 '개인적 관심과 접촉'을 받은 아이들은, 다음 시간 학급에 돌아왔을 때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교실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이들에게 최대의 벌이다. 보통은 교사가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보내기보다는 교실 청소나 정리 정돈, 화분에 물 주기, 종이 나눠주기처럼 그 아이가 학급에서 자기 일을 갖고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물론 아이가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과 교사들은 수업을 계속한다. 이렇게 일정한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제 일을 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활동을 곁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흥미가 있으면 곧 수업으로 언제든지 돌아온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공격성이나 수업 방해의 요인을 자신의 수업 태도나 행동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관찰과 부모 면담을 집중해서 한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결국, 체벌보다 교사 자신의 행동과 습관이 아이들을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수업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학급당 인원수도 많고…… 체벌이 필요한 이유를 아무리 더 늘어놓는다 해도, 사랑만큼 아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걸 온전하게 믿는 교사들은 체벌에 유혹되지 않는다.
체벌하는 교사. 글쎄, 정말 때려서 아이들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걸까? 교사 눈앞에서 아이들은 반성하는 마음 없이 그냥 무릎만 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종아리, 손바닥, 엉덩이, 뺨, 심지어는 온몸에 몽둥이나 주먹을 휘둘러대는 교사들을 많이 보았다. '다 잘 되라고 때린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말을 믿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꾸지람 한번 크게 하시고는 교실 뒤쪽에서 물끄러미 밖을 보며 눈가를 붉히시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한 해 내내 우리와 함께 청소를 하시던 분이 생각난다. 박수태 선생님. 지금까지도 그 분께는 참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구나 감사하며 지낸다. 꼴찌반 되었다고 단체 기합을 주기보다, '우리 다음 번 시험에선 꼴찌 한번 면해 보자.' 하시면서 머쓱하게 손을 부비시던 선생님. 모두에게 이만한 기억은 있으리라.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리라.
체벌? 아이를 때리는 교사의 눈을 보라. 매 맞는 아이의 눈을 보라.
그 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나?

학부모가 수업에도 참여하고, 교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학부모들이 수업에 참여하며, 교사와 얼마나 자주 상담을 하고 있는지요?

아침.
유치원에서부터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학교에 온다. 교사는 늘 교실 문 앞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을 맞는다. 교사와 부모는 간단히 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간식 당번을 맞은 부모는 교사에게 간식을 건네준다.

수업(3학년 교실)
오늘은 동화책 읽기 시간이다. 학부모 두 분이 점심 시간이 끝나 갈 무렵 교실로 들어선다. 아이들의 독서카드를 죽 훑어 본 다음 교실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자기 자리에서 읽기 시작한다. 부모는 독서카드를 보면서 아이들을 한 명씩 옆에 앉히고 함께 글을 읽는다. 한 아이와 대강 5분 정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아이와 책을 읽고 또 카드를 작성한다.
읽기 수업이 끝나면 부모는 교사,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수업을 도와 주었던 부모는 교사와 함께 아이에 대한 이야기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을 마치고
역시 유치원에서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온다. 학교에서 오늘 특별히 아이가 불안정했거나 하면 교사는 그런 이야기를 부모에게 해 준다.
저학년 아이들 부모는 거의 날마다 교사와 아침, 저녁으로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에 참여하여 교사를 도와 주는 경우는 대개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다. 한 주에 한 번 있는 산책 나가기에는 보통 서너 명의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뜨개질이나 만들기 시간은 부모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다.
부모가 직장을 가지고 있어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을 때는,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축제 준비에 일손을 많이 보탠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 축제 의상을 고쳐 주거나, 축제가 끝난 뒤에 세탁을 해 주거나 하는 일을 맡는다.
학교는 또 한 학기에 한 번(일년에 세 학기가 있다.) 학부모 교실을 운영하는데, 여기에서 교사는 아이들과 하고 있는 수업을 부모들에게 소개하며, 부모를 의해 특별히 마련한 아동 이해나 슈타이너 교육의 특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학급 행사를 위한 계획, 간식 당번, 바자회 같은 것을 의논한다. 교사는 한 학기에 한 번은 꼭 부모와 긴 면담시간을 갖는다. 부모도 아이 교육에 관한 궁금한 것들을 이때 여유 있게 교사와 의논할 수 있다. 대개 부모가 교사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교사가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한두 해가 지나면, 교사와 부모는 친구이자 좋은 이웃이 된다. 교사와 학부모라는 형식은 어느새 사라진 것 같다. 친구에게 전화 걸어 수다를 떨 듯이 부모와 교사는 전화로도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학년이 올라가면, 학부모의 수업 참여 횟수는 줄지만 더 조직화된다. 과학이나 역사 같은 것을 잘 할 수 있는 분은 특별히 한 시간 정도 수업을 맡아서 한 달에 한 번 일일 교사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수업을 하기 힘든 부모들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정원 가꾸기 수업을 도와 준다. 학부모들은 달마다 발간되는 학교 소식지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싣고, 서로 도움이 필요한 일들을 나눈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들은 참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 이른바 '잡무'는 없는지요? 발도르프 학교 교사의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학교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다. 내가 실습 나간 두 학교 모두 교사 휴게실을 겸하는 작은 공간을 교무실처럼 쓰고 있었다. 교사의 책상은 교실에 있고, 수업 연구는 대부분 교실이나 교사의 집, 또는 학교 도서관에서 한다. 교사가 수업에 쓰는 학용품은 학교 학용품실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면 된다. 복사 같은 것은 무료로 할 수 있다. 수업료에 학용품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비는 경제 사정이 넉넉한 학부모나 지역 주민들의 보조로 해결된다. 학교 바자회 같은 데서 학교 운영비의 일부가 충원된다.
발도르프 학교의 특징은 교장이나 교감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 전체 화의로 학교가 운영된다. 학습 조력실, 학교 재정 담당, 행사 주관, 물품 관리처럼 학교에 필요한 모든 일을 교사 회의에서 의논하여 각 영역들을 맡아 한다. 노동 시간은 한국보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이 더 길다. 학급 담임 교사들은 대개 아침 8시 전에 와서 다음 날 수업 준비까지 하면 오후 5시쯤 퇴근한다. 그러나 대개는 학부모와 상담이 있어 조금씩 더 늦어진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교사 회의가 있는 날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한다. 주말에도 교사들은 대개 학교를 들른다. 수업 준비뿐 아니라 학교에서 맡은 일들을 다른 교사들과 의논하기 위해서이다.
실습 과정에 있던 내 친구는 담임만큼 부지런히 수업 준비와 학교 일을 맡아 했는데, 일주일에 절반은 아침 7시에 가서 밤 11시가 되어야 기숙사로 돌아왔다.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있어 했다. 많이 배운다고…… .
일단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교사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거의 쉴 틈이 없을 만큼 바쁘다. 간단한 잡무를 봐주는 사람조차 없으니(한국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교무실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 주기도 하는데) 모든 일을 교사가 다 해야 한다. 쉬는 시간에도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아이들 안전을 돌보며, 아이들 관찰도 해야 하는 당번을 한다. 커피나 차를 들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들 노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외국어나 유리드미 같은 과목이 있어 자기 수업이 없는 때에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일을 한다. 그리고 또 비는 시간에는 다른 학년의 수공예 수업을 돕는다. 대개 한 교사가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다른 학년의 수공예 수업의 보조 교사로 일한다. 내가 실습할 때에도 주말이라야 담당 교사와 이야기를 좀 느긋하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빠도 교사들은 웬만해서는 피곤하거나 지쳐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늘 웃고 있다. 누가 시켜서, 또는 잘 보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없고 또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교생실습 할 때를 떠올려 보면, 검사용 실습일지가 있고, 제출용 수업 계획안이 있었는데, 일반 교사들은 또 보고용 잡무(?) 때문에 수업 연구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전시나 보고를 위한 문서는 거의 없다. 공공 기관과의 업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작성해야 할 문서들이 있지만 교사 회의와 관련한 것은 없다. 대부분 자신의 메모와 수업 준비를 하면서 공부한 연습장 같은 것이 회의에서 볼 수 있는 문서의 모두이다. 단, 아이들의 성장 기록과 관련한 것은 아주 상세하게 정리 보관된다. 그것은 담임 교사가 작성한다.
교사의 월급은 모든 교사가 똑같다. 햇수에 상관없이 모두 같다. 다만, 교사에게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거나 배우자가 수입이 없고, 부모를 모시고 있는 경우에는 수당이 있다. 가난한 지역에 있는 학교의 교사 월급은 월 백만 원이 채 안되는 경우도 있고, 중소 도시의 경우는 평균 백 삼십 만원, 대도시의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에 있는 학교의 경우, 월 이백만 원 정도를 받는다. 참고로 일반 학교의 교사 월급은 월평균 삼백 오십만 원 정도(경력5-6년)된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은 참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교육에 더 전념할 수 있어 부럽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 대부분 경제 사정이 참 어렵다. 얼마 전, 잘 알고 지내던 우리나라의 어느 대안학교 선생님이, 월급이 150퍼센트 올라 이제 오십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웃으면서 된장찌개 값을 내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좋은 학교는 결국 교사가 만드는 것 같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들은, 좋은 조건을 만들려고 애쓰는 분들이다. 굳이 발도르프 학교가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 주위에도 그런 교사들이, 학교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가끔, 내가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지 공문서 작성하는 교육공무원인지 혼돈이 될 때, 이런 분들의 좋은 학교 만들기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발도르프 교육, 다 좋은데……  내 아이를 외국까지 보내지 않고, 발도르프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교육을 시킬 방법이 없을까요? 부모로서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주세요.

아이 믿어 주기.
다른 아이와 견주지 말고 내 아이 이해하기.
내 아이 존중하기.
아이와 함께 크려고 노력하기.
그러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자신을 잘 알고, 자기를 존중할 수 있기.
……
미술학원에 보내기보다 아이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같이 그림 그리기.
음악학원에 보내기보다 아이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같이 노래 부르기.
책상 앞에 더 많이 앉혀 놓으려고 하기보다 아이와 더 많이 이야기하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