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에 설립된 전혀 학교 같지 않은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삼십 년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농축'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학교, 또는 교육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새로운 배움의 길로 안내합니다. 다른 사람들 또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를 창조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새로운 배움의 마당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삼십 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 온 삶의 향기가 이 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추천사
"마음을 울리는 진솔한 언어로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는 삼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확고해진 믿음을 들려 준다.-아무도 믿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레 배운다. 하나의 자유학교도 공동체가 된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이 자신의(전통적) 역할을 기꺼이 버릴 때 우정과 새로운 성장이라는 기대하지 못한 장이 열린다-내가 지금껏 읽을 특권을 누렸던 그 어떤 책보다도 설득력 있게 이 책은 어린이 스스로 찾아가는 배움의 길을 한 번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제도적으로 열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준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탈학교 사회 Deschooling Society} 저자
"이것은 세상에 울려 퍼져야 할 소리다."
-도날드 그레이브스(Donald Gravers); {일터의 교사들과 아이들 Teachers and Children}, {상어를 잡는 법 How to Catch a Shark} 등의 저자
"이 글은 탈학교운동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노력이 오늘날의 교육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나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이야기다. 이 책은 비범한 학교에 관한 비범한 이야기다."
-허브 콜(Herb Kohl); 열린사회연구소 수석특별위원
"이 책은 진정 놀라운 책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토록 많은 대안교육운동이 빠져버리기 일쑤인 엘리트주의, 계층주의, 세분화주의라는 덫을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를 이 이야기가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크리스와 알바니 프리스쿨의 그 탁월함과 통찰에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다."
-매트 헌(Matt Hern); {학교교육에서 놓여난 삶 Deschooling Our Lives} 편집자
"크리스는 전인적 인격으로 성장하려 애쓰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돕는 사려 깊은 어른들에 관한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글은 1960년대의 급진적 비평서들 이후 교육에 관해 쓰여진 가장 영적이고 정통적인 글이다. 앞서 나온 비평서의 저자들인 홀트, 코졸, 데니슨, 콜, 헌돈 같은 이들은 지난 삼십 년 동안 계속 무시되어 왔고 그러는 동안 우리의 학교들은 점점 더 가슴을 잃어 갔다. 크리스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진정한 교육은 경영기술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을."
-론 밀러(Ron Miller); 전인교육지 {교육리뷰 Education Review} 발행인이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What Are Schools For?} 저자
"이 책은 교육의 혁신과 개혁에 관한 귀중한 저작들 속에 이미 자리를 맡아두었다. 어린이들의 편에 서서 한결같은 희망 속에서 이루어 낸 노력의 결과에 대한 사려 깊고 감수성 풍부하고 명료한 설명서이면서, 또한 배움의 장소에서 아이들이 진정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때 이루게 되는 도덕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에 대한 서정적 찬가이다."
-로버트 콜즈(Robert Coles); 하버드대 아동정신병리학 교수. {위기의 아이들 Children In Crisis} 저자
"평범한 어른들과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함께 배우는가에 대해 쓴 이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높은 시험성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취가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는 자신이 보살피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으며 또 학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바꿔 놓았나를 깊이 있게 설명해 보인다. 이 이야기는 글을 읽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심정에 이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는 점점 더 획일적이고 표준화되어 가는 우리의 교육체계를 비집고 그 틈과 구멍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대담하고 열정에 찬 보고서이다."
-페트릭 파렌가(Patrick Farenga); 존홀트연구소 소장
차례
1. 함께 만들어 온 역사
2. 문제아는 없다
3. 책상 고치기, 마음 고치기
4. 치료의 학교
5.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6. 농축된다는 것의 의미
7. 자기를 창조하는 아이
8. 텔레비전은 눈이 씹는 껌이다
9. 신은 우리의 종교를 묻지 않는다
10. 인종과 계급의 갈등을 넘어서
11.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위해
12.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허물기
13. 공동체가 우리를 구원할까
아래 글은 민들레출판사 대표인 현병호씨가 미국 대안학교 몇 곳을 둘러볼 때 알바니 프리스쿨을 방문하고서 쓴 글입니다.
관계 맺기를 배우는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
현병호(민들레출판사 대표)
학교 같지 않은 학교
미국 뉴욕주 주도인 알바니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Albany Free School)은 역사가 30년쯤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중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로서 3살부터 15살까지의 아이들 쉰 명 정도가 다니는 학교인 셈이다. 유아, 초등, 중등 아이들이 따로 움직이면서도 언제든지 서로 어울리기도 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한 데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폭넓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이 학교는 무엇보다 관계 맺기 기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험문제 잘 푸는 기술만으로는 도저히 풀 길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므로 진짜 교육이란 결국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교도 삶의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살아가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학교가 진정한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기술은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프리스쿨은 그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써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내면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준다.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30년 동안 교사로 일해온 크리스는 이 학교의 이야기를 담은『프리스쿨』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람을 다루어내는 것을 배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자기 개인의 힘이 미치는 한계를 탐색하기 시작하고, 누가 믿을 만한지,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는지, 언제 도움을 청해야 할지, 언제 자신만의 힘으로 그 일을 해내야 할지 배우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말썽꾸러기들 중 하나가 학교를 들쑤셔 놓으면 우리는 그 사태를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될 기회로 본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특질 중의 하나를 만나게 해 준다.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으로부터 다 함께 배울 수 있다.\"
프리스쿨에서는 몸싸움을 벌이는 것도 금하지 않는다. 만약 두 아이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치고받고 싸우기로 한다면, 그 싸움이 공정하고 상대방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허용된다. 가까이에서 어른 한 명이 지켜보면서 안전사고를 막고 가능한 한 그 싸움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화해에 이르도록 도움을 준다.
매우 이질적인 아이들이 섞여 있는 프리스쿨 상황은 그런 경험의 풍부한 보고가 되고 있다. 물론 싸움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 싸움으로 가기 전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도 구비되어 있다. 누구든 자신에게 싫은 행동을 하면 \"그만 stop !\" 하고 외치면 된다. 몇 번 외쳐도 해결이 안 되면 누구나 전체 모임을 소집할 수 있다. 그러면 곧바로 모임이 열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공동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 그 가운데서 문제 해결 능력과 공동체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렇게 자란 프리스쿨의 아이들은 그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학교 밖의 또 하나의 공동체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학교는 낡은 2층집을 학교 건물로 쓰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널찍한 공용 놀이터를 운동장처럼 쓰고 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사분의 삼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다. 흑인 아이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학교를 지식이 전수되는 곳이라기보다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생각하는 프리스쿨은 부모의 수입에 따라 매월 15∼250달러로 수업료에 차등을 둔다. 계층 문제, 인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 자립을 위해 남다른 고민을 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했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도 재정 자립은 필요했지만 부모들에게 재정을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중산층을 위한 학교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깊이 생각했다. 현재 수업료 총액은 학교 운영 예산 9만 달러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 경비는 건물 임대료와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프리스쿨은 1980년대 초에 학교 주변의 건물 열 채를 구입했다. 사람들이 교외로 이사를 나가고 비어 있는 낡은 건물을 500∼3000달러의 헐값에 사서는 시에서 보조해주는 수리비와 자신들의 노동력을 더해서 말끔하게 고쳐 임대를 주고 있다. 그 건물들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이 재정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프리스쿨 교사들은 이 주택을 무상으로 쓰는 대신 주급을 200달러(우리 돈으로 월 100만원 정도)만 받는다.
교사와 학부모 가운데 일부는 1985년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생활 공동체를 따로 꾸렸다. 학교도 하나의 공동체이지만 열 몇 가구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학교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동체이다. 구성원들이 공동 출자한 돈을 어려운 가정에 빌려주기도 하고 학교 소유 건물들을 관리하는 일도 한다. 학교 문제를 풀어가고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도 이 공동체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수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저마다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함께 공부도 한다.
학교와 그룹은 이보다 더 큰 공동체, 조금은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인 그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네 사람이 운영하는 공방에 아이들이 가서 도제식으로 배우기도 한다. 그런 만남은 학교 교사가 줄 수 없는 좋은 영향을 아이들에게 준다. 학교와 그룹과 지역 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는 알바니 프리스쿨을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는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은 아이들을 선발하지 않고 오고 싶어하는 그 지역의 아이들은 누구나 올 수 있다. 학기초가 되면 백여 군데서 입학 문의가 들어오는데 허름한 학교 건물을 둘러본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젖고 말아 인원이 넘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한 해 평균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온다.
프리스쿨에서도 이른바 학과 공부를 한다. 그러나 수업 시간표는 거의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배우고자 할 때까지 지식 교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12살 아이는 아직도 글을 잘 읽지 못한다. 이런 경우 일반 학교에서는 지진아란 딱지를 붙이겠지만 프리스쿨에서는 단지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조금 늦게 생겨나는 거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난장판 같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는 12세에야 글을 깨쳤지만 지금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도 있다.
일반학교처럼 프리스쿨에서는 학과 공부를 별로 하지 않지만, 나중에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학업 성적이 뒤떨어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자발성과 자율성이 몸에 밴 아이들은 오히려 일반학교에 가서 곧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일반학교들이 아이들을 시험으로 평가해서 딱지 붙여 분류하는 데만 골몰할 뿐 아이들이 배우려는 준비가 됐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실패하지만 프리스쿨은 바로 그 아이들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발걸음에 맞추기 때문에 배움에서 실패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남들보다 앞서도록, 또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아이들을 몰아부치는 일반 학교는 배움에 대한 진정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경쟁이나 성공을 부추기지 않는 프리스쿨의 공기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배움의 욕구가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준다. 일반 학교에서 상처를 입고 배움의 의욕을 잃었던 아이들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게 되면 스스로 배움의 세계를 찾는다. 두려움은 배움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프리스쿨 교사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프리스쿨은 단순히 하나의 학교가 아니다. 거기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이 아니다. 거기서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곧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된다. 우리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을 다시 배우는 새로운 배움의 마당이다. 다른 사람들 또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를 창조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도. 프리스쿨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삶터이자 배움의 마당이다. 이들이 삼십 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 온 삶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1969년에 설립된 전혀 학교 같지 않은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삼십 년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농축'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학교, 또는 교육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새로운 배움의 길로 안내합니다. 다른 사람들 또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를 창조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새로운 배움의 마당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삼십 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 온 삶의 향기가 이 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추천사
"마음을 울리는 진솔한 언어로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는 삼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확고해진 믿음을 들려 준다.-아무도 믿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레 배운다. 하나의 자유학교도 공동체가 된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이 자신의(전통적) 역할을 기꺼이 버릴 때 우정과 새로운 성장이라는 기대하지 못한 장이 열린다-내가 지금껏 읽을 특권을 누렸던 그 어떤 책보다도 설득력 있게 이 책은 어린이 스스로 찾아가는 배움의 길을 한 번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제도적으로 열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준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탈학교 사회 Deschooling Society} 저자
"이것은 세상에 울려 퍼져야 할 소리다."
-도날드 그레이브스(Donald Gravers); {일터의 교사들과 아이들 Teachers and Children}, {상어를 잡는 법 How to Catch a Shark} 등의 저자
"이 글은 탈학교운동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노력이 오늘날의 교육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나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이야기다. 이 책은 비범한 학교에 관한 비범한 이야기다."
-허브 콜(Herb Kohl); 열린사회연구소 수석특별위원
"이 책은 진정 놀라운 책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토록 많은 대안교육운동이 빠져버리기 일쑤인 엘리트주의, 계층주의, 세분화주의라는 덫을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를 이 이야기가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크리스와 알바니 프리스쿨의 그 탁월함과 통찰에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다."
-매트 헌(Matt Hern); {학교교육에서 놓여난 삶 Deschooling Our Lives} 편집자
"크리스는 전인적 인격으로 성장하려 애쓰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돕는 사려 깊은 어른들에 관한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글은 1960년대의 급진적 비평서들 이후 교육에 관해 쓰여진 가장 영적이고 정통적인 글이다. 앞서 나온 비평서의 저자들인 홀트, 코졸, 데니슨, 콜, 헌돈 같은 이들은 지난 삼십 년 동안 계속 무시되어 왔고 그러는 동안 우리의 학교들은 점점 더 가슴을 잃어 갔다. 크리스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진정한 교육은 경영기술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을."
-론 밀러(Ron Miller); 전인교육지 {교육리뷰 Education Review} 발행인이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What Are Schools For?} 저자
"이 책은 교육의 혁신과 개혁에 관한 귀중한 저작들 속에 이미 자리를 맡아두었다. 어린이들의 편에 서서 한결같은 희망 속에서 이루어 낸 노력의 결과에 대한 사려 깊고 감수성 풍부하고 명료한 설명서이면서, 또한 배움의 장소에서 아이들이 진정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때 이루게 되는 도덕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에 대한 서정적 찬가이다."
-로버트 콜즈(Robert Coles); 하버드대 아동정신병리학 교수. {위기의 아이들 Children In Crisis} 저자
"평범한 어른들과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함께 배우는가에 대해 쓴 이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높은 시험성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성취가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는 자신이 보살피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으며 또 학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바꿔 놓았나를 깊이 있게 설명해 보인다. 이 이야기는 글을 읽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심정에 이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는 점점 더 획일적이고 표준화되어 가는 우리의 교육체계를 비집고 그 틈과 구멍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대담하고 열정에 찬 보고서이다."
-페트릭 파렌가(Patrick Farenga); 존홀트연구소 소장
차례
1. 함께 만들어 온 역사
2. 문제아는 없다
3. 책상 고치기, 마음 고치기
4. 치료의 학교
5.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6. 농축된다는 것의 의미
7. 자기를 창조하는 아이
8. 텔레비전은 눈이 씹는 껌이다
9. 신은 우리의 종교를 묻지 않는다
10. 인종과 계급의 갈등을 넘어서
11.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위해
12.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허물기
13. 공동체가 우리를 구원할까
아래 글은 민들레출판사 대표인 현병호씨가 미국 대안학교 몇 곳을 둘러볼 때 알바니 프리스쿨을 방문하고서 쓴 글입니다.
관계 맺기를 배우는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
현병호(민들레출판사 대표)
학교 같지 않은 학교
미국 뉴욕주 주도인 알바니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Albany Free School)은 역사가 30년쯤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중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로서 3살부터 15살까지의 아이들 쉰 명 정도가 다니는 학교인 셈이다. 유아, 초등, 중등 아이들이 따로 움직이면서도 언제든지 서로 어울리기도 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한 데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폭넓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이 학교는 무엇보다 관계 맺기 기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험문제 잘 푸는 기술만으로는 도저히 풀 길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므로 진짜 교육이란 결국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교도 삶의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살아가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학교가 진정한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기술은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프리스쿨은 그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써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내면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준다.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30년 동안 교사로 일해온 크리스는 이 학교의 이야기를 담은『프리스쿨』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람을 다루어내는 것을 배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자기 개인의 힘이 미치는 한계를 탐색하기 시작하고, 누가 믿을 만한지,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는지, 언제 도움을 청해야 할지, 언제 자신만의 힘으로 그 일을 해내야 할지 배우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말썽꾸러기들 중 하나가 학교를 들쑤셔 놓으면 우리는 그 사태를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될 기회로 본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특질 중의 하나를 만나게 해 준다.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으로부터 다 함께 배울 수 있다.\"
프리스쿨에서는 몸싸움을 벌이는 것도 금하지 않는다. 만약 두 아이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치고받고 싸우기로 한다면, 그 싸움이 공정하고 상대방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허용된다. 가까이에서 어른 한 명이 지켜보면서 안전사고를 막고 가능한 한 그 싸움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화해에 이르도록 도움을 준다.
매우 이질적인 아이들이 섞여 있는 프리스쿨 상황은 그런 경험의 풍부한 보고가 되고 있다. 물론 싸움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 싸움으로 가기 전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도 구비되어 있다. 누구든 자신에게 싫은 행동을 하면 \"그만 stop !\" 하고 외치면 된다. 몇 번 외쳐도 해결이 안 되면 누구나 전체 모임을 소집할 수 있다. 그러면 곧바로 모임이 열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공동체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 그 가운데서 문제 해결 능력과 공동체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렇게 자란 프리스쿨의 아이들은 그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학교 밖의 또 하나의 공동체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학교는 낡은 2층집을 학교 건물로 쓰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널찍한 공용 놀이터를 운동장처럼 쓰고 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사분의 삼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다. 흑인 아이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학교를 지식이 전수되는 곳이라기보다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생각하는 프리스쿨은 부모의 수입에 따라 매월 15∼250달러로 수업료에 차등을 둔다. 계층 문제, 인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 자립을 위해 남다른 고민을 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했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도 재정 자립은 필요했지만 부모들에게 재정을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중산층을 위한 학교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깊이 생각했다. 현재 수업료 총액은 학교 운영 예산 9만 달러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 경비는 건물 임대료와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프리스쿨은 1980년대 초에 학교 주변의 건물 열 채를 구입했다. 사람들이 교외로 이사를 나가고 비어 있는 낡은 건물을 500∼3000달러의 헐값에 사서는 시에서 보조해주는 수리비와 자신들의 노동력을 더해서 말끔하게 고쳐 임대를 주고 있다. 그 건물들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이 재정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프리스쿨 교사들은 이 주택을 무상으로 쓰는 대신 주급을 200달러(우리 돈으로 월 100만원 정도)만 받는다.
교사와 학부모 가운데 일부는 1985년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생활 공동체를 따로 꾸렸다. 학교도 하나의 공동체이지만 열 몇 가구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학교를 넘어선 또 하나의 공동체이다. 구성원들이 공동 출자한 돈을 어려운 가정에 빌려주기도 하고 학교 소유 건물들을 관리하는 일도 한다. 학교 문제를 풀어가고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도 이 공동체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수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저마다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함께 공부도 한다.
학교와 그룹은 이보다 더 큰 공동체, 조금은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인 그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네 사람이 운영하는 공방에 아이들이 가서 도제식으로 배우기도 한다. 그런 만남은 학교 교사가 줄 수 없는 좋은 영향을 아이들에게 준다. 학교와 그룹과 지역 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는 알바니 프리스쿨을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는 학교
알바니 프리스쿨은 아이들을 선발하지 않고 오고 싶어하는 그 지역의 아이들은 누구나 올 수 있다. 학기초가 되면 백여 군데서 입학 문의가 들어오는데 허름한 학교 건물을 둘러본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젖고 말아 인원이 넘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한 해 평균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온다.
프리스쿨에서도 이른바 학과 공부를 한다. 그러나 수업 시간표는 거의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배우고자 할 때까지 지식 교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12살 아이는 아직도 글을 잘 읽지 못한다. 이런 경우 일반 학교에서는 지진아란 딱지를 붙이겠지만 프리스쿨에서는 단지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조금 늦게 생겨나는 거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난장판 같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는 12세에야 글을 깨쳤지만 지금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도 있다.
일반학교처럼 프리스쿨에서는 학과 공부를 별로 하지 않지만, 나중에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학업 성적이 뒤떨어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자발성과 자율성이 몸에 밴 아이들은 오히려 일반학교에 가서 곧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일반학교들이 아이들을 시험으로 평가해서 딱지 붙여 분류하는 데만 골몰할 뿐 아이들이 배우려는 준비가 됐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실패하지만 프리스쿨은 바로 그 아이들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발걸음에 맞추기 때문에 배움에서 실패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남들보다 앞서도록, 또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아이들을 몰아부치는 일반 학교는 배움에 대한 진정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경쟁이나 성공을 부추기지 않는 프리스쿨의 공기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배움의 욕구가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준다. 일반 학교에서 상처를 입고 배움의 의욕을 잃었던 아이들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게 되면 스스로 배움의 세계를 찾는다. 두려움은 배움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프리스쿨 교사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프리스쿨은 단순히 하나의 학교가 아니다. 거기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이 아니다. 거기서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곧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된다. 우리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을 다시 배우는 새로운 배움의 마당이다. 다른 사람들 또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를 창조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도. 프리스쿨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삶터이자 배움의 마당이다. 이들이 삼십 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 온 삶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