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도서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

  • 저자 조안 엘리자베스 록 
  • 역자 조응주
  • 발간일 2004년 6월 
  • ISBN 8988613104  
  • 책값 12,000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소 막연하게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벌레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바퀴벌레, 파리, 모기와 같은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편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고 있었던
나의 영혼까지도 치유해준 고마운 민간요법이었다.

조안 록의 예리한 통찰과 성실한 정보는
우리 인간이 벌레의 세계를 보다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영적 성장을 돕는다.

- 강수돌(고려대 교수) 추천사 가운데

편집자의 말

사람들은 벌레를 보면 기겁해서 그 자리를 뜨거나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린다. 이 책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바퀴벌레나 파리, 모기 같은 벌레들을 등장시켜 인간 정신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걷어내고자 한다.
왜 사람들은 벌레를 혐오스러워하고, 죽이지 못해 안달할까? 그런 요란한 반응은 과연 옳은 것일까? 고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반응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조안 록은 벌레에 대한 불신과 공포는 우리 인간의 잘못된 자기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연을 신성시하지 않고 기계적인 세계관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벌레를 소재로 해서 과학적 상식과 신화 사이의 틈을 메워가며 자연에 적대적인 관점들이 불러일으킨 편견들이 무엇인지, 그 편견이 해악을 치유하는 법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독특한 교양서이다.

옮긴이 후기

조앤 록은 곤충에 관한 재미있는 상식, 신화, 예부터 내려오는 지혜와 관습을 재미있게 엮어 곤충을 혐오하는 현대인의 뒤틀린 자화상을 조명한다. 이 책을 읽으면 곤충을 좋아하던 사람은 더 좋아하게 되고, 곤충에 무관심하던 사람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환경에 민감해지고, 곤충을 혐오하던 사람은 혐오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곤충을 무서워하던 사람은 그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게 되리라 믿는다. 그것은 이 책이 곤충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곤충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내면 여행의 길라잡이이기 때문이다. 곤충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면서 우리는 어떤 이념에 지배당하는 걸까? 곤충이 징그럽다는 생각을 본능으로 착각하면서 우리는 어떤 본질을 왜곡하고 외면하는 걸까? 저자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는 과학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에서 문화인류학, 심리학, 신비주의, 해몽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들며 날카로운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답을 건져 올린다. 그러나 그 답을 과장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린 것이 사실이다. 북한 어린이들이 굶어 죽고 이라크 어린이들이 폭탄에 맞아 사지가 절단되는 마당에 파리나 모기의 생명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깨닫게 되었다. 파리나 모기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파리나 모기에 대한 증오심과 북한과 이라크 어린이들의 비극을 불러온 증오심이 똑같다는 것을. 차이를 차별과 경멸의 근거로 삼고, 당연히 자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상대방을 제멋대로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에서 권력을 독점한 자와 다른 세계관, 다른 생활양식, 심지어 다른 생김새를 가진 자는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권력자가 아니라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서 증오심과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증오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다름] 때문에 받는 고통에 무관심한 것도 죄다. 이 책을 번역하는 데 들인 시간은 우리와 너무나 다른 모습의 곤충에 대한 미움에서 [다름]에 대한 내 태도를 발견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하략)

글쓴이: 조안 엘리자베스 록

제임스 힐만은 『영혼의 코드The Soul\\\\\\\'s Code』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소명을 받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소명과 결부된 관심사나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안 록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자연세계와 인간과 다른 종에 암호처럼 새겨진 지혜를 밝히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이 책은 그러한 소명에 부응하고자하는 노력의 결실이다.
조안 록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인간과 동물의 유대가 지닌 치유의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써왔다. 그리고 [Catalyst for Youth(청소년을 위한 촉매)]라는 비영리단체의 창립자이자 교사로 활동하면서 초점을 청소년으로 옮겼다. 이 단체는 십대를 비롯한 소외당한 청소년들에게 여러 가지 지원과 상담을 해주는 곳인데, 얼핏 보기에는 과거와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록은 그 활동이 자신의 소명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곤충을 비롯한 동물이나 소외당한 청소년은 모두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둘 다 오해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자 피해자인 것이다.
조안 록은 현재 전 세계 젊은이들이 처한 곤경을 조명하고 그들과 주류 문화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할 책을 쓰고 있다. 조안 록의 이메일 주소는 joanne@imagination-at-work.com이다.


차 례

1. 지구공동체로 귀향하기
2. 렌즈 닦아내기
3. 곤충, 인도자이자 전령
4. 윙윙거리는 나의 신이시여
5. 신성한 천재, 바퀴벌레
6. 개미에게로 가서
7. 태양의 신
8. 벌에게 말하기
9. 모기와의 혈연관계
10. 운명의 실잣기
11. 하늘을 나는 족속
12. 낯선 천사들
13. 사마귀를 따라서

저자 조안 록이 한국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가 한국어로 번역된다는 소식에 참으로 기뻤습니다. 게다가 자아 계발, 대안 농법,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 등에 조예가 깊은 독자층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제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들이 곤충을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곤충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저는 이 작은 생명체들이 환경은 물론 인간 심리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주민들은 신이 곤충을 비롯한 모든 작은 생명체들을 만들 때 우주의 신비롭고 창조적인 기운을 전하는 전령이 될 수 있도록 소박하고 단순한 몸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저 또한 개인적 경험과 연구를 통해 선주민들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간과 곤충의 관계에 대한 강연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벌레가 부엌 같은 곳에 불청객처럼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되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은 개미를 위해 매일 아침 쌀밥을 지어 집 모퉁이마다 한 그릇씩 놔두는데, 개미는 쌀밥으로 표시된 경계선을 존중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곤충이 일상적으로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곤충은 육체의 형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집 안에 있는 벌레를 죽이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면, 저는 죽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형태 속에 갇힌 벌레의 영혼을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풀어줄 때는 벌레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증오의 기운이야말로 곤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로운 독이기 때문입니다. 입증할 수는 없지만 저는 우리의 적개심이 오히려 곤충을 우리 곁에 (가상의 적으로) 묶어둔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곤충은 우리의 적대적 생각이 뿜어낸 독에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곤충을 관용과 애정으로 대하면 곤충과의 만남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곤충을 죽이더라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체험을 했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더 많은 [벌레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제 이메일 joanne@imagination-at-work.com으로 곤충과 관련된 경험담을 보내주시면 꼭 답장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꽃가루로 수놓은 오솔길을 걸으며 벌레가 아낌없이 주는 선물을 풍성하게 받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4년 4월 1일
조안 엘리자베스 록 드림

내용 소개

6장 신성한 천재, 바퀴벌레(일부)

......

인간과 바퀴벌레의 긍정적 교감을 담은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발간된 몇몇 이야기들은 주로 감옥을 배경으로 한다. 1938년 텍사스주의 교도소에 수감된 한 사람은 휘파람을 불면 바퀴벌레가 자신의 독방으로 찾아오도록 훈련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위클리 월드 뉴스>라는 주간지는 1995년 애완용 바퀴벌레를 키우던 한 재소자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 재소자는 바퀴벌레에게 치즈를 먹이고 목에다 실을 묶어 감방을 거닐며 산책도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뉴스거리가 된 것은 교도관이 바퀴벌레를 죽이는 바람에 주인공이 교도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감옥 같이 고립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바퀴벌레와 마주치면 그 만남은 전혀 반갑지 않은 만남이 되어 관심이나 감탄보다는 혐오감을 자아낸다. 인류보다 훨씬 더 오래 지구에 머문 이 바퀴벌레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바퀴벌레의 뛰어난 환경 적응력에 대한 가장 큰 도전, 다시 말해 바퀴벌레에 적대적인 데다가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는 인간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1980년 예일대에서는 동물의 인기 순위를 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예상대로 바퀴벌레가 모기마저 누르고 당연히 꼴등을 차지했다. 바퀴벌레는 온난한 기후, 어두컴컴한 장소,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사람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퀴벌레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구역질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바퀴벌레가 벽 속에 숨어 추잡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바퀴벌레 퇴치용품을 팔아 거금을 버는 회사들은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가 우리 곁에서 떼를 지어 살고 세균과 질병을 퍼트리며 우리의 생활공간을 점령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바퀴벌레 하면 연상되는 오물(따지고 보면 다 우리가 배출하는 오물이지만) 때문에 우리는 이 무해한 곤충이 물지도 쏘지도 않고 인간에게 직접 해를 입히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생물학자 로날드 루드의 주장에 따르면, 바퀴벌레는 해충이 아니며 우리를 해칠 만한 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 문화가 지닌 바퀴벌레혐오증을 합리화하기 위해 바퀴벌레를 특정 질병과 연관시키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도출된 연구 결과는 모두 정황적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인체에 감염될 수 있는 질병 중에 바퀴벌레와 직접 관련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바퀴벌레가 질병을 퍼트린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누명이라는 것이 대다수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바퀴벌레는 대개 일생을 건강하게 산다. 또한 바퀴벌레가 건드린 음식을 사람이 먹는다 해도 바퀴벌레가 남긴 오염 물질은 얼마든지 다른 통로로 우리 몸속에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다. 바퀴벌레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너무도 극단적이어서 현재 밝혀진 4천 여 종의 바퀴벌레 중 사람과 더부살이하는 서너 종을 박멸하는 데 쓰는 살충제가 미국의 살충제 총 소비량의 약 25%를 차지한다.


바퀴벌레와 오물

바퀴벌레는 수생곤충, 파두벌레, 인도 카나리아, 종려나무벌레 같이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집에 바퀴벌레가 산다는 것은 집이 지저분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창피해서 붙인 이름들이다. 우리는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 사는 사람은 성격에 문제가 있고 생활도 너저분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가 접하는 문학이나 영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고 집에 나타나면 가장 창피할 것 같은 곤충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바퀴벌레라고 응답한 것도 이러한 믿음에 기인하는지 모른다. 바퀴벌레는 그 존재만으로도 민망함과 따가운 눈총의 원인이 된다.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집에서 바퀴벌레를 없애면 게으르다는 비판을 어느 정도 모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 해도, 온난한 지역에 사는 한 우리는 바퀴벌레와 동거할 수밖에 없다. 바퀴벌레는 먹이를 지나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먹이의 종류도 정말 광범위해서 심지어 책 제본에 사용되는 접착제까지 먹는다. 딱딱하든 말랑말랑하든 씹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는 데다, 극소량의 먹이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 부스러기 한 톨도 놓치는 일이 없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먹이 없이 석 달을 버틸 수 있고, 물 없이도 한 달을 버틴다.
몇 종의 바퀴벌레가 쓰레기나 하수구 속에서 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퀴벌레가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바퀴벌레는 의외로 깨끗한 습성을 지닌 곤충이다. 바퀴벌레도 고양이처럼 제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핥는다. 그리고 인간과 접촉한 후에는 더욱 격렬하게 몸을 핥는다. 카프카의 단편 {변신Metamorphosis}을 비꼰 듯한 소설 {신발 가방Shoebag}을 쓴 메리 제임스는 이 사실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신발 가방}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밤새 소년으로 변해버린 어린 바퀴벌레에 관한 이야기다. 온몸에 세균이 득실거리는 인간으로 변한 이 바퀴벌레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한다.
벽 속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가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상상하기보다는 몸단장에 열중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바퀴벌레의 일과는 대부분 어두운 은신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세정식洗淨式에 하루 몇 시간을 투자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바퀴벌레가 의외로 깔끔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살충제 제조업체들의 탓도 크다. 우리가 바퀴벌레를 고양이 같은 사랑스러운 동물과 비교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매출에 지장이 있을 테니까.


바퀴벌레와 알레르기

최근 들어 바퀴벌레를 알레르기와 결부시키는 경향이 생겼다. 한 주요 일간지는 [바퀴벌레를 싫어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낯익은 독설을 내뿜는다. [만인의 혐오 대상인 바퀴벌레는 동절기 알레르기와 천식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그 근거로 최근에 실시된 연구를 내세웠는데,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퀴벌레 사체의 껍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면 두드러기쑥의 꽃가루나 민들레 씨가 일으키는 것과 똑같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관성은 생각만큼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레르기는 매우 복잡한 질병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알레르기라고 이름 붙여진 증상의 근본적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알레르기가 40년 전에 비해 2배에서 10배쯤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근에 출판된 한 환경의학 서적에 따르면, 알레르기가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까닭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공기, 음식, 물의 유독성 화학물질 함유량 증가, 그리고 이러한 물질의 체내 축적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 실내 공기 오염도 알레르기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식 건축물에 쓰이는 건축자재, 그리고 현대 농법으로 재배되어 화학약품에 찌들고 필수 영양소는 결핍된 음식이 실내 공기를 오염시킨다고 한다.
아무리 윤리적인 기자나 유력한 신문이라 해도 문화적 그림자의 영향을 무의식중에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글이나 주장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그 글이나 주장의 결론이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인 특정 동식물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면 특히 더 그래야 한다. 브라질의 알레르기 연구자가 1997년에 실시한 연구 결과, 바퀴벌레 외골격의 성분 중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한 성분의 비중은 2%에서 3%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신문기사에서 말한 대로 알레르기의 [주범]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브라질에서는 또한 바퀴벌레에서 나온 성분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바로 동종요법同種療法(환자의 증상을 억제하거나 반대되는 작용을 유발시키는 서양의학의 치료법과는 반대로 환자의 병세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시키는 자연약품을 찾아 환자에게 복용시켜 자가면역력을 활성화하게 하여 스스로 치유하도록 유도하는 요법-옮긴이)의 전제를 기반으로 한 연구다. 바퀴벌레는 끈질긴 천식이나 알레르기, 또는 기타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미 오래전부터 동종요법 치료에 사용되어왔다. 따라서 바퀴벌레와 알레르기의 상관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바퀴벌레가 알레르기에 대한 [처방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적개심은 관찰력과 관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바퀴벌레를 증오하고 죽인다고 해서 화학물질의 범람 때문에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을 막을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적 만들기]가 초래할 결과나 [적 만들기]를 종용하는 왜곡된 선동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 반응

바퀴벌레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의 경우 히스테리에 가깝다. 비합리적인 공포는 결국 살충제 남용을 초래한다. 예를 들자면, 20살의 어느 이스라엘 여성이 날아다니던 바퀴벌레가 혓바닥에 앉자 살충제를 입에 뿌렸다는 기사가 최근 신문에 실렸다. 그 여성은 입, 혀, 성대와 후두에 화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바퀴벌레가 너무 싫은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충제를 집어들었다는 말로밖에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했다. 수 허벨의 {또 다른 질서로부터의 공격: 벌레 이야기Broadsides from the Other Orders: A Book of Bugs}에 소개된 한 대학교수는 평생 동안 바퀴벌레공포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바퀴벌레만 보면 공포 때문에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공포 반응은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일종의 장애로 보아야 한다. 앞서 나온 젊은 여성이나 대학교수의 극단적 반응은 공포증에 속하며, 이러한 반응은 그 두 사람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다. 공포증을 비롯한 다양한 불안 증세야말로 현대사회의 가장 흔한 정신적 질환이다. 그에 대한 치료법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심신단련법과 공포의 대상을 일부러 떠올리는 요법을 병행하여 환자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은 증상을 다루는 데 그친다. 심층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그 무엇, 우리가 외부세계에 투사하는 그 무엇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의 기력을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의 근원은 장막 뒤에 숨은 무슨 마술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자]다. 그 장막을 걷어내고 투사 대상에 자각의 빛을 비추어야만 그 대상의 괴력에서 자유로워지고 타자他者에 대해 더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타자가 바퀴벌레라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퀴벌레에 대해 공포증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감정은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채, 바퀴벌레에 대해 쏟아지는 부정적인 선전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내가 구독하는 지역 신문의 원예 관련 기사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글쓴이는 해충 방역업체 출신의 곤충학자인데, 바퀴벌레에게 살충제를 뿌리거나 짓밟아 죽였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에 대해 기사를 썼다. 또 랩과 헤비메탈을 하는 한 그룹은 이름을 [파파로치](Papa Roach, 아빠 바퀴벌레라는 뜻-옮긴이)라고 지음으로써 대중문화가 혐오해 마지않는 곤충을 일부러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들은 바퀴벌레 박멸을 통해 권력을 맛보고 마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인류 대 바퀴벌레]라는 인식 속에서 바퀴벌레를 죽일 때마다 조금씩 어떤 안전지대로 접근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으로 규정한 상대를 제거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은 금방 시들해진다. 다른 피조물을 적으로 규정한 사람에게는 안전이 항상 요원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지구의 도망자로 만들고, 도망자가 된 우리는 의심에 사로잡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죽이면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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