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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넘어선 학교

학교를 넘어선 학교

  • 저자 엘리엇 레빈/서울시대안교육센터  
  • 역자 
  • 발간일 2004년11월  
  • ISBN 89-88613-11-2  
  • 책값 10,000 원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학교, 아이들도 교사도 가고 싶은 학교 만들기에 성공하고 있는 학교인 메트스쿨을 자세히 소개한 책입니다. 미국 공교육의 개혁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메트스쿨은 {민들레} 15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미국의 공립 대안학교입니다. 34호에서는 메트스쿨에서 하고 있는 맞춤학습의 실제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메트 하이스쿨

현병호 『민들레』 발행인

지난 4월말 언론재단의 후원으로 문화일보 강대중 기자와 함께 미국 동부 지역의 대안학교들 몇 곳을 보름 동안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뉴욕 주와 필라델피아 주의 다섯 학교를 돌아보았는데, 미국이란 땅에서는 대안교육이란 것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양성이란 것이 공기처럼 일상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사회에서 새로운 교육이니 대안학교니 하는 것들은 거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에 대해 그대로 인정하고 저마다 제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 사회. 좁은 땅에서 복작복작거리는 우리 사회에 익숙해서일까.... 너무 넓은 곳에서는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재미가 없듯이 왠지 재미가 없어 보이는 사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다름]과 [틀림], [통일]과 [획일]을 혼동하는 우리를 생각하면 이들이 생활 속에서 몸으로 터득하고 있는 다양성이 부럽기도 했다. 게다가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땅이 없어,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는 우리네 사정을 생각하면 그 넓은 땅과 널찍널찍한 공간들은 말 그대로 [딴 나라 이야기]였다.

빅 픽쳐 컴퍼니(BIG PICTURE COMPANY)
메트 하이스쿨(Met Highschool)은 애초에 탐방 계획에는 없던 곳이었다. 알바니 자유학교 교사 크리스가 귀뜸해준 정보에 따르면 5년 전에 문을 연 이 학교가 미국의 교육개혁 움직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주 옆에 자리잡은 로드 아일랜드 주의 주도인 프라비던스에 있는 공립학교인 메트 하이스쿨의 정식 명칭은 Metropolitan Regional Career and Technical Center이다.
메트의 모태는 빅픽쳐 컴퍼니(BIG PICTURE COMPANY)라는 1995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NPO)이다. 시내의 학교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사무실이 있는 이 단체는 학교 운영의 아이디어 뱅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엘리엇 워셔와 데이빗 릭키 두 사람이 함께 그리기 시작한 큰 그림이 메트라는 학교 모습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현재 메트의 공동 관리자(Co-director)를 맡고 있는 엘리엇 워셔는 20여 년 동안 공립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직접 고안한 직업교육 과정으로 교육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미국의 교육개혁에 촉매 역할을 하고자 하는 빅픽쳐는 [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할 일이다(Education is everyone\\\\\\\\\\\\\\\'s business)]를 모토로 활동하고 있다. 구체적인 목표로 내걸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실제 사회와 분리되지 않으면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학교 모델을 만들어 미국 공교육을 개혁하는 것. 다른 한 목표는 공립학교 내부에서 새로운 교육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을 훈련하는 것이다.
빅 픽쳐는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연방교육부, CBS재단에서 해마다 150만 달러 가량의 기부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작은 학교
빅 픽쳐에서 학교 청사진을 그려서 시교육위원회와 협의하여 만든 메트 학교는 일반 공립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사를 채용을 비롯해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이 학교에 있다. 학생들은 그 지역에서 원하는 아이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학교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신청자가 넘칠 때는 추첨으로 뽑는다.
한 교사가 담임을 맡는 아이들 수는 15명을 넘지 않으며, 한 학년 정원이 30명을 넘지 않는다. 한 학교의 규모가 학생 120명(미국 고등학교는 4학년제) 교사 8명을 넘지 않는 작은 규모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메트는 큰 학교 하나를 만들 돈으로 작은 학교를 6개 만들기로 하고 현재 2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쉐퍼드 캠퍼스는 시내 한복판에 있고 거기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피스 캠퍼스가 있다. 쉐퍼드 캠퍼스는 대학 건물의 4층 한쪽을 빌려 쓰고 있고 피스는 따로 건물을 지었다. 어느 학교에도 운동장은 없었다. 운동은 시내의 체육관이나 공원에서 한다.
새로 지은 학교 건물은 커다란 아파트 같은 구조였다. 가운데 큰 홀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방(교실)들이 있고 부엌도 있다. 홀은 다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으로, 전체 모임이 있을 때는 강당으로, 평상시에는 휴게실이나 거실처럼 쓰이는 툭 트인 공간이다. 커다란 가정 같은 새로운 개념의 학교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 듯했다.

개별학습과 인턴제도
학교의 하루 일과는 학급별 모임으로 시작해서 모임으로 끝난다. 아침 모임에서는 그 날 하루 할 일을, 오후 모임에서는 그 날 한 것에 대해 저마다 이야기한다. 수업시간은 따로 없이 오전 오후 두 시간씩 개별학습(indefendent work)을 한다. 개별학습은 말 그대로 저마다 끼리끼리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다. 어떤 교실에서는 한 켠에서 선후배로 보이는 남녀가 단 둘이 세계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또 한 쪽에서는 몇 명이 컴퓨터를 들여다보면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어떤 방에서는 여럿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그냥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수업과 시간표가 없는 대신 학생들은 분기마다 자신의 학습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한 학습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과목별 시험이 없기 때문에 모든 평가는 이 학습계획서에 근거해 서술형으로 기록된다. 평가에는 담임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현장교사(인턴 현장의 전문가)의 의견도 반영된다. 최근 미국 대학들은 신입생 선발 때 수능시험(SAT) 성적이나 석차가 기재된 내신 성적표보다 실제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이러한 자료를 더 중요시한다.

메트의 가장 큰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인턴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현장학습 같은 것으로, 학생들은 화·목요일은 학교로 나오지 않고 저마다 인턴으로 일하는 현장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이 나가는 현장은 백여 군데에 이른다. 광고회사, 방송국, 동물원, 애완동물 가게, 디자인 업체, 병원, 고아원, 출판사, 이벤트 기획사... 곳곳에서 아이들은 일을 하면서 배운다. 메트의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적어도 세 군데 이상 인턴 경험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교과서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배워야 한다는 빅 픽쳐의 교육철학을 구현하고 있는 제도인 셈이다. 이런 인턴 제도는 실제로 미국의 많은 고등학교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메트는 형식적이 아니라 정말 실속 있게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턴으로 일하는 현장을 찾고 섭외를 하는 모든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소개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현장을 물색하는 데는 그 지역의 업종별 전화번호부를 십분 활용한다고 한다. 전화번호부에서 관심 있는 업종의 업체들 가운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우선으로 연락을 해본다. 아이들이 인턴 활동을 하고 싶다 해서 아무데서나 쉽게 받아주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먼저 인터뷰 요청을 한단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과 잠깐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는지 정중하게 물어보면 대개는 쉽게 응해준다. 학생은 인터뷰를 하면서 현장을 살펴보기도 하고 그 일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을 할 수 있다. 돌아와서는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카드를 꼭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곳에서 정말 일을 해보고 싶으면 다시 정식으로 인턴 활동을 제의한다. 이때는 담임교사도 함께 가서 인사를 나누고 학교와 현장과의 관계를 정식으로 맺는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인턴을 하는 매기(14)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재미없는 수업을 듣는 것보다 인턴을 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인턴을 하며 현장의 전문가인 멘터(mentor)로부터 배우는데 멘터들은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꼼꼼히 기록해서 학교에 전달한다. 아이들이 인턴활동을 하는 화, 목요일에는 교사도 아이들이 있는 현장을 돈다. 하루에 보통 너댓 군데를 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현장을 직접 보고 현장 전문교사(mentor)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담임교사와 현장교사, 학부모의 관계가 매우 긴밀한 것이 메트의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이는 무엇보다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다.

사진캡션
9학년인 조(Zoe)는 요즘 한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하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금연 광고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전국으로 퍼져가는 학교
메트에서는 4학년이 되면 A4용지로 50쪽 분량의 자서전을 써서 내야만 졸업이 된다. 그리고 인턴을 나가는 대신 지역사회와 학교를 돕는 프로젝트를 한 가지씩 시작한다. 일종의 졸업 논문인 셈인데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정해서 자기 책임 하에 그 일을 해내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프라비던스 시민들을 대상으로 댄스 페스티벌을 스스로 기획해서 스폰서를 찾고 장소를 섭외하고 페스티벌을 치루기까지 모든 일을 한 해 동안 해냈다고 한다. 물론 SAT 시험도 치루면서.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그런 일을 병행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SAT 성적보다 그 동안 실제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포트 폴리오 같은 자료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 같다. 한국의 경우도 입시제도가 수능성적 위주에서 다양한 선발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판에 박힌 입시제도의 벽이 고등학교 과정을 획일화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심지어 대안학교로 알려진 특성화고등학교들마저도 그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메트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입학 신청자들이 몰려들어 올해는 경쟁률이 2대 1이었다는데 학생들은 성적에 상관없이 추첨으로 뽑는다. 4분의 3 정도가 프라비던스 시에 살고 나머지는 로드 아일랜드 주의 다른 지역에서 온다. 학생들의 63퍼센트가 빈곤계층의 아이들이지만 대부분의 공립학교들과 달리 이 학교에는 백인 중산층 아이들도 적지 않게 다닌다. 매우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는 셈이다. 전체 학생의 41퍼센트가 백인, 38퍼센트가 라틴계, 18퍼센트가 흑인, 3퍼센트가 아시아계다. 이런 환경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 체험과 함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몸에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메트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은 지난해 졸업생 전원(46명)이 대학을 진학한 것이 결정적인 뉴스거리가 되어서일 것이다. 특별한 학생들을 선발한 학교도 아닌 일반 공립학교에서 중도탈락생도 없이 게다가 전원이 대학에 진학까지.... 미국 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경우였다. 대개 중도탈락률이 50%를 넘나드는 일반 공립학교와 견주면 놀라운 결과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전원이 대학을 간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더욱이 인턴활동을 하다보면 굳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을 법한데 모두가 대학을 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스러웠다. 한 교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다분히 전략적으로 대학진학을 권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첫 졸업생을 내는 마당에 학교의 성공적인 모습을 입증해보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메트 하이스쿨의 성공 사례는 미국 매스컴을 타고 널리 알려졌고,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도 관심을 보여 이런 학교를 다른 지역에도 만들도록 35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 전역의 12개 지역에서 메트와 같은 학교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빅 픽처는 이 학교들에서 근무할 교장들을 선발해 현재 메트 고교에서 훈련하고 있다.

교사가 아닌 조언자
이 학교에는 뜻밖에도 한국인 청년이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최영환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민 3세였다. 1929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온 할아버지의 조국을 알고 싶어 한국에 와서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한 해 반 동안 했다는데 한국말이 꽤 능숙했다. 26살 청년은 아이들보다 더 앳되 보였지만 너무나 침착하고 능숙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시내에 있는 쉐퍼드 캠퍼스에서 9학년을 맡고 있는 그는 일반 공립학교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메트로 온 지 8개월쯤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지난 5월 4일 아침 모임에서는 학급 아이들과 편안하게 둘러앉아 저마다 자기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영환씨가 먼저, 자기는 춤추는 것과 요리,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학생들도 저마다 자기 관심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비디오, 컴퓨터, 해양생물학...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에 대한 자연스런 이해와 함께 각자에게 맞는 배움의 길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모임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중간에 한 학생이 들어와서 금연에 관한 설문지를 돌리기도 하고,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중간에 슬며시 나가는가 하면 뒤늦게 씩씩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펑크머리 학생도 있다.

영환씨는 메트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의 자발성을 보장해주는 점이라고 말한다. 일반 중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처음에는 그런 자유와 자율을 감당하기 힘들어 하지만 곧 자기 나름으로 길을 찾는다고 한다. 시간이 좀더 걸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교사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학교 생활에 적응해간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말했다. 학교 규모가 작고 아이들과 전면적으로 만나다보니 아이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같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다른 학교에서처럼 맡은 과목 수업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아이들에게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 피곤할 때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우기 한 반 아이들 14명이 저마다 다른 것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들을 일일이 챙기자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 같다. 메트에서는 담임 교사를 조언자(advisor)라고 부르는데 4년 동안 한 학급을 맡기 때문에 그 만큼 아이들과 교사의 관계는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학교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엘리엇 워셔가 한 마디로 말했다. [교사다. 우리와 함께 일할 교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보다 학생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공립학교들과 달리 메트는 직접 교사를 선발한다. 아이들은 선발하지 않지만 교사는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은 한 번쯤 유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벤처 정신에 익숙한 이들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들의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은 딴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 또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문제를 먼저 겪은 사회에서 그들 사회의 미래를 걸고 시도하는 실험들은 우리에게 길잡이 등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부색이 어떻든 사람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교육의 본질 또한 다를 수는 없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 모든 아이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소망일 것이다. 자기를 발견하고 실현하고 싶은 욕구를 타고나는 것이 사람이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 할 일이 아닐까. 메트의 한 졸업생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메트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메트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당신이 정말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삶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민들레 15호에서)
||차 례
1.세 학생 이야기
2.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배려하는 맞춤 학습
3.관심사에 기초한 학습
4.인턴쉽을 통해 배운다.
5.모든 것은 배움으로 통한다.
6.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7.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8.메트스쿨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9.메트스쿨은 과연 효과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가
10.생존과 확장에 따르는 과제
11.둥지를 떠나며

후기 [자, 출발!]
부록 탐방기-우리가 메트스쿨과 빅피쳐 컴퍼니에 주목하는 까닭_

아래 글은 2002년 5월에 서울시대안교육센터가 주최한 심포지엄 [작은 학교, 큰 그림]에서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소장이자 연세대 교수인 조한혜정 선생님이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가 메트스쿨과 빅픽처컴퍼니에 주목하는 이유
..........................

2. 왜 메트스쿨과 빅픽처컴퍼니에 가고 싶었나?
그 어떤 곳보다도 내 구미를 당긴 곳은 [메트스쿨]와 [빅픽처컴퍼니(Big Picture Company)]였다. 메트스쿨은 스스로를 [특수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아니라 [보통] 학생들을 위한 [공립 실험학교]라고 말한다. 이 학교는 [대도시지역 기술직업센터(The Metropolitan Regional Technical and Career Center)]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작은 학교인데, 교재 발간과 여론 조성, 교장자격 연수 등을 하는 교육연구센터 격인 빅픽처컴퍼니와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운영되고 있다. 달리 말해 메트스쿨은 [큰 그림]을 가진 체제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학교]인 셈이다. 빅픽처컴퍼니가 생긴 것은 1995년, 새로운 학교에 대한 기획을 해서 메트스쿨을 만든 것은 1996년이다.
메트스쿨이 20세기 초반에 설립된 영국의 서머힐학교와 다른 점은 하나의 새로운 교육비전을 제공하는 대안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그 새로운 비전을 본격적으로 복제 재생산하려는 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경험의 정보화]를 주요 과업으로 내건 [하자센터]의 복제 재생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터라,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서울지역 도시형 대안학교의 운영지원 및 연구를 위해 설립된 [서울시대안교육센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터라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메트스쿨과 빅픽처컴퍼니의 관계, 그리고 메트스쿨 체제를 복제 재생산하려는 구도를 처음 접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미국이라 할 수 없구나. 신자유주의 물결이 교육계까지 파고들었구나. 그래서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franchise)가 교육을 소재로 만들어가고 있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21세기에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그간의 대안학교 실험을 통해서 알 만한 것은 다 알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복제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다. 프랜차이즈를 한다고 다 신자유주의라고 몰아 부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안학교에 대한 비판은 늘 <그 작은 규모로 언제 교육제도를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냐>는 말이 아니었는가. 이제 이처럼 복제 가능한 체계가 나오면 그런 식의 비판도 사그라지게 될 것이고, 어쩌면 단숨에 지금의 교육제도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면서 나름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보았지만,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메트스쿨이 지난 2000년에 첫 졸업생을 내면서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탔는데, 그 이슈가 바로 [전원 대학 합격]이었다는 점이다. 기껏 열심히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을 길러놓고 고작 상급학교로 진학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단 말인가? 사실 교육제도 붕괴의 문제는 대학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대학도 상당히 낙후된 시스템이라는 것을 교육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메트스쿨이 미국 내 저임금 계층과 소수집단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이고, 그 아이들 중 상당수가 그 가정에서 최초로 대학에 간 경우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21세기 패러다임 전환기에 [전원 대학 입학]이라는 식의 체제 편입은 그래도 여전히 좀 촌스럽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나는 기회만 되면 메트스쿨을 방문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올 2월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가게 되어 그 전에 메트스쿨을 먼저 들러보는 식으로 계획을 잡았다. 가기 전에 그곳에서 교사로 있는 한국계 3세 최영환 씨, 그리고 엘리어트 워셔 센터장과 각각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하자작업장학교의 홈페이지를 알려주고, 나는 인류학자이며, 그 곳을 참여관찰 하고 싶다고 하니까, 홈페이지에서 하자 소개 비디오 등을 보았고, 매우 인상적이어서 어서 만나고 싶다는 답이 왔다. 그리고 인류학자의 현장조사는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다. 영환 씨는 혼자 온다면 자기 집에 묵어도 좋다고 해서, 워낙 호텔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의 집에 묵기로 했다.

2002년 2월 26일, 뉴욕을 거쳐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시에 도착했다. 영환 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한국계 3세 치고는 놀랍게도 한국말을 잘 한다. 그는 뉴욕의 대안학교와 우리 나라에 와서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었고, 노동운동과 교육운동, 소수집단의 권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시민활동가이기도 하다. 한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저녁에 시간이 나면 또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면서 열심히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3. 2월 27일(수): 도심 속의 작은 학교
교사들은 8시, 학생들은 9시까지 학교에 온다. 메트스쿨엔 두 개의 캠퍼스가 있는데 영환 씨가 다니는 학교는 제일 먼저 생긴 쉐퍼드(shepard\\\\\\\\\\\\\\\'s 목자) 캠퍼스이다. 이 캠퍼스는 도심부에, 예전에는 백화점이었던 건물에 있다. 건물 4층 일부를 쓰고 있는, 마당도 없는 학교. 학생들은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 동안 다닌다. 4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따라가니 교장실 겸 사무실이 나온다. 입구에 게시판이 있고, 어느 선생님이 감기로 오늘 늦는다는 등의 소식이 적혀있다. 아주 환한 공간이다. 그 옆에 [Young-Whan\\\\\\\\\\\\\\\'s Advisory 영환이 지도하는 방]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영환 씨의 교실(Young-Whan\\\\\\\\\\\\\\\'s Advisory)
영환 씨 교실의 크기는 내 교수연구실의 두어 배 정도로 열 명 정도가 있기에 족할 공간이다. 실제로 한 반에 학생이 14∼16명이다. 한 학년에 두 반 4학년제이니 전부 8학급이어서 학생수는 모두 120명, 교사는 8명보다 조금 많거나 한다. 교사를 담임 역할을 하는 [어드바이저(advisor)], 즉 [길잡이교사] 내지 [조언자]라고 부르고, 개별 교과담당 교사는 따로 없다. 담임들이 자기 방 아이들에게 필요한 과목을 가르치거나 옆방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영환 씨는 담임 일 외에는 일 주일에 두 시간 수학을 자기 반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나머지는 철저하게 개별 학습자 중심의 학습을 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인턴쉽을 나가는데 지금 100여 군데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학생마다 3개의 인턴쉽을 졸업 전까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영환 씨 교실은 잘 정돈된 도서실 겸 작업실 같은 식으로 꾸며져 있다. 열 명 정도가 편하게 둘러앉을 수 있는 세미나용 탁자를 둘러싸고, 컴퓨터 공간, 칠판과 게시공간, 파일 캐비넷과 파일 상자가 있다. 한 구석에 담임의 작은 책상과 소파 한 개가 있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계급과 인종이 아주 밀접하게 물려있는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이 섞이는 것 자체로 대단한 학습효과를 내게 된다. 백인이 30%, 흑인 30%, 라티노 30%, 아시아계는 한두 명 정도라 하다. 교사는 백인계가 50%이다. 아이들은 담임 방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나 세미나용 탁자 앞에 앉는데, 몇 명은 소파에 앉아서 놀고 파일 정리를 하고 있다. 영환 씨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그 날 일과를 적었다.

8시∼9시 : 준비
9시 : [나도 데려가 Pick-Me-Up] School meeting
(브라운대학교 Lion Dance 동아리 팀 방문)
9시 30분∼10시 : 상담
10시∼12시 : 자기 주도 학습(학습계획서 쓰기 돕기)
12시∼12시 30분 : 점심
12시 30분∼1시 : Silent Hour
1시∼2시 30분 : 자기 주도 학습
2시 30분∼ : 자문, 상담
4시∼5시 : 신규 담임 채용 인터뷰

칠판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들이 여럿 붙어 있다. 그 이름들은 수시로 어디에다 붙이게 되어 있는 것으로, 청소나 정리단속 당번, 마감된 주요 프로젝트를 잊지 않게 하는 일에 쓰는 듯 하다. [If you don\\\\\\\\\\\\\\\'t get it done, it\\\\\\\\\\\\\\\'s your butt on the line.](제 때 제 때 안 하면 걸리는 것은 결국 네 자신이다)라는 포스터가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자기 주도 학습을 시키는 일이 여기서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이 한 달 이상 빠지면 부모가 매일 벌금 10달러를 내야 한다고 한다. [When you invite people to think, you are inviting revolution.](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혁명을 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포스터도 걸려있다. 영환 씨가 가진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까?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있다

아침 미팅(나도 데려가 Pick-Me-Up 집회)과 아침 수업
9시에 모두 1층의 식당 겸 강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월·수·금은 전체 모임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화·목은 인턴을 나가는 날이라 하지 않는다. 다 같이 모이는 집회 이름을 [Pick-Me-Up]이라고 부르는 것이 흥미롭다. [나를 데려가], [나도 데려가], [함께 가](?). 내가 관여하는 하자센터 역시 이름짓기로부터 시작했다. 모든 새로운 시대의 모델은 이름짓기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집회장소는 꽤 큰 공간인데 마이크를 잘 안 쓰고 육성으로 말을 한다. 오늘의 손님 소개부터 시작한다. 담임채용 인터뷰를 하러 온 분과 나에 대한 소개다. 간단히 인사말을 시킨다. 그리고 그 날 있을 여러 활동 안내가 이어졌다. [Boys Club] 모임이 있다고 한 남학생이 꼭 많이들 참석하라고 광고를 한다. 대학입학 허가서가 오는 시점이라 누가 어느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가 났고 어떤 장학금을 받았는지에 대해 공지하면서 축하 박수를 쳐준다. 마침 중국식 설날이 끝나는 날이라면서 브라운대학교 라이온 댄스팀이 와서 직접 공연을 하고 잠시 그 댄스의 특징을 설명했다. 끝나고 질문시간에 학생들은 [옷은 직접 만드나?] [왜 상추를 마지막에 던지나?] 등등 많은 질문을 던졌다. 30분 안에 상큼하게 끝내는 회의. 주로 혼자 작업을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정보교류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집회가 끝나자 제시라는 아이가 내게 와서는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하는 학교에 대해 물어온다. 낯선 어른을 경계하는 서울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다양하기 마련이어서 단정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이곳 아이들은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 안다. 어른들은 자신의 [자원]이며 또 그 자원을 기꺼이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분위기가 이 학교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후 9시 30분부터 10시 15분까지는 영환 씨가 가르치는 수학시간(Advisory Math)이다. 수학과 글쓰기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SAT(미국에 있는 대입을 위한 시험)를 보기 위해 필요한 과목이고 한 데 모여 듣는 것이 필요하므로 몇 과목은 선생님이 교실에 모두를 모아놓고 가르치는 [전통적인 방식]을 쓴다고 한다. 좀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이 3∼4명. 오늘 수업은 원과 세모와 네모 등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시간이다. 각자에게 종이를 주고 원, 세모, 네모를 만들어보라고 한다. [웬 유치원?] 하면서 열심히 만들고 나서 원이 무엇인지, 원을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생각해가게 했다. 아이들이 감을 잘 잡지 못하니까 [외계인이 와서 물으면 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라는 식으로 물으면서 생각을 하게 돕는다. 아이들은 아주 무표정하고 지루하게 앉아 있다가 조금만 재미있을 것 같으면 금새 표정이 달라진다. 이 점은 한국이나 이곳이나 마찬가지다.

수학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 개별 수업시간표에 따라 흩어졌다. 대학생과 따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아이가 있다. 한 여대생은 일 주일에 두 번, 한 시간 반씩 개별지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작업은 대학에서 자기 학습과도 연결되는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로빅을 하러 가는 아이도 있고, 의자에 앉아서 곧 있을 [전시회(exhibition)]라고 불리는 공개 프리젠테이션 형식의 학습평가회 준비를 하느라 자기 파일을 정리하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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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어트 워셔에게 확인한 몇 가지
엘리어트 워셔를 만나자마자 궁금한 것을 물었다. [프랜차이즈라는 단어를 왜 쓰는가?] 이 질문에 대해 엘리어트는 사실 자신은 그 단어를 싫어하며, 빅픽처컴퍼니는 기업이 아니라 비영리 기구임을 분명히 하였다. 자신이 하는 일은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보적인 학교가 아니라 대다수를 위한 교육개혁이며, 공립학교로부터 이 작업을 시작한 면에서도 그런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한 많은 것을 무료로 공유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한 작은 청소년 문화공간은 자기들의 이름을 쓰게 하면서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을 대학에 다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사실 메트스쿨은 공립학교이고 따라서 그 맥락에서는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메트스쿨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학과를 찾아가고 대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미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미 대학교육과 거의 같은 원리로 자기 주도 학습방식을 익힌 메트스쿨의 졸업생들은 그런 면에서 대학생활을 다른 기존 학교를 나온 아이들보다 더욱 풍성하게 잘 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은 이런저런 자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에 관해 물었더니 아직은 본격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고 그간 메트스쿨과 관련한 실험과 그것을 매뉴얼화 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빅픽처컴퍼니가 펴낸 매뉴얼을 보고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물론 6년차 실험이니 충분한 경험이 쌓여서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솔직히 하자센터가 6년째 되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그다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워낙 미국사람들이 제일 잘 하는 것이 실제적인 매뉴얼 만들기라고들 하지만, 이 연구소에서는 정말로 환상적인 매뉴얼들을 내놓고 있었다. 사실 우리로서는 이러한 매뉴얼 만드는 일을 대안교육센터에서 해야 한다. 이러한 매뉴얼 만들기 작업을 제대로 해내려면 본격적인 실험학교를 하나 운영하면서 연구진이 더 붙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과의 연계에 대해서 물으니까 기본적으로 교수와 이야기가 되면 강의를 수강할 수 있고, 로드아일랜드 주립대학 같은 데서 아이들이 주로 듣는다고 했다. 보스턴대학과 같은 유명 사립대학의 경우 워낙 학비도 비싸고 해서 지금은 한 학기에 한 강좌 정도 듣는 식이라고 한다. 미국이 아주 부유하고 개방적이었던 1970년대와 달리 대학수업을 듣기 위한 제도화도 쉬운 일은 아닌 듯 하고 또 딱히 제도화를 할 필요가 없이 멘토 차원에서 풀 수도 있으니 그 면에서는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 빅픽처컴퍼니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쉐퍼드 캠퍼스와 피스 캠퍼스를 바탕으로 아주 이상적인 캠퍼스를 짓고 있는데, 10월에 4개의 작은 학교 연합 건물이 완공된다. 역시 로드아일랜드 주와 프로비던스 시에서 돈을 내서 짓는 건물이다. 1개의 학교란 14명씩 1반을 맡은 8명의 담임이 있는 작은 학교로, 한 학교에 8개 담임 교실과 2개의 공동 작업실(겸 식당), 3개의 프로젝트 방, 그리고 사무실이 있게 된다. 벽은 움직일 수 있게 하여 강당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이런 학교를 한 캠퍼스에 묶어서 짓고 있다. 네 개의 학교가 같이 사용할 TV 스튜디오, 녹음실, 라디오 스테이션, 극장, 그리고 체육관과 책방, 카페와 작은 클리닉이 들어서고, 주방에서는 네 학교의 음식을 다 준비한다. 체육관에는 암벽타기, 농구, 헬스, 기구 등을 할 수 있고, 졸업식 같은 것도 그곳에서 할 예정이란다. 네 학교가 모여 있음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면도 있고, 텔레비전 방송국 등을 연대해서 함께 운영할 수도 있게 되며, 그런 방면의 전문가를 공유할 수도 있게 된다.

실제로 미국은 워낙에 큰 지역이고 미국 내 네트워크로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교장교육 하나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엘리어트 워셔는 나처럼 국경을 넘는 경계 넘기와 연대작업에 대해 그다지 강한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70년대에 생긴 필라델피아의 파크웨이 프로그램(Parkway Program)을 비롯한 대안학교 연맹조직도 이미 미국 안에서는 존재하고 있다. 기존 대안학교 연맹의 일원으로 영환 씨는 지난 겨울에도 [고등학생 새 노동 학술 심포지엄]과 [진취적 행동을 위한 소녀들의 연맹] 모임에 학생들을 데리고 갔었다고 하고, 그 오래된 미국 내 대안학교 연대기구와 계속 연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오래된 조직보다 이제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연대모임이 떠야 할 때이고, 그것은 아마도 빅픽처컴퍼니가 주도하는 어떤 새로운 방식의 연대활동 - 인터넷 연결을 포함한 - 형태일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관리에 엄격한 교사
영환 씨는 집으로 와서 알리 맥그로(Ali Macgraw)의 요가비디오를 틀어놓고 운동을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바빴다면서 피곤을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이다. 자기 관리가 아주 잘 되는 사람. 그 후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사채용에 관해선 이 학교에 맞는 자질을 가진 사람, 다시 말해 새로운 기획을 할 시대인식이 분명하고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본 경력의 사람을 뽑는다는 말을 했다. 선발된 사람에겐 계약할 때 4년 간 있을 것을 요구한다. 20년 교사 경력자도 있지만 주로 영환 씨처럼 3∼4년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은 아이들의 적성을 찾게 해 주고, 창조적, 열정적, 실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많은 것을 자유롭게 경험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상급반에 가면 아이들을 챙기면서 생산자가 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고, 실은 자신에게는 재미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2년을 일하니까 이미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너무 밀착되어버려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면서 모든 담임이 4년씩 함께 가기보다는 2년씩 함께 가는 담임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건의를 해볼 생각이라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메트스쿨의 학습원리 자체는 하자센터와 너무나 비슷하다. 하자에서는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하기 싫은 일도 한다], [쇼 하자]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들을 여기서는 [learning by doing], [learning everyday life], [graduate project]와 [exhibition], [senior institute]라는 말로 하고 있고, 연륜이 깊은 만큼 이것들이 보다 체계화되어 있다. 탈학교 아이들이 중심인 하자의 [스스로 이름을 짓는 사람이 되자]는 등 좀더 급진적인 구석이 있다.
하자에서는 흡연문제가 심각해서 이에 대해 물어보니 자기 반은 금연 분위기이고, 특히 한 아이가 담배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고 그 분야로 인턴쉽도 하고 있는데, 워낙 [난리를 치니까] 교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안 피우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마약문제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생활관리는 이곳에서도 핵심 문제로, 시간약속 지키는 것, 등교시간 지키게 하는 것은 담임의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상급반(senior institute)]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실은 대안학교 안에서도 아이들간의 수준 차이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것은 사실 상급반 제도로 풀 수 있는 문제인 것인데, 대안학교 안에서 그 제도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상급반 제도는 [명예]의 개념을 가질 수 있이기에 스스로 업그레이드해 가는 동기유발의 제도가 될 수 있어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니까 영환 씨는 메트스쿨의 경우 상급반에 가는 것이 아직 [명예]의 개념으로 인지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자신이 이 학교의 문제점으로 보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한데, 아이들의 활동이 너무 개별적인 작업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집단으로 하는 활동이 별로 없고, 또래와의 그룹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인 멘토와의 관계는 잘 풀어가는 편인데 비해, 자기 또래와는 오히려 접촉이 적다는 것이다.

그 외에 이 학교가 개선해가야 할 점을 말해보라고 하니까 학교가 너무 빨리 확장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너무 빨리 확장하게 되는 바람에 제대로 다질 시간이 안 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제대로 일을 할 만해진 사람들은 바로 새 학교 교장으로 가거나 빅픽처컴퍼니에 책 만드는 일을 하러 가버리고 만다는 것.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확장을 위해서 지원금을 받거나 홍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찾아오는 이들을 안내하는 일도 해야 하고, 교사충원을 위한 인터뷰도 해야 하는 등 잡일이 너무 많아져서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사실 학생들은 가족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아주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데, 제대로 된 상담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서울에 있는 많은 대안학교들에서도 똑같이 논의되고 있는 문제인데, 문제는 기존의 상담제도가 낙후된 국민복지모델에서 나온 것이어서 이 아이들에게 맞는 상담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창업자이자 설립 공동 교장이었던 엘리어트 워셔나 데니스 릿키는 [학교 복제 작업]에 몰두하고 있고 - 지금은 학교장을 다른 분이 하고 있고, 이 두 분은 빅픽처컴퍼니의 공동센터장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 [주인의식]도 약해지고 있어서 그것도 자신은 문제점으로 본다고 했다. 한 마디로 아이들과 교사가 어떻게 주인의식을 갖고 초기의 실험적 에너지를 지속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이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설립기에서 안정기로 접어들면 모든 조직이 당면하게 되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똑똑하게 자기 집단의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학교의 주인이라면 이 집단은 앞으로도 아주 잘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늦은 밤까지 영환 씨는 두꺼운 어드바이저를 위한 [대학원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매뉴얼을 볼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담임을 하면 정말 많이 배울 것이다. 학기가 끝나면 교사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의견을 적은 가이드라인을 제출한다고 한다. 그런 자료들을 종합해서 빅픽처컴퍼니에서는 다시 매뉴얼을 수정하는 모양이다. 경험의 정보화가 확실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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