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통권 151호 (2024.봄)에 실린 대담입니다.
_발행인과 편집장에게 듣는다
창간 25주년을 맞는 《민들레》가 올해부터 발행 주기를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바꾸고, 내용도 한 가지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방식으로 개편합니다. 이런 변화를 꾀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발행인과 장희숙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5년을 돌아보며
현병호 : 1990년대 말, 《민들레》를 창간하면서 내건 ‘탈학교 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맞았다고 봅니다. 다들 학교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에야 시작된 셈이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홈스쿨링 가정도 빠르게 늘어났죠. 초창기에는 ‘교육=학교교육’이라는 공식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홈스쿨링을 더 부각시켰더랬지요.
당시는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탈권위, 탈전문가주의 흐름이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창간사 제목이 ‘길이 됩시다’였는데, 부모가 실질적인 교육 주체로 나서서 새로운 교육을 열어가자는 주장이었죠. 교육의 민주화를 실제로 구현해보자는 거였어요. 당사자성을 강조하다 보니 학계에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수들이 대안교육운동을 주도하려는 걸 경계했죠. 현장 교사들은 연구력도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라 연구자들과 긴밀하게 결합해서 같이 갔어야 하는데, 시야가 좁았고 공부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당사자중심과 당사자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부모가 교육 주체로 서야 한다는 걸 강조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들이 학교 설립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교육과정에도 개입하다 보니, 교사와 학부모 간에 갈등도 많이 일어났죠.
장희숙 : 20여 년 전, 제가 대안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민들레》를 볼 때는 그야말로 ‘대안교육 전문지’였어요. 그런데 10년 전에 막상 잡지를 만드는 이가 되고 보니 생각보다 독자층이 넓은 거예요. 그분들이 원하는 건 구체적인 대안학교 이야기만이 아니라 교육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실천 사례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육아 문제도 교육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싶어 관련 글들을 싣기 시작하면서 영유아 부모까지 독자층이 넓어졌죠.
현병호 : 10년쯤 전부터 저 개인적으로는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학교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학교가 교육을 독점한 채 왜곡하고 있다는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육을 살피면서 학교의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되었어요. 초창기에는 표준화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해 학교교육의 보편성까지도 부정하게 됐던 것 같아요. 개인 수준의 대안과 국가 수준의 대안을 혼동하기도 했구요. 개별화 교육이란 것도 보편교육의 토대 위에 개별성을 가미하는 거지, 표준화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장희숙 : 우리가 추구했던 개별성에 반대되는 개념은 보편성이 라기보다 집단성 아닐까요. 아이들을 그냥 한 덩어리로 보면서 시스템으로 돌리는 근대학교의 집단성에 대한 반발로 개별화 교육을 추구해온 거잖아요.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학교는 집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때보다 개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방치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공교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꾸준히 그 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운동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 공교육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선택하거나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은 힘든 결단이지만 개인이나 마을 수준의 대안이죠. 입시교육을 거부하는 흐름이 대학 비진학으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고 봅니다. 개인 수준에서는 과감하고 근본적인 대안일 수 있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는 소수 근본주의자들의 대안인 거죠. 근대교육과 학교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대안교육운동이 개인이나 마을 수준의 대안에 머문 건 내부의 긍정적 시각으로 보자면 ‘실천 가능한 대안’을 추구한 것이고, 외부의 부정적 시각으로 보자면 ‘저들만의 대안’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진보교육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되짚어보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교육운동의 토대가 되는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교육, 대안교육이 추구해온 아동중심, 학습자중심, 경험중심 같은 큰 방향에 대해 다시 짚어봤으면 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돼온 교육운동의 흐름 속에 반지성주의가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반지성주의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걸 넘어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성별 갈등,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진보가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도 있구요. 개인 인권을 절대시하는 근대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봐요.
장희숙 : 모든 운동에서 ‘균열’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요. 깨어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니까. 다만 이 운동이 균열을 감수하고라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지, 오히려 해가 되는 균열인지 그건 의견 차가 있을 것 같고요. 이 사회의 많은 갈등이나 지금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개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 어떤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민들레》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현병호 : 부모와 국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죠. 자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과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교육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수준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장보다 경제성장이죠. 자율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까닭도 더 이상 표준화된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경쟁’을 국정 운영의 기본 원리로 내세우는 현 정부는 “교육부도 경제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반도체학과가 여기저기 개설되고 있잖아요.
문민정부 5.31 교육개혁 때,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함께 지역과‧학교,‧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걸 천명한 건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정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보수와 진보 정권에 따라 고교 서열화와 평준화 사이를 오락가락해온 것이 지난 30여 년간의 실상이었죠. 고교 내신 상대평가 제도도 그대로이고 사실상 개혁다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 시기가 개혁의 적기였는데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죠. 코로나 팬데믹 영향도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장희숙 : 교육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몇몇 정책이 추진되긴 했어요. 특히 고교학점제는 잘만 풀면 입시중심 교육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인데 내신 상대평가제를 고수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있죠. 2022년부터 시행된 비인가 대안학교 등록제 같은 것도 신입생이 줄고 있는 현실에서 때늦은 감이 있어요.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긴 안목에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자 문재인 정부 때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2022년 출범과 동시에 정권이 바뀌면서 대폭 축소된 데다 그마저 교육부로 통합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죠. 현 정부 들어서 미래교육을 내세워 AI 교과서 도입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지금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그런 것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현병호 : 잘한다고 하는 일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죠. 학교를 다양화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실제로는 자립형 사립고 확대와 학교 서열화로 이어졌죠. 학습자중심 원리는 수요자중심 원리로 변하면서 교육이 서비스가 되어버렸어요. 부모와 학생이 ‘고객’이 되면 교육도 배움도 가능하지 않죠. 배움이란 게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볼 때 ‘학습자중심’이 과연 배움에 적합한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 과잉의 시대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흐름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학점을 관리하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그런 삶의 실상이 경쟁을 ‘당하며’ 사는 거라면 그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낸.
장희숙 : 자기주도성 같은 담론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구체적인 현실을 놓치기 쉬운데,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둬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환경인 어른들의 성숙을 돕는 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부모와 교사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아이들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민들레》의 변화에 대해
장희숙 :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발행 주기를 늦추는 것이 시대에 역행하는 느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차선책인 것 같아요. 내용 구성 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잡지 성격에서 벗어나 단행본처럼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는 거죠.
개편을 통해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좀 더 길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거예요. 잡지는 새로운 호가 나오면 지난 호는 금방 관심사에서 멀어지잖아요. 애써 만든 책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과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공부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건데, 이게 또 다른 문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되는 부분이긴 해요. 가볍게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는 잡지 성격을 좋아하던 분들은 이런 변화가 낯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 읽히면서 공부가 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현병호 : 창간 때는 ‘부모가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교육 주체들의 ‘사이’에 주목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라는 것이 원래 사이를 매개하는 건데, 교육매체는 더욱이 서로 입장이 다른 주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계가 살아나면 교육이 살아나죠.
장희숙 : 독자들이 손꼽는 《민들레》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예요. 학부모가 교사의 깊은 고민을 들여다볼 기회, 교사가 학부모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죠. 그간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청소년이나 청년들 이야기를 들려줘서 좋다는 의견도 있고요. 부모와 교사, 교육청 관계자가 같이 읽을 수 있는 교육지는 《민들레》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현병호 : 부모와 교사는 서로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또 함께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파트너죠.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교사도 혼자서는 힘드니까요. 예전에는 교사가 주도하고 부모는 따라가는 정도의 팀플레이라도 되었는데 지금은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면서 팀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민들레》의 역할은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가 팀플레이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봐요.
장희숙 : 디지털 시대에 종이매체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가 솔직한 대답이겠죠. 발행 주기가 길어지는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고민이 되는데,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지만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고요. 유튜브를 해라, SNS를 해라, 조언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 일하는 사람들 성향으로는 너무 어려운 요구죠.(웃음)
다행히 아직은 종이책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요.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독자모임도 종이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거든요. 똑같은 내용이라도 전자책이나 웹으로 발행되면 사람들이 책이라는 물성을 가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성격하고는 많이 달라지겠죠. 최근에 진행한 독자 설문을 보면 응답자 중 40~50대가 80% 정도였어요. 어떤 면에서 종이매체에 익숙한 마지막 세대가 《민들레》를 보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현병호 :《민들레》가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처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 좋겠어요. 이런 잡지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지역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될 수 있게 해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공부 욕구가 커지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죠. 다들 길을 잃은 느낌 속에서 방향 감각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교육운동도 공부 없이 실천만 해서는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죠. 지금 독자모임 상황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들레》가 다루는 주제를 놓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문제가 뭔지 제대로 짚고, 이념을 앞세우기보다 물리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 문제에 다들 지쳐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민들레 통권 151호 (2024.봄)에 실린 대담입니다.
_발행인과 편집장에게 듣는다
창간 25주년을 맞는 《민들레》가 올해부터 발행 주기를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바꾸고, 내용도 한 가지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방식으로 개편합니다. 이런 변화를 꾀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발행인과 장희숙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5년을 돌아보며
현병호 : 1990년대 말, 《민들레》를 창간하면서 내건 ‘탈학교 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맞았다고 봅니다. 다들 학교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에야 시작된 셈이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홈스쿨링 가정도 빠르게 늘어났죠. 초창기에는 ‘교육=학교교육’이라는 공식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홈스쿨링을 더 부각시켰더랬지요.
당시는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탈권위, 탈전문가주의 흐름이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창간사 제목이 ‘길이 됩시다’였는데, 부모가 실질적인 교육 주체로 나서서 새로운 교육을 열어가자는 주장이었죠. 교육의 민주화를 실제로 구현해보자는 거였어요. 당사자성을 강조하다 보니 학계에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수들이 대안교육운동을 주도하려는 걸 경계했죠. 현장 교사들은 연구력도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라 연구자들과 긴밀하게 결합해서 같이 갔어야 하는데, 시야가 좁았고 공부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당사자중심과 당사자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부모가 교육 주체로 서야 한다는 걸 강조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들이 학교 설립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교육과정에도 개입하다 보니, 교사와 학부모 간에 갈등도 많이 일어났죠.
장희숙 : 20여 년 전, 제가 대안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민들레》를 볼 때는 그야말로 ‘대안교육 전문지’였어요. 그런데 10년 전에 막상 잡지를 만드는 이가 되고 보니 생각보다 독자층이 넓은 거예요. 그분들이 원하는 건 구체적인 대안학교 이야기만이 아니라 교육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실천 사례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육아 문제도 교육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싶어 관련 글들을 싣기 시작하면서 영유아 부모까지 독자층이 넓어졌죠.
현병호 : 10년쯤 전부터 저 개인적으로는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학교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학교가 교육을 독점한 채 왜곡하고 있다는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육을 살피면서 학교의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되었어요. 초창기에는 표준화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해 학교교육의 보편성까지도 부정하게 됐던 것 같아요. 개인 수준의 대안과 국가 수준의 대안을 혼동하기도 했구요. 개별화 교육이란 것도 보편교육의 토대 위에 개별성을 가미하는 거지, 표준화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장희숙 : 우리가 추구했던 개별성에 반대되는 개념은 보편성이 라기보다 집단성 아닐까요. 아이들을 그냥 한 덩어리로 보면서 시스템으로 돌리는 근대학교의 집단성에 대한 반발로 개별화 교육을 추구해온 거잖아요.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학교는 집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때보다 개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방치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공교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꾸준히 그 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운동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 공교육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선택하거나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은 힘든 결단이지만 개인이나 마을 수준의 대안이죠. 입시교육을 거부하는 흐름이 대학 비진학으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고 봅니다. 개인 수준에서는 과감하고 근본적인 대안일 수 있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는 소수 근본주의자들의 대안인 거죠. 근대교육과 학교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대안교육운동이 개인이나 마을 수준의 대안에 머문 건 내부의 긍정적 시각으로 보자면 ‘실천 가능한 대안’을 추구한 것이고, 외부의 부정적 시각으로 보자면 ‘저들만의 대안’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진보교육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되짚어보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교육운동의 토대가 되는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교육, 대안교육이 추구해온 아동중심, 학습자중심, 경험중심 같은 큰 방향에 대해 다시 짚어봤으면 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돼온 교육운동의 흐름 속에 반지성주의가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반지성주의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걸 넘어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성별 갈등,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진보가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도 있구요. 개인 인권을 절대시하는 근대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봐요.
장희숙 : 모든 운동에서 ‘균열’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요. 깨어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니까. 다만 이 운동이 균열을 감수하고라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지, 오히려 해가 되는 균열인지 그건 의견 차가 있을 것 같고요. 이 사회의 많은 갈등이나 지금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개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 어떤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민들레》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현병호 : 부모와 국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죠. 자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과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교육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수준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장보다 경제성장이죠. 자율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까닭도 더 이상 표준화된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경쟁’을 국정 운영의 기본 원리로 내세우는 현 정부는 “교육부도 경제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반도체학과가 여기저기 개설되고 있잖아요.
문민정부 5.31 교육개혁 때,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함께 지역과‧학교,‧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걸 천명한 건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정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보수와 진보 정권에 따라 고교 서열화와 평준화 사이를 오락가락해온 것이 지난 30여 년간의 실상이었죠. 고교 내신 상대평가 제도도 그대로이고 사실상 개혁다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 시기가 개혁의 적기였는데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죠. 코로나 팬데믹 영향도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죠.
장희숙 : 교육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몇몇 정책이 추진되긴 했어요. 특히 고교학점제는 잘만 풀면 입시중심 교육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인데 내신 상대평가제를 고수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있죠. 2022년부터 시행된 비인가 대안학교 등록제 같은 것도 신입생이 줄고 있는 현실에서 때늦은 감이 있어요.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긴 안목에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자 문재인 정부 때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2022년 출범과 동시에 정권이 바뀌면서 대폭 축소된 데다 그마저 교육부로 통합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죠. 현 정부 들어서 미래교육을 내세워 AI 교과서 도입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지금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그런 것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현병호 : 잘한다고 하는 일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죠. 학교를 다양화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실제로는 자립형 사립고 확대와 학교 서열화로 이어졌죠. 학습자중심 원리는 수요자중심 원리로 변하면서 교육이 서비스가 되어버렸어요. 부모와 학생이 ‘고객’이 되면 교육도 배움도 가능하지 않죠. 배움이란 게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볼 때 ‘학습자중심’이 과연 배움에 적합한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 과잉의 시대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흐름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학점을 관리하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그런 삶의 실상이 경쟁을 ‘당하며’ 사는 거라면 그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낸.
장희숙 : 자기주도성 같은 담론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구체적인 현실을 놓치기 쉬운데,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둬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환경인 어른들의 성숙을 돕는 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부모와 교사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아이들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민들레》의 변화에 대해
장희숙 :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발행 주기를 늦추는 것이 시대에 역행하는 느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차선책인 것 같아요. 내용 구성 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잡지 성격에서 벗어나 단행본처럼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는 거죠.
개편을 통해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좀 더 길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거예요. 잡지는 새로운 호가 나오면 지난 호는 금방 관심사에서 멀어지잖아요. 애써 만든 책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과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공부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건데, 이게 또 다른 문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되는 부분이긴 해요. 가볍게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는 잡지 성격을 좋아하던 분들은 이런 변화가 낯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 읽히면서 공부가 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현병호 : 창간 때는 ‘부모가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교육 주체들의 ‘사이’에 주목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라는 것이 원래 사이를 매개하는 건데, 교육매체는 더욱이 서로 입장이 다른 주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계가 살아나면 교육이 살아나죠.
장희숙 : 독자들이 손꼽는 《민들레》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예요. 학부모가 교사의 깊은 고민을 들여다볼 기회, 교사가 학부모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죠. 그간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청소년이나 청년들 이야기를 들려줘서 좋다는 의견도 있고요. 부모와 교사, 교육청 관계자가 같이 읽을 수 있는 교육지는 《민들레》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현병호 : 부모와 교사는 서로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또 함께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파트너죠.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교사도 혼자서는 힘드니까요. 예전에는 교사가 주도하고 부모는 따라가는 정도의 팀플레이라도 되었는데 지금은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면서 팀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민들레》의 역할은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가 팀플레이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봐요.
장희숙 : 디지털 시대에 종이매체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가 솔직한 대답이겠죠. 발행 주기가 길어지는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고민이 되는데,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지만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고요. 유튜브를 해라, SNS를 해라, 조언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 일하는 사람들 성향으로는 너무 어려운 요구죠.(웃음)
다행히 아직은 종이책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요.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독자모임도 종이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거든요. 똑같은 내용이라도 전자책이나 웹으로 발행되면 사람들이 책이라는 물성을 가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성격하고는 많이 달라지겠죠. 최근에 진행한 독자 설문을 보면 응답자 중 40~50대가 80% 정도였어요. 어떤 면에서 종이매체에 익숙한 마지막 세대가 《민들레》를 보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현병호 :《민들레》가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처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 좋겠어요. 이런 잡지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지역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될 수 있게 해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공부 욕구가 커지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죠. 다들 길을 잃은 느낌 속에서 방향 감각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교육운동도 공부 없이 실천만 해서는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죠. 지금 독자모임 상황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들레》가 다루는 주제를 놓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문제가 뭔지 제대로 짚고, 이념을 앞세우기보다 물리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 문제에 다들 지쳐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