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책을 사고파는 일에 얽힌 것들>
안 그래도 어려워지고 있던 출판계가, 새해 벽두부터 휘청합니다. 도매상 중에 두 번째로 큰 송인서적의 1차 부도 소식을 듣고, 오랜 거래처이던 민들레출판사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요.
민들레출판사는 IMF 직후인 199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겁이 없었죠. 사실 망할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교육운동을 하고자 출판 일에 뛰어들었으나, 출판시장에는 까막눈이었습니다. 책 만들고, 서점 돌아다니며 거래 트고, 시내 대형서점에 납품까지 직접 하며 복마전 같은 출판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더랬습니다.
당시는 온라인서점이 없던 때여서 독자적인 유통망을 갖춘 대형서점과 전국의 작은 서점들을 연결해주는 도매상으로 유통구조가 이원화되어 있었습니다. 송인서적은 IMF로 부도를 냈다가 정부 지원으로 막 새 출발을 했을 때였는데, 판로를 찾지 못하던 새내기 출판사에겐 애써서 펴낸 책을 전국의 책방에 대신 깔아주는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도서 유통구조는 기본적으로 위탁판매 형식입니다. 신간을 내면 서점 판매대에 자신들의 책을 깔기 위해 '밀어내기'식 영업을 하는데, 영업력이 좋은 큰 출판사일수록 더 많은 책을 밀어냅니다. 도매상은 위탁한 책을 전국 소매서점에 나눠주고, 팔린 만큼 수금해서 출판사에 결제해주는 방식으로 출판시장이 돌아갑니다. 팔리지 않은 책은 수거해서 출판사로 반품하지요. 밀어내기식 영업은 출판사에 리스크가 큽니다. 수많은 책들이 그렇게 되돌아와 창고에 쌓여 있다가 연말 재고정리 때 폐지 값으로 처분되거나 덤핑 시장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한때 유통물량의 70%를 좌우하던 도매상은 점점 비중이 줄어 최근에는 30% 정도입니다. 도매상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2천 년대 들어 청룡서적, 학원서적 같은 중소 도매상이 먼저 부도를 맞았지요. 송인서적 또한 그 연장선에서 예견된 부도이기도 합니다.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 공급을 병행했던 출판사들은 그래도 IMF 때에 비해 도매상 부도의 영향을 덜 받은 편이지만, 송인서적과만 거래하던 작은 출판사들은 존폐 위기에 놓일 만큼 타격이 큽니다. 현매 거래를 늘리고 수금도 제때 했던 대형출판사에 비해 그러지 못했던 중소출판사에 부도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승자독식 사회의 비극이 출판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송인서적 부도로 휴지조각이 된 어음이 수십억에 이르는 걸로 추산됩니다. 출판사는 그걸로 인쇄소나 지업사에 결재를 하므로 연쇄 부도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의 등장으로 대거 사라졌던 동네책방들이 최근에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다시 활력을 찾아가고 있지만, 우리 곁의 책방의 귀환은 아직 요원한 일인 듯합니다. 다양한 매체로 정보를 접하게 된 시대에 종이책을 만들고 파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업자들이나 알고 있을 책의 유통구조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 드리는 것은, 분절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는 것에서 문제의 인식과 해결방안의 고민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유통만이 아닐 겁니다. 각종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자본의 시장에서 하나의 물건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서로 얽혀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해해야 우리는 그것들을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태도도 함께 성찰할 수 있을 겁니다.
민들레는 그 정체성이 교육운동단체에 가까워 출판계에 머리를 내밀 입장은 못 되지만, 좋은 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정신만큼은 여느 출판사 못지않게 확고하다고 자부합니다. 우리가 좋은 삶을 살고자 할 때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도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사, 도매상, 서점, 독자는 책을 사고파는 관계로 얽혀 있지만, 책을 만들고 사고파는 행위는 단순히 경제행위가 아니라 문화행위이기도 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당장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자금 투여와 양극화되고 있는 출판업계,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를 바꾸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이들도 건강한 출판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와 작금의 국정농단에서 목격하듯, 사회의 병폐는 서로 단단하게 맞물려 얽혀 있으니까요. 민들레도 앞으로 그 단단한 고리를 풀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함께 찾아가겠습니다.
-2016년 1월 6일 민들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