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월 공간민들레는 통일부의 여행 지원 사업을 통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인천상륙작전 전까지 약 2년을 버텨온 장소입니다. 한국전쟁을 가장 오래 겪은 곳이며 당시 피난민들의 삶이 가장 잘 묻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안국역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출발!
부산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처음으로 간 곳은 임시정부 청사였습니다.
임시정부 청사는 한국 근대사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간직한 역사적인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부산의 석기 시대 때부터 신라, 조선, 일제강점기까지의 유물과 기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근처 임시수도 기념관에 가서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람을 계속했습니다. 앞선 두 장소를 자유롭게 둘러본 후 간 곳은 비석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윤선이가 조사해서 저희에게 안내해 줬습니다.
"건축자재 값이 비쌌기 때문에 천막만 얹고 집을 지을 만한 고물 자재들을 발견하면 덧대어 건축하였다. 일본에는 돌을 많이 사용한 장례 풍습이 있기에 공동묘지터에는 돌이 남아돌았다. 피난민들은 공동묘지의 비석을 뽑아 집의 옹벽이나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그것이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 박윤선 가이드 대본
윤선이의 안내를 받아 비석마을을 둘러본 후, 옆 마을인 감천문화마을에 갔습니다. 이곳에선 수진이와 민재가 조사 후 저희에게 안내해 줬습니다.
“감천은 물이 맛이 좋고 달다는 뜻이다. 마을 형성 과정 : 6.25전쟁 당시 유일하게 침격당하지 않은 마을인 부산에 피난민이 모여옴. 감천마을은 산 비탈길 경사면에 지어짐. 당시 부산은 전쟁 때문에 월세가 높아졌고 평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위쪽에 마을이 형성됐다. 감천마을은 태극교 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태극교 신자가 많이 살았고 마을 안에 태극교 장소가 있었음. 마을 형성 과정에 태극교 철학이 쓰임. 골목 가리지 않기, 윗집 가리지 않기 등, 양과 음 정기를 받기 위함.” - 윤수진 가이드 대본
“당시 이명박 뉴타운 사업 (낡은 주택을 다 밀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 여론의 반발과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음. 그래서 보존형 재개발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였고 이후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2019년 연간 관광객 200만 명 이상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 김민재 가이드 대본
앞선 두 마을을 둘러본 후, 국제시장으로 가 메뉴별로 팀을 나눠 저녁식사를 하고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돼지국밥과 밀면, 물 떡 등 부산의 먹거리들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후 숙소로 가서 쉬기도 하고, 바닷가에 나가 놀기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바닷가에 들려 바람을 쐰 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봉하 마을로 향했습니다. 봉하 마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대통령 임기 이후 여생을 보낸 마을입니다. 묘역과 생가, 봉화산 등의 장소를 자유롭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행의 소감까지 봉하 마을에서 나누었습니다. 이후 점심 식사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며 1박 2일의 통일 여행이 막을 내렸습니다. 여행 나누기를 기록하지 못해서 제가 느낀 통일 여행을 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번 통일 여행은 남북 간의 통일 자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전쟁 당시 사람들이 일군 삶의 방식과 흔적,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위해 노력했던 다양한 사람의 역사를 접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통일이라는 키워드를 남과 북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일, 월 공간민들레는 통일부의 여행 지원 사업을 통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인천상륙작전 전까지 약 2년을 버텨온 장소입니다. 한국전쟁을 가장 오래 겪은 곳이며 당시 피난민들의 삶이 가장 잘 묻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안국역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출발!
부산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처음으로 간 곳은 임시정부 청사였습니다.
임시정부 청사는 한국 근대사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간직한 역사적인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부산의 석기 시대 때부터 신라, 조선, 일제강점기까지의 유물과 기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근처 임시수도 기념관에 가서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람을 계속했습니다. 앞선 두 장소를 자유롭게 둘러본 후 간 곳은 비석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윤선이가 조사해서 저희에게 안내해 줬습니다.
"건축자재 값이 비쌌기 때문에 천막만 얹고 집을 지을 만한 고물 자재들을 발견하면 덧대어 건축하였다. 일본에는 돌을 많이 사용한 장례 풍습이 있기에 공동묘지터에는 돌이 남아돌았다. 피난민들은 공동묘지의 비석을 뽑아 집의 옹벽이나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그것이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 박윤선 가이드 대본
윤선이의 안내를 받아 비석마을을 둘러본 후, 옆 마을인 감천문화마을에 갔습니다. 이곳에선 수진이와 민재가 조사 후 저희에게 안내해 줬습니다.
“감천은 물이 맛이 좋고 달다는 뜻이다. 마을 형성 과정 : 6.25전쟁 당시 유일하게 침격당하지 않은 마을인 부산에 피난민이 모여옴. 감천마을은 산 비탈길 경사면에 지어짐. 당시 부산은 전쟁 때문에 월세가 높아졌고 평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위쪽에 마을이 형성됐다. 감천마을은 태극교 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태극교 신자가 많이 살았고 마을 안에 태극교 장소가 있었음. 마을 형성 과정에 태극교 철학이 쓰임. 골목 가리지 않기, 윗집 가리지 않기 등, 양과 음 정기를 받기 위함.” - 윤수진 가이드 대본
“당시 이명박 뉴타운 사업 (낡은 주택을 다 밀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 여론의 반발과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음. 그래서 보존형 재개발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였고 이후 감천문화마을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2019년 연간 관광객 200만 명 이상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 김민재 가이드 대본
앞선 두 마을을 둘러본 후, 국제시장으로 가 메뉴별로 팀을 나눠 저녁식사를 하고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돼지국밥과 밀면, 물 떡 등 부산의 먹거리들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후 숙소로 가서 쉬기도 하고, 바닷가에 나가 놀기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바닷가에 들려 바람을 쐰 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봉하 마을로 향했습니다. 봉하 마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대통령 임기 이후 여생을 보낸 마을입니다. 묘역과 생가, 봉화산 등의 장소를 자유롭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행의 소감까지 봉하 마을에서 나누었습니다. 이후 점심 식사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며 1박 2일의 통일 여행이 막을 내렸습니다. 여행 나누기를 기록하지 못해서 제가 느낀 통일 여행을 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번 통일 여행은 남북 간의 통일 자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전쟁 당시 사람들이 일군 삶의 방식과 흔적,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위해 노력했던 다양한 사람의 역사를 접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통일이라는 키워드를 남과 북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