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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바우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비 지원제도의 가능성(이한)

민들레
2002-06-21
조회수 7028

*아래 글은 <민들레> 14호 116∼128쪽에 실린 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비 지원제도의 가능성
-바우처 제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한(<학교를 넘어서>, <탈학교의 상상력> 지은이)


1. 왜 바우처가 문제되는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논란거리인 '자립형 사립학교'라는 것도 그 내용으로 보면, 학교운영은 완전히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도 교육비는 전적으로 학생에게 의존하는 미국의 '사립학교'와 비슷하다. 미국형 효율성과 시장논리를 따라가는 이런 정책방향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 정부가 '바우처Voucher 제도'(교육비 지불보증제도) 또한 검토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바우처 제도란, 학부모에게 교육비 대신 일종의 쿠폰인 바우처를 지급하고 자녀가 진학하는 학교에 그것을 납부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국가는 나중에 그것을 학교에 돈으로 바꾸어준다. 이 제도의 기본적인 발상은,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고 학교간 경쟁과 다양한 교육실험을 불러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저소득층의 컴퓨터 과외'를 보조해주는 데 '바우처 시스템'과 유사한 것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물론 그러한 형태의 교육비 보조는 '바우처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교육부에서 바우처를 연구와 관심의 대상으로 놓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바우처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 단지 교육부에서 바우처를 연구하고 정책방향으로 그것을 설정할지도 모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대안교육 진영으로서는 저소득층이 공적으로 교육비를 보조받으면서도 '자율적인' 교육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 기숙형 대안학교나 대안학원들은 중산층을 위한 고립된 실험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제도 형태를 고민할 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바우처는 적극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바우처 제도 도입의 배경과 지지
바우처 제도는 미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잘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점만을 지적해 보면, 미국은 교육기회 불평등이 매우 큰 사회이다. 특히 인종간 불평등은 매우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계층간 지리적 분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뚜렷하다. 흑인들은 시내의 게토에 모여 살며 그곳의 인구분포는 거의 절대다수가 흑인이다. 반면에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은 교외에 산다. 따라서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을 배치할 때에 공립학교 간 불평등이 크게 나타난다. 교외의 공립학교들은 학부모들의 협찬, 기부금을 통해 질 높은 시설을 갖출 수 있고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수업 분위기도 좋을 수밖에 없다. 학교의 수업 수준도 높고 학업관리도 엄격하다. 반면에 시내의 공립학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협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수업 분위기도 그리 좋지 않다. 학생들은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며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사립학교가 있어서 더 심해진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교육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국과는 달리, 교육비를 국가에서 보조받지 않는다. 사립학교 중 80퍼센트가 종교계통의 학교이며, 교리를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교외에 있는 사립학교들은 거의가 다 백인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문의 전통을 이어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십여 년간 학력간 임금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 교육의 불평등이 계층간 불평등을 더 확대시키는 결과를 나타내는 지점이다.
물론 미국에서 바우처 제도가 계층간 불평등의 해소라는 맥락에서 제안되지는 않았다. 바우처 제도를 대중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유명한 우파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만이다. 그는 시장경쟁을 높이 평가하는 그의 신념에 따라 학교도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계층불평등에 대한 논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990년에 첩과 모우(Chub and Moe)가 바우처 제도와 사립학교에 대한 논쟁적인 책을 썼을 때에도 이러한 논점은 약했다. 바우처 제도는 미국의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소수 의원들 사이에서 논의될 뿐이었다. 초점은 정치적으로 흘러갔다.
갈수록 벌어지는 계층간 학업성취도의 차이는 미국에서 매우 치열한 정치적 관심사가 되었다. 몇몇 흑인사회 지도자들은 '바우처 제도'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당은 공립학교의 교원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학교선택권을 확보하여 불평등을 완화시켜 보려는 사람들은 공화당에서 정치적 지원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바우처 제도가 밀워키와 클리브랜드에서 실시되면서 다른 정치적 행위자가 참가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종교계 사립학교들이다(물론 미국에는 몬테소리나 발도르프와 같은 독특한 교육철학을 가진 사립학교들도 있다). 미국의 헌법 수정조항 1항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종교계 사립학교들은 그들의 불안한 재정상태를 개선시켜 줄 바우처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종교교육에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위헌인가 아닌가와 관련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오랜 논쟁 끝에 밀워키 주의 법원은 바우처 프로그램을 합법으로 선언했다. 물론 바우처 프로그램을 원안대로 실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지역의 교육위원회와 교원노조의 압력에 의해 완화된 형태로 실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단 바우처 프로그램이 실시되자, 전국적으로 바우처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아직도 미국 교육계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결국 미국의 바우처 논쟁을 살펴보면, 단일한 쟁점을 가지고 진행된 논의라기보다는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우처 지지자들은 말한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이미 학교 선택권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공립학교에도 사립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선택에 제한을 받고 있으며 게토 내의 학교에 갇혀 있도록 강요받고 있다. 만약 선택권이 '모든 계층에게 같이' 주어진다면 불평등은 많이 없어질 것이며, 학교는 소비자인 학부모들의 요구에 더 책임 있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경쟁으로 학교의 서비스는 나아질 것이며, 게토의 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멀리 사립학교로 통학하지 않아도 적절한 대안을 시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바우처 제도, 또는 학교 선택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인종별로 보면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인종은 흑인이었고, 나머지 소수인종들이 그 다음을 차지했다. 소득분포별로 보아도 소득이 낮을수록 학교 선택권에 대한 지지율은 높았다. 반면 이미 교외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만족하고 있는 백인 중산층 이상의 응답자들은 바우처 제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학교에 흑인과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매우 이상하게 보이는 정치적 결합이었지만, 어쨌든 교육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집단과 우파 보수정당이 합작해서 바우처 제도를 추진해 나갔다. 밀워키와 클리브랜드의 바우처 실험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우처 제도에 대한 지지자들의 과장된 수사학과는 달리 교육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비판자들이 주목한 다른 문제점들도 발생시켰다.

3. 바우처 실험과 신중한 결론
가장 오래되고 대대적으로 시행된 실험이자 공적 자금으로 실시된 실험이 위스콘신 주의 밀워키와 오하이오 주의 클리브랜드에서 실시되었다(이밖에 사적인 기금형태로 실시된 바우처 프로그램은 여럿 있다). 밀워키 프로그램은 1990년∼1991년에 시작되었으며 클리브랜드 프로그램은 1996년∼1997년에 시작되었다.
밀워키 프로그램은 밀워키 공립학교에 다니며 저소득층에 속하는 학생 1퍼센트에게 바우처를 주어 사립학교와 비종교학교에 다니는 것을 허용했다. 부모의 수입이 확인되고 바우처 공급이 확정된 학생들은 자리가 허용하는 한 학교에 의해 무작위로 선택되었다. 1995년 위스콘신 주의회는 공립학교의 1퍼센트에서 15퍼센트까지로 적용범위를 확대하면서 종교학교의 선택도 완전히 허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종교계 사립학교와 바우처 반대자들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이 전개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편 밀워키의 바우처 수혜자들은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드는 정도의 수업료를 사립학교에 내고 있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학업성취도에 미친 결과는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시행기간이 짧을 뿐더러 가정배경의 차이를 통제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이러한 점은 특히 클리브랜드에서 그러하다). 현재로서는 바우처 프로그램이 학업성취도를 별로 높이지는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바우처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논문에서도, 바우처는 지원한 학생들에 한해서 보자면 분명히 '도움'을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립학교들의 불안한 재정상태 또한 개선시켰다. 한편 바우처에 참가한 부모들의 만족도는 모두 높았다(John.F.Witte, 149∼151쪽). 그러나 이것은 바우처 프로그램이 교육질서를 '전반적'으로 개선시켰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클리브랜드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는 공립학교보다는 이미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우처 제도의 다른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는데, 프로그램에 지원한 학생들은 공립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학습집단에서 빠져 버리면(뒤에서 '걷어내기' 효과라고 부른 현상이다), 나머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합의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바우처 제도가 분명히 흑인 저소득층 학생들 중 몇몇에게 도움이 되긴 하지만, 남아있는 공립학교의 전체 나머지 학생들까지 포함해서 생각한다면 그 효과는 의문스럽다.

4. 바우처 제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시행되고 있는 바우처 제도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서 종교계 학교에 국고를 지원하는 문제점이나 이와 관련한 헌법문제 같은 것은, 미국사회에서는 매우 큰 쟁점이지만 종교계 학교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다(만약 종교계 학교가 바우처를 지원받게 된다 하더라도 종교수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면 된다. 한국의 종교단체들은 이미 면세의 형태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에 지원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교육비 증액의 문제도, 이미 사립학교에 국고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종간 분리 현상도 걱정할 것이 없다. 이러한 논점들로 구성되어 있는 미국의 바우처 찬성, 반대 논의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논점들이 논쟁거리가 될 리도 없으며 정치적 행위자들도 매우 다르게 구성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우선하는 질문이 될 것이다.

(1)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가?
바우처 제도의 지지자들은 '그렇다'고 열광적으로 답하고, 반대자들 역시 '악화시킨다'고 열광적으로 답한다. 하지만 실제로 중립적인 연구자들은 '별 차이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기본 이론은 학교 선택이 이루어지면 학교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어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자들의 근거는 조사해 보니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들은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그 능력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고, 또한 선택을 도와주는 기구의 활동도 활발하지 못하거나 없었다. 그럴 경우 바우처로 지원받는 학교도 다른 학교와 다를 바 없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결국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의 교육과정에 좀더 신경을 쓰고 충분한 정보를 받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경우여야 학교 선택권은 효과가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효과는 미미하거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경우에 속하는가? 문맹률이 낮고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부모가 선택권을 더 능동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기준과 관련해서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만약 학부모들이 오직 학교 졸업생들의 학업성적(일류대학 진학률)만을 보고 선택을 한다면 결과는 좋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도에 몇 가지 제약­뒤에서 보게 될­을 두고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개입한다면 다행히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학교 선택권은 그 프로그램을 적용 받지 않는 학생들이 속해 있는 전체 학교에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오는가? 미국의 경우를 보자면, 답은 '거의 그렇지 않다'이다. 이것은 바우처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인 교육과정을 이루어낸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립학교의 교육과정에 적극 도입할 어떤 계기도, 조직도, 체계도, 법령도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그 사항을 담당하는 기관을 만든다고 해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전체 학교의 재정분배 제도를 바꿈으로써만 해결 가능하다.

(2) 바우처는 교육 불평등을 줄여주는가?
이 질문 또한 미국과 한국의 많은 차이를 드러내는 곳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전적으로 학생 부담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가 많으며, 바우처 제도는 이러한 사립학교에 저소득층이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우처 제도는 교육불평등의 해소라는 이슈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바우처가 '교육불평등'이라는 이슈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이 붙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인다. 그래도 바우처 제도가 교육 불평등을 줄여줄 것인가, 확대시킬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바우처가 실시된다면, 그것은 아직 교육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자율학교에 대해서 지원될 것이다. 또는 바우처 실시를 근거로 자율학교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우처 제도는 저소득층도 대안학교나 실험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는 그만큼 권리를 평등하게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바우처 제도가 교육불평등을 '확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그러나 바우처에 관한 어떤 문헌을 보더라도 '걷어내기 현상'skimming effect(좀더 나은 사람이 빠져나가는 효과)은 큰 문제로 거론된다. '걷어내기 현상'이란 무엇인가? 같은 저소득 흑인 가정이라 해도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교육열의는 차이가 있다. 부모가 교육수준이 높고 열의가 있는 가정은 조금이라도 다른 가정보다 소득이 더 높고 아동의 학업성취도도 높다. 그런데 바우처 제도를 부분적으로 실시하게 되어 프로그램 지원자를 모집하게 되면, 교육수준이 높은 부모들만이 주로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다. 지원서를 쓰고, 세금납부 증명서를 내고, 공무원을 만나서 상담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최종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은 복잡할 뿐더러 귀찮은 일이다. 한편 바우처로 진학하게 된 학교가 교외에 있게 된다면, 부모는 좀더 일찍 일어나서 아동을 통학시킬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같은 저소득층 가구 중에서도 '교육열이 높은' 가정이 혜택을 많이 보게 된다. 즉 소외계층 가운데 가장 윗부분을 걷어서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내와 교외 학교간 격차가 크지 않고 명문 사립학교 같은 것이 전국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걷어내기 현상이 바우처 프로그램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학교가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심각하게 발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선발'은 학업성적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고, 학업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소득이 더 높은 가정출신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모든 '학교 선택 제도'에 공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틀린 것이다. 바로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적절한 장치­특히 학교의 선발권 박탈­는 '걷어내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5. 교육기관 선택제도, 어떠해야 하는가
자유로운 사회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배울 교육과정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으로 합당하고 정당한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보편적인 인권이며, 어떤 근거로도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선택권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선택 제도이냐'라는 것이다.
한국 대안교육운동 진영의 문제의식은 미국의 바우처 도입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우파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시장본위의 논리나 종교계 사립학교들의 정치적 행위논리와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리가 교육기관 선택권을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러한 교육에 저소득층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구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변화된 교육과정이 전사회적으로 확대되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바우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온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인종간 불평등 해소'나 '학업 성취도의 증가'가 아니라 대안적인 교육과정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불평등의 심화나 다른 부작용이 없는 대안을 생각해야만 한다. 아직 이 과제에 대한 연구는 충분치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① 학교 선택권은 모든 계층에게 실제로 평등하게 주어져야만 한다.
아직 대안적인 교육기관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외에 달리 할 선택이 별반 없다. 그래도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해외유학, 학원, 과외, 대안학교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다. 저소득층 가운데 지원한 사람만 혜택을 받는 프로그램은 '걷어내기' 효과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그 효과는 아마도 한국에서는 적을 테지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학교제도가 '선택' 하에 놓여져야만 한다.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 모두 선택을 하지만, 진학한 교육기관에서 고소득층은 적은 교육비를 보조받고 저소득층은 많은 교육비를 지원받아야 한다(바우처 제도로 보면 지급되는 바우처의 가치를 달리하여 이런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평등의 의미이다. 한편 선택가능한 학교와 선택불가능한 학교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교가 선택가능성 내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는 조항은, 어떤 교육공간의 혁신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게 하는 유인, 조직상의 근거를 제공한다.

② 학교는 '선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학교는 자신의 성향과 교육과정을 알릴 수는 있지만 학생들을 선발할 수는 없어야 한다. 지원한 학생이 많을 경우에는 그 지역의 소득수준별 인구분포 비례에 맞춰 무작위로 뽑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는 학업성취도별로 서열화될 것이고 이것은 심각한 입시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불평등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선발권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은 학교의 성향과 커리큘럼을 보고 가는 것이므로 그 학교에 가고 싶은 사람이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지금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배정하는 시스템과 동일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1지망, 2지망을 적고, 여러 가지 고려사항 끝에 학생들이 배정된다. 이렇게 하더라도 좋은 교육과정의 '확산'은 일어나서 실질적인 선택의 결과를 보장해 준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많이 모으지 못하면 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없으므로 결국 학생이 넘쳐나는 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③ 학부모들은 재학생, 졸업생들의 성적이나 진학결과에 대해 알 수 없어야 한다.
제대로 된 선택이 이루어지려면 '교육과정이 어떠한가, 교사가 어떠한가'에 대해 학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학부모들은 '그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어떤가'를 주로 본다. 이것은 근거없는 학교간 불평등을 확대시킨다. 예를 들어 A학교가 좋은 학생들을 우연히 받게 되었다면, 그 학교 졸업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마치 그 학교 자체의 질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어 학생들이 계속 몰리게 된다. 덕분에 그 이웃의 B학교는 계속해서 낮은 학업능력을 지닌 학생들만 들어오게 되어 급기야는 문을 닫게 된다. 성적이나 진학결과에 대한 정보는 선택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한다기보다는 파괴한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
대신 학부모와 학생들은 각 학교 재학생, 졸업생들의 학기·학년에 따른 성적차이에 대한 정보는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학업성취를 높여주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구분만이 있을 뿐, 명문학교와 꼴통학교의 구분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없어지는 것은 교육기회 평등을 위해서도 중요한데, 일단 '명문'과 '꼴통'의 구분이 생기면 '선별'이 이루어지게 되고 불평등의 확대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④ 모든 교육공간은 기관보험에 가입하고 혜택을 받아야 한다.
기관보험이란, 어떤 학교가 특정한 해에 학생이 심각하게 적어지더라도 그 해에 부족분을 보전받을 수 있고 회생할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그 부족분은 수익이 나는 해에 보험료의 형태로 갚게 된다. 기간을 5년 정도로 하면 학교는 학생 수에 따라서 심각하게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교육철학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⑤ 교육기관은 교육과정에서는 전적인 자율성을 가지나 그 내용과 학교운영정보는 공개해야만 한다.
대안적인 교육기관이 교사를 채용할 때 교사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대안적인 교육양식에는 교사자격증이 오히려 부적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규제들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대안적 교육공간이 기술, 사회, 국사, 국어, 수학, 영어 등 수많은 과목들을 빠짐없이 가르쳐야 한다면 도대체 대안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다만 교육내용과 학교운영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고 사회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가의 규제가 아니라 토론과 비판의 대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비난이나 비판이 거세지면 학생들이 진학을 꺼려할 것이므로 간접적인 제재가 충분히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학교의 커리큘럼도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공론의 장에서의 토론은 부적절하고 편파적이며 불필요한 커리큘럼들을 제거하는 한편 풍부하고 가치있는 커리큘럼들을 신속히 도입하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⑥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교육공간 만들기 운동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미 존재하는 학교들간의 경쟁은, 우리사회 교육질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과도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학교에 저소득층이 진학할 경우에 지원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교육공간을 선택하는 제도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느냐는 시민사회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⑦ 학력 문제가 완화되거나 대안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 선택권은 성적을 기준으로만 행사될 것이며, 우리 교육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전면적인 선택권 부여보다는, 저소득층이 대안교육기관에 진학할 경우에 개별적으로 지원을 받는 형태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론을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서열화된 대학학력의 문제는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개혁을 통해 바꾸어 나가야 한다. 물론 궁극적인 입장은 '학력폐지'가 될 것이다.

⑧ 교육비를 지원받는 자율경영학교는 공익이사진을 포함해야만 하며, 교사의 임금, 채용과 해고에 관하여 교원노조와 단체협상을 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노동3권은 모두 보장되어야만 한다. 공립학교가 자율경영학교로 전환되었을 경우, 그 학교의 운영은 교사집단에게 최종적인 권한이 주어진다. 학교는 전문경영자를 둘 수 있지만 그 경영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해고하는 것은 교사집단이다.

⑨ 운동장이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학교뿐 아니라 다른 실험적인 교육공간도 학교 선택제도의 지원 범위 내에 들어가야만 한다.

⑩ 학교를 선택할 때 부모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기관이 지역마다 설치되어야 하며(예를 들어 구청이나 시청마다), 학부모와 학생은 선택 이전에 그 상담기관과 최소한 한 번은 면담하고 자료를 검토한 후에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율경영학교들은 선전물을 상담기관 이외의 통로로 배포하지 못한다.

위의 열 가지 원칙은 '걷어내기' 효과를 비롯해서 부적절한 학교 선택 제도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을 예방하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며,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이 새로운 교육재정 분배 제도를 지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 중에 중요원칙(특히 2, 3, 8, 9번)이 빠진 선택 프로그램은 지지할 필요가 없으며 반대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제도의 세부적인 차이는 결과에서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원칙에 따라 어떤 특정한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그 세부적인 사항은 계속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Choosing Equality, Josep P. Viteritti, Brooking Institution Press, 1999.
The Politics of School Choice, Hubert Morken and Jo Renee Formicola, roman & Littlefirld Publisher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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