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민들레> 16호 28∼47쪽에 실린 글입니다.
새로운 학교,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양희규(간디학교 교장)
이 글은 새로운 학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새로운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을 위한 글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새로운 학교의 필요성이나 새로운 학교의 모델에 관한 이론적이거나 개념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학교를 세울 것인가라는 과제를 가능한 실천적이고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좀더 이상적이고 달콤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독자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이 글에서 나는 학교설립에 관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간디학교를 세우기까지의 주요 과정들을 간략히 소개하겠다. 이것은 간디학교 설립의 과정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이다. 설립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과정들을 선택하였지만, 많은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었거나 아니면 지면 한계상 많은 부분이 언급될 수 없었다는 점은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서, 학교설립을 구체적으로 진행시키고자 하는 분은 여기에 기술된 간디학교 이야기는 단지 빈약한 자료에 불과하며 훨씬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학교설립의 과제를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만일 앞으로 학교를 다시 세우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부분적으로 간디학교 설립과정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학교설립을 위한 가이드로서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기초토대로 삼아 좀더 신중하고도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1. 간디학교의 설립과정
설립의 꿈 1975년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악몽처럼 보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을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거의 망가져서 평생을 건강의 문제로 시달리게 되는 개인적인 불행을 초래한 시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내 자신과 친구들에게 학교설립의 꿈을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다닌 학교와는 전혀 다른 행복한 학교를 세우겠다"라고. 나는 한번도 이 결심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루터기 학교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약 10년이 지난 1987년 내게 새로운 학교를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독교 단체인 '그루터기직업청소년선교회'의 조성범 목사님께서 '국제기능인선교학교'라는 이름의 비인가 고등학교를 설립하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공장에 다니던 직업청소년들이 교육 대상이었다. 그 때 내 나이 불과 29세였다. 나는 교장이 없는 상태에서 교감을 맡아 교사회를 이끌고 동시에 교사와 아이들이 먹고사는 문제까지 책임져야 했다. 이 때 나는 간디 선생이 1904년 남아프리카에 세운 '톨스토이 농장'을 모델로 삼아서 자립적인 무소유 공동체를 일궈나가기로 했다. 톨스토이 농장은 신문사이자 농장이며 학교이며 공동체였다.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인디언 오피니언'이란 신문을 발행했다고 한다. 내가 맡은 그루터기 학교를 나는 자립적인 공동체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농장과 봉제공장을 운영하였다.
공동체 학교 운영을 통해 배운 몇 가지 교육 원리가 있다. 이것들은 후에 간디학교의 설립철학이 되었다. 첫째는 사랑의 원리이다. 즉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신뢰 없이는 어떤 의미 있는 교육과 배움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발성의 원리이다.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없이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 하나는 자립의 원리이다. 교사나 학생 모두 자립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자립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비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책으로 배운 이론이 아니었다. 이 원리들은 증오가 사랑으로, 무기력이 생명력으로, 그리고 패배감이 긍지로 변하게 되는 삶의 에너지이다. 나는 어른들을 미워하며 불신하던 60여명의 아이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들이 어떻게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간으로 변화해 가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원리들을 깨닫게 되었다.
터 잡기 1994년
그루터기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5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1994년 여름 귀국한 뒤 내가 정착할 곳을 찾고 있었다. 10월초 우연히 경남 산청의 화가 박성술 선생을 찾았다가 그 분이 살고 있던 50평 정도의 돌집과 그 주위의 터가 마음에 들어 구입을 하기로 결정하고, 돌집과 논 1600여 평을 구입했다. 그 해 말 나는 후배 세 명과 함께 돌집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주위 땅을 조금 더 구입했다. 약 2700평이 되었다.(이 땅은 모두 후에 간디학교 캠퍼스 부지가 되었다.) 95년 초 나는 이 땅을 '간디농장'이라 불렀다. 약간의 채소농사를 후배들과 지으며, 그 해 집 두 채를 더 지었다. 한 채는 현재의 돌집 왼편에 30여 평의 통나무집, 그리고 현재 간디학교의 교무실로 쓰고 있는 42평 정도의 벽돌주택이다.
녹색평론
95년 가을 나는 『녹색평론』에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란 제목의 글을 싣고 새로운 학교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에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호응과 격려를 보냈고 백 명이 넘는 분들이 간디농장을 방문했다. 나는 12월 경 두 차례 모임을 갖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나의 청사진을 설명했다.(학교철학과 학교모델에 관한 것은 간디학교 요람이나『사랑과 자발성의 교육』1997년, 내일을 여는 책에서 출판된 소책자를 참고하기 바람.) 그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8명이 간디농장에 와서 살면서 함께 학교 설립을 준비하기로 했다. 1996년 3월 11일 나를 포함하여 10명의 사람들이 서약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어두운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으로.
교사협동조합
10명의 낯선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꾸린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갈등이 심했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96년 4월초 10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대표들을 선정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구성원들은 100만 원씩 출자하여 생활비에 충당하고 4월부터 '숲속마을 작은학교'란 소식지를 발행하면서 학교설립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노동으로 보내고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대체로 노동은 집짓기와 농사로 이루어졌다. 배당은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월 30만 원 정도를 배당하기로 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5만원에서 20만 원 정도를 실제 배당받았던 것 같다.
숲속마을 작은학교와 학교설립준비위원회
학교설립 준비의 과정인 동시에 수익사업의 하나로 계절학교를 하기로 하고 소식지의 이름과 같은 '숲속마을 작은학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5월경에 기초계획을 세우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다른 캠프와는 달리 12박 13일이라는 장기간의 여름학교를 초등학생과 중고생을 위해 각 1회씩 열었다. 숲속마을 작은학교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캠프식의 교육장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하는 '시골 외가집'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되돌려 주자는 생각이 계절학교의 철학이었다고나 할까. 교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성교육과 자립교육뿐이었다. 아이들은 직접 텃밭도 만들어 씨앗을 심어 보고 수확도 해 보았으며,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했다. 옷과 가방도 만들고 개집이나 토끼집도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12박 13일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다시 도시로, 콘크리트 문명으로, 병적인 경쟁세계로 되돌아간다. 학교폭력, 성적으로 인한 강박관념과 가족과의 갈등,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의 친구와의 갈등 등 너무나 많은 문제들 속으로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우리의 심정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그러한 심정은 자녀를 계절학교에 보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부모들이 계절학교가 아닌 상설학교를 당장 세울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 중고생 여름학교가 끝나기 전날인 96년 8월 21일 '작은학교설립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계절학교 학부모 중 10여 분이 학교설립을 돕기로 하였다.
그 후 96년 10월경 '예비학부모회'가 만들어졌고 11월초에는 다섯 분이 자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계기로 학교 설립 준비가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예비학부모 세 분과 예비교사 세 분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가 구성되어 한 달에 두 번씩 회의를 열고 학교설립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하나하나 의논하여 상설학교 운영안을 담은 '학교요람'을 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12월 1일부터 입학원서를 받았다. 입학원서를 냈거나 낼 의사가 있는 예비학생 26명이 97년 1월 13일부터 '모의상설학교'(현재는 '예비학교'라 부른다)에 참여하여 교사들과 다른 학생들과 생활해보고 학교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풀었다. 학부모와 교사와 함께 학교의 운영전반을 의논하여 학교를 꾸려가는 전통은 계속 이어져 간디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우리 나라 학교운영위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의결 심의기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재정위원회, 교육과정위원회, 기숙사운영위원회 등 여러 소위로 이루어져 있다.
학비의 결정과 예탁금 제도
97년 3월 개교를 앞두고 세 동의 건물(총 건평이 120평 정도)이 있었지만 그 중 두 동은 교실로 쓰기로 하고 한 동은 기숙사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남녀 학생들을 받기 위해서는 기숙사 한 동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토지구입비, 신축비로 이미 3억 넘게 돈을 쓴 때라 여유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학부모가 기숙사 신축에 조금씩 돈을 보태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 당시 26명의 학생 중 25명 정도가 300만원 씩 내어 약 7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돌집 2층에 나무로 기숙사를 지었다. 부모들이 낸 돈은 졸업할 때 되받기로 해서 맡겨둔다는 의미에서 예탁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 신입생들은 꼭 형편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탁금을 내어 학교의 부족한 시설을 해나갔다. 그리고 신입생이 들어오면 졸업생은 예탁금을 되찾아간다. 지금까지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으며 부모의 예탁금은 약 4억 이상이 되어 학교 구석구석에 시설로 투자되어 있다.
학비는 그 당시 매월 15만 원으로 정하였는데, 그렇게 정한 근거는 중하층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일반학교의 학비 및 보충수업비 등을 합하면 약 매월 6-7만원 정도가 될 것이고, 학원에서 한 과목 정도 듣게 되면 8만원 정도, 합하여 15만원 정도를 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기숙사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숙사비는 먹고 자고 하는데 들어간 실제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하면 매월 35만 원 이상이 들어가니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학금 지급을 해왔으나 설립 초기에는 학교가 어려워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장학금을 주었다. 그 후 5% 정도의 학생에게 학비 면제 등의 형식으로 도움을 주어왔고 지금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약 10% 정도가 된다.
교사의 임금
개교 후 첫 해 교사들의 수는 6-7명이었다. 하지만 학생 20여 명의 학비는 월 300여만 원 정도이고 학교운영비로 200만 원 정도 쓰게 되면 100만 원쯤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설립초기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소식지를 통해 성금을 모았다. 목표액은 1년간 1500만 원 정도였고 그 목표액은 달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유급교사 5명이 나누어 운영비 잔액과 성금을 생활비로 썼다. 그 당시 평균 임금이 40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임금을 공동체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즉 총수입에서 운영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가지고 교사들이 공동체 분배원칙에 따라 나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분배원칙이란 균등의 원칙, 필요의 원칙, 기여도에 따른 원칙 등 세 가지이다. 균등의 원칙이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임금을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필요의 원칙이란, 부양가족수 등 필요를 고려하여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전체 재정상태가 나아지면 기여도 역시 고려한다는 것이다. 기여도는 직급과 경력의 고려가 될 것이다. 재정상태가 매우 어렵던 설립초기에는 균등의 원칙과 필요의 원칙을 적용하여, 독신자는 40만 원, 기혼자는 50만 원으로 책정하였고 자원교사는 10만 원 정도로 책정하였다. 대개 처음 온 교사는 6개월 정도 자원교사로 일했다. 그야말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다고 말하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돈 문제에 처음부터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게 생활했던 것 같다.
학교의 개교와 위기
97년 3월 9일 '간디청소년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학교는 문을 열었다. 27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조촐한 입학식이었다. 학생 하나 하나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교사와 부모가 줄을 서서 학생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은 꿈처럼 황홀했지만 그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학교요람에 따르면 새로운 학교는 기존학교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고 그것에 대한 기대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에게 큰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꿈과는 달리, 개교 후의 학교 모습은 한마디로 '개판'처럼 보였다. 수업도 엉망이었고 생활도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자유 속에서 방종으로 치달았고, 교사들은 자유와 방치의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했다. 토론식 수업은 떠들고 노는 시간이었고 기숙사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돼지우리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밤새도록 춤추고 트럼프 치고 놀고 낮에는 자느라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학생들은 방종을 즐기면서도 내심으로는 불안해했고 부모들은 '이것이 인성교육인가 개판교육인가'하고 따지고 4월 이후 여러 번 일종의 청문회를 열어 강도 높게 비판했고, 교사들도 학교철학에 회의를 갖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러는 와중에서 일부 교사들은 떠났고 부모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97년 전반기는 그야말로 문 닫기 직전의 상황이 지속되었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다소 학교가 안정되었다. 수업도 조금씩 되기 시작했고 부모들도 숫자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한 번 학교를 믿어보자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학생들도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교가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부모들을 설득했다. 조금씩 학교는 안정되어 갔다. 나중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당시의 혼란과 방종의 시기는 어쩌면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보인다. 마치 화학농법을 해오던 땅에 갑자기 유기농법을 하면 처음에는 거의 수확량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기다림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믿고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인가
교육부 및 도교육청 관료들이 97년 6월 간디청소년학교를 방문했다. 미인가 학교에 교육관료들이 방문하다니! 그 당시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교육부의 몇몇 젊은 관료들이 대안학교를 인정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있었고 그러한 법안에 적합한 학교들을 신설하거나 기존 미인가학교에서 그 후보가 될 만한 대상들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간디학교 소식을 듣고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간디청소년학교의 운영에 기쁨과 만족을 표현하였던 것 같다.
그 뒤 가을 무렵 대안교육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능하게 되는 법안이 '특성화학교법'이라는 형태로 통과되었다. 우리 학교 교사회에서는 오랜 토론 끝에 11월 15일경 인가를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급히 서류준비를 하여 11월말 학교법인 설립과 학교인가 신청을 하였고 마침내 97년 12월 30일 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특성화학교법'이라는 진보적인 교육제도의 탄생 덕분이며 몇몇 젊은 교육관료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 그래서 거의 기적적인 경과를 거쳐 98년 3월부터 간디청소년학교는 '간디학교'라는 이름의 특성화고등학교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중학교는 미인가상태로 남아 여전히 '간디청소년학교'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고, 새로 인가된 고등학교는 '간디학교'라는 이름의 인가된 정규학교가 된 것이다.
학교가 인가되고 재정결함보조금이란 형식으로 교사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학교 사정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학급 고등학교의 교사 정원이 11명, 행정직 정원이 3명, 모두 14명인데 이들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연차적으로 첫 해는 7명(교사 4명, 행정직 3명), 99년에는 10명, 2000년에는 14명 전원에 대해 주어졌다. 따라서 교사 수는 급증하게 되었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교사 및 행정직 교직원이 모두 전임만 23명, 강사를 포함하면 거의 3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임금은 꾸준히 올라 현재 평균 월 100만 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 수준은 일반 학교 임금 수준의 60%에 못 미친다.
그러면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 교사공동체가 있고 정회원이 있다. 처음 채용되면 일 년 정도 후에 정회원 심사를 동료교사 정회원들로부터 받게 된다. 즉 간디학교 교사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심사받게 되는 것이다. 간디학교 교사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물론 묵시적인 관행의 규칙이 있다. 간디학교 교사들은 일반학교 교사보다 다소 적은 임금(70%정도)을 받더라도 소박한 생활을 통해 극복하며, 남는 인건비 잔액은 교육운동이나 장학금 등으로 사용하겠다는 설립초기의 정신이 있다.
학교의 모든 수입 즉 학비 및 재정결함보조금을 합한 금액에서 매월 운영비를 빼면 인건비로 가능한 총액이 산출된다. 이것을 간디학교 교사공동체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호봉제에 따라 지급한다. 2000년에는 70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에서 지급되었다. 2001년에는 임금이 올라 새로운 임금체계에 따라 초봉이 월 80만원, 최고봉이 월 170만원, 보너스 연100%로 결정되었지만 지금의 간디학교 사태로 재정결함보조금이 지원되지 않고 있어 새로운 임금체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 내가 다시 학교를 세운다면
학교를 세울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정하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서, 학교의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혼란만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는 그 청사진대로 학교를 만들어 갈 지도자와 교사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재정, 즉 교육시설과 운영비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으로 어떤 형태의 학교로 세울 것인가인데 앞으로 변할 제도와 법의 문제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철학, 사람, 돈, 행정적 절차 등이 주요골자이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
어떤 철학에 기초한 학교를 설립할 것인가? 그것은 설립주체가 결정할 문제이다. 서머힐의 자유주의 철학을 택할 수도 있고 슈타이너의 교육철학을 택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약 3천 개의 대안학교가 있고, 그 성격이 상당히 다양하다. 앞으로 시민이 자녀교육에 관한 권리를 누리게 되는 추세라면, 앞으로 한국에도 다양한 학교들이 등장할 것이고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수백 개가 넘는 다양한 학교모델 중 어떤 학교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물론 설립주체가 결정할 일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설립 이후에 많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간디학교를 설립할 당시, 나는 강의를 통해서나 녹색평론의 글을 통해서 또는『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책에서 나름대로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구체화했다고 여겼다. 물론 어느 정도 윤곽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설립 후에 발견한 것은 그것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학생이 수업에 들어갈 것인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 결정할 권리를 갖는가'에 관해 오랫동안 교사들은 논란을 벌였다. 학교철학에 비추어 볼 때 자발성의 철학은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가? 이런 부분에까지 학교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면 나중에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 간에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가 따른다. 흡연이나 음주, 폭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간디학교 학칙은 이 세 가지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어길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이어진다.
이제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나는 학교의 철학을 더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것에 기초한 학교성격을 좀더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는 설립초기에 피할 수 있으면 좀더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규정해 둘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학교의 창조성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는 역동적인 의사결정에 맡겨야 할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세 축이 만들어 내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모양이 그 나름의 교육문화를 꽃 피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선발의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를 설립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학교성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부적응아 중심으로 한 학교, 혹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 중심의 학교, 아니면 특별한 관심이나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머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떻게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교육역량에 비추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한 부적응아에 대한 지식과 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뜻만으로 그런 학교를 세우려 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학생선발에 연관하여 학부모 선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부모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부모의 뜻에 반하여 학생들을 모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교육관과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의 지도문제를 놓고 학교측과 부모가 크게 충돌할 경우가 생기며 그럴 경우 학생은 그 중간에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시하는 학교철학과 학교성격에 철저히 공감하는 학부모를 선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철학이 부재한 학부모나 아니면 전혀 철학이 다른 학부모가 함께 한다면, 학교는 설립초기부터 매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간디학교의 설립초기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다양한 교육관을 가진 학부모들이 새로운 학교에 대한 이상과 기대 속에 모인 것이다.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상처와 갈등을 일으켰다. 물론 학교철학과 성격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학부모만으로 학교를 시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능한 이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예비학부모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여 불필요한 충돌과 오해는 예방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나는 다시 학교를 세운다면, 학부모 선발과 예비학부모 교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할애할 것이다. 참고로 충북 괴산에 있는 아가피아 꿈의 학교는 학생을 학교에 보내고자 할 경우 6개월간의 학부모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 내가 학교를 세운다면 나 또한 학부모 교육과정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의사결정구조에 관해 간략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에 따라, 다양한 의사결정구조가 존재한다. 여기에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교육에 관한 한, 교사들이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견해를 최대한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학교의 철학이나 기본성격에 침해를 받을 정도로 영향을 받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학교의 철학대로 학교가 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교사를 신규 임용하는 인사권은 이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사들이 인사권을 가지면 교사들 간에 갈등이 심각하게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사회는 학교설립의 주체들이지 꼭 돈을 낸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견수렴의 장소인 것은 좋지만, 교육방식이나 교육과정까지 결정하는 조직이 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교장 선임과 교사 선발
학교의 철학이 결정되면 학교의 지도자, 즉 교장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할 사람을 신중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그로 하여금 철학에 기초하여 학교의 성격을 구체화하고 뿐만 아니라 교육을 실현할 교사팀을 구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설립자가 동시에 교장이 될 수 있다. 많은 학교의 경우 설립자가 교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설립자가 교장을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분들은 교장이 없는 학교를 이상적인 학교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설립초기에 지도자 없는 학교는 설립조차 어렵고 혹 설립된다 하더라도 강력한 리더쉽 없이는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교장직선제를 주장한다. 얼핏보기에 교장직선제는 이상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맞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가 설립되어 몇십 년이 지나 학교의 전통이 견고해지면, 사실상 교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직선제를 도입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설립초기에는 오히려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하며 이것을 간과하고 민주성만 강조하면 학교설립과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최소한 초기의 10년은 강력한 리더가 있고 그 리더의 뜻과 교사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데 성공의 비결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이 정착하는 것보다 민주성이 더 강조되면 민주성은 있되 학교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고, 한편으로 민주성이 없이 학교철학만 강조된다면 학교의 정체성은 있되 생명력은 없는 로봇들의 학교가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최대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취하되, 학교의 기본철학이나 방향성의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리더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한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이 분명히 제시되고 나면 그 다음의 큰 과제는 그러한 철학을 교육 속에서 구현할 교사를 확보하는 일이다. 간디학교의 경우, 교사를 선발하는데 무척이나 고생했다. 처음에는 『녹색평론』글을 보고 찾아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교 준비를 했고, 그 후로는 학교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면접을 통해 선발했다. 98년 이후로는 대체로 공채를 통해 교사를 선발하였다. 선발 잣대는 가치관, 적성, 능력 등이다. 학교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는가?(가치관) 교사로서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가?(적성) 전공 실력이 탁월하여 좋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능력) 등이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법은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교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사교육과 교사양성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세계에 인정받고 수백 개의 학교가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초기부터 운영된 교사연수원에 그 비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전 세계에 발도르프 학교 교사연수원이 5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교사양성 과정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안학교협의회에 권고하여 한겨레문화센터와 공동으로 '대안학교 교사 예비과정'을 시작하도록 도왔고 현재 5기를 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예비과정에 불과하다. 각 학교의 성격에 맞는 교사들을 길러 내는 더욱 영적이고 동시에 실제적인 교사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오랜 염원 끝에 2001년 3월에 '간디대안교육연구원'이란 간판을 걸고 1년 과정의 교사연수과정을 시작하였다. 지금 예비교사 및 현직교사들 2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고, 교사연수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간디학교 교사로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간디대안교육연구원 홈페이지(www.gandhi.or.kr)를 참고하기 바란다.
재정
재정은 학교설립 초기비용과 학교를 설립한 이후의 학교운영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둘 다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를 설립할 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이 뜻만으로 밀어 부쳤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들 학교는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기적을 일으킨 분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간디학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학교를 세운다면 나한테는 한푼도 없기 때문에 다시 기적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그만큼 무모하게 시작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용기와 믿음이 적어진 탓인지는 모르지만.
(가) 학교설립비
학교설립 초기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학부모가 출자하여 공동육아협동조합처럼 만들 수도 있겠고, 아니면 교사들이 교사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출자하여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대부분의 사학처럼 이사들 중 1명 내지 다수가 출연할 수 있다. 심지어 스페인에는 학생들이 돈을 벌어서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도 있다. 이 중에서 어떤 모델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여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실현가능성에서 가장 손쉬운 것은 어떤 한 분이 재산을 출연하는 형태이고 그가 소유권을 갖는 형태이다. 대부분의 사학이 이런 경우지만 이 경우 많은 부작용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육에 아무런 뜻도 갖고 있지 않는 자손에게 학교의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경우, 학교의 운영이 파행적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재산권에서는 주인이 없는 학교가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재산권을 인정받지 않고서 많은 재산을 출연할 것인가? 간디학교의 경우 재산출연은 개인, 학부모, 국가 제 삼자가 거의 같은 몫을 했다. 그래도 법적인 소유권자는 학교법인 이사장이라고 할 것이 아닌가? 현재 나는 간디학교 이사장이지만 내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사장은 학교 경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계승해가며 재산권자로서가 아니라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식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점은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에게 설립초기부터 확고히 인식되어 하나의 학교전통으로 내려갈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 같다.
정규학교를 세우려면 학교법인을 만들어야 하고 이사회가 재산을 출연해야 한다. 최소한의 시설기준에 따라야 하고(현재 특성화고등학교는 학생 정원 곱하기 4.2평 정도의 교육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기본 교육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한 분 내지 몇 분을 이사로 모실 것이다. 어떻게? 세우고자 하는 학교의 청사진을 소책자로 만들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녹색평론』이나『민들레』『처음처럼』혹은 신문과 잡지, 대중매체를 통해 뜻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 교육시설에 대한 비용은 학교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상당히 편차가 있을 것이지만, 정규학교의 경우 최소한 5억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얼마의 돈이 들건 최소한의 교육시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교육하기란 매우 어렵다. 만일 학교의 성격이 정규학교가 아니라 사회교육시설이라면 폐교를 임대하여 교육시설로 쓸 수 있으므로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학부모가 될 분들이 예탁금 형식으로 기숙사 건축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극빈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라면 예탁금 제도는 어려울 것이다.
(나) 학교운영비
학교설립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학교운영비를 지속적으로 충당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현재의 사학들은 거의 대부분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이것은 정규학교로 인가난 후 대체로 3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학교운영비를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에 의존하지 않을 때는 학생들의 학비에 의존하는 경우, 혹은 기업이나 개인이 법인 전입금 형식으로 운영비를 부담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간디학교의 경우는,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과 학비 수입 두 가지에 의존하고 있는 재정구조이다. 만일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이 없다면 소수의 교사들이 박봉으로 무척 고생하고 있을 것이며 사실상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가 만일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학교운영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시작할 것이다.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방식은 학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간섭도 그만큼 덜 받게 될 것이다. 거창고 전성은 교장 선생님은 300명 학생으로부터 월 15만 원 정도를 학비로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간디학교의 경우, 120명의 학생과 20명의 교사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학비만으로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약 월 30만 원의 학비를 받아야 학교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
두 번째 방식은 정규학교가 되어 국가의 보조를 받는 길이다. 이것은 각 시도교육청의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며, 작은 학교 설립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은 길이다.
세 번째, 기업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는 길이다. 학교법인을 기업이 구성하고 기업의 잉여금을 면세 혜택을 받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톨스토이 농장처럼 공동체에서 운영하되, 가능한 자립적인 구도로 가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변산공동체학교와 안식교 교단의 일부 비인가 학교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의 경우, 학비와 자립기반 조성, 약간의 국가보조, 약간의 후원금 모두에 도움을 받는 방식을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학교운영비의 경우 수입이 일정해야 하므로, 가능한 유동적이지 않은 원천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초창기에는 교사가 인건비를 다소 희생하고 나머지는 학비(월 20만 원 수준)에 의존하여 해결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자립성을 높여 교사의 인건비를 점차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가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법과 제도의 문제
학교가 법의 형식을 갖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학원,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 각종학교, 정규학교(인문계, 실업계, 특수목적고, 특성화학교 등)등이다. 정규학교에 비해 학원의 설립이나 학력 미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설립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점이 흠이고, 물론 평생교육시설도 학력인정이 가능하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정규학교는 인가받기도 어렵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대체로 새로운 학교를 하려는 분들은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이나 정규학교 중 특성화학교를 선호할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시도 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로 문의하여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다른 하나는 2003년부터 시행되는 '자립형 사립고'로 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 년 전까지 모든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3년경에는 모든 형태의 학교에 적용될 수 있는 '대안학교법'이 나올 전망이다. 만일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쉽고 적은 비용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대안학교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대사항이고 실제 입법화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학원형태, 사회교육시설, 특성화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이 제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형태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간략하게 학교설립에 관해 이야기했다. 학교설립에 관해 질문이 있으면 연락해주기 바란다.
***** 민들레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4-08-17 14:56)
*아래 글은 <민들레> 16호 28∼47쪽에 실린 글입니다.
새로운 학교,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양희규(간디학교 교장)
이 글은 새로운 학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새로운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을 위한 글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새로운 학교의 필요성이나 새로운 학교의 모델에 관한 이론적이거나 개념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학교를 세울 것인가라는 과제를 가능한 실천적이고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좀더 이상적이고 달콤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독자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이 글에서 나는 학교설립에 관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간디학교를 세우기까지의 주요 과정들을 간략히 소개하겠다. 이것은 간디학교 설립의 과정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이다. 설립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과정들을 선택하였지만, 많은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었거나 아니면 지면 한계상 많은 부분이 언급될 수 없었다는 점은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서, 학교설립을 구체적으로 진행시키고자 하는 분은 여기에 기술된 간디학교 이야기는 단지 빈약한 자료에 불과하며 훨씬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학교설립의 과제를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만일 앞으로 학교를 다시 세우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부분적으로 간디학교 설립과정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학교설립을 위한 가이드로서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기초토대로 삼아 좀더 신중하고도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1. 간디학교의 설립과정
설립의 꿈 1975년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악몽처럼 보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을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거의 망가져서 평생을 건강의 문제로 시달리게 되는 개인적인 불행을 초래한 시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내 자신과 친구들에게 학교설립의 꿈을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다닌 학교와는 전혀 다른 행복한 학교를 세우겠다"라고. 나는 한번도 이 결심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루터기 학교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약 10년이 지난 1987년 내게 새로운 학교를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독교 단체인 '그루터기직업청소년선교회'의 조성범 목사님께서 '국제기능인선교학교'라는 이름의 비인가 고등학교를 설립하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공장에 다니던 직업청소년들이 교육 대상이었다. 그 때 내 나이 불과 29세였다. 나는 교장이 없는 상태에서 교감을 맡아 교사회를 이끌고 동시에 교사와 아이들이 먹고사는 문제까지 책임져야 했다. 이 때 나는 간디 선생이 1904년 남아프리카에 세운 '톨스토이 농장'을 모델로 삼아서 자립적인 무소유 공동체를 일궈나가기로 했다. 톨스토이 농장은 신문사이자 농장이며 학교이며 공동체였다.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인디언 오피니언'이란 신문을 발행했다고 한다. 내가 맡은 그루터기 학교를 나는 자립적인 공동체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농장과 봉제공장을 운영하였다.
공동체 학교 운영을 통해 배운 몇 가지 교육 원리가 있다. 이것들은 후에 간디학교의 설립철학이 되었다. 첫째는 사랑의 원리이다. 즉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신뢰 없이는 어떤 의미 있는 교육과 배움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발성의 원리이다.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없이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 하나는 자립의 원리이다. 교사나 학생 모두 자립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자립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비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책으로 배운 이론이 아니었다. 이 원리들은 증오가 사랑으로, 무기력이 생명력으로, 그리고 패배감이 긍지로 변하게 되는 삶의 에너지이다. 나는 어른들을 미워하며 불신하던 60여명의 아이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들이 어떻게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간으로 변화해 가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원리들을 깨닫게 되었다.
터 잡기 1994년
그루터기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5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1994년 여름 귀국한 뒤 내가 정착할 곳을 찾고 있었다. 10월초 우연히 경남 산청의 화가 박성술 선생을 찾았다가 그 분이 살고 있던 50평 정도의 돌집과 그 주위의 터가 마음에 들어 구입을 하기로 결정하고, 돌집과 논 1600여 평을 구입했다. 그 해 말 나는 후배 세 명과 함께 돌집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주위 땅을 조금 더 구입했다. 약 2700평이 되었다.(이 땅은 모두 후에 간디학교 캠퍼스 부지가 되었다.) 95년 초 나는 이 땅을 '간디농장'이라 불렀다. 약간의 채소농사를 후배들과 지으며, 그 해 집 두 채를 더 지었다. 한 채는 현재의 돌집 왼편에 30여 평의 통나무집, 그리고 현재 간디학교의 교무실로 쓰고 있는 42평 정도의 벽돌주택이다.
녹색평론
95년 가을 나는 『녹색평론』에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란 제목의 글을 싣고 새로운 학교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에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호응과 격려를 보냈고 백 명이 넘는 분들이 간디농장을 방문했다. 나는 12월 경 두 차례 모임을 갖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나의 청사진을 설명했다.(학교철학과 학교모델에 관한 것은 간디학교 요람이나『사랑과 자발성의 교육』1997년, 내일을 여는 책에서 출판된 소책자를 참고하기 바람.) 그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8명이 간디농장에 와서 살면서 함께 학교 설립을 준비하기로 했다. 1996년 3월 11일 나를 포함하여 10명의 사람들이 서약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어두운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으로.
교사협동조합
10명의 낯선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꾸린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갈등이 심했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96년 4월초 10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대표들을 선정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구성원들은 100만 원씩 출자하여 생활비에 충당하고 4월부터 '숲속마을 작은학교'란 소식지를 발행하면서 학교설립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노동으로 보내고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대체로 노동은 집짓기와 농사로 이루어졌다. 배당은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월 30만 원 정도를 배당하기로 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5만원에서 20만 원 정도를 실제 배당받았던 것 같다.
숲속마을 작은학교와 학교설립준비위원회
학교설립 준비의 과정인 동시에 수익사업의 하나로 계절학교를 하기로 하고 소식지의 이름과 같은 '숲속마을 작은학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5월경에 기초계획을 세우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다른 캠프와는 달리 12박 13일이라는 장기간의 여름학교를 초등학생과 중고생을 위해 각 1회씩 열었다. 숲속마을 작은학교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캠프식의 교육장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하는 '시골 외가집'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되돌려 주자는 생각이 계절학교의 철학이었다고나 할까. 교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성교육과 자립교육뿐이었다. 아이들은 직접 텃밭도 만들어 씨앗을 심어 보고 수확도 해 보았으며,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했다. 옷과 가방도 만들고 개집이나 토끼집도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12박 13일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다시 도시로, 콘크리트 문명으로, 병적인 경쟁세계로 되돌아간다. 학교폭력, 성적으로 인한 강박관념과 가족과의 갈등,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의 친구와의 갈등 등 너무나 많은 문제들 속으로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우리의 심정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그러한 심정은 자녀를 계절학교에 보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부모들이 계절학교가 아닌 상설학교를 당장 세울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 중고생 여름학교가 끝나기 전날인 96년 8월 21일 '작은학교설립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계절학교 학부모 중 10여 분이 학교설립을 돕기로 하였다.
그 후 96년 10월경 '예비학부모회'가 만들어졌고 11월초에는 다섯 분이 자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계기로 학교 설립 준비가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예비학부모 세 분과 예비교사 세 분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가 구성되어 한 달에 두 번씩 회의를 열고 학교설립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하나하나 의논하여 상설학교 운영안을 담은 '학교요람'을 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12월 1일부터 입학원서를 받았다. 입학원서를 냈거나 낼 의사가 있는 예비학생 26명이 97년 1월 13일부터 '모의상설학교'(현재는 '예비학교'라 부른다)에 참여하여 교사들과 다른 학생들과 생활해보고 학교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풀었다. 학부모와 교사와 함께 학교의 운영전반을 의논하여 학교를 꾸려가는 전통은 계속 이어져 간디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우리 나라 학교운영위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의결 심의기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재정위원회, 교육과정위원회, 기숙사운영위원회 등 여러 소위로 이루어져 있다.
학비의 결정과 예탁금 제도
97년 3월 개교를 앞두고 세 동의 건물(총 건평이 120평 정도)이 있었지만 그 중 두 동은 교실로 쓰기로 하고 한 동은 기숙사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남녀 학생들을 받기 위해서는 기숙사 한 동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토지구입비, 신축비로 이미 3억 넘게 돈을 쓴 때라 여유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학부모가 기숙사 신축에 조금씩 돈을 보태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 당시 26명의 학생 중 25명 정도가 300만원 씩 내어 약 7천만원 정도의 기금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돌집 2층에 나무로 기숙사를 지었다. 부모들이 낸 돈은 졸업할 때 되받기로 해서 맡겨둔다는 의미에서 예탁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 신입생들은 꼭 형편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탁금을 내어 학교의 부족한 시설을 해나갔다. 그리고 신입생이 들어오면 졸업생은 예탁금을 되찾아간다. 지금까지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으며 부모의 예탁금은 약 4억 이상이 되어 학교 구석구석에 시설로 투자되어 있다.
학비는 그 당시 매월 15만 원으로 정하였는데, 그렇게 정한 근거는 중하층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일반학교의 학비 및 보충수업비 등을 합하면 약 매월 6-7만원 정도가 될 것이고, 학원에서 한 과목 정도 듣게 되면 8만원 정도, 합하여 15만원 정도를 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기숙사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숙사비는 먹고 자고 하는데 들어간 실제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하면 매월 35만 원 이상이 들어가니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학금 지급을 해왔으나 설립 초기에는 학교가 어려워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장학금을 주었다. 그 후 5% 정도의 학생에게 학비 면제 등의 형식으로 도움을 주어왔고 지금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약 10% 정도가 된다.
교사의 임금
개교 후 첫 해 교사들의 수는 6-7명이었다. 하지만 학생 20여 명의 학비는 월 300여만 원 정도이고 학교운영비로 200만 원 정도 쓰게 되면 100만 원쯤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설립초기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소식지를 통해 성금을 모았다. 목표액은 1년간 1500만 원 정도였고 그 목표액은 달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유급교사 5명이 나누어 운영비 잔액과 성금을 생활비로 썼다. 그 당시 평균 임금이 40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임금을 공동체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즉 총수입에서 운영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가지고 교사들이 공동체 분배원칙에 따라 나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분배원칙이란 균등의 원칙, 필요의 원칙, 기여도에 따른 원칙 등 세 가지이다. 균등의 원칙이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임금을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필요의 원칙이란, 부양가족수 등 필요를 고려하여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전체 재정상태가 나아지면 기여도 역시 고려한다는 것이다. 기여도는 직급과 경력의 고려가 될 것이다. 재정상태가 매우 어렵던 설립초기에는 균등의 원칙과 필요의 원칙을 적용하여, 독신자는 40만 원, 기혼자는 50만 원으로 책정하였고 자원교사는 10만 원 정도로 책정하였다. 대개 처음 온 교사는 6개월 정도 자원교사로 일했다. 그야말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다고 말하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돈 문제에 처음부터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게 생활했던 것 같다.
학교의 개교와 위기
97년 3월 9일 '간디청소년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학교는 문을 열었다. 27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조촐한 입학식이었다. 학생 하나 하나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교사와 부모가 줄을 서서 학생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은 꿈처럼 황홀했지만 그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학교요람에 따르면 새로운 학교는 기존학교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고 그것에 대한 기대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에게 큰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꿈과는 달리, 개교 후의 학교 모습은 한마디로 '개판'처럼 보였다. 수업도 엉망이었고 생활도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자유 속에서 방종으로 치달았고, 교사들은 자유와 방치의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했다. 토론식 수업은 떠들고 노는 시간이었고 기숙사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돼지우리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밤새도록 춤추고 트럼프 치고 놀고 낮에는 자느라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학생들은 방종을 즐기면서도 내심으로는 불안해했고 부모들은 '이것이 인성교육인가 개판교육인가'하고 따지고 4월 이후 여러 번 일종의 청문회를 열어 강도 높게 비판했고, 교사들도 학교철학에 회의를 갖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러는 와중에서 일부 교사들은 떠났고 부모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97년 전반기는 그야말로 문 닫기 직전의 상황이 지속되었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다소 학교가 안정되었다. 수업도 조금씩 되기 시작했고 부모들도 숫자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한 번 학교를 믿어보자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학생들도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교가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부모들을 설득했다. 조금씩 학교는 안정되어 갔다. 나중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당시의 혼란과 방종의 시기는 어쩌면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보인다. 마치 화학농법을 해오던 땅에 갑자기 유기농법을 하면 처음에는 거의 수확량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기다림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믿고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인가
교육부 및 도교육청 관료들이 97년 6월 간디청소년학교를 방문했다. 미인가 학교에 교육관료들이 방문하다니! 그 당시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교육부의 몇몇 젊은 관료들이 대안학교를 인정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있었고 그러한 법안에 적합한 학교들을 신설하거나 기존 미인가학교에서 그 후보가 될 만한 대상들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간디학교 소식을 듣고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간디청소년학교의 운영에 기쁨과 만족을 표현하였던 것 같다.
그 뒤 가을 무렵 대안교육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능하게 되는 법안이 '특성화학교법'이라는 형태로 통과되었다. 우리 학교 교사회에서는 오랜 토론 끝에 11월 15일경 인가를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급히 서류준비를 하여 11월말 학교법인 설립과 학교인가 신청을 하였고 마침내 97년 12월 30일 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특성화학교법'이라는 진보적인 교육제도의 탄생 덕분이며 몇몇 젊은 교육관료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 그래서 거의 기적적인 경과를 거쳐 98년 3월부터 간디청소년학교는 '간디학교'라는 이름의 특성화고등학교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중학교는 미인가상태로 남아 여전히 '간디청소년학교'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고, 새로 인가된 고등학교는 '간디학교'라는 이름의 인가된 정규학교가 된 것이다.
학교가 인가되고 재정결함보조금이란 형식으로 교사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학교 사정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학급 고등학교의 교사 정원이 11명, 행정직 정원이 3명, 모두 14명인데 이들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연차적으로 첫 해는 7명(교사 4명, 행정직 3명), 99년에는 10명, 2000년에는 14명 전원에 대해 주어졌다. 따라서 교사 수는 급증하게 되었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교사 및 행정직 교직원이 모두 전임만 23명, 강사를 포함하면 거의 3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임금은 꾸준히 올라 현재 평균 월 100만 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 수준은 일반 학교 임금 수준의 60%에 못 미친다.
그러면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나? 교사공동체가 있고 정회원이 있다. 처음 채용되면 일 년 정도 후에 정회원 심사를 동료교사 정회원들로부터 받게 된다. 즉 간디학교 교사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심사받게 되는 것이다. 간디학교 교사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물론 묵시적인 관행의 규칙이 있다. 간디학교 교사들은 일반학교 교사보다 다소 적은 임금(70%정도)을 받더라도 소박한 생활을 통해 극복하며, 남는 인건비 잔액은 교육운동이나 장학금 등으로 사용하겠다는 설립초기의 정신이 있다.
학교의 모든 수입 즉 학비 및 재정결함보조금을 합한 금액에서 매월 운영비를 빼면 인건비로 가능한 총액이 산출된다. 이것을 간디학교 교사공동체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호봉제에 따라 지급한다. 2000년에는 70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에서 지급되었다. 2001년에는 임금이 올라 새로운 임금체계에 따라 초봉이 월 80만원, 최고봉이 월 170만원, 보너스 연100%로 결정되었지만 지금의 간디학교 사태로 재정결함보조금이 지원되지 않고 있어 새로운 임금체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 내가 다시 학교를 세운다면
학교를 세울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정하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서, 학교의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혼란만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는 그 청사진대로 학교를 만들어 갈 지도자와 교사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재정, 즉 교육시설과 운영비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으로 어떤 형태의 학교로 세울 것인가인데 앞으로 변할 제도와 법의 문제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철학, 사람, 돈, 행정적 절차 등이 주요골자이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
어떤 철학에 기초한 학교를 설립할 것인가? 그것은 설립주체가 결정할 문제이다. 서머힐의 자유주의 철학을 택할 수도 있고 슈타이너의 교육철학을 택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약 3천 개의 대안학교가 있고, 그 성격이 상당히 다양하다. 앞으로 시민이 자녀교육에 관한 권리를 누리게 되는 추세라면, 앞으로 한국에도 다양한 학교들이 등장할 것이고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수백 개가 넘는 다양한 학교모델 중 어떤 학교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물론 설립주체가 결정할 일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설립 이후에 많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간디학교를 설립할 당시, 나는 강의를 통해서나 녹색평론의 글을 통해서 또는『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책에서 나름대로 학교의 철학과 성격을 구체화했다고 여겼다. 물론 어느 정도 윤곽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설립 후에 발견한 것은 그것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학생이 수업에 들어갈 것인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 결정할 권리를 갖는가'에 관해 오랫동안 교사들은 논란을 벌였다. 학교철학에 비추어 볼 때 자발성의 철학은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가? 이런 부분에까지 학교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면 나중에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 간에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가 따른다. 흡연이나 음주, 폭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간디학교 학칙은 이 세 가지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어길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이어진다.
이제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나는 학교의 철학을 더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것에 기초한 학교성격을 좀더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는 설립초기에 피할 수 있으면 좀더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규정해 둘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학교의 창조성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는 역동적인 의사결정에 맡겨야 할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세 축이 만들어 내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모양이 그 나름의 교육문화를 꽃 피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선발의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를 설립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학교성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부적응아 중심으로 한 학교, 혹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 중심의 학교, 아니면 특별한 관심이나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머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떻게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교육역량에 비추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한 부적응아에 대한 지식과 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뜻만으로 그런 학교를 세우려 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학생선발에 연관하여 학부모 선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부모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부모의 뜻에 반하여 학생들을 모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교육관과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의 지도문제를 놓고 학교측과 부모가 크게 충돌할 경우가 생기며 그럴 경우 학생은 그 중간에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시하는 학교철학과 학교성격에 철저히 공감하는 학부모를 선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철학이 부재한 학부모나 아니면 전혀 철학이 다른 학부모가 함께 한다면, 학교는 설립초기부터 매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간디학교의 설립초기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다양한 교육관을 가진 학부모들이 새로운 학교에 대한 이상과 기대 속에 모인 것이다.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상처와 갈등을 일으켰다. 물론 학교철학과 성격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학부모만으로 학교를 시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능한 이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예비학부모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여 불필요한 충돌과 오해는 예방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나는 다시 학교를 세운다면, 학부모 선발과 예비학부모 교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할애할 것이다. 참고로 충북 괴산에 있는 아가피아 꿈의 학교는 학생을 학교에 보내고자 할 경우 6개월간의 학부모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 내가 학교를 세운다면 나 또한 학부모 교육과정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의사결정구조에 관해 간략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에 따라, 다양한 의사결정구조가 존재한다. 여기에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교육에 관한 한, 교사들이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견해를 최대한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학교의 철학이나 기본성격에 침해를 받을 정도로 영향을 받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학교의 철학대로 학교가 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교사를 신규 임용하는 인사권은 이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사들이 인사권을 가지면 교사들 간에 갈등이 심각하게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사회는 학교설립의 주체들이지 꼭 돈을 낸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견수렴의 장소인 것은 좋지만, 교육방식이나 교육과정까지 결정하는 조직이 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교장 선임과 교사 선발
학교의 철학이 결정되면 학교의 지도자, 즉 교장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할 사람을 신중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그로 하여금 철학에 기초하여 학교의 성격을 구체화하고 뿐만 아니라 교육을 실현할 교사팀을 구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설립자가 동시에 교장이 될 수 있다. 많은 학교의 경우 설립자가 교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설립자가 교장을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분들은 교장이 없는 학교를 이상적인 학교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설립초기에 지도자 없는 학교는 설립조차 어렵고 혹 설립된다 하더라도 강력한 리더쉽 없이는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교장직선제를 주장한다. 얼핏보기에 교장직선제는 이상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맞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가 설립되어 몇십 년이 지나 학교의 전통이 견고해지면, 사실상 교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직선제를 도입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설립초기에는 오히려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하며 이것을 간과하고 민주성만 강조하면 학교설립과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최소한 초기의 10년은 강력한 리더가 있고 그 리더의 뜻과 교사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데 성공의 비결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이 정착하는 것보다 민주성이 더 강조되면 민주성은 있되 학교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고, 한편으로 민주성이 없이 학교철학만 강조된다면 학교의 정체성은 있되 생명력은 없는 로봇들의 학교가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최대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취하되, 학교의 기본철학이나 방향성의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리더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한다. 학교의 철학과 성격이 분명히 제시되고 나면 그 다음의 큰 과제는 그러한 철학을 교육 속에서 구현할 교사를 확보하는 일이다. 간디학교의 경우, 교사를 선발하는데 무척이나 고생했다. 처음에는 『녹색평론』글을 보고 찾아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교 준비를 했고, 그 후로는 학교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면접을 통해 선발했다. 98년 이후로는 대체로 공채를 통해 교사를 선발하였다. 선발 잣대는 가치관, 적성, 능력 등이다. 학교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는가?(가치관) 교사로서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가?(적성) 전공 실력이 탁월하여 좋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능력) 등이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방법은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교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사교육과 교사양성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세계에 인정받고 수백 개의 학교가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초기부터 운영된 교사연수원에 그 비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전 세계에 발도르프 학교 교사연수원이 5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교사양성 과정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안학교협의회에 권고하여 한겨레문화센터와 공동으로 '대안학교 교사 예비과정'을 시작하도록 도왔고 현재 5기를 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예비과정에 불과하다. 각 학교의 성격에 맞는 교사들을 길러 내는 더욱 영적이고 동시에 실제적인 교사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오랜 염원 끝에 2001년 3월에 '간디대안교육연구원'이란 간판을 걸고 1년 과정의 교사연수과정을 시작하였다. 지금 예비교사 및 현직교사들 2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고, 교사연수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간디학교 교사로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간디대안교육연구원 홈페이지(www.gandhi.or.kr)를 참고하기 바란다.
재정
재정은 학교설립 초기비용과 학교를 설립한 이후의 학교운영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둘 다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를 설립할 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이 뜻만으로 밀어 부쳤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들 학교는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기적을 일으킨 분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간디학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학교를 세운다면 나한테는 한푼도 없기 때문에 다시 기적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그만큼 무모하게 시작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용기와 믿음이 적어진 탓인지는 모르지만.
(가) 학교설립비
학교설립 초기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학부모가 출자하여 공동육아협동조합처럼 만들 수도 있겠고, 아니면 교사들이 교사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출자하여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대부분의 사학처럼 이사들 중 1명 내지 다수가 출연할 수 있다. 심지어 스페인에는 학생들이 돈을 벌어서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도 있다. 이 중에서 어떤 모델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여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실현가능성에서 가장 손쉬운 것은 어떤 한 분이 재산을 출연하는 형태이고 그가 소유권을 갖는 형태이다. 대부분의 사학이 이런 경우지만 이 경우 많은 부작용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육에 아무런 뜻도 갖고 있지 않는 자손에게 학교의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경우, 학교의 운영이 파행적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재산권에서는 주인이 없는 학교가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재산권을 인정받지 않고서 많은 재산을 출연할 것인가? 간디학교의 경우 재산출연은 개인, 학부모, 국가 제 삼자가 거의 같은 몫을 했다. 그래도 법적인 소유권자는 학교법인 이사장이라고 할 것이 아닌가? 현재 나는 간디학교 이사장이지만 내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사장은 학교 경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계승해가며 재산권자로서가 아니라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식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점은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에게 설립초기부터 확고히 인식되어 하나의 학교전통으로 내려갈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 같다.
정규학교를 세우려면 학교법인을 만들어야 하고 이사회가 재산을 출연해야 한다. 최소한의 시설기준에 따라야 하고(현재 특성화고등학교는 학생 정원 곱하기 4.2평 정도의 교육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기본 교육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한 분 내지 몇 분을 이사로 모실 것이다. 어떻게? 세우고자 하는 학교의 청사진을 소책자로 만들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녹색평론』이나『민들레』『처음처럼』혹은 신문과 잡지, 대중매체를 통해 뜻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 교육시설에 대한 비용은 학교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상당히 편차가 있을 것이지만, 정규학교의 경우 최소한 5억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얼마의 돈이 들건 최소한의 교육시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교육하기란 매우 어렵다. 만일 학교의 성격이 정규학교가 아니라 사회교육시설이라면 폐교를 임대하여 교육시설로 쓸 수 있으므로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학부모가 될 분들이 예탁금 형식으로 기숙사 건축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극빈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라면 예탁금 제도는 어려울 것이다.
(나) 학교운영비
학교설립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학교운영비를 지속적으로 충당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현재의 사학들은 거의 대부분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이것은 정규학교로 인가난 후 대체로 3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학교운영비를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에 의존하지 않을 때는 학생들의 학비에 의존하는 경우, 혹은 기업이나 개인이 법인 전입금 형식으로 운영비를 부담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간디학교의 경우는,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과 학비 수입 두 가지에 의존하고 있는 재정구조이다. 만일 국가의 재정결함보조금이 없다면 소수의 교사들이 박봉으로 무척 고생하고 있을 것이며 사실상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가 만일 학교를 다시 세운다면, 학교운영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시작할 것이다.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방식은 학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간섭도 그만큼 덜 받게 될 것이다. 거창고 전성은 교장 선생님은 300명 학생으로부터 월 15만 원 정도를 학비로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간디학교의 경우, 120명의 학생과 20명의 교사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학비만으로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약 월 30만 원의 학비를 받아야 학교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
두 번째 방식은 정규학교가 되어 국가의 보조를 받는 길이다. 이것은 각 시도교육청의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며, 작은 학교 설립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은 길이다.
세 번째, 기업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는 길이다. 학교법인을 기업이 구성하고 기업의 잉여금을 면세 혜택을 받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톨스토이 농장처럼 공동체에서 운영하되, 가능한 자립적인 구도로 가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변산공동체학교와 안식교 교단의 일부 비인가 학교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의 경우, 학비와 자립기반 조성, 약간의 국가보조, 약간의 후원금 모두에 도움을 받는 방식을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학교운영비의 경우 수입이 일정해야 하므로, 가능한 유동적이지 않은 원천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초창기에는 교사가 인건비를 다소 희생하고 나머지는 학비(월 20만 원 수준)에 의존하여 해결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자립성을 높여 교사의 인건비를 점차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가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법과 제도의 문제
학교가 법의 형식을 갖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학원,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 각종학교, 정규학교(인문계, 실업계, 특수목적고, 특성화학교 등)등이다. 정규학교에 비해 학원의 설립이나 학력 미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설립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점이 흠이고, 물론 평생교육시설도 학력인정이 가능하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정규학교는 인가받기도 어렵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대체로 새로운 학교를 하려는 분들은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이나 정규학교 중 특성화학교를 선호할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시도 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로 문의하여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다른 하나는 2003년부터 시행되는 '자립형 사립고'로 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 년 전까지 모든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3년경에는 모든 형태의 학교에 적용될 수 있는 '대안학교법'이 나올 전망이다. 만일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쉽고 적은 비용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대안학교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대사항이고 실제 입법화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학원형태, 사회교육시설, 특성화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이 제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형태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간략하게 학교설립에 관해 이야기했다. 학교설립에 관해 질문이 있으면 연락해주기 바란다.
***** 민들레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4-08-17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