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민들레> 20호 140∼144쪽에 실린 글입니다. <민들레> 19호에 실린 문재현 님의 글(바로 아래 게시물)과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슈타이너 교육을 다시 생각하며-지금은 성찰의 시간
;최광용
(경기도 분당에서 두 아이 하림이와 하연이를 돌보며 살고 있다. '자유발도르프학교준비모임' 대표로 있으면서 올봄에 문을 연 초등 대안학교 '큰숲학교'의 운영도 책임지고 있다. 이 글은 '다른 학교'를 세우기 위한 활동 과정에서 부딪혀야 했던 여러 느낌들을 단상(斷想) 수준에서 풀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민들레} 19호에 실린 문재현 님의 글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이 글은 이제 막 말문을 열기 위한 것이며, 아울러 발도르프 교육에서 건져올린 '희망'을 가꾸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논평자들의 관심은 문제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나 문제의 해결에 대한 논평이다. 논평자들의 목적은 실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논평자들의 논평은 언제나 같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 말의 실제는 이렇다. "나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핑계로 방법상의 문제를 찾았다."
― 김규항, [논평자들],《씨네21》제316호(2001. 8. 22.)
제도의 문제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교육위기에 대한 모든 해법들이 대부분 '면피용'에 머물 수밖에 없으리라는 데 주목하고 있던 무렵, 나는 우연히 발도르프 교육을 만났다. 곤한 육신의 길 잃은 나그네가 이정표 앞에서 때로 '주님'을 발견하듯, 나는 그 안에서 우리 사회 교육현실의 새로운 지평을 열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난 8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역과 인종의 간극을 뛰어넘고 아우르며 세계 각국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펼쳐온 놀라운 '매력'과 관련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피교육자 신분이었던 '두발단속' 시절부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의 영감을 내 아버지와 프레이리, 라이머, 일리치, 니일, 촘스키, 조한혜정, 전교조,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스승'들한테서 얻어오곤 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뒤늦게 만난, 가장 최근의 스승인 셈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상상력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우선 내 메마른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상상력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피억압자의 교육'과 '학교의 죽음'과 '허락이 아닌 자유'와 '우리 안의 식민성'과 '참교육'과 '어려운 시험문제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푸는 것'이라는 위대한 '정신'들과 아무런 충돌 없이, 아무런 모순 없이 내 안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렇게 나는 이 '매력'과 그 안에서 발견한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과 지난 2년여 동안 종종걸음으로 지내왔다. 나에겐 '상처'로 남았지만 아이들에겐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발도르프유치원 생활, 학교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며 준비모임을 꾸린 일, '큰숲학교'의 개교… 이런 것들이 내 종종걸음의 보폭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런 내 발길 앞에 종종, 그러나 자주 놓여지고는 하던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혹은 우리 밖에서 전해져오곤 하던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이라는 '잠언'과도 같은 메시지였다. 이 잠언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라는 푯말을 발견했을 때의 철렁함처럼 내 상상력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우선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말 앞에서 늘 숙연한 마음으로 '자기검열'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검열'의 그물망이 아무리 촘촘하기로서니, 고개를 쳐드는 '의문'들은 나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말들이 내포한 의미망은 무엇일까? 슈타이너 교육사상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인지학의 몰이해로 인한 우문(愚問)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말'이 갖는 수사(修辭)의 외피가 벗겨지면서, 다시 말해 발도르프 학교를 함께 세워보자고 말이 아닌 '몸'으로 나서면서부터 이 '말'들은 급기야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인지" 검증해보아야겠다는 식의 '폭력적' 태도로 발전해가기 시작한 것이다(내가 여기서 '폭력적'이라는 과도한 표현을 쓴 것은 우리 사회를 악령처럼 지배하고 있는 '사상검증'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정확히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의 긴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말들'의 성찬은 단지, 원리주의가 불러낸 주문(呪文)이었음을, 신앙고백에 대한 요구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깨달음은 이처럼 늘, 뒤늦게 찾아오는 것일까?
그랬다. 그렇게 발도르프 교육은 물설고 낯선 이곳 한국땅에서 원리주의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다. 그리하여 '의기투합'의 시기가 지나가고 '의심'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들은 모두에게 '관계의 일그러짐'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우리는, 우리 주변과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표면적으로는 학교 건설의 경로와 조건 그리고 그 전망의 이해에 대한 관점과 입장의 차이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자신들이 이 세계의 근본이요 원리라고 인정하는 '특정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6쪽.) 아니, 승인하라고 강제하는, 원리주의에 경도된 태도가 사태의 근저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랬기에 그 '특정 세계관'에 투영된 우리의 '일부'는 어느 날 갑자기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어느 지역에 학교가 세워지든 이삿짐 싸들고 그곳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지역주의자가 되었다. 십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십 년이면 내 아들은 18살이 된다), 그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급급해 하는 근시안자가 되었다. 따라서 '진짜 발도르프 학교를 세우려는 의지'가 없는, 그저 제 자식에 눈먼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발도르프 교육을 대안교육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이는 '운동권'이라는 비난은 모든 도덕적 훈계의 정점이요 대미였다. 사람들은 도덕적 열패감에 시달리며 동요했다. 우리의 동력은 현저히 떨어져 나갔다.
이렇듯 무릇, 원리주의는 진리독점주의와 한몸이기 때문에 '진짜'로 위험하다. 원리주의는 독단론에 기초한 '진리'의 선포자이고 집행자이며 심판관이다. 이 진리에 반해 이견을 보이고 차이를 드러내면 '이단'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여기서 원리주의자들이 왜 대화가 아닌 '지도'의 방식을 그토록 선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단순히 관점과 입장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소름이 돋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권력'이기 때문이다.
'진짜'를 어려운 말로 바꾸면 '원조'이다. 이 원조의 자장(磁場)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인지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지 않은 어설픈 방법론적 차용 수준에 불과하며, 따라서 매우 위험한 것으로 '지목'된다. 원리주의자들의 독단론이 왜 위험하며 빈곤한 상상력에 스스로 시달리는지는 '대안교육'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대안교육에 대한 과격한 폄하의 언설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발도르프 교육이 대안교육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망의 표현인 셈이다. 물론 독일에서의 발도르프 학교는 대안이라기보다는 이미 하나의 '제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이 소중한 지면을 더 이상 낭비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이 한국적 원리주의는 최근 그 자장을 빠르게 확대해가고 있다. 시쳇말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면 탓할 바가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브랜드화'의 방식을 통해서라는 데에 있다. 발도르프 교육은 이미 각광받는 하나의 상품, 그것도 요즘 유행한다는 '명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판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구나 교육현실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지옥 같은 이 현실에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처럼 위태롭고 반교육적인 것은 없다. 발도르프 교육의 우리 사회현실에의 창조적 수용이란 단지 '기술적 번안(飜案)'을 의미하지 않듯이, 동시에 브랜드화의 길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슈타이너 교육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하는 논의가 새롭게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문재현의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민들레} 19호)라는 글은 '수용'과 관련한 '내 목소리'를 비로소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문함 탓이겠지만, 이처럼 정면에서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문재현이 그의 글에서 '슈타이너 이론의 자기 완결성, 폐쇄성'을 언급하며 "다른 이론이나 체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 이론적 대화는 불가능하며 현실과 통합도 어렵다."(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5쪽.)는 지적은 옳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와 부처가 대화를 나누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슈타이너는 대화의 통로를 차단시켰지만, 더구나 한국에서의 발도르프 교육은 원리주의적 태도에 의해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대화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생산적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8쪽.)를 지속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발도르프 교육의 '매력'을 우리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정서이다. 이것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면,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 희망을 가꾸어 나가자.
"신은 우리의 종교를 묻지 않는다."
*아래 글은 <민들레> 20호 140∼144쪽에 실린 글입니다. <민들레> 19호에 실린 문재현 님의 글(바로 아래 게시물)과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슈타이너 교육을 다시 생각하며-지금은 성찰의 시간
;최광용
(경기도 분당에서 두 아이 하림이와 하연이를 돌보며 살고 있다. '자유발도르프학교준비모임' 대표로 있으면서 올봄에 문을 연 초등 대안학교 '큰숲학교'의 운영도 책임지고 있다. 이 글은 '다른 학교'를 세우기 위한 활동 과정에서 부딪혀야 했던 여러 느낌들을 단상(斷想) 수준에서 풀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민들레} 19호에 실린 문재현 님의 글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이 글은 이제 막 말문을 열기 위한 것이며, 아울러 발도르프 교육에서 건져올린 '희망'을 가꾸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논평자들의 관심은 문제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나 문제의 해결에 대한 논평이다. 논평자들의 목적은 실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논평자들의 논평은 언제나 같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 말의 실제는 이렇다. "나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핑계로 방법상의 문제를 찾았다."
― 김규항, [논평자들],《씨네21》제316호(2001. 8. 22.)
제도의 문제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교육위기에 대한 모든 해법들이 대부분 '면피용'에 머물 수밖에 없으리라는 데 주목하고 있던 무렵, 나는 우연히 발도르프 교육을 만났다. 곤한 육신의 길 잃은 나그네가 이정표 앞에서 때로 '주님'을 발견하듯, 나는 그 안에서 우리 사회 교육현실의 새로운 지평을 열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난 8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역과 인종의 간극을 뛰어넘고 아우르며 세계 각국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펼쳐온 놀라운 '매력'과 관련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피교육자 신분이었던 '두발단속' 시절부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의 영감을 내 아버지와 프레이리, 라이머, 일리치, 니일, 촘스키, 조한혜정, 전교조,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스승'들한테서 얻어오곤 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뒤늦게 만난, 가장 최근의 스승인 셈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상상력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우선 내 메마른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상상력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피억압자의 교육'과 '학교의 죽음'과 '허락이 아닌 자유'와 '우리 안의 식민성'과 '참교육'과 '어려운 시험문제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푸는 것'이라는 위대한 '정신'들과 아무런 충돌 없이, 아무런 모순 없이 내 안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렇게 나는 이 '매력'과 그 안에서 발견한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과 지난 2년여 동안 종종걸음으로 지내왔다. 나에겐 '상처'로 남았지만 아이들에겐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발도르프유치원 생활, 학교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며 준비모임을 꾸린 일, '큰숲학교'의 개교… 이런 것들이 내 종종걸음의 보폭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런 내 발길 앞에 종종, 그러나 자주 놓여지고는 하던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혹은 우리 밖에서 전해져오곤 하던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이라는 '잠언'과도 같은 메시지였다. 이 잠언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라는 푯말을 발견했을 때의 철렁함처럼 내 상상력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우선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말 앞에서 늘 숙연한 마음으로 '자기검열'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검열'의 그물망이 아무리 촘촘하기로서니, 고개를 쳐드는 '의문'들은 나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말들이 내포한 의미망은 무엇일까? 슈타이너 교육사상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인지학의 몰이해로 인한 우문(愚問)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말'이 갖는 수사(修辭)의 외피가 벗겨지면서, 다시 말해 발도르프 학교를 함께 세워보자고 말이 아닌 '몸'으로 나서면서부터 이 '말'들은 급기야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인지" 검증해보아야겠다는 식의 '폭력적' 태도로 발전해가기 시작한 것이다(내가 여기서 '폭력적'이라는 과도한 표현을 쓴 것은 우리 사회를 악령처럼 지배하고 있는 '사상검증'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정확히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의 긴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말들'의 성찬은 단지, 원리주의가 불러낸 주문(呪文)이었음을, 신앙고백에 대한 요구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깨달음은 이처럼 늘, 뒤늦게 찾아오는 것일까?
그랬다. 그렇게 발도르프 교육은 물설고 낯선 이곳 한국땅에서 원리주의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다. 그리하여 '의기투합'의 시기가 지나가고 '의심'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들은 모두에게 '관계의 일그러짐'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우리는, 우리 주변과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표면적으로는 학교 건설의 경로와 조건 그리고 그 전망의 이해에 대한 관점과 입장의 차이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자신들이 이 세계의 근본이요 원리라고 인정하는 '특정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6쪽.) 아니, 승인하라고 강제하는, 원리주의에 경도된 태도가 사태의 근저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랬기에 그 '특정 세계관'에 투영된 우리의 '일부'는 어느 날 갑자기 '진짜 발도르프를 할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어느 지역에 학교가 세워지든 이삿짐 싸들고 그곳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지역주의자가 되었다. 십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십 년이면 내 아들은 18살이 된다), 그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급급해 하는 근시안자가 되었다. 따라서 '진짜 발도르프 학교를 세우려는 의지'가 없는, 그저 제 자식에 눈먼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발도르프 교육을 대안교육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이는 '운동권'이라는 비난은 모든 도덕적 훈계의 정점이요 대미였다. 사람들은 도덕적 열패감에 시달리며 동요했다. 우리의 동력은 현저히 떨어져 나갔다.
이렇듯 무릇, 원리주의는 진리독점주의와 한몸이기 때문에 '진짜'로 위험하다. 원리주의는 독단론에 기초한 '진리'의 선포자이고 집행자이며 심판관이다. 이 진리에 반해 이견을 보이고 차이를 드러내면 '이단'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여기서 원리주의자들이 왜 대화가 아닌 '지도'의 방식을 그토록 선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단순히 관점과 입장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소름이 돋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권력'이기 때문이다.
'진짜'를 어려운 말로 바꾸면 '원조'이다. 이 원조의 자장(磁場)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인지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지 않은 어설픈 방법론적 차용 수준에 불과하며, 따라서 매우 위험한 것으로 '지목'된다. 원리주의자들의 독단론이 왜 위험하며 빈곤한 상상력에 스스로 시달리는지는 '대안교육'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대안교육에 대한 과격한 폄하의 언설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발도르프 교육이 대안교육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망의 표현인 셈이다. 물론 독일에서의 발도르프 학교는 대안이라기보다는 이미 하나의 '제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이 소중한 지면을 더 이상 낭비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이 한국적 원리주의는 최근 그 자장을 빠르게 확대해가고 있다. 시쳇말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면 탓할 바가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브랜드화'의 방식을 통해서라는 데에 있다. 발도르프 교육은 이미 각광받는 하나의 상품, 그것도 요즘 유행한다는 '명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판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구나 교육현실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지옥 같은 이 현실에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처럼 위태롭고 반교육적인 것은 없다. 발도르프 교육의 우리 사회현실에의 창조적 수용이란 단지 '기술적 번안(飜案)'을 의미하지 않듯이, 동시에 브랜드화의 길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슈타이너 교육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하는 논의가 새롭게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문재현의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민들레} 19호)라는 글은 '수용'과 관련한 '내 목소리'를 비로소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문함 탓이겠지만, 이처럼 정면에서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문재현이 그의 글에서 '슈타이너 이론의 자기 완결성, 폐쇄성'을 언급하며 "다른 이론이나 체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 이론적 대화는 불가능하며 현실과 통합도 어렵다."(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5쪽.)는 지적은 옳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와 부처가 대화를 나누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슈타이너는 대화의 통로를 차단시켰지만, 더구나 한국에서의 발도르프 교육은 원리주의적 태도에 의해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대화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생산적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문재현,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민들레} 19호, 108쪽.)를 지속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발도르프 교육의 '매력'을 우리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정서이다. 이것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면,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 희망을 가꾸어 나가자.
"신은 우리의 종교를 묻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