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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공립 초등학교에서 대안 찾기

민들레
2002-06-21
조회수 12907

아래 글은 <민들레> 20호에 실린 글입니다.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교사들과 부모들이 함께 바꿔나가는 움직임을 소개합니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대안찾기

민들레 편집실

우리 나라 학교들이 획일적이긴 하지만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도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경기초등학교처럼 유명 정치인과 재벌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예외로 치더라도 70년대부터 귀족학교로 소문이 난 서울의 리라초등학교는 시골 아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이름에서부터 '빠다' 냄새가 나는, 아이들이 모두 노란색 교복을 입고 다닌다는 그 학교도 그러나 시골 아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 그저 별나라 학교처럼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열린 교육에 앞장선 운현과 영훈 같은 초등학교들이 리라의 뒤를 이어 새로운 '명문' 초등학교로 등장했다.
서울에 사는 젊은 엄마들 가운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이들 사립학교는 '열린 교육'으로 뿐만 아니라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드세기로도 유명한 학교들이다.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물론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입학 경쟁률이 사오십 대 일이 된다는 이 학교들 못지 않게 입학 경쟁이 심한 공립학교가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시골 학교 남한산초등학교는 올해 입학 경쟁률이 사십 대 일이었다고 하는데, 이태 전까지만 해도 폐교 위기에 있던 이 작은 학교가 이렇게 변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남한산초등학교와 거산분교
남한산초등학교는 이태 전만 해도 전교생이 26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 위기에 있었다. 그러다 2001년 7월에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이 주최한 '남한산성 역사 이야기 캠프'를 계기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작은 학교 살리기 및 새 학교 만들기'라는 취지 아래 '전·입학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학부모들은 학교 설명회를 열면서 전학과 입학 희망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2000년 2학기 동안 스무 차례 가까이 모임을 가지면서 전학생 선정 기준과 방법, 학부모의 역할과 위상,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거쳐, 2001년 3월에 6개 학년 6학급, 전교생 103명, 교사 7명, 교장·교감 각 1명, 유치원 교사 1명인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이 학교의 입학 정원은 20명이다. 이 학교에 입학을 하려면 반드시 이 학교 인근 광주 지역에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당수가 주민등록만 그 지역으로 옮기고 광주 시내와 분당 지역에 살면서 아이들을 통학시키고 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교장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들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정 운영, 예산집행 따위를 교사회의에서 결정하는데, 교장도 교사의 한 사람으로 참가한다. 학급이나 학교의 중요한 결정은 학년별 학부모 모임에서 논의하고 그 결과를 학교운영위원회에 반영한다. 한 학기가 끝난 후 교사와 학부모 대표가 함께 학기평가를 하고 새학기 계획을 의논한다. 교사와 학부모가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학교에서는 수업이 80분씩 블록단위로 진행되며 블럭 사이에는 휴식시간이 30분 있다. 토요일은 네 시간 모두 체험학습으로 진행되며 수업은 곧잘 교실 밖에서 이루어진다. 정규 수업 말고도 체험학습, 계절학교, 특기적성활동을 하고 있다. 체험학습은 토요일마다 노작, 학예, 생태, 향토 견학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계절학교는 방학 전 일 주일 정도 열린다. 여름 계절학교는 천연염색, 수묵화, 도예 같은 전통공예 중심으로, 겨울 계절학교는 기악합주, 합창, 연극, 인형극, 부채춤 같은 예술활동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체험학습이나 특기적성교육은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선관무, 국악, 판소리, 수공예 같은 수업을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과 학교가 연계되고 있다.

충남 아산의 송악면에도 남한산초등학교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학교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폐교 위기에 놓였던 거산분교는 50여 가구가 그 지역으로 전입을 하고 67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오면서 현재 전교생이 103명이 되었다.
거산분교에 새로운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한 데는 지난 1999년 5월부터 농어촌 소규모 학교 살리기에 힘써온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의 힘이 컸다. 예전에 경기도 가평의 두밀분교 폐교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장호순 씨를 비롯해 소규모학교 통폐합 저지에 힘을 기울여온 이들은 그 동안의 활동방향을 구체화시켜 '전원형 작은 학교'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도시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농어촌의 작은 학교에, 그 지역 학생뿐 아니라 가까운 도시 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폐교를 막는 동시에 도시 학교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춘 전원형 작은 학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두밀분교의 경험에서 나왔다. 1994년부터 폐교 위기에 몰린 두밀분교를 살리기 위해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전학시키려 했지만 학군 문제와 통학의 어려움 때문에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폐교되고 만 경험이 토대가 된 셈이다. 그러다 작년 7월 충청남도 교육감 선거를 전후해서 이에 대한 구체적 추진방법을 논의하면서 행정지원을 각 후보들에게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특히 작은 학교 살리기를 공약으로 내건 강복환 씨가 교육감에 당선되면서 운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은 지난해 6월부터 9개 지역에서 간담회를 거쳐 적당한 학교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도시와의 거리, 지역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 등을 고려해 당진, 청양, 아산 세 지역에 각각 한 학교씩을 선정해 학부모와 교사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지금 같은 입시풍토에서 자녀들을 농촌으로 전학시킬 도시 학부모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세 학교와는 별도로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과 연결된 학교가 거산분교였다. 전교생 34명의 소규모 학교로 지난 94년부터 줄곧 폐교 압력에 시달려 왔던 거산분교 학부모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던 중이었다. 인근 마을에 있던 분교가 문을 닫으면서 본교로 통학하는 아이들의 힘든 더부살이를 직접 보고는 절대 폐교는 안 된다는 생각을 부모들이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근 도시인 천안에는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3부제 수업까지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안을 찾던 부모들이 있었다. 거기에 작은 학교 살리기에 적극적인 교사들이 합류하면서 추진 작업이 발빠르게 진척되었다. 전교조와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이기도 한 6명의 교사들은 이번 학기에 모두 거산분교로 발령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새학기를 맞이한 거산분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학생 수에서는 분교가 아닌 정식 초등학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었지만 학교 승격은 9월에 열리는 도의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기에 현재로서는 분교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분교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는 본교 교장과 마찰이 일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교장이 이 학교를 곱게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산조차 아직 지급되지 않고 있어, 폐교될 학교로 그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학교시설을 보수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배분교와 운암분교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정배분교. 이 학교는 지난 1999년 초 폐교 대상으로 지정됐는데, 모든 주민이 폐교반대 서명을 하고 시위도 하면서 학교를 지켰다. 그러나 전교생이 20명 이하로 줄면 언제든지 다시 폐교 대상에 오를 상황이어서 주민들은 본격적인 '학생 유치'에 나섰다. 2000년 가을에는 수도권에 사는 학부모들을 초대해 학교를 소개하는 '은행나무 축제'를 열고, 시골의 작은 학교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내세워 적극적인 홍보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마을로 이사를 오거나 서울 인근에서 아이를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 이듬해는 전교생이 35명이 되었다. 서울에서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들이 힘을 모아 셔틀버스로 통학을 시킨다. 그러나 이처럼 애써 시골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만 교육철학이 서로 달라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학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모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원하는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해 실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마음 맞는 부모들끼리 그 안에서 또 다른 숨통을 열어가기도 한다.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운암분교는 마을학교로서의 면모를 더 많이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을사람들, 학부모들이 학교에 갖는 애정이 남다르다. {민들레} 6호에서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태 전만 해도 학생 수가 34명이던 이 학교에 이제는 64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교사도 6명으로 늘었다. 학교 가까운 마을에는 빈집들이 거의 없어 이사를 오고 싶어도 오기가 어려운 실정이다보니 새로 입학하거나 전학온 아이들 경우 주민등록만 옮겨놓고서 시내에서 통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학교의 어떤 점이 이렇게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학교에서 아이들이 키우는 토끼가 토끼장에서 살지 않고 산토끼처럼 굴을 파고 산다든가, 아이들도 그 토끼들처럼 자유롭게 뛰어 놀고 마을의 도자기 가마에서 도자기를 빚어보기도 한다든가,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다든가, 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런 점들이 매력이 아닐까.
운암분교의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달마다 한 번씩 모여서 학교 일을 함께 의논하기도 하고 정을 나눈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본교의 교장이 학교 운영에 간섭을 하면서 이른바 '기강'을 잡을 태세를 보여 같이 대책을 의논하기도 했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분교의 특성상 본교 교장의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분교에는 학교운영위가 따로 꾸려지지 않고 본교의 학운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데다 분교의 학부모는 본교의 학교운영위원이 될 수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어 한계가 많다. 작은 학교가 살아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분교 예산까지 대폭 삭감되어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분교를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항의에 예산을 추가 배정받기로 약속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작은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교육행정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길
위에서 소개한 학교들 말고도 이 땅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계신 작은 학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골의 작은 공립학교를 살리는 것은 아이들을 살리고 또 그 지역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충남 지역의 경우 당진, 청양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정작 뜻 있는 학부모들은 있어도 그런 학교에서 일할 교사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일은 더 어려울 것이 뻔한데, 게다가 다른 교사들에게는 잘난 척한다고 찍히기 십상인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교사들이 흔치 않은 것이다.
시골의 작은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경우 흔히 어떤 교육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근무 평점에서 가산점을 바라고 지원한 경우가 많아 대안적인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설령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는 교사가 있다 해도 다른 교사와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고 게다가 4-5년 임기 뒤에는 다른 곳으로 전근이 되기 때문에 교육이 일관성을 갖기가 힘들다. 전원형 작은 학교가 대안적인 학교가 되려면 결국 교사의 질을 얼마만큼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거산분교에 자원한 교사 6명을 도교육청이 임기가 남은 교사 4명을 전출시키면서까지 그 학교로 발령한 것은 그나마 파격적인 지원인 셈이다.
학군의 문제도 있다. 현재는 학교 인근 지역에 살지 않으면(더 정확히 말해서 주민등록이 그 지역에 올라 있지 않으면) 그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는데, 학교가 지역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지역에는 아이들이 없고 도시에서 작은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집이 없어 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대개가 주민등록만 옮겨놓는 편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 강남의 8학군처럼 '위장전입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남한산초등학교의 경우 올해 입학 경쟁률이 사오십대 일이 되다보니 입학자격 우선권을 확보하고자 일찌감치 유치원부터 그 학교 병설유치원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이 학교 때문에 인근의 집값이 올라갈 정도이다.


전원형 작은 학교가 더 많이 생겨나려면 무엇보다 학군 제한이 풀려야 한다.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일방형 공동학군제' 실시를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근 도시 학생들이 농촌 학교로 가는 경우에는 학군을 풀어 주되 농촌 학생들이 도시로 나오는 것은 원래대로 막아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학교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으로 붙들어두는 것은 과도기에 필요한 고육지책일 수는 있겠지만 작은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가 되어 도시 아이들도 찾아오게 된다면 굳이 그 지역에서 멀리 도시 학교로 아이를 보낼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골의 작은 학교가 정말 교육을 살리고 그 지역사회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으려면 도시 아이들을 위한 전원 학교로서의 정체성보다 지역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데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삶터와 배움터가 분리되지 않을 때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초등 교육과정이 중고등학교와 이어져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다시 도시의 중학교로 갈 수밖에 없거나 멀리 기숙학교를 찾아야만 한다면 작은 학교가 갖는 한계는 너무 빤하다. 어쩌면 수도권 인근의 시골 학교로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 중에는 초등학교는 작은 학교의 이점을 취해 위장전입을 하면서까지 시골로 보내다가 중고등학교는 다시 강남 8학군으로 위장전입해서 옮겨가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맹모맹부(猛母猛父)들의 대열 앞자리에 끼는 것이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선착순 달리기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뛰기보다 자기 길을 묵묵히 즐겁게 걸어가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 또한 남이 파놓은 우물을 찾아 몰려가기보다 스스로 우물을 파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혼자 힘으로 파기 어려우면 여럿이 힘을 모으면 된다. 주위를 돌아보면 손을 맞잡을 이들은 많다. 그리고 이 땅 밑에는 어디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우물파기가 힘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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