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양육과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명의 흥망성쇠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제도가 발달한 사회는 자연재해나 산업재해 등 각종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절대적 위험이 줄어드는 만큼 작은 위험에도 사람들은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일수록 사소한 일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약자 포지션에 서서 사회에 어리광을 부리는 이들이 늘어난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집과 어린이집, 학교에서 언제나 어른들의 보호 속에 있기 때문에 사고나 신체적 위험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다. 그 때문에 오히려 사소한 것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상처에도 병원을 찾는다. 학교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난다. 군대도 옛날에 비해 병영 여건과 인권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지만 군생활을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많아진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권위주의가 퇴색하는 흐름에 발맞추어 아동인권과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과 부작용이 따르는 법. 아동인권과 학생인권이 강조되면서 이제는 정당한 훈육도 학대로 비칠 수 있게 되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고발이 두려워 더 이상 훈육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선진 사회일수록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고, 당국과 시민이 합심하여 아동학대를 감시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서도 학대 요소를 찾게 되면서 육아 자체가 위험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다.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린 부모를 자녀가 고소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집안 문화나 개인의 성향보다 시대적 흐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아이중심의 문화는 오늘날 선진국의 보편적인 흐름이다. 많은 가정에서 외식 때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선택권을 아이들이 갖는다. 심지어 약을 먹고 안 먹는 것도 아이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있다. 스웨덴의 한 컬럼니스트가 아이에게 의학적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 사례는 오늘날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부모들은 아이와 관련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을 점점 어려워한다.


 “아동 중심의 육아를 기반으로 하는 스웨덴 가정에서 아이는 때때로 부모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한다. 소소하게는 저녁 메뉴부터 휴가철 여행지까지 스웨덴의 부모는 작은 결정 하나하나까지 아이와 상의해서 결정한다. (...) 서양에서는 극도로 어린이 중심적인 문화가 생겨났는데, 서유럽 나라들이 주로 그렇다. 그 배경에는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아쉬운 게 없도록 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이며,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아이의 말에 반박하지 않으며, 아이를 언제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부모라는 관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은 아이 같은 어른을 길러내는 문화다.”(다비드 에버하르드, 권루시안 옮김,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갖게 되었나, 진선북스, 2016, 191쪽.)

 

서구 사회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아버지가 힘을 잃으면서 가정에서 권력의 무게중심이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서구의 68세대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자유를 얻으려 했지만 * 그 대신 자신도 모르게 아이라는 독재자를 스스로 옹립한 셈이다.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이상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교육도 ‘눈높이 교육’을 강조하게 되었다. 탈권위주의가 확산되면서 이제 좋은 아빠의 기준은 얼마나 아이와 잘 놀아주는지, 얼마나 친구 같은 아빠인지가 되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권위적인 부모’와  ‘권위 있는 부모’를 혼동한다. 권위적인 어른이 아닌 권위 있는 어른을 가까이에서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 힘들다. 다비드 에버하르드는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갖게 되었나>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어른을 어른으로 보는 것은 훨씬 중요하다. 그럴 때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띠는지를 점진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갖는다. 육아는 어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지, 아이와 어떤 게임을 하며 놀지를 정하는 과정이 아니다.”

아직 인권 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아동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자칫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다.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낮고 아동학대가 빈번히 일어나는 사회에서 아동중심주의의 부작용을 경계하자는 주장은 너무 앞서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으면서 자녀와 친밀하게 지내는 부모들의 노하우를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가 성장하려면 롤모델이 되는 어른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아이의 성장에 세 명의 어른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엄격한 어른의 역할을 하는 부(간혹 모)와 자애로운 모(또는 부), 그리고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이모나 삼촌 같은 동성의 어른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과 저런 어른 사이에서 흔들리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이 어른의 역할을 포기하게 되면 아이들은  ‘몸만 어른’으로 자라나기 쉽다. 21세기 들어 ‘어른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일본 사회에 대한 우치다 타츠루의 염려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유효할 것이다. 아이 같은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점점 쇠퇴해가는 것은 문명이 맞이하는 역사적 수순일지도 모른다. 

선진국처럼 아이들이 관리되는 사회에서 혁신적인 인재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헬리콥터 부모 아래서 도전 정신이 자라기는 힘들다. IT산업은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은 68세대가 일군 것이다. 제록스의 파크 같은 세계적인 연구소를 이끈 사람들이 젊은 시절 히피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마초를 팔아 창업 자금을 마련했던 스티브 잡스도 한때 히피였다.(췌장암 진단을 받고서 대체요법에 의지했던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오래 유지되는 배경에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도 있지만 제3세계로부터 인재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인도와 동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유학 온 젊은이들이 실리콘밸리의 두뇌 집단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2백 년 이상 전성기를 구가한 나라는 없다. 동양도 서양도 한 왕조는 백 년 남짓 반짝한 뒤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조선 왕조가 5백 년 동안 이어졌지만 전성기는 세종 전후 백 년 정도였다). 해가 지지 않았던 대영제국도 저물고 지난 한 세기를 주름잡았던 팍스 아메리카나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반딧불처럼 반짝 빛을 발하던 일본은 금세 빛을 잃고 이제 한국과 중국이 떠오른다. 한쪽의 쇠퇴와 몰락이 다른 쪽의 부흥을 낳는다. 부분의 불균형이 전체의 균형을 가져온다. 한때 무성하던 식물 군집도 때가 되면 쇠락하고 다른 식물이 그 자리에 들어서듯이. 그리하여 생태계의 다양성이 유지된다.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또한 큰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혁신과 성장의 시대가 끝나면 관리와  현상 유지의 시대로 접어든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관리만 잘해도 꽤 오랫동안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으므로 선진국이 쉽게 후진국이 되진 않는다. 일본의 경우 관리에 실패하면서 후진 속도가 좀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일본이 활력을 잃어가면서 한국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경제를 이끄는 제조업의 중심이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으로 넘어왔다. 머지않아 한국이 쇠퇴하게 되면 중국이나 베트남이 부흥기를 맞을 것이다. 그렇게 문명은 돌고 돈다.


*  퀸이 노래한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지만,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고뇌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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