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핼러윈 참사와 후불제 민주주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축제가 거의 없다. ○○축제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축제들은 지역특산물 판촉 행사에 가깝고, 추석이나 설 같은 전통 명절은 가족 상봉의 날이어서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가족 또는 연인들 중심의 축제여서 솔로들에게는 더 쓸쓸한 날이다. 반면 핼러윈은 간단한 분장만으로 혼자서도 축제 무리에 끼일 수 있는 드문 축제다. 리우 카니발처럼 사람들이 무리지어 즐기는 축제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 핼러윈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이유다. 평상시라면 클럽 같은 곳이 작은 규모로나마 비슷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지만 십대들은 그나마 거기도 갈 수 없다. 많은 아이들이 핼러윈데이를 손꼽아 기다린다.

핼러윈 축제는 원래 서양인들이 그들의 귀신을 달래는 날이다. 글로벌 세상이 되면서 귀신들의 활동 영역도 글로벌해진 셈이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또한 서양 귀신과 함께하는 축제다. 기독교가 로마 주류 사회의 종교가 되지 못했다면 예수도 중동 변방의 귀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북구 신화에 나오는 산타 덕분에 더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축제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산타클로스 생일로 아는 아이들도 있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부활절을 더 큰 축제일로 여기지만 한국에서는 기독교계 축일 이상의 의미는 없다. 

축제다운 축제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 핼러윈 축제를 자기들 문화로 받아들이는 신세대를 나무랄 수는 없다. 서구의 문물과 사상을 수입해오기 바빴던 기성세대가 서양 귀신이랑 노는 신세대를 못마땅해하는 것은 사실상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일하고 공부하느라 놀지 못했던 자신들과 달리 놀기만 하는 듯한 아이들을 시샘하는 어른들(이라 쓰고 꼰대라 읽는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들의 편협한 시각을 젊은이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쉴 틈 없이 일만 한 세대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전쟁통에 고향에서 뿌리 뽑혀 도시 변두리에 둥지를 틀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이들이 축제를 즐길 여유를 갖기는 어려웠다. ‘잘살아보세’라는 노랫소리에 맞춰 월화수목금금금 일을 해야 했고, 그 자녀들은 학교와 공장에서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먹고살만해진 오늘날의 손자 세대는 낯선 서양 귀신들이랑 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거리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은 이 땅의 근대사가 빚어낸 슬픈 세대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 데 가장 큰 책임이 있고 가장 많은 이권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은 젊은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발뺌하기에 바쁘고, 어떤 이들은 공공연히 웃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더라면 이런 황망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이렇게 후안무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가 겪는 혼란으로 치부하기에는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은 아름다운 인간상과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추한 모습을 맞닥뜨려야 하는 걸까. ‘국뽕’의 환각 속에서 잠시 선진국인 양 기분 좋은 착각에 빠졌더랬다. 민얼굴을 마주할 때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위기에 취약하다. 이제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까지 위협당하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청구서가 계속 날아올 것이다. 거기에는 오래전 내가 먹은 밥값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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