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어린이 연합' '고무호스 사용법 연구회' '전국 집에서 누워 있기 연합'... 이 깃발들의 아우성이 말하는 것
동문의 화, 동문의 힘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충암고등학교 학생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윤석열을 비롯해 계엄을 주도한 자들이 충암파로 알려진 동문들이어서다.** 충암고 현 이사장은 이들을 “부끄러운 동문”이라며 손절하려 하지만 이들의 학적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암고가 전국에서 교련 과목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학교 중 하나인 걸로 미루어 볼 때 보수적인 국가관과 교육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사립학교인 충암고는 윤석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로 바둑과 야구로 유명한 학교였다. 재단 설립자가 바둑과 야구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 1969년 학교 설립 후 70년에는 야구부를, 이듬해에는 바둑부를 창설해 재단 차원에서 집중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간에서 ‘충암사단’이라 불리는 충암고 바둑부 출신 중에는 이창호, 유창혁 같은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십여 명에 이르며 동문들의 누적 단수가 1000단을 넘어섰다.(이 수치는 국내 전체 단수의 48%에 이른다.) 세계 바둑계를 석권한 충암사단과 국가 권력을 쥐락펴락한 충암파는 어떤 연결점이 있는 걸까.
작은 집단의 결집된 힘은 생각보다 위력적이다. 바둑부의 학생들은 경쟁 관계이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동학 관계이기도 하다. 집단에서 뛰어난 사람이 등장해 지식을 공유하게 되면 도약이 일어난다. 도약은 또 다른 도약을 낳으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종의 상향 평준화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 만화계는 토키와장***에 모인 만화가들이 일군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한 거장들의 기법을 서로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한국의 근대화를 박정희, 박태준을 비롯한 육사 출신들이 주도한 것처럼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를 주도한 인물들은 요시다 쇼인이 설립한 쇼카손쥬쿠(松下村塾) 학숙 제자들이었다.
긍정적인 면으로든 부정적인 면으로든 학연과 학벌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인간관계다. 학교는 거기에 적을 두기만 하면 친구와 선후배, 사제지간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는 상당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학연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서로를 묶어준다. 진입 장벽이 있는 명문학교의 학연으로 맺어진 학벌의 끈은 더 질기다. 드물게 동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이도 있지만 동문의 덕을 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인맥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이 자녀를 명문학교에 보내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혈연과 지연은 태어나면서 정해지지만 학연은 살아가면서 취득하는 것이어서 더 좋은 연을 맺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 동문보다 고등학교 동문이 대체로 더 끈끈한 것은 십대 시절의 우정이 이해관계보다 인간적인 유대감에 더 기반하기 때문일까. 대학은 수업 시간이 개별화되어 있는 반면 고교는 학급 단위로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내는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로의 땀 냄새를 맡고 호르몬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친밀한 관계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되면 고등학교 수업 시간도 개별화되어 친밀함의 그물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 십대 시절에나 가능한 우정을 맺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정이 학연이나 학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다.
* 사립학교 교복이 눈에 띄는 편이어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겨울방학까지 교복 자율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 김용현 국방부장관, 이상민 행안부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황세영 101경비단장, 박종선 777사령관 모두 윤석열과 충암고 선후배 사이다. 대통령 경호처장을 지낸 김용현 후임으로 하마평에 오른 이충호 치안감 역시 충암고 출신이다.
*** 2층 목조건물이었던 토키와장은 1982년 해체되었다가 2020년에 복원해 만화박물관으로 개관했다.
**** 한국의 웹툰 산업이 세계를 주름잡게 된 것도 작가들이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서로 기법을 전수한 덕분으로 분석되고 있다.
격차사회와 인맥
우리사회의 정관계와 재계는 학연과 혼맥 등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구사회도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이 혼맥으로 얽혀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3세기 동로마 멸망 이후 19세기 나폴레옹의 등장까지 6백여 년간 유럽의 패권을 쥐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근친혼의 부작용인 주걱턱으로 유명하다. 결혼동맹으로 전 유럽 왕가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은 곳이 없어 유럽의 왕가는 모두 친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늘날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화된 사회구조는 여전하다. 전형적 계층사회인 프랑스의 경우 한국보다 더 학연과 학벌을 따진다고 한다. 한국은 전후 토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이 몰락했지만 다시금 새로운 계층사회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인간은 몇십만 년 동안 부족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몇천 년의 왕국 시대를 거쳐 공화국 시대가 열린 지 이삼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일상의 삶은 여전히 가족 또는 부족 단위로 이루어진다. 근대화 이후 유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촌 시대가 되었지만 부족주의 근성은 그대로다. 외국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고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이들도 어떤 면에서는 엘리트족이라는 부족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학벌과 재벌 등 다양한 부족에 동시에 속해 있기도 할 것이다.
부족민들이 자기편을 늘이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상종의 법칙을 따른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인 명문대들은 힘을 더 키우고자 앞다퉈 입학 정원을 늘리고 최고지도자 과정을 개설하는 식의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자기증식을 해왔다.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 한 해 졸업생이 약 1만 명인데 비해 한국의 SKY 3개 대학 졸업생이 1만 5천 명에 이른다. 그 결과 동문 수가 너무 늘어나면서 오히려 학벌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전략을 잘못 구사해 희소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나든 것은 학력이 미치는 유형무형의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학력 인플레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학벌사회의 꼬리 또한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것이다. 인맥이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벌 같은 관계망은 생애주기와 함께하므로 학벌로 구축된 기성세대가 은퇴하면서 서서히 그 연결고리가 약화되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력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학벌의 균열을 가속시키겠지만, 또 끊임없이 등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그 균열을 땜질할 것이다.
한국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기득권층은 학벌과 혼맥 등으로 자기편을 늘임으로써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가는 데 반해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약자들의 안전망은 더 약해진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한편에서는 자기계발을 부추기며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자기계발 신드롬은 문제의 본질이 사회구조적인 데 있음을 은폐한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의 등장’은 고도성장기를 거친 모든 사회가 맞닥뜨리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양극화 사회에서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학력과 학벌을 추구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고 격차사회가 바뀌진 않는다.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이들이 권력을 잡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제도적 차원의 안전망과 함께 가까운 이들끼리 상호부조의 연결망을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인문학 공부모임인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노후를 대비해 새롭게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제도가 줄 수 없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이 만든 사회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은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사회라 해도 일은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도 인맥의 힘은 작동하기 마련이다. 촛불시민 또한 인맥의 힘으로 움직인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힘이 세상을 바꿔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싸움은 공동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싸움의 승패는 정해져 있다.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난리통 속에서도 인간성이 꽃필 수 있음을 믿자.
* 이희경, 『한뼘 양생』, 북드라망, 2024.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펴내는 저널 《교육, 제4의 길》에 실린 칼럼입니다.
'말 안 듣는 어린이 연합' '고무호스 사용법 연구회' '전국 집에서 누워 있기 연합'... 이 깃발들의 아우성이 말하는 것
동문의 화, 동문의 힘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충암고등학교 학생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윤석열을 비롯해 계엄을 주도한 자들이 충암파로 알려진 동문들이어서다.** 충암고 현 이사장은 이들을 “부끄러운 동문”이라며 손절하려 하지만 이들의 학적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암고가 전국에서 교련 과목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학교 중 하나인 걸로 미루어 볼 때 보수적인 국가관과 교육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사립학교인 충암고는 윤석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로 바둑과 야구로 유명한 학교였다. 재단 설립자가 바둑과 야구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 1969년 학교 설립 후 70년에는 야구부를, 이듬해에는 바둑부를 창설해 재단 차원에서 집중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간에서 ‘충암사단’이라 불리는 충암고 바둑부 출신 중에는 이창호, 유창혁 같은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십여 명에 이르며 동문들의 누적 단수가 1000단을 넘어섰다.(이 수치는 국내 전체 단수의 48%에 이른다.) 세계 바둑계를 석권한 충암사단과 국가 권력을 쥐락펴락한 충암파는 어떤 연결점이 있는 걸까.
작은 집단의 결집된 힘은 생각보다 위력적이다. 바둑부의 학생들은 경쟁 관계이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동학 관계이기도 하다. 집단에서 뛰어난 사람이 등장해 지식을 공유하게 되면 도약이 일어난다. 도약은 또 다른 도약을 낳으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종의 상향 평준화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 만화계는 토키와장***에 모인 만화가들이 일군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한 거장들의 기법을 서로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한국의 근대화를 박정희, 박태준을 비롯한 육사 출신들이 주도한 것처럼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를 주도한 인물들은 요시다 쇼인이 설립한 쇼카손쥬쿠(松下村塾) 학숙 제자들이었다.
긍정적인 면으로든 부정적인 면으로든 학연과 학벌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인간관계다. 학교는 거기에 적을 두기만 하면 친구와 선후배, 사제지간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는 상당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학연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서로를 묶어준다. 진입 장벽이 있는 명문학교의 학연으로 맺어진 학벌의 끈은 더 질기다. 드물게 동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이도 있지만 동문의 덕을 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인맥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이 자녀를 명문학교에 보내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혈연과 지연은 태어나면서 정해지지만 학연은 살아가면서 취득하는 것이어서 더 좋은 연을 맺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 동문보다 고등학교 동문이 대체로 더 끈끈한 것은 십대 시절의 우정이 이해관계보다 인간적인 유대감에 더 기반하기 때문일까. 대학은 수업 시간이 개별화되어 있는 반면 고교는 학급 단위로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내는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로의 땀 냄새를 맡고 호르몬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친밀한 관계의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되면 고등학교 수업 시간도 개별화되어 친밀함의 그물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 십대 시절에나 가능한 우정을 맺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정이 학연이나 학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다.
* 사립학교 교복이 눈에 띄는 편이어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겨울방학까지 교복 자율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 김용현 국방부장관, 이상민 행안부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황세영 101경비단장, 박종선 777사령관 모두 윤석열과 충암고 선후배 사이다. 대통령 경호처장을 지낸 김용현 후임으로 하마평에 오른 이충호 치안감 역시 충암고 출신이다.
*** 2층 목조건물이었던 토키와장은 1982년 해체되었다가 2020년에 복원해 만화박물관으로 개관했다.
**** 한국의 웹툰 산업이 세계를 주름잡게 된 것도 작가들이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서로 기법을 전수한 덕분으로 분석되고 있다.
격차사회와 인맥
우리사회의 정관계와 재계는 학연과 혼맥 등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구사회도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이 혼맥으로 얽혀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3세기 동로마 멸망 이후 19세기 나폴레옹의 등장까지 6백여 년간 유럽의 패권을 쥐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근친혼의 부작용인 주걱턱으로 유명하다. 결혼동맹으로 전 유럽 왕가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은 곳이 없어 유럽의 왕가는 모두 친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늘날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화된 사회구조는 여전하다. 전형적 계층사회인 프랑스의 경우 한국보다 더 학연과 학벌을 따진다고 한다. 한국은 전후 토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이 몰락했지만 다시금 새로운 계층사회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인간은 몇십만 년 동안 부족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몇천 년의 왕국 시대를 거쳐 공화국 시대가 열린 지 이삼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일상의 삶은 여전히 가족 또는 부족 단위로 이루어진다. 근대화 이후 유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촌 시대가 되었지만 부족주의 근성은 그대로다. 외국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고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이들도 어떤 면에서는 엘리트족이라는 부족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학벌과 재벌 등 다양한 부족에 동시에 속해 있기도 할 것이다.
부족민들이 자기편을 늘이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상종의 법칙을 따른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인 명문대들은 힘을 더 키우고자 앞다퉈 입학 정원을 늘리고 최고지도자 과정을 개설하는 식의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자기증식을 해왔다.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 한 해 졸업생이 약 1만 명인데 비해 한국의 SKY 3개 대학 졸업생이 1만 5천 명에 이른다. 그 결과 동문 수가 너무 늘어나면서 오히려 학벌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전략을 잘못 구사해 희소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나든 것은 학력이 미치는 유형무형의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학력 인플레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학벌사회의 꼬리 또한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것이다. 인맥이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벌 같은 관계망은 생애주기와 함께하므로 학벌로 구축된 기성세대가 은퇴하면서 서서히 그 연결고리가 약화되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력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학벌의 균열을 가속시키겠지만, 또 끊임없이 등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그 균열을 땜질할 것이다.
한국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기득권층은 학벌과 혼맥 등으로 자기편을 늘임으로써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가는 데 반해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약자들의 안전망은 더 약해진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한편에서는 자기계발을 부추기며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자기계발 신드롬은 문제의 본질이 사회구조적인 데 있음을 은폐한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의 등장’은 고도성장기를 거친 모든 사회가 맞닥뜨리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양극화 사회에서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학력과 학벌을 추구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고 격차사회가 바뀌진 않는다.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이들이 권력을 잡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제도적 차원의 안전망과 함께 가까운 이들끼리 상호부조의 연결망을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인문학 공부모임인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노후를 대비해 새롭게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제도가 줄 수 없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이 만든 사회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은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사회라 해도 일은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도 인맥의 힘은 작동하기 마련이다. 촛불시민 또한 인맥의 힘으로 움직인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힘이 세상을 바꿔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싸움은 공동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싸움의 승패는 정해져 있다.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난리통 속에서도 인간성이 꽃필 수 있음을 믿자.
* 이희경, 『한뼘 양생』, 북드라망, 2024.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펴내는 저널 《교육, 제4의 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