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이름을 부르는 일의 의미

 

며칠 전 《시민언론  민들레》가 이태원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조용하던 민들레 홈페이지에 하루 수만 명이 다녀가는 일이 벌어졌다.《 민들레》 라는 교육잡지를 발간하고 있고 홈페이지 도메인도 mindle.org여서 헷갈린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분은 후원 신청을 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 잡지 마감하느라 경황 없는 와중에 항의 전화도 여러 통이 걸려왔다. 유족 동의 여부를 빌미로 ‘패륜’ 운운하는 정부의 프레임 짜기에 말려 들어간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시민언론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족의 동의를 얻어 차례 차례 발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을 문제 삼기 전에 보름이나 지나도록 정부도 언론도 왜 그 일을 하지 않았는지, 시민언론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그들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참사를 정쟁거리로 만들지 말자는 프레임에 걸려들어 제 역할을 못한 야당 책임도 적지 않다. 정쟁 말고 제 할 일을 하면 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해야 할 말도 하지 않는 건 정치인의 직무 유기다. 참사도 막지 못하고 애도도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 언론들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이태원 거리에서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이다. 인간은 무리짓는 동물이고, 집단을 이루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들의 죽음을 개인적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정부의 행태는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것일 뿐이다.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를 서둘러 만들고 엿새째 조문 쇼를 한 것은 애도 분위기로 참사의 책임을 덮고 ‘이태원 희생자’라는 집단 속에 개개인의 존재감을 묻어버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위패와 영정이 있으면 그렇게 묻힐 수 없다는 걸 알고 계획적으로 한 일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도 사회적 죽음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밝히는 일은 이들을 개개인으로 살려내는 일이자 사회적 죽음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은 꽃이 된다. 현기영 선생이 ‘순이 삼촌’을 호명하기 전까지 제주 4.3 희생자들은 ‘3만 명’이라는 숫자에 지나지 않았었다. 선생은 당신이 자랄 때 고향에 드리우고 있던 그늘의 정체를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숫자 속에,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기 이전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에 대한 예의다. 이는 산 사람들의 의무이자 자신에게 드리운 그늘에 빛을 비추는 일이기도 하다.

거리에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의 죽음은 결코 숨겨야 할 부끄러운 죽음이 아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서둘러 묻으려는 자들이 범인이다. 시간이 그들 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기억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외면하고 덮어버린다고 그늘이 사라지진 않는다. 거기에 빛을 비추는 것만이 그늘을 사라지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게 떠나보낸 유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는 일은 결국 시민들의 몫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유가족 모임에서 첫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34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민변과 합동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희생자 이남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빼앗겼지만 엄마는 더이상 눈물만 흘리는 무능한 엄마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들이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밝혀달라고 소리치겠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날의 진실과 투명한 조사, 책임 있는 자의 사퇴,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입니다. 영정 사진도 위패도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유족들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고 왜 당신들의 자녀가 거리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진상 규명부터 하라고. 참사 이튿날 아침, 정부는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부터 했었다. 어이없는 참사에 황망해 하던 시민들 중에 이 발표를 듣고 뜨악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오늘도 보상을 언급했지만, 보상금이 살아 있던 아들딸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일어난 참사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다름없다. 국가배상으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은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영정 앞에 사죄하고 유족들에게도 예를 갖춰 정식으로 사과하는 일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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