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전한길은 어떻게 ‘한국사’ 일타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노량진 공무원 학원 수업 풍경


최근 탄핵 정국에서 한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한 전한길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계엄 선포가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한 조치였다는 발언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전한길은 2023년 육사 교정의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당시 본인의 입장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우린 팩트만 공부하면 된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30 남성들 중에 태극기부대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전한길 같은 이들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공무원이 인기 직종이 된 덕분에 일타강사가 된 그의 이력을 보면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리학과를 나와 아르바이트로 학원강사를 하면서 시험문제를 분석해 만든 강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전업강사로 나서게 된다. 2009년부터는 수능 시장을 떠나 공무원 시험 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무원단기학교(공단기)에서 한국사 강사로 나서면서 일타강사로 자리를 잡았다. 국가직·지방직 9급 공무원, 소방 및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한국사 과목이 들어가는데, 단편적인 지식을 묻는 문제 자체가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전한길은 강사로도 유명하지만 수험 교재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한 수험생이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한 노트를 본인이 돈을 주고 사서 내용을 보충해 만든 <합격생 필기노트>가 유명세를 타면서 일타강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수험생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강의가 그렇듯이 한국사 강의 또한 역사 강의가 아니라 문제풀이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다. 전한길은 수업 중에 자기가 쓴 교재(문제집, 필기노트, 암기노트 등 20여 권이나 된다)를 홍보하는 멘트를 과하다 싶게 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튜브 <꽃보다 전한길> 화면. 서체에서 힘(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드러난다.


전한길 같은 무지성 극우가 한국사 일타강사가 될 수 있는 배경에는 암기를 바탕으로 하는 현행 공무원 시험제도가 있다. 전한길 역시 암기식 수업을 하는데, 이차돈이 순교한 해(527년)를 “오! 이차돈” 식으로 암기 요령을 곁들여 알려줘서 인기를 얻었다. 경상도 억양을 적절히 살려 중요한 내용을 잘 기억되게 하는 것도 남다른 강의 기술이다. 강의 중에 공부 관련한 쓴소리와 사담을 많이 하기로도 유명한데, 9급 공무원이라도 되어 백수를 면하고 싶은 수험생들의 아픈 구석을 찔러 주의를 환기시키는 전략으로 보인다. 강의 중에 “씨발” 같은 비속어를 곧잘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출문제를 풀이하다 “씨발, 문제를 이렇게 내면 어떡합니까!”라며 출제자를 향해 분노를 터트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시험문제 한 문제로 평생 공무원이 되냐 못 되냐 운명이 결정되는데 ‘고려 후기 역사서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라’ 같은 자기도 못 맞출 이런 지랄 같은 문제를 내면 안 되죠.”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데서 수험생들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도 역사의식도 필요 없는 역사 시험문제가 문제인 셈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극우 성향의 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전한길은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헌법재판소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발언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의 격정을 가누지 못해 울먹이는 말투와 표정, 과장된 몸짓을 보면 정신 상태가 그다지 온전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질 문제라기보다 이런 사람이 한국사 일타강사가 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제도의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대체 우리 사회는 어떤 공무원 상을 그리고 있는 걸까.

학자들은 공무원 시험이나 수험 교재 같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학 강의보다 이쪽일 것이다. 전한길의 수강생 수가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어느 역사학자보다 영향력이 큰 셈이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한다면 (역사)학자들도 시험문제 경향이나 수험 교재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 제도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무런 의미 없는 정보를 외우도록 강요하는 지금 같은 출제 방식이라면 차라리 한국사 과목을 없애는 게 나을 것이다.


현병호_계간《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