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단상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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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대

걸어서 퇴근하는 길, 조용한 천변에 진동소리가 퍼진다. 오가는 이들의 주머니, 가방에서 일제히 울리는 재난문자 신호다. 전 국민이 하루에 한두 차례씩 (그냥 재난문자도 아니고) ‘긴급’ 재난문자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처음엔 화들짝하며 휴대폰을 열어보다가, 너무 잦으니 그마저 무뎌졌다.

언론에서 ‘재난의 시대’란 말을 반복하는 걸 보고 너무 과한 표현 아닌가 구시렁댔지만, 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내였다. ‘재난의 시대’가 맞다. 유엔에선 재난을 ‘사회의 기본조직 및 정상 기능을 와해시키는 모든 사건’이라 규정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돌림병 하나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다. 일상은 멈추었고 그 자리에 공포와 두려움이 들어찼다. 연쇄적 불황으로 누구는 일자리를 잃고 누구는 과노동으로 목숨을 잃는다. 무엇보다 서로를 병균 보듯 피해 다니며, 옷깃이라도 스칠라치면 흠칫하는 이 기이한 현실이 ‘재난의시대’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현대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상한 말을 통해 우리가 생각보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왔음을 확인하고 있다. 모이고 싶고, 어울리고 싶고, 같이 밥 먹고 싶고, 얼굴 마주보며 대화하고 싶어 하는 존재들임을. 정신없이 흘러오던 삶의 속도를 강제로 늦추고 나니, 익숙한 것들이 생경하게보인다.


같은 재난 앞에서 고통의 크기는 다르다

예기치 못한 듯 세계는 당황하고 있지만 실은 예견된 일이다. 사스, 메르스에 이어 꼬박꼬박 새로운 돌림병이 찾아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염성은 높고 치사율이 낮은 이유는 바이러스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숙주로 삼은 감염자가 죽어버리면 자신의 생존 가능성도 낮아지므로 감염자를 오래 살려두면서 더 널리 후손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거나, 평균보다 두 배 이상의 잠복기를 거치는 등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바이러스의 위장술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신종코로나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이 파괴되고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의 생활 영역이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인간에게도 전염 가능한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더 쉽게 전해지게 되었다. 낮은 온도에서 활동하던 세균들이 지구 온난화에 적응하면서 깨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 년 내내 얼어 있던 캐나다 북쪽의 영구동토층이 여름철이면 질퍽해지는데, 2014년 이곳에서 발견한 700년 전 순록의 배설물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또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맞닥뜨린 이 재난은 천재가 아니고 인재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그 크기가 동일하진 않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운신의 자유’를 잃었지만 정원이 딸린 넓은 집에 사는 사람과 두세 평 남짓한 고시원이나 쪽방촌에 사는 사람의 갑갑함은 천지 차이다. 후자의 경우 자가격리 조치라도 내려진다면 그 일상은 감금이나 다름없다.1 밀린 월세 때문에 폐업을 고민하는 소상공인과 재택근무를 하게 된 대기업 사원이 체감하는 코로나19 시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궁극의 방법이지만 당장 실현이 어렵다면, 그 다음 기댈 수 있는 것은 ‘시민성’이다. 

몇 주 전, 온라인 쇼핑몰의 마스크를 싹쓸이할 수 있는 매크로2를 개발해 판매한 이가 경찰에 붙잡혔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의료진들조차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공동체의 위기를 그는 돈벌이 기회로 보았다. 한편, 정확한 정보가 없어 우왕좌왕하던 때 코로나 앱을 만들어 무료 배포한 사람도 있다. 정부보다 발 빠르게 확진자의 동선과 선별 진료소 위치를 공유해 불안한 시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같은 기술을이렇게 다르게 쓰는 데는 개인의 도덕성 차이도 있지만, 더 큰 건 시민성의 차이다. 시민성은 ‘타인에게 감응하는 능력’이며 ‘자기의 이익을 자제하는 힘’이다. 이 힘은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때 발휘된다.

코로나19 감염이 시작될 무렵, 출판사 근처에서 다섯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공개된 그의 동선은 며칠간 출판사 반경 1킬로미터 안을 오갔다. 바로 옆 건물에 있던 교회가 신천지 교회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폐수술을 한 적이 있는 나는 긴장했다. 일대 식당에도 가지 않고, 교회 건물에 있는 편의점도 이용하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오던 사람이 가까워지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마트에서 큰 소리로 ‘떨이’를 외치는 판매원에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몸을 사린 채 며칠을 보내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모두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나 자신이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시작된다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마스크도 안 쓰고 숱한 독감환자들을 만나온 의사가 왜 독감에 걸리지 않는지3 관련 글을 읽으며 바이러스 감염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두려움이 좀 가셨다. 인체에서 튀어나온 바이러스는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며 30분 혹은 수 시간 내에 소멸한다는 것, 그 바이러스가 새 생명을 얻을 기회가 바로 인간의 ‘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수시로 손을 씻었다.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출판사 문손잡이도 아침마다 소독했다. 

야외에선 굳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걸 알고는 꼭 필요한 이들을 생각하며 마스크를 사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을 지날 때면 ‘내가 옮을까봐’가 아니라 혹시 ‘내가 남에게 옮길까봐’ 마스크를 썼다. 겉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개인의 안위를 지킬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생겨났다. 세상 속에서의 내 존재와 역할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배움은 뭘까

전국의 학교가 4월이 되도록 개학을 못하고 있다. 언제 문을 열 수 있을지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아이들은 2020년 봄을 어떻게 기억할까. 학교 안 가서 좋았다거나, 심심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거나, 밖에 나가 놀지 못해서 답답했다거나…. 이대로라면 훗날 ‘한 달 넘게 개학이 연기됐던 사건’ 정도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는 에피소드라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운 재앙은 언제든 지구를 급습할 테고, 인류가 낯선 공포와 두려움 속에 보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코로나19는 단순한 돌림병이 아니다. 발 딛은 오늘을 이해하고 바라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배워야 할 하나의 ‘사건’이다. ‘삶과 멀어진 교육’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으로 배우는 교육’의 물꼬가 트였지만, 여전히 교육은 아이들에게 ‘눈앞에 닥친 커다란 세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재난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는 ‘지금’을 배우는 일이다. 코로나19에는 인종차별과 혐오의 문제, 소득 불평등과 비정규직 문제까지 이 시대의 숙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스크 대란은 디지털 기술과 윤리를, 신천지 사태는 ‘인간의 신념과 종교의 가치’를 되묻게 한다. 재난기본소득은 미래의 노동, 기본소득과 연결된다. ‘방콕’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살아 있는 교육, 삶을 위한 교육이며 몸으로 배우는 교육이다. 

주 6일 수업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전국의 학교는 개학과 동시에 일 년 내내 수업일수 맞추기에 허덕일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테지만 형식뿐이던 민주시민교육, 인성교육, 인권교육, 안전교육 같은 의무교육과정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기말고사 끝나면 시간 때우느라 영화만 틀어주던 시간에 ‘코로나19에 담긴 세상’을 공부하는 게 아이들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공교육만으로 어렵다면 대안학교가, 마을학교가,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재난을 제대로 배워야 시민이 된다. 

‘2020년의 봄’을 같이 공부하고 싶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세월호 참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처럼, 오늘의 재난은 내일을 바꾸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 변화의 시작은 ‘함께’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서로의 환경4”이기 때문이다.


장희숙_ (격월간 민들레 편집장) / 128호 (2020년 3-4월)



1.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는 독방의 크기는 약 10.57㎡(3.2평)이며, 서울 신림동의 월 30만 원 고시원 독실의 경우 4.3㎡(1.3평)이다.

2. 반복 자동화 프로그램

3. ‘마스크 안 쓰는 호흡기내과 의사의 바이러스 예방법’,《한겨레》, 2020년 3월 8일자

4.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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