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단상

인간의 존엄보다 귀한 메달은 없다

민들레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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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가 두려움을 호소한 일기장.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자신의 목숨으로 체육계의 폭력을 고발한 고 최숙현 선수는 다시 태어나면 운동 같은 거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밥 먹는 것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다는 한 아이의 엄마가 오래 전에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전학을 해서 원하는 학교 축구부에 들어간 아이는 폭력에 시달리면서 한국에서는 축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스포츠계의 폭력성은 몇십 년째 이어져오는 ‘전통’에 가까워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다. 학교 운동부에 한 발이라도 들였던 사람들은 군대 문화 뺨치는 그 전통에 넌더리를 친다. 남다른 빽이 있거나 맷집이 좋아 버틴 사람 중에 소수는 운 좋게 국가대표도 되지만, 그 메달은 말 그대로 피와 땀, 눈물로 빚어진 것이다. 그렇게 선배가 된 선수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후배 선수들에게 되물림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폭로 파문으로 빙상연맹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공분하던 때가 불과 이태 전이다. 선수들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이들이 체육회나 협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이런 일은 되풀이될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으로 뭉친 이들의 강고한 연맹체, 카르텔은 지도부가 물갈이된다고 쉬 무너지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는 것 못지않게 체육계의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메달에 목매다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문제의 뿌리이겠지만,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문화가 폭력을 키우는 토양이기도 하다. 선수 개개인의 의식을 일깨우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선배가 되어 자신이 당한 폭력을 후배에게 되물림하는 문화가 바뀌려면 선수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정용철 교수와 한신대 정용수 교수가 선수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좌를 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몸글몽글’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스포츠 인권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느라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선수들에게 인문학 공부는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기회가 된다. 자신의 존엄과 다른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체육인들이 늘어나는 만큼 체육계 문화도 바뀔 것이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일화다. 시합이 끝나고 벤치로 돌아왔을 때 “공을 왜 그렇게 던졌나?”라는 코치의 물음에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잘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코치나 감독과 지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폭력적인 문화에 젖어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메이저 리그의 품격 있는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박찬호 선수는 자신의 투구에 대해 코치들과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해 비슷한 ‘문화 충격’을 겪는다니 우리 체육문화의 후진성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 이상 피 묻은 메달을 자랑스러워 하지 말자. 운동을 좋아하고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볼모로 갑질과 폭력을 일삼는 체육계의 악습을 뿌리 뽑을 때가 되었다. 고 최숙현 선수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말자.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 수도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_현병호( <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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