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단상

공부론(3)_어느 수포자의 수학 이야기1

민들레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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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포자의 탄식

 

『어느 수학자의 탄식A Mathematician’s Lament』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어 번역서 제목은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수포자는 ‘수학 포기자’의 준말이다. 이 책의 저자 폴 록하트는 수포자가 아니라 수학자이자 교사다. 그는 이 책에서 수학이 시와 같은 예술임을 웅변한다. 수학교육에 대한 비판서로 이만한 책이 드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수학은 내게 십대 시절의 팔팔한 에너지를 단숨에 집어삼키는 공룡 같은 존재였다. 이십대가 되고부터는 그놈의 공룡이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공룡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 주로 낭패감 또는 패배감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삶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학의 정석>이랑 씨름하던 그 시간에 친구 정석이랑 진짜 씨름을 했더라면, 후회막급이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죽지 않아 이십대가 되어 현대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수학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를 엿보게 되면서 이제는 내가 받은 수학교육에 분노 같은 것이 일었다. 그 의미 모를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보낸 숱한 시간들이 억울하기도 하고, 흥미진진한 수학과 물리의 세계를 이처럼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교육이 안타깝기도 했다.

‘수포자’라는 말이 널리 통하는 한국사회에서 학교교육을 받고서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실 이상한 사람이다. 아니면 운이 좋거나. 수학적 사고력을 타고난, 또는 좋은 수학 선생님을 만난 드문 행운의 주인공이다. 게 중에는 수학 영재들도 있어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세계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하지만, 수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이 많다고 한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한국인이 아직 한 명도 없는 사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수학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하면서 대안 수학교과서도 만들어지고, 수학 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다음 세대 아이들은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순히 수학을 좀더 재미있게 잘 가르쳐서 수능 점수 잘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이는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북돋고 이해를 돕는 수학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호기심은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사의 호기심은 아이들에게 쉽게 전염된다. 수업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놀랄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열정이 있는 교사는 실생활에서 수학의 개념들을 찾아내어 수업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수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알면 수학에 조금 더 관심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수학에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동기가 지속되지만, 자기 문제와 연결되지 않는 외부의 동기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학적 사고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내적 에너지가 생겨난다.

발달단계에 맞게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의 표준 교육과정은 사실상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아동발달론 관점에서 보자면 분수를 이해하기에 적당한 나이는 초등 3~4학년 즈음이다. 초등 3학년 때 자연수가 아닌 수를 처음 배우게 된다. 세상을 통째로 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선과 악의 이원론적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발달단계에 맞춰 차근차근 개념을 익히고 사고력을 키워가면 수학의 세계도 그렇게 낯설고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학과 문해력

 

많은 아이들이 초등 3학년 때 분수에 걸려 수학에서 멀어진다고 한다. 분수, 약수, 공약수, 공배수 같은 용어의 개념만 이해할 수 있어도 수학과 친해지는 아이들이 좀더 늘어나지 않을까? 약수(約數)의 ‘약’은 묶을 약(約)이다. 어떤 수를 몇 개의 묶음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8은 2의 4묶음 또는 4의 2묶음이다. 2와 4가 8의 약수다.) 분수의 ‘분’이 나눌 분(分)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분수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 시간을 60등분한 것이 1분(分)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4학년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수포자들 중에는 무리수, 소수, 소인수, 방정식, 근, 제곱근, 로그, 함수, 미적분 같은 난해한 수학 용어에 걸려 넘어져 수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리수의 뜻을 정확히 아는 고등학생이 얼마나 될까. 무리수의 영어 이름 irrational number에서 ‘irrational’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중학생 정도면 흔히 쓰는 말이다. 반면 한국 학생들의 경우 ‘무리수’라는 생소한 용어부터 접하게 되어 출발선에서부터 넘기 힘든 허들을 하나 만나는 셈이다.

한자문화권 아이들이 산수를 잘하는 것은 수를 세는 언어가 십진법 연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 단위만 셀 줄 알면 십, 백, 천, 만 단위까지 어렵지 않게 셀 수 있다. 그렇다면 서구 아이들보다 수학을 못하는 이유는 난해한 용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를 세는 언어는 모어인데 반해 수학적 개념어들은 대부분 번역어이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다.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문제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문제풀이 식 수학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는 수학이어야 한다.

수학 용어를 처음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한자어나 우리말로 옮긴 이들이 작명에 기울인 열정과 고심은 상상하기 어렵다(모르긴 해도 자식 이름 짓기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발견한 낯선 개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했을 선구자들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되겠지만, 번역어의 경우 조금 더 노력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수’는 동음이의어다. 소수점 이하를 말할 때의 소수(小數)와 1과 자신 이외의 수로는 나뉘지 않는 수를 뜻하는 소수(素數).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소수(素數)의 뜻도 추측하기 쉽지 않다. 한자어 소(素)는 ‘희다’란 뜻으로 근원적인 색(사실상 무색)을 의미한다. ‘흰 소복 차림’ 할 때 그 소다.(사실 소수는 소복 차림 귀신 못지않게 알 수 없는 수이긴 하다.) 반면 영어 Prime number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를 ‘으뜸수’라 번역했더라면 헷갈리지도 않고 이해하기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소인수분해의 경우 ‘소인수’라는 용어의 의미도 쉽게 들어오지 않지만, 그것이 소인수를 분해하는 건지 소인수로 분해하는 건지도 헷갈린다. 인수(因數)는 합성수의 구성요소(Factor)를 뜻하는 말로, 소인수분해(Prime Factorization)는 ‘소수인 인수로 분해한다’는 말이다(6은 2*3으로 소인수분해가 된다). 소수가 1과 자신 이외의 수로는 나뉘지 않는 수이니 ‘소인수를 분해한다’는 뜻이 아닐 거라고는 짐작되지만, 우리말에서 보통 ‘라디오 분해’라고 하면 ‘라디오를 분해하다’ 뜻으로 읽힌다.

방정식(方程式)의 ‘方程’은 중국 고대 수학서인 『구장산술』 8장 ‘방정’에서 1차 연립방정식을 네모난 모양(方)의 행렬로 푼 데서 생겨난 용어라고 한다.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미지수의 값을 근(根) 또는 해(解)라 한다. 영어 root를 그대로 훈역한 용어다. 한국의 수학(교육)자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학생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지 못한 것이 수포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교사들이 친절하게 개념을 설명해줬더라면 그나마 덜했겠지만, 불행히도 학창시절 동안 그런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 교사들도 잘 몰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사실 필자 또한 대수(代數)와 기하(幾何)라는 용어의 뜻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수학(代數學, algebra)이 숫자 대신(代) 문자를 써서 수식을 표현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대수학이 갑자기 쉬워진 느낌이 들었다. 기하학(幾何學, geometry)은 그리스어로 ‘땅을 측량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땅의 넓이를 정확히 재기 위해 궁리하다 보니 생겨난 학문이다. 대수학은 셀 수 있는 것을 세느라, 기하학은 셀 수 없는 넓이, 부피 등을 재느라 발달한 학문이다.

대수학이 수를 다루고 기하학이 도형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고서 수학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대수학은 산술에서, 기하학은 측량술에서 발전했으니 연역적 학문의 대표격인 수학의 조상님 대수학과 기하학도 그 출발은 매우 실용적이었던 셈이다. 대수학과 기하학 사이에 다리가 놓인 것은 데카르트가 수평선, 수직선이 교차하는 좌표를 이용해 도형을 다항식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부터다. 수학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도 수학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계속)


*  영어  ‘인수분해(factorization)’는 ‘구성요소(factor)로 분해하다’라는 뜻으로, 미국의 중학생 정도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다.


**  geometry를 그리스어 원어 의미에 가깝게 번역하자면 측지학(測地學)이 더 정확할 것이다. 幾何(기하)라는 한자어는 ‘얼마인가?’라는 뜻으로, 물건값을 물어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언뜻 산술용어 같다. 마테오 리치가 서광계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학원론』을 번역하면서 쓰기 시작하여 굳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 ‘幾何’의 발음이 geo와 비슷해서 음차 번역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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