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공부, 머리 아닌 몸으로

민들레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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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공부를 안 할 때 흔히 동기부여가 안 되어 그렇다고 말한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안 한다는 논리다. 목표가 뚜렷하고 의지가 굳으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동기부여도 환경이 받쳐줘야 되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된다 해도 목표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에너지는 오래 가기 힘들다. 행위와 목적은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이나 민중을 ‘위하는’ 행동이 쉽게 변질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강은 바다에 이르기 ‘위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물길이 바뀌는 것은 주변 지형과 중력이 만들어내는 위치에너지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정한 변화는 ‘의하여’ 일어나지 결코 ‘위하여’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맥락이 바뀌어야 아이가 바뀐다. 교육에서 곧잘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기가 아이를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굳은 결심도 흔히 ‘작심삼일’이 되는 까닭은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에는 에너지가 자체 조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성력이든 중력이든 모든 에너지는 ‘의하여’ 작동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마감 시한에 가까워서야 글을 쓰기 시작해 탈고를 하게 되는 것도 ‘의하여’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부 또한 그렇다. ‘위하여 공부’는 위함의 대상이 무엇이든 공부 그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지 못하는 반면, ‘의하여 공부’는 자체 에너지로 앞으로 나아간다. 습관이 중요한 까닭이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자리 잡고 공부를 함으로써 몸과 뇌가 그 패턴에 적응하여 저절로 작동하게 만든다. 동기나 목적의식보다 습관의 힘이 더 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강원국 작가가 ‘루틴’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첫 문장을 쓰는 일은 막막한 법이다. 그는 아침 산책을 하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 것을 정해진 의식 행하듯 하다 보면 여하튼 글이 써진다고 말한다. 뇌가 ‘이젠 꼼짝없이 글을 써야 하는구나’ 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과정이란다. 말하자면 몸의 힘을 빌어 뇌를 길들이는 방법이다.

습관은 뇌가 몸의 말을 듣게 만드는 과정이다.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해온 우리 몸은 자체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 운동이든 악기 연주든 몸을 움직이는 모든 활동은, 뇌를 거치지 않고 몸의 지성이 작동할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마라토너가 어느 시점에서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 같은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뇌가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뇌를 통제하는 단계다. 무아지경에 가까운 몰입 상태다.

습관(習慣)은 뭔가를 하고 또 해서 관성의 힘이 작동하는 것이다. 뭔가를 익히는 과정 또한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배운(學) 것을 틈틈이 익히는(習) 것이 학습의 요체이듯, 좋은 마음과 태도를 몸에 배게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학습과 교육에서 ‘습’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좋은 습을 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습은 몸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몸으로 하는 것이다.

입시교육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게 만드는 데 비해, 진짜 공부는 배우는 것이 좋아서 배우고 익히기를 즐기는 것이다. 공자의 호학(好學)이다. 어미가 자식을 안고 기뻐하듯이(好) 배움을 즐기는 이 상태는 ‘의하여’ 원리에 따라 에너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다. 한번 몰입하면 그 에너지가 계속 이어진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위하여’가 심리의 세계라면 ‘의하여’는 물리의 세계다. 심리는 물리를 넘어설 수 없다. 나무는 하늘과 땅의 에너지에 ‘의하여’ 성장하지, 하늘 높이 자라기 ‘위하여’ 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장도 그렇다. 내일을 위해 사는 아이들의 오늘은 결코 빛날 수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 "교육 낯설게 보기'에 실렸던 칼럼입니다.(2021.8.19)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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