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도덕경이 예찬하는 시대, 도덕경을 예찬하는 시대

민들레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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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기독교의 문자주의는 오래 전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예수에 관해 전승되어오던 이야기의 다양한 판본들이 오늘날의 성경으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수백 년에 걸친 논의가 있었다.(구약성서가 지금의 39권으로 정해진 것은 BC 90년경의 야무니야 회의에서였고, 신약성서가 현재의 27권으로 결정된 것은 AD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다.) 가톨릭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것 중에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간주하는 것도 있다. 정경(正經)에 들지 못한 외경(外經)과 위경(僞經)이 정경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논의 과정의 복잡함을 말해준다. 사실 위경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더라도 기독교가 지금보다 더 많은 교파로 분열되거나 어리석은 일을 더 많이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지닌 성경이 그러한데, 2,500년 전 이름도 분명치 않은 한 늙은이의 말을 전하는 두루마리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노자가 주나라를 떠날 때 국경을 지키던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5,200여 글자를 남겨주었다고 사기(史記)에서 전한다. 상편은 도(道)로 시작하고 하편은 덕(德)으로 시작하기에 ‘도덕경’이라 불린다. 도덕경은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고, 판본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도덕경의 대표적인 판본은 왕필본이다. 성경 주해자로 치면 토마스 아퀴나스에 버금가는 인물인 왕필은 서기 234년 불과 17세의 나이에 이 주해서를 쓴 천재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왕필본의 원본으로 인정되는 백서본은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말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이한 점은 덕경이 도경 앞에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인 셈이다. 오늘날 도덕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승 과정에서 첨삭 여부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비단에 쓰인 백서본보다 백 년 정도 앞선 판본으로 추정되는 곽점본은 대나무에 쓰여 있는데, 2천 자밖에 안 되는 분량임에도 백서본에 없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에는 추가된 내용이 많을 뿐더러 문장도 더 깔끔하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의 오류와 옮기는 과정에서 주석이 본문으로 들어간 오류 등이 확인되고 있다. 판본들의 차이로 볼 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노자가 함곡관을 넘으면서 5천여 자를 남겼다는 것은 전설에 가까우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다양한 사상들이 섞여 들어가면서 백서본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도덕경 중 도경은 우주론, 덕경은 치세론 또는 처세론의 관점에서 주로 해석된다. 정치술수와 처세술, 양생법에 가까운 덕경의 말들은 도경과 충돌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때문에 덕경은 여러 사람의 가필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은 예로부터 양생술에 관심이 많고 신선을 꿈꾸는 이들이 곳곳에 둥지를 틀곤 했다. 우리나라 계룡산과 지리산에 도사들이 많은 것처럼. 도교는 샤머니즘과 합쳐지면서 중국 특유의 현세적인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도덕경은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이웃 마을과도 왕래하지 않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는 아니다. 근대 이전 일본에는 다이묘가 지배하는 쿠니(國)라 불리는 300개의 부족국가가 있었다. 이웃 마을로 가려면 여권 같은 것을 소지하고 검문소를 거쳐야만 했다. 왕래하지 않는 만큼 서로 배타적이었고 가문 또는 부족 간의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되곤 했다.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내부의 긴장을 외부로 돌리기 위함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가문 간의 반목은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사회에서는 온갖 기행과 퇴행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노자를 숭상하며 신선을 꿈꾼 도가들의 기행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신선이 되고자 마약의 일종인 오석산이라는 약물을 복용해 수은 중독으로 멜라닌 색소가 빠져 피부가 투명하고 얇아지자 이를 신선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전기와 자동차 등 문명을 거부하며 18세기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아미시 공동체에서는 근친강간이 곧잘 일어나지만 공론화가 되지 못하고 묻혀버리곤 한다. 고립된 종교공동체에서 퇴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성경도 도덕경도 수천 년 전,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경전들이다. 거기에는 인류 보편의 지혜가 담겨 있지만, 사회구조도 문화도 현저하게 달라진 오늘날에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도덕경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많은 이들이 도덕경에서 지혜와 위안을 얻었던 배경에는 도덕경이 생겨난 춘추전국 시대와 유사한 개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하면 된다’를 부르짖던 개발독재 시대를 치면서 지나친 작위에 지친 이들에게 무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노자의 가르침이 어필했던 것이리라.

가르침과 배움을 키워드로 도덕경을 다시 풀어쓴 『배움의 도』가 교사들에게 많이 읽힌 것도 교육 과잉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사들이 느낀 자괴감과 회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고, 교육보다 배움을 강조하면서 교사들이 아이들 뒤로 물러나는 자세를 취한 것은 교육 과잉 시대를 지나오면서 나타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대안교육 쪽 사람들은 삶에서 배우는 것이 진짜 배움이고 학교에서 책으로 지식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배움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다시금 교육과 교사의 역할을 고민해볼 시기다. ‘배움의 도’에서 주장하듯 무위의 교육이 언제나 좋은 교육은 아니다.


*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하는 80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 *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많이 읽힌 도덕경은 『노자와 21세기』를 쓴 도올 김용옥의 번역본, 『노자를 웃긴 남자』로 도올을 비판한 이경숙 번역본, 그리고 백서본·곽점본·왕필본을 비교한 『백서노자』를 쓴 이석명의 번역본, 그리고 『노자 이야기1, 2, 3』을 쓴 이아무개(이현주) 번역본을 들 수 있다. 『배움의 도』처럼 서구인이 해석한 주해서를 비롯해 새로운 주해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도서 검색 결과 2백여 권의 주해서가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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