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냄새와 내음은 다르다

민들레
20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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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의 표준말 규정, 이제 고치자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냄새를 일컫는 ‘내음’은 많은 이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냄새의 사투리로 규정하고 있다. 냄새는 코를 찌를 수 있지만 내음은 그렇지 않다. 똥냄새, 꽃내음을 똥내음, 꽃냄새라 바꾸면 어색하다. ‘냄새’라는 낱말로는 내음을 표현하기 힘듦에도 냄새만을 고집하는 국립국어원의 꽉 막힌 언어감각은 그야말로 언어의 후각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011년에야 ‘내음’을 문학적 표현으로 인정한다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표준어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표준어를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고 못 박은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오름’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제주 지역의 독특한 지형인데, 이를 산의 사투리로 규정해 표준어에서 내친 것은 현행 표준어 규정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말해준다. 지질학적으로나 형태에서 명백히 구별되는 ‘오름’을 ‘산’에 우겨넣는 것은 우리말을 빈약하게 만들 따름이다. 수만 년이 흘러도 서울 지역에 그런 지형이 생겨날 리 없으니 현행 표준어 규정대로라면 오름은 영영 표준어사전에 등재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언중은 사전에 아랑곳없이 ‘오름’을 오름이라 하지 산이라 부르지 않는다.

언어의 생명력은 관념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다. ‘짜장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언중이 널리 쓰는 말을 사전이 좇아가는 것이 맞다. 이제는 서울 중심의 표준어 규정을 바꿀 때가 되었다. 언어의 세계에서까지 서울공화국이어서는 지역균형발전도 요원하다. 언어 정책의 방향은 언어를 보다 풍성하게 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쪽이어야 한다. 지역적 특성을 담고 있는 낱말이나 언중이 널리 쓰는 말은 표준어로 등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사실상 표준어가 없다. 영국 남부 지역 사람들은 북부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어 하지만, 왕립표준영어원 설립이 추진되다가 무산되었다. 앵글로색슨계의 자유주의 성향과 불문법을 선호하는 법체계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미국은 표준어를 못 박지 않고 뉴스나 쇼 프로에서 쓰는 말을 표준어와 비슷하게 취급한다.

일본에서도 표준어를 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표준어라는 개념 자체가 언어에 대한 국가 권력의 통제를 내포한다고 여겨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현실의 일본어”라는 뜻의 ‘공통어’ 개념이 생겨났다. 20세기 전반에 군국주의를 겪으면서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그런 의식을 낳았을 것이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이 있는 독일의 경우 2004년에야 독일어맞춤법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독어권 여러 나라 위원들로 구성된 국제단체이다.

한편 우리말의 표준화는 비교적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국가 차원에서 학교교육을 통해 표준어 교육을 한 것은 근대화 열풍이 불었던 1960년대 이후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미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표준어 제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말조차 빼앗길 뻔했던 시절이니, 우리말을 가다듬고 살림으로써 근대화와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언어의 표준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표준어의 정의를 조금 달리 했더라면 우리말이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표준말의 필요성과 함께 사투리의 장단점을 함께 살폈더라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자존감을 훼손당하는 일도 덜했으리라. 시골 아이들이 국어 시간에 표준말을 익히면서 엄마에게 배운 모어를 부정하도록 만든 것은 근대화를 추진한 집권 세력의 무지와 무감각을 말해준다. 군대식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유네스코도 문화다양성이 반영된 표준어를 제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현행 표준어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다는 헌법소원이 2009년에 제기되었지만 각하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가 해결할 사안이다. 국립국어원의 어문규범을 개정하고 표준어 정책을 수정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국어기본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 언론과 방송이 공론화에 앞장서야 할 때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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