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백수도 진로가 될 수 있을까

민들레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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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두 존재 양태

 

백수가 늘고 있다. 자동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갈수록 백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청년실업이 늘면서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도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청년 백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시기에 접어들면서 노년 백수도 늘어난다. 한창 일할 나이에 놀고 있는 젊은이나 중년에 가까운 60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일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놀고 있는 잉여세대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백수를 개인의 실존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으로 나눠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백수를 단순히 실업자로 바라본다면 부담이 될 뿐이지만, 변화가 빠른 시기에 예비자원으로 바라본다면 그 존재 가치는 크다. 2군이 빵빵한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준비된 예비자원이 있어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빈틈없이 척척 돌아가는 완전고용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빈틈이 있어야 그 틈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사회가 더 활기를 띤다. 빈자리가 있을 때 자리바꿈이 일어나면서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진다. 백수는 사회를 유연하게 하고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지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인적 실존의 관점에서 백수로 산다는 것 또한 두 가지 극단의 가능성 사이에 존재한다. 하나는 사회적 관계를 상실하고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경우, 또 다른 경우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장점을 살려 상호작용을 더 활발히 함으로써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경우다. 뚜렷한 직업은 없지만 온갖 마을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 마을은 살아 있다. 빈손일 때 뭔가를 잡을 수 있듯이 백수만이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다. 오늘날 시골의 독거노인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자식보다 더 귀한 존재다. 이런 백수(白手)는 천수보살 아닌 백수(百手)보살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이들을 ‘알로마더’, ‘알로파더’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마을에서는 동네 이모나 삼촌이 부모 역할 일부를 맡아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그때그때 베이비시터 역할을 함으로써 부모의 빈자리를 메꾸었다. 마을이 아이를 기르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양육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모 손 또는 엄마 손에 맡겨지면서 아이들의 성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무보수로 기꺼이 돌봄 노동을 하던 백수들이 사라지고 하릴없는 백수들이 히키코모리가 되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다. 오늘날 일본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백수가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고 주변과 상호작용을 활발히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무엇일까.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만으로 백수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군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시스템, 백수를 무위도식자로 보지 않는 너그러운 시선이 없다면 아무리 넉살 좋은 백수라도 눈칫밥을 먹지 않을 수 없다. 백수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밥벌이가 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오늘날 공공일자리 제도는 그런 점에서 노년 백수를 위한 좋은 제도이지만, 보람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시간 때우기 식의 일자리가 아닌 의미 있는 일이 필요하다.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수유너머의 고미숙은 소크라테스, 부처, 공자 모두 백수였다면서 연암 박지원을 백수의 롤모델로 제시한다. 사실 조선시대에 관직을 얻지 못한 양반들은 거개가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 장원급제를 하고도 스스로 관직을 마다한 연암 같은 자발적 백수는 예외적인 존재다. 서구의 귀족계급 역시 대부분 백수였다. 그 백수들이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만들어낸 것이 문화인 셈이다. 노동계급의 땀 위에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하지만 연암이 수유너머를 찾는 백수들의 롤모델은 될 수 있어도 책과 거리가 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백수의 다양한 롤모델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해서 자산을 어느 정도 마련한 뒤 일찌감치 은퇴해 생산적인 백수가 되어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여가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는 백수도 적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프리랜스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기획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백수의 삶이 청년 진로의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의사 부인 만나서 백수로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십대도 있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물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성 역할도 바뀌고 있고, 살림을 사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진로교육 다시 보기

 

지금 십대들 중 많은 아이들이 한동안 백수로 지내게 될 것이다. 어떤 친구는 오래도록 백수로 지내게 될 수도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는 고등학교를 나오는 순간부터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안학교들이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다. ‘백수가 인류의 미래’라는 말이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는 힘들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오늘날 대학은 청년들에게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징검다리 중 하나다.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대학을 가지 않고도 길을 찾을 수 있는 실력을 길러주거나 백수가 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십대 시절에 진로를 정하기란 쉽지 않다. 십대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하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나 변화무쌍한 사회를 보나 그렇다. 이런 상황에 진로교육이란 이름으로 일찍부터 진로를 정하도록 아이들을 채근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꿈이 뭐냐고 자꾸만 물어보는 것도 아이들로서는 짜증나는 일일 것이다. 마치 꿈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대안교육 현장에서는 ‘진로’라는 말 대신 ‘꿈’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학교 이름에도 ‘꿈’이 곧잘 쓰인다. 꿈 없이 사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는 듯이, 꿈은 대안학교의 전매특허품 같기도 하다.

꿈을 꾸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어떤 꿈도 혼자 힘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은 대부분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혼자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깊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해진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상호작용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처지다. 십대 시절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토대를 만드는 시기다. 교양을 넓히고 언어감각을 기르고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를 다니는 것은 그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길이기도 하다. 학교에 적을 두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친구와 선생님이 생기고, 선후배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학교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홈스쿨링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지만,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더 나은 길일지는 알 수 없다. 학교 시스템에 속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의 기회를 다른 루트를 통해 얻기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소수의 아이들만 학교 바깥에서 이런 행운을 가질 수 있다. 학생 수가 너무 적은 대안학교 같은 곳도 상호작용의 범위가 한정되어 그다지 좋은 교육생태계는 아니다. 대안학교들의 경우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를 허물어 상호작용의 총량을 높이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에는 적절한 규모의 배움터가 필요하다.

대학을 가는 것도 상호작용의 여지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이 점에서 대안교육운동이 대학을 터부시한 것은 큰 패착 중의 하나다. 우리 사회의 대학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학력·학벌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 사회를 바꾸는 일도 대학을 통하지 않고는 힘들다. 배를 타고 가면서 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라는 배의 특성이다. 이 배를 수리할 줄 아는 기술을 배우고, 필요하면 키를 잡을 수도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갑판 언저리에서 맴돌게 만들거나 선실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지내게 만드는 교육을 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모두는 한 배를 타고 있는 승객들이자 선원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릴 때까지 승객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기나긴 항해에서 승객 노릇만 하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다. 선원이 되거나 여행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악사나 가수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지만 돈을 벌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아이들이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때로는 갑판을 어슬렁거리며 할 일을 찾는 시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 마음을 북돋워 모두의 여행길이 즐거운 항해가 될 수 있게 하자.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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