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배 꼬인 시험문제가 상징하는 것
올해 수능 만점자는 3명이다. ‘물수능’이었던 2020년 수능 만점자는 15명이었다. 역대 만점자들의 진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개는 서울대 법대, 상대, 의대에 진학해 졸업 후 평범한 법조인이나 의사가 된다. 드물게 과학자의 길을 걷는 이도 있지만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대치동 학원가나 8학군에서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긴 힘들 것이다. 제2의 봉준호 감독을 기대하는 것도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에서 59만 수험생 중 수석을 차지한 제주제일고 원희룡은 법조인을 거쳐 고향의 행정 수장이 되고 장관이 되었지만, 과연 지역사회와 국가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세금을 축내고 있는 국회의원들 상당수도 명문대를 졸업한 법조인 출신이다.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낮아졌지만 수능은 여전히 전 사회적 관심사다. 수능시험에 이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사자들의 지적 능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대치동 학원가와 8학군으로 대표되는 입시교육의 메카는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기껏 판검사와 의사를 양성할 뿐이다. 이들은 잘해야 사회의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며, 미래에는 AI로 대체될 수도 있는 직군이다. 하버드대는 대학수학능력 적성검사(SAT) 만점자를 불합격시키기도 한다. 대학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인재를 기르는 곳이지 문제풀이 기계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점자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국어학자도 풀기 어려운 국어시험 문제는 변별력을 위한 것이지 수학(修學) 능력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수능은 사실상 ‘순위’고사다. ‘괴이하고 지랄 맞은’ 문제를 만들어내느라 고심했을 출제위원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제도와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8개의 과학탐구 영역에서 두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게 되면서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웬만한 문제는 다 풀 수 있게 되었다. 문제 풀(pool)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인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점점 변별력이 없어지자 문제를 이리 꼬고 저리 비틀어 정답이 아닌 오답을 찾게 만든다. 수학 능력을 키우는 시험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추리하는 탐정 능력을 키우는 시험이 되었다. 배배 꼬인 시험문제는 배배 꼬인 교육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학능력평가시험을 개발한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400점 만점 수능의 측정오차를 상하 10점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20점 이내의 점수 차이는 사실상 수학 능력에 별 차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된다. 교육이 점수 따기 목표에 맞춰지면 그 안에 갇히게 된다. ‘밑줄 좍’ 그어진 부분만 보면 전체 맥락을 놓치게 되고, 정답을 찾는 데 급급하게 되면 깊이 파고들기가 힘들다. 수학(數學)에서 함수 개념은 집합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수능시험에서 비중이 높지 않고 집합론을 소홀히 여긴다면 수학을 진짜 잘하기는 힘들다. 수학의 난제를 두 개나 풀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고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수학자 반열에 든 허준이 박사는 고등학교 때 시험공부를 하기는커녕 시인이 되겠다고 자퇴를 했다 한다.
‘괴랄한’ 시험문제를 잘 맞추는 시험 귀재가 창의적인 인재이기는 어렵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평가여야 한다. 평가시험의 본래 목적은 성취 수준을 가늠하고 공부가 더 하고 싶어지도록 의욕을 북돋는 것이다. 배배 꼬인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공부 의욕을 북돋기보다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수학(修學) 능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 의욕이다. 어려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는 이치를 깨닫고 길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구나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공부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희열을 맛보게 되면 의욕이 샘솟고 수학 능력이 저절로 자란다. 배배 꼬인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기본 이치를 깨우칠 수 있게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제도가 어려서부터 조기교육, 선행학습으로 내몬다. 아이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서이기보다 뒤처질까봐 불안해서다. 하지만 학원을 다닌다고 불안이 가시진 않는다. 내신과 수능, 사교육은 공생관계다. 600조가 넘는 국가 총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교육 예산은 교사들의 생계와 사교육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시험 귀재를 기르는 구시대 교육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 일은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할 테니, 공교육은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소외 계층 아이들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국가 예산은 좀더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시험 귀재가 아닌 건강한 시민과 역량 있는 인재를 기르는 데 써야 한다.
이주호 장관에게 바란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까지 가진 문재인 정권에 기대했던 개혁 중에 제대로 추진된 것이 없다.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은 허탈감에 지지를 접기 시작했다. 검찰개혁, 언론개혁은 시늉만 하다 끝났다. 교육개혁은 아예 시늉도 하지 않았다. 유은혜 장관은 3년 6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보신주의로 일관했다. 그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장기 교육부장관’으로 꼽히게 된 비결인지도 모른다. 임기 말에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는 공수처만큼이나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공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정시 확대’ 같은 퇴행적인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교학점제는 끝까지 밀어붙였지만, 입시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입시에 유리한 학점을 따기 위한 눈치 보기와 사교육 의존도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주호 장관이 취임 100일 동안 개혁 과제를 연달아 발표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 통합과 초등 돌봄 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할 뜻을 밝혔다. 세계적 수준의 지방대를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모두 필요한 개혁이지만 좀 더 과감한 개혁을 바란다. 그 첫 걸음은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연구중점 대학원으로 개편하는 것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제기해온 사안이다. 그리고 국공립대를 통폐합해 (세계적 수준까지 아니어도) 연고대와 맞먹는 국공립대를 지역마다 하나씩 만들면 대학서열화로 인한 교육의 파행을 막고 지역균형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대학입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각 대학이 자기 기준대로 정하게 하면 된다. 초중고 교육은 시도교육청과 지자체에 맡기고 교육부의 역할은 대폭 축소하자.
일자리가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시대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대학 무상교육도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다. 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원하는 직업을 얻고 대졸자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무상교육에 드는 예산은 GDP 평균 1% 수준이다. 우리의 경우 10~11조 원(2025년 기준)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20년도 실질 GDP의 0.6%에 해당한다. 경제 규모상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금으로 부실한 사립대학을 구제해주는 정책이 되지 않게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와 국가의 장래를 우선순위에 놓고 과감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개혁의 청사진을 그릴 때다. 동시에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 교육개혁은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인 노인 빈곤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노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부모 세대가 늘어나면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 더 짙어질 것이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출생 문제도 풀 수 없다.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일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상황을 수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에 절망하고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지만 그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일 테니 제발 교육개혁만이라도 성공하기를 기원하자.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은가. 이주호 장관에게 바란다.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과감한 교육개혁을 추진하기를. 지금의 교육체제에 이권과 생계가 걸린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어떤 개혁 정책도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란 힘들다. 공론화가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해야만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교육개혁, 제발 과감하게 추진하자.
_현병호 _『민들레』 발행인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게 발행하는 뉴스레터 <교육, 제4의 길>에 실린 글입니다.
배배 꼬인 시험문제가 상징하는 것
올해 수능 만점자는 3명이다. ‘물수능’이었던 2020년 수능 만점자는 15명이었다. 역대 만점자들의 진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개는 서울대 법대, 상대, 의대에 진학해 졸업 후 평범한 법조인이나 의사가 된다. 드물게 과학자의 길을 걷는 이도 있지만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대치동 학원가나 8학군에서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긴 힘들 것이다. 제2의 봉준호 감독을 기대하는 것도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에서 59만 수험생 중 수석을 차지한 제주제일고 원희룡은 법조인을 거쳐 고향의 행정 수장이 되고 장관이 되었지만, 과연 지역사회와 국가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세금을 축내고 있는 국회의원들 상당수도 명문대를 졸업한 법조인 출신이다.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낮아졌지만 수능은 여전히 전 사회적 관심사다. 수능시험에 이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사자들의 지적 능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대치동 학원가와 8학군으로 대표되는 입시교육의 메카는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기껏 판검사와 의사를 양성할 뿐이다. 이들은 잘해야 사회의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며, 미래에는 AI로 대체될 수도 있는 직군이다. 하버드대는 대학수학능력 적성검사(SAT) 만점자를 불합격시키기도 한다. 대학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인재를 기르는 곳이지 문제풀이 기계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점자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국어학자도 풀기 어려운 국어시험 문제는 변별력을 위한 것이지 수학(修學) 능력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수능은 사실상 ‘순위’고사다. ‘괴이하고 지랄 맞은’ 문제를 만들어내느라 고심했을 출제위원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제도와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8개의 과학탐구 영역에서 두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게 되면서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웬만한 문제는 다 풀 수 있게 되었다. 문제 풀(pool)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인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점점 변별력이 없어지자 문제를 이리 꼬고 저리 비틀어 정답이 아닌 오답을 찾게 만든다. 수학 능력을 키우는 시험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추리하는 탐정 능력을 키우는 시험이 되었다. 배배 꼬인 시험문제는 배배 꼬인 교육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학능력평가시험을 개발한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400점 만점 수능의 측정오차를 상하 10점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20점 이내의 점수 차이는 사실상 수학 능력에 별 차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된다. 교육이 점수 따기 목표에 맞춰지면 그 안에 갇히게 된다. ‘밑줄 좍’ 그어진 부분만 보면 전체 맥락을 놓치게 되고, 정답을 찾는 데 급급하게 되면 깊이 파고들기가 힘들다. 수학(數學)에서 함수 개념은 집합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수능시험에서 비중이 높지 않고 집합론을 소홀히 여긴다면 수학을 진짜 잘하기는 힘들다. 수학의 난제를 두 개나 풀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고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수학자 반열에 든 허준이 박사는 고등학교 때 시험공부를 하기는커녕 시인이 되겠다고 자퇴를 했다 한다.
‘괴랄한’ 시험문제를 잘 맞추는 시험 귀재가 창의적인 인재이기는 어렵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평가여야 한다. 평가시험의 본래 목적은 성취 수준을 가늠하고 공부가 더 하고 싶어지도록 의욕을 북돋는 것이다. 배배 꼬인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공부 의욕을 북돋기보다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수학(修學) 능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 의욕이다. 어려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는 이치를 깨닫고 길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구나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공부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희열을 맛보게 되면 의욕이 샘솟고 수학 능력이 저절로 자란다. 배배 꼬인 시험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기본 이치를 깨우칠 수 있게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제도가 어려서부터 조기교육, 선행학습으로 내몬다. 아이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서이기보다 뒤처질까봐 불안해서다. 하지만 학원을 다닌다고 불안이 가시진 않는다. 내신과 수능, 사교육은 공생관계다. 600조가 넘는 국가 총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교육 예산은 교사들의 생계와 사교육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시험 귀재를 기르는 구시대 교육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 일은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할 테니, 공교육은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소외 계층 아이들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국가 예산은 좀더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시험 귀재가 아닌 건강한 시민과 역량 있는 인재를 기르는 데 써야 한다.
이주호 장관에게 바란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까지 가진 문재인 정권에 기대했던 개혁 중에 제대로 추진된 것이 없다.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은 허탈감에 지지를 접기 시작했다. 검찰개혁, 언론개혁은 시늉만 하다 끝났다. 교육개혁은 아예 시늉도 하지 않았다. 유은혜 장관은 3년 6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보신주의로 일관했다. 그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장기 교육부장관’으로 꼽히게 된 비결인지도 모른다. 임기 말에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는 공수처만큼이나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공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정시 확대’ 같은 퇴행적인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교학점제는 끝까지 밀어붙였지만, 입시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입시에 유리한 학점을 따기 위한 눈치 보기와 사교육 의존도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주호 장관이 취임 100일 동안 개혁 과제를 연달아 발표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 통합과 초등 돌봄 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할 뜻을 밝혔다. 세계적 수준의 지방대를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모두 필요한 개혁이지만 좀 더 과감한 개혁을 바란다. 그 첫 걸음은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연구중점 대학원으로 개편하는 것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제기해온 사안이다. 그리고 국공립대를 통폐합해 (세계적 수준까지 아니어도) 연고대와 맞먹는 국공립대를 지역마다 하나씩 만들면 대학서열화로 인한 교육의 파행을 막고 지역균형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대학입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각 대학이 자기 기준대로 정하게 하면 된다. 초중고 교육은 시도교육청과 지자체에 맡기고 교육부의 역할은 대폭 축소하자.
일자리가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시대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대학 무상교육도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다. 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원하는 직업을 얻고 대졸자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무상교육에 드는 예산은 GDP 평균 1% 수준이다. 우리의 경우 10~11조 원(2025년 기준)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20년도 실질 GDP의 0.6%에 해당한다. 경제 규모상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금으로 부실한 사립대학을 구제해주는 정책이 되지 않게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와 국가의 장래를 우선순위에 놓고 과감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개혁의 청사진을 그릴 때다. 동시에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 교육개혁은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인 노인 빈곤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노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부모 세대가 늘어나면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 더 짙어질 것이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출생 문제도 풀 수 없다.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일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상황을 수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에 절망하고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지만 그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일 테니 제발 교육개혁만이라도 성공하기를 기원하자.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은가. 이주호 장관에게 바란다.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과감한 교육개혁을 추진하기를. 지금의 교육체제에 이권과 생계가 걸린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어떤 개혁 정책도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란 힘들다. 공론화가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해야만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교육개혁, 제발 과감하게 추진하자.
_현병호 _『민들레』 발행인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게 발행하는 뉴스레터 <교육, 제4의 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