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마약과 게임 그리고 청소년

민들레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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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소년들이 위험하다?

 

지난 4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음료라며 길거리에서 학생들에게 필로폰 탄 음료를 시음용으로 나눠준 사건이다. 정권 초기부터 대대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발생 후 마약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환수할 것을 검찰과 경찰에 주문했다. 4월 18일 국무회의에서는 대검찰청·경찰청·관세청·교육부 합동으로 840명 규모의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청소년중독치료센터 설치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마약이나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 중독자가 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2021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교원자격검정령 시행규칙도 개정해 교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마약과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진단서 또는 건강검진 결과통보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강남 학원가 사건은 ‘마약’보다 ‘피싱’에 초점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음료를 받아간 학생의 보호자에게 연락해 “마약 복용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수법이 너무 대담하고 허술해서 사건의 동기나 배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검찰이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 수가 2017년 14,123명에서 2021년 16,153명으로 2천여 명 늘었지만 이 통계가 곧 마약 사용자 증가를 뜻하지는 않는다. 마약 사범의 숫자는 수사의 강도와 성과에 따라 달라지며,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급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약을 복용했다고 모두가 중독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같은 마약을 복용해도 체질과 환경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마리화나의 경우는 술, 담배보다도 중독성이 낮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찾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말기암 환자에게 처방되는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진통 효과가 100배 이상으로 중독성이 강한 반면 가격은 싸서 “디스크 때문에 아파서 잠을 못잔다”며 청소년들도 병원 처방을 받아 쉽게 구입한다. 주로 피부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유통되는데, 불에 태워 연기를 흡입하기도 한다. 어떤 청소년들은 몇 배의 웃돈을 받고 되팔거나 패치를 여러 개로 잘라 팔아 돈을 번다. 많은 양의 패치를 붙이거나 연기를 흡입할 경우 호흡중추 마비로 사망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이로 인해 해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마약 퇴치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모든 청소년들을 예비 마약사범처럼 대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된 19세 이하 청소년은 481명으로 10년 전의 58명(2013년도)에 비해 8배 이상 증가했지만 절대적 수치는 높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으로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판매자들은 ‘기분 좋아지는 약, 다이어트에 효과 있는 약, 공부가 잘되는 약’이라며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약물 복용 문제는 교육 문제에서 비롯된다. 쾌락을 좇아 마약을 찾는 아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집중력을 높여주는 각성제로 알고 찾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는 각성제를 복용하면서까지 시험 점수에 목매게 만드는 사회의 책임이다.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만 해도 평소 졸음을 쫓기 위해 카페인이 든 에너지 음료를 자주 마시는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이 별 의심 없이 받아 마셨을 거라는 분석이 있다. 용의자들이 나눠준 음료수 병에는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ADHD’ 같은 익숙한 용어도 적혀 있었다.

미국의 에너지 음료 기업들이 마약과 근본에서 별 차이가 없는 음료 판매에 영향을 줄까봐 마약 합법화에 반대해온 것을 보면 그 경계는 한끗 차이이며, 음용의 목적도 같은 셈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또는 입시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어 약물에 손을 대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 무책임한 행동이다. 우울증, ADHD, 공황장애, 비만 치료 등의 이유로 장기 복용하게 된 약물에 의존성이 생긴 경우도 많다.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은 법적 처벌보다 회복과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때 청소년 본드 흡입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부탄가스를 들이마시다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마약을 구하기 힘들던 시절 이야기다. 각종 약물 중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최근 들어 ‘마약’이라는 자극적 단어를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언론이 정부와 검찰의 보도자료를 받아 그대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점은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던 시기와 겹친다. 검찰 조직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약 사건을 부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일본의 마약 관련 정신과 전문의 마쓰모토 도시히코는 최근 한국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약물이 규제되기 시작되면 밀매가 성행하게 되고 그러면 그걸 단속하는 공적 조직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조직의 인원과 예산을 유지하려면 눈에 띄게 약물의 해악을 선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니 약물 사용의 불법화는 밀매인은 물론 (검찰) 조직에도 이로운 측면이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당국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약물남용 방지 계몽을 하기 위해 특히 ‘본보기’로 삼기 좋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를 노리고 체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몰락하는 장면’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사람들의 처벌 감정을 충족시키고, 왜곡된 쾌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연출’에 속아서는 안 된다.(《시사IN》, 2023.1.5)

 

게임 중독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은 오래된 문제다. 우리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포트나이트 게임에 빠져 잠도 자지 않고, 씻지도 먹지도 않는 자녀들을 보다 못한 캐나다 부모들이 지난해 게임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었다. 일부러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유다.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이 도박성을 띠면서 청소년들이 게임하듯이 온라인 도박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실 도박도 게임의 한 종류다. 동서고금 모든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만큼 인간의 본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놀이의 하나다. 게임이나 도박을 할 때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쫄깃한’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를 자꾸 맛보고 싶어 몸이 원하게 된다.

중독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상태다. 마약 중독은 외부에서 주입된 약물에 중독되는 것인 반면 도박이나 게임 중독의 경우 신체 내부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되는 셈이다. 쾌감 신호를 전달하는 도파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이지만, 과다하게 분비되면 조증이나 환각 상태에 빠지고 부족하면 우울증이나 파킨슨병에 걸리게 된다. 중독을 뇌질환으로 보는 이유다. 2019년 WHO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중독성 행위 장애로 규정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키긴 했지만, 게임에 빠진 것을 질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실 많은 놀이가 중독성을 띠지만,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놀이는 해가 지거나 몸이 지치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중단하게 된다. 디지털 게임의 경우는 전기가 나가거나 기기가 고장나지 않는 한 아무런 제어 장치가 없다 보니, 중독성이 너무 강한 게임들로 인해 부모 자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게임에 빠져 육아나 가사에 함께하지 않는 젊은 아빠들의 문제가 부각되기도 한다. 게임을 하면서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게임 세계를 모르는 부모와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갈등하던 시대가 저물고 게임이 가족 놀이가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걸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게임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현저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에서 게임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도 힘들다. 여럿이 함께 즐기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게임, 바둑처럼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게임도 적지 않다. 게임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며 알게 모르게 현실 세계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게임이 등장하고, 한편 급진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여혐을 드러내는 게임도 등장한다. 게임을 통해 사회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오늘날 게임 이용자의 성별 구성은 남성 50.3%, 여성 49.7%로 거의 비슷하다. 디지털 게임이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을 인정하고 이를 건강한 놀이 문화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인생이 짧다지만 시간을 잊고 빠져들 만한 소일거리 없이 살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권태는 중독 못지않게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권태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쫄깃한 긴장감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 심리다. 에너지가 넘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는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나름 찾아낸 자구책이 게임일 것이다.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쫄깃함’을 맛볼 수 있으니, 지루한 학습노동 틈틈이 도파민을 보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셈이다.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얻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거라고 이해하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아이들은 게임 대신 아이돌에 빠진다. 중독자와 ‘덕후’의 경계는 애매하다. ‘덕질’ 또한 중독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덕질은 곧잘 한다. 뒤늦게 ‘임영웅 덕질’의 세계에 입문한 60~70대 여성들이 거기서 살아갈 힘을 얻듯이 많은 이들에게 덕질은 삶의 에너지원이다. 인터넷 시대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일 중독 시대를 지나 소비 중독, SNS 중독 시대로 넘어온 우리 사회를 ‘중독사회’라 명명하는 이도 있지만, 몰입과 중독의 경계는 애매하다. 대부분의 덕후들은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라기보다 그렇게라도 뭔가에 마음 붙여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다른 건강한 중독거리를 찾는 것이다. 운동이나 취미 같은 다른 몰입거리가 있으면 중독으로 흐르던 에너지의 물길이 바뀐다. 마라톤 같은 운동은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을뿐더러 규칙적으로 하면 호르몬 체계를 바로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습관이 들면 뇌가 몸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좋은 습관 한 가지를 들이면 다른 많은 것들이 거기에 연동되어 변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은 다른 창조적인 몰입거리를 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수학 문제에 몰입할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다. 문제풀이식 학습은 좌뇌 중심이어서 우뇌가 발달한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 신체(운동)지능이 발달한 아이들에게는 또 그에 맞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일찍이 키케로는 로마 법정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가(Cui bono)’라는 물음을 던져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중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은 그럼으로써 어떤 이익을 얻게 될까? 아이들의 게임 중독, 마약 중독을 걱정하기보다 교육의 실패를 먼저 걱정할 일이다. 미국의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아이들이 마약을 하지 않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만 하는 처참한 삶인데도 말이다. 세상에 그런 10대는 없다. 미국 같으면 아마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사회구조의 문제, 교육의 실패를 아이들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짓은 그만하자.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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