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교권 회복, 교육이 가능하려면

민들레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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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교사가 학교 교실에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린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  해당 학교의 한 교사는 민원의 심각성을 이렇게 증언한다. “〇〇〇처럼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인 경우 민원 수준이 상당하다. 1학년 담임이었다면 더 심했을 것”이라며, “홈스쿨링을 권유하는 것밖에 답이 없을 정도로 민원 수준이 심각하다”고. 교사노동조합연맹 경기교사노조가 개설한 학부모 악성 민원 사례 사이트에는 나흘만에 1700여 건이 올라왔다고 한다.  

최근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하는 받아쓰기가 정서적 학대라고 민원을 제기하면서 많은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받아쓰기 쪽지시험을 보면서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감당하면서 성장이 일어난다. 옛날에는 받아쓰기가 끝나면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릴 만큼 진짜 학대에 가까운 체벌이 일상이었지만 이제 그런 문화는 사라졌다. 오히려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며 사실상 정서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20여 년 전 이해찬 교육부장관 때 체벌 금지가 명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사의 매질은 폭력으로 보지 않는 문화였다.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건 ‘정상적인’ 체벌로 간주되었고,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교사의 경우 뺨을 후려치거나 심지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뺨을 때리기도 했다.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는 교사도 적지 않았다. 오늘날 교권이 무너진 데는 이런 오랜 흑역사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 갑질의 배경에 학창시절 교사들에게 당했던 나쁜 기억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폭력적이었던 선배 교사들의 업보를 후배 교사들이 감당하는 형국이다.

아동학대법의 문제는 이을령비을령 식으로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행위조차도 아동학대로 몰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단 신고가 들어가면 교사는 직위해제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되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선고 결과에 따라 교직을 상실할 뿐 아니라 학원가에도 발을 못 붙일 수도 있다. 이러니 웬만해서는 학생을 꾸짖지도 못하고 내버려두게 되고, 문제학생은 문제행동을 계속하고 다른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설프게 만든 법이 사회를 망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이초 교사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예방법과 아동학대방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으로 ‘교권 회복’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이는 자칫 ‘교사의 말발이 먹히던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교권이 떨어진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혀 있다. 교사보다 학력이 높은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교사를 우러러보는 사회적 신뢰 장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눈높이에서 교사를 바라보게 되므로 교사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예전 부모들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교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못 배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교사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때문이 아닐까. 교사 개개인의 자질보다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라는 사회적 신뢰 장치가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는 우치다 타츠루의 통찰은 새겨들을 만하다. 문제는 달라진 사회 환경에서 그런 장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 장치는 문화와 같은 것이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사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사회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신뢰 장치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는 법과 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동학대방지법에 교권에 관한 특별조항을 둘 수도 있고, 교권을 보호하는 법을 따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교권의 주요 내용인 교육자치권, 교원단체활동권, 신분보장권 등은 주로 국가를 상대로 주장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오늘날에는 학부모의 간섭으로부터 교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ILO, 유네스코에서 1966년에 발표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도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받아쓰기 같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모는 상황은 명백한 교권 침해다. 이에 대해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아무런 대처를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이다. 교육철학도 없고 갈등을 해결할 능력도 없는 이들이 중요한 직책을 맡아서는 뭉개고 있는 실정이다. 무능하기는 보수나 진보나 다르지 않다. 무능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파트너로서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다. 교사와 부모의 파트너 관계가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

최근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교사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면서 교권과 교사 인권이 혼용되고 있지만 그 둘은 사실상 다른 개념이다. 교권이 제대로 지켜져야 학생의 학습권도 보호된다. 교권 회복은 교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궁극적으로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의 인권은 교권 이전에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교사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 곧 학생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학교 안에서 약자였던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되지만 이제는 교사의 인권도 보호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도만으로 교권을 지키기는 어렵다. 교사의 권위는 제도나 교사 개개인의 노력으로  서는 것이 아니다. 추모 집회에 전교조나 다른 단체들의 참여를 막고 교사 개개인의 자발적 모임으로 추진한 것은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이번 사건은 교사 개인의 죽음을 넘어 사회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며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시대 흐름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많은 젊은 교사들이 좀 더 편한 학교를 찾고, 개인 시간과 권리를 찾아 누리기에 바쁘고, 사회 문제를 외면하는 시대, 교사도 학부모도 개인의 권리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회에서 교육이 바로 서기란 어렵다. 


오늘날 교권이 추락하게 된 데는 학교의 위상이 추락한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1세기 들어  학교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여기에는 대안교육운동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김대중정부 당시 교육행정서비스헌장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학교와 학부모의 관계가 교육업체와 고객의 관계 비슷하게 변질되었다. 학부모가 고객으로 자기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진상 민원인이 늘어나는 데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행정을 대국민 서비스로 보게 된 것은 진보적인 변화이지만 교육과 교육행정을 뒤섞으면서 혼란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공교육이 입시교육을 지향하며 개인들을 경쟁시키면서 공공성을 잃었다는 데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가 사실상 무너진 셈이다. 학부모 민원의 대부분은 자기 아이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표출하며 고객으로서 클레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공교육이 교육을 서비스로 간주하고, 여기에 수요자 중심주의가 가세하면서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는 공교육이라는 공적 자산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의 수요자인 기업들은 세금으로 역량 있는 인재, 글로벌 인재를 길러주길 바란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인재가 국가 공동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할 여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교육을 바로 세우는 길은 ‘수요자 중심’이라는 교육 아젠다를 폐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교육은 개인에 앞서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교육의 중심을 잡아가야 한다. 한편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사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교육열(?)이 유난한 강남 학부모들의 요구를 공립학교가 맞춰주기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초등의 경우 사립학교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공립학교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아이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요구하는 민원을 끊임없이 넣는다. 그러니 “홈스쿨링을 권할 수밖에 없다”는 교사의 하소연이 나오게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살피고 현실적인 개혁안을 찾아보자. 이념에 치우친 정책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따름이다. 공적 예산으로 공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사립학교는 학부모들의 부담으로 운영하게 하자. 국공립대 통폐합 같은 방법으로 입시제도를 개혁하고, 평준화된 대학과 그랑제꼴 이원 체제의 프랑스처럼 평준화 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 문제다. 민주사회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고, 단체교섭권이 있다. 시민의 의지로 정책 입안자를 압박할 수 있다. 연대의 힘을 믿고 자포자기하지 말자.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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