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단상

몸을 놀리는 놀이 몇 가지

민들레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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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이 몸을 덜 쓰게 만드는 데다, 코로나 사태로 원치 않게 장기간 ‘방콕’을 하게 되면서 몸을 놀리는 일이 한층 줄어들었다. 확진자와 함께 ‘확찐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몸놀림이 둔해지면서 사소한 부주의로 몸을 다치는 일도 잦아진다. 신체성의 약화는 공동체성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호흡기 전염병은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자연스레 형성되는 공동체 문화를 해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인간종에 위협적인 질병이다. 이럴 때일수록 둘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놀 수 있는 간단한 몸놀이 몇 가지를 되살려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고무줄놀이

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방방곡곡의 학교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여자아이들은 마치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처럼 노래에 맞춰 나풀나풀 고무줄을 밟곤 했다. 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공연예술에 가까웠다. 감성과 신체성, 공동체성을 기르는 데 이만한 놀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놀 수 있는 전천후 놀이였으니, 비가 오면 아이들은 실내에서도 고무줄을 밟았다.

신체를 움직이는 놀이가 대개 그렇듯, 고무줄놀이 역시 공동체성을 기르는 데 상당히 좋은 놀이다. 열을 지어 노랫소리에 맞춰 고무줄을 뛰어넘는 동작은 일종의 복합신체를 이루어 여러 사람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동조시키는 일이다. 한 아이가 동작을 틀리면(죽으면) 다른 아이가 이어서 그 아이가 틀린 동작을 성공시킴으로써 그 아이를 다시 살려낸다. 모두가 실패하면 역할이 교대된다.

고무줄놀이는 난이도가 단계별로 설정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놀 수 있다. 처음에는 발목에 고무줄을 걸고 시작해 무릎, 허벅지, 허리, 겨드랑이, 어깨, 머리, 머리 위 한 뼘, 두 뼘, 마지막으로 두 팔을 든 높이까지 난이도가 점점 높아진다. 머리 위로 고무줄이 걸리면 물구나무를 서서 발로 고무줄을 걷어 바닥까지 내린 다음에 밟는 고난도의 동작을 해내야 한다. 그것도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는 고무줄놀이에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군가를 부르며 고무줄을 밟곤 했다. 박자를 맞추기에 좋은 행진곡이어서일 것이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같은 무시무시한 노래를 부르며 나풀나풀 고무줄을 밟는 여자아이들 모습은 초현실적인 영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오~” 같은 사회성 짙은 노래도 불렀지만, 점차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같은 동요를 부르게 되었다.

남자아이들도 할 수 있는 놀이였음에도 고무줄놀이가 주로 여자아이들 놀이가 된 것은 신체 조건에서 여자에게 유리한 놀이여서일 것이다. 다리를 들어올려 발로 고무줄을 거는 동작은 골반이 잘 벌어지는 여자에게 훨씬 유리하다. 아마 남자아이가 끼어 있었다면 깍두기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그저 멀찍이 서서 여자아이들 노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짓궂은 아이들의 경우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역할을 맡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놀이에 참여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지켜보는 관객들 덕분에 공연이 한층 흥미진진해지고, 갑자기 등장한 불한당의 습격은 극의 흐름을 끊기도 하지만 또 다른 긴장과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끊어진 고무줄은 이으면 그만이었다. 고무줄만큼이나 질기고 유연한 심성이 길러지는 데 이 모든 것들이 한몫했을 것이다.

고무줄놀이의 규칙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고무줄처럼 유연해서 둘이 할 수도 있고 열 명이 같이 놀 수도 있다. 고무줄을 기둥에 묶어놓고 혼자서도 고무줄을 밟을 수는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할수록 재미가 배가된다. 운동량이 상당해서 조금 놀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파진다. 배를 곯던 시절에 어른들은 “배 꺼진다, 뛰지 마라”며 아이들을 말리기도 했다.

아이들 놀이가 그렇듯이 고무줄놀이 또한 누가 처음 생각해낸 놀이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아이들의 집단 창작에 의해 노래와 안무가 점점 틀이 잡혀갔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나 필리핀 등지에서도 비슷한 놀이가 있다고 하니, 고무줄이란 근대 발명품이 생겨난 뒤에 자연발생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생겨난 놀이일 것이다. 인간의 놀이 방식이나 상상력은 비슷한 면이 많은 법이다.


고무줄놀이와 유사한 놀이를 하고 있는 앙코르와트 지역 아이들


실뜨기

실뜨기는 서로 마주보고 손과 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새로운 형상을 주고받는 놀이다. 손으로 나누는 대화인 셈이다. 상대방의 손에 걸린 실을 자기 손으로 옮기면서 장구, 젓가락, 베틀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상을 만들지 못하면 실이 엉키면서 지는 게임이다. 가족끼리도 할 수 있지만 낯선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데도 도움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훈련으로서도 훌륭한 놀이인 셈이다.

실뜨기는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오가면서 상상력을 펼치는 매우 창의적인 놀이다. 1차원의 실오라기로 2차원, 3차원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실뜨기는 2차원의 종이로 3차원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종이접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 기하학적 사고를 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종이접기처럼 무궁무진한 형상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단점이지만, 둘이서 주고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실뜨기는 세계 곳곳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놀이로, 문화인류학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뜨개질의 코바늘을 손가락이 대신하는 실뜨기는 직조문화와 관련성이 깊다. 실과 바늘이 인류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도구인 만큼 실뜨기놀이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실뜨기가 일반적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혼자 하는 실뜨기가 더 보편적이라고 한다. 둘이서 주고받으며 만들 수 있는 형상이 예닐곱 가지에 지나지 않은 반면 혼자서 양손으로 만들 수 있는 형상은 무려 2천 가지가 넘는다니 인간의 손놀림과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공기놀이

작은 돌멩이 다섯 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놀 수 있는 공기놀이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는 놀이다. 공기놀이는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도 나올 만큼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몽골에서는 양의 발뒤꿈치 뼈를 공깃돌로 삼았다 한다. 일본은 독특하게도 스스로 공기놀이 원조국을 자처하며 협회까지 만들었다.(현재 전국에 56개 지부가 있고, 미국 LA에도 지부가 있다 한다.) 저글링 방식의 공기놀이 대회를 열어서는 심사를 해 1단부터 6단까지 승단제도 시행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이들 놀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사업인 셈이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잘하는 일이다.

다른 돌멩이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집은 다음 그것을 허공에 던지고서 남은 돌멩이를 또 집어드는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은 상당한 순발력과 손놀림을 필요로 한다. 고무줄놀이처럼 단계가 있어서 맨 마지막 ‘꺾기’ 단계는 바닥에 놓인 돌 다섯 개를 단번에 훔진 다음 위로 던져 손등 위에 모두 받아서는 그걸 다시 허공에 던져 낚아채는 고난도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놀이 방법도 다양해서 던진 돌을 일부러 잡지 않는 바보공기, 천재공기 등 새로운 규칙들이 계속 개발되는 것도 공기놀이의 특징이다.

실내에서도 할 수 있지만,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맨질맨질한 흙바닥이 공기놀이를 하기에 가장 좋은 놀이판이다. 한참 놀다 보면 손바닥이 흙바닥처럼 맨질맨질해지곤 했다. 흙바닥이 사라지고 돌멩이도 귀해지면서 공기놀이도 점점 시들해졌다. 언제부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깃돌을 문구점에서 팔고 있지만, 질감도 색감도 촉감도 돌멩이만 못하다. 돌멩이가 갖고 있는 적당한 중량감과 촉감을 대체할 만한 재료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돌멩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그립감이 좋은 공깃돌 세트를 판매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공기놀이는 고무줄놀이와 달리 어른들도 곧잘 했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조선시대에는 일을 젖혀놓고 공기놀이에 빠져든 머슴들 때문에 양반들이 속을 끓이기도 했다니, 게임 중독은 시대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공기놀이보다 재미있는 게임이 많은 오늘날 공기놀이를 되살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한번 맛 들이면 쉽게 그만두기 어려운 놀이일 것이다.



놀이를 복원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놀이인 고무줄놀이, 실뜨기, 공기놀이 같은 놀이를 전통놀이로 치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놀이에도 유행이 있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놀이도 시대가 바뀌면 사라지고 또 새로운 놀이가 등장한다. 물리적 환경이 달라지면 놀이도 바뀌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는 비석치기를 하려 해도 마땅한 돌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숨바꼭질을 하려면 숨을 곳이 많아야 하는데, 쓸모없는 공간이 없는 아파트는 숨을 곳이 없는 공간이다.

검정고무줄을 예전처럼 쉽게 구하기 힘들어진 것도 고무줄놀이가 사라진 원인일 것이다. 예전에는 바지나 속옷 허리춤에 검정고무줄이 들어 있어, 삭아서 끊어진 고무줄로 놀이감을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의류산업이 발달하면서 검정고무줄을 넣은 옷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통놀이를 보급하는 차원에서 오색찬란한 고무줄을 팔기도 하지만 검정고무줄만 못한 듯하다.

놀잇감만으로 놀이를 되살리기는 힘들다. 놀이판이 벌어지려면 쉽게 놀이판을 벌일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놀이에 익숙한 아이들이 일정 정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면 놀이판이 시들해지듯이, 노는 아이들 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놀이가 전승된다.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이의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놀이 방법이 전승되고 놀이의 흥이 전해진다.

악기 연주와 마찬가지로 어떤 놀이에 숙달되기까지는 그 놀이의 재미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저변이 넓어지면 게 중에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이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전체 기량이 향상되면서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 저변이 넓어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받쳐줘야 한다. 당위성만으로 문화가 전승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몸놀이를 복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옛날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놀이판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이런 놀이의 재미를 알게 된 일부 아이들이라도 즐기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고무줄을 밟다 보면 어른들은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 예전처럼 나풀나풀 뛰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겠지만, 무릎 높이까지만 고무줄을 밟아도 에어로빅 댄스 못지않은 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다.


_현병호(격월간 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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