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외국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민들레
2021-07-09
조회수 1351


 거의 모든 아이들이 두 돌 즈음이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누가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머지않아 스스로 언어의 규칙을 깨우치고 조리 있게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 어려운 중국어 발음을 14억 인구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살고 있다. 언어 습득이란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거다. 모국어를 익히듯이 외국어를 익힐 수는 없을까?

외국어 습득이 힘든 까닭은 언어가 삶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삶 그 자체다. 갓난아기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아직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저 사람이 바로 내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음을 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언어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메시지를 해독하고자 안테나를 세우게 되고, 반복되는 상황에서 언어 속에 내재한 규칙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이 간절하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야말로 커뮤니케이션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 말문을 트게 만든다. 흔히 말이 늦는 아이들의 경우 주변 어른들의 지나친 관심과 보호가 원인일 수 있다. 자신이 요구하기도 전에 눈치를 채고 챙겨주면 아이는 말을 해야 할 절실한 이유를 못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다 주어지는 상황이니 소통에 대한 간절함이 생길 수가 없다.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말을 쉽게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간절함 덕분이다. 한인사회에서 한인들끼리 어울리면서 굳이 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환경이면 말이 늘지 않는다.

많은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보면서 저절로 말을 익히게 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상황에 몰입해서 등장인물에 빙의된 상태로 대사를 듣다 보면 그 메시지가 자기를 향한 메시지로 다가오면서 그 언어가 몸에 스며든다. 실제 상황 속에서 언어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셈이다. 외국에 가서 살지 않고도 외국어를 익힐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방법이다.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지 않아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기가 말을 배우는 방식이 연역식이라면 학교의 외국어 학습 방식은 귀납식이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 규칙을 배운 다음 거기에 맞춰 단어를 조합한다. 반면에 아기는 처음부터 미숙하지만 단어 몇 개만으로도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를 구사하면서 어휘력이 느는 만큼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전체 구도를 스케치한 다음 세밀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거칠게나마 전체(형식)를 완성하고 세부(내용)를 채워가는 것이다.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부분을 끌어 모아 전체 그림을 그려보려는 귀납식으로는 연역식 학습을 따라갈 수 없다. 조각을 맞추는 올바른 순서는 하나뿐이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히 많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전체에는 부분에 없는 순서와 질서가 있다. 언어에서는 그것이 핵심 정보다.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는 것이 학습의 올바른 순서다. 단어 몇십 개만으로도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아이와 몇 천 단어를 알아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어른의 차이는 거기 있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치게 되는 것이 연역식 학습이다.

실제 삶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언어가 연결되어 있어 저절로 연역식으로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데 비해, 책상머리에 앉아 언어를 배울 때는 삶과 분리되어 있는 언어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끌어 모아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품은 여러 개고 조립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모든 언어는 애초에 뭔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손가락 하나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말로 하나하나 풀어내는 것이 언어인 셈이다. 언어 자체가 연역식 원리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외국어 학습을 몇 살 때부터 시작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언어중추가 발달하는 유아 시기에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모국어가 능숙해지기 전에 외국어를 익히게 되면 모국어 구사 능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영어를 웬만큼 할 수만 있다면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국어가 능숙해진 다음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이 언어감각을 키우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영어몰입교육’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수학, 사회 같은 일반 교과도 영어로 수업을 하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어륀지’ 논란이 일어났다. 많은 대학들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도록 하자 한 교수는 이렇게 푸념했다. 영어로 강의를 하면 대체 수업은 언제 하냐고. 우리 교육의 문제는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게 만드는 데 있지 영어를 잘 못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생각할 줄 모르고 우리글로 된 교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영어 몇 마디 할 줄 안다고 경쟁력이 생겨날까. 굳이 경쟁력을 따지자면, 21세기의 경쟁력은 사고력과 상상력이 좌우할 것이다. 사고력은 모국어 능력과 비례한다. 그리고 외국어 능력은 모국어 능력에 비례한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학설이다.

외국어는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것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적절한 호칭을 찾느라 애를 먹는 한국인들이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you’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느끼는 해방감은 영어 원어민들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언어 자체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그 언어 속에 담겨 있는 낯선 세계관을 접하면서 모국어가 틀 지운 사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노엄 촘스키 같은 학자는 언어가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구조를 띠고 있어 사고와 세계관의 차이는 언어가 아니라 문화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언어 속에 정서와 문화가 압축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그 말이 그 말이다. 모든 언어가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고, 각각의 언어가 갖고 있는 고유성이 있다. 또 하나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어법이 있는 것처럼, 보편성과 고유성은 함께 간다.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고유성을 자각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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