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꼼수와 요행을 좇기보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평균수명이 나날이 늘어가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이 추세대로라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백세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장래희망이 ‘건물주’라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영끌’ 투자가 대세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생이 길어진 만큼 장기전에 대비하여 더 돈을 좇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조차 ‘돈돈’ 하는 세태가 안타깝지만,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 사회에서 기나긴 인생을 돈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할 수 있다.

아이도 어른도 어떤 목표를 좇게 되면 대부분 좀더 쉽고 빠른 길로 목표에 이르기를 바란다. 요행을 바라며 잔머리를 굴려 편법 같은 것을 찾게 된다. 눈이 목표에 고정되어 있으면 과정은 생략할수록 좋은 것처럼 보인다. 돈을 좇는 사람은 사실 돈에 쫓기고 있다. 쫓기는 이는 스스로 약자가 되어 본능적으로 쉴 새 없이 궁리를 하기 마련이다. 손자병법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이런 약자들에게 유리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잔머리를 굴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물리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을 때 매복 같은 꼼수를 써서 적의 허점을 찌르는 식이다.

꼼수에 능한 손자병법이 단기전에 유리하다면 사전 준비를 강조하는 오자병법은 중장기전에 통하는 병법이다. 국가의 기본을 다지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 오기(吳起)는 부하의 다리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뽑아낸 일화로 유명하다. 76전 무패를 기록한 불패의 신화는 꼼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세워 필사적으로 싸우게 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이 장수의 입장, 기득권의 입장에 서 있다면 오자병법은 병사의 입장, 민중의 마음을 헤아린다.

오자는 전쟁에 이기려면 먼저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 인화(人和)가 있어야 하며,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을 세우지 못한 자들도 격려하고, 성을 버리고 달아난 자들도 불명예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 오자는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사람이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강자의 병법이다.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성장기의 아이들이라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기초를 다지는 것부터 하게 해야 한다. 교육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손자병법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각종 병법서에서 꼼수만 뽑아 모은 36계를 꿰고 뒤통수치기에 능한 중국인들의 처세술이 배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이익일 뿐 장기적으로는 망하는 길이다. 오자병법은 국가의 근본을 바로잡는 데서 출발하기에 쉽게 취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백성을 수탈함으로써 기득권을 누리는 귀족들에게는 더욱 위험한 노선이다.(오자가 귀족들의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는 민초들 역시 손자병법에 솔깃한다. 적게 투자하고 많이 거두기를 바라는 인간 심리가 꼼수를 찾게 만든다. 손자병법과 도덕경은 통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손자병법은 처세술을 가르치는 덕경의 다른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암괴석을 좋아하고 괴력난신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전통은 도가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보신과 꼼수에 기초한 중국인들의 처세술은 우리가 추구할 것이 아니다. 공자의 정명론에 발을 딛고 대로를 걷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기는 길이자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다.

약삭빠른 이는 샛길 또는 지름길을 좋아하고 군자는 대로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는 공자의 말과도 통할 것이다. 손자병법은 지름길을 일러주고 오자병법은 대로를 일러준다. 대로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말을 타고 먼 길을 갈 때 중간 중간 내렸다 타기를 반복해서 사람은 지칠지언정 말이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대로를 가는 이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해준다.

교육 또한 장기전이다. 개인 수준의 교육도 그러하지만 국가 수준의 교육은 더욱 그렇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세종대왕이 구상한 훈민정음 프로젝트는 몇백 년이 흐른 뒤 20세기에야 열매를 맺었다. 김대중, 노무현 때 뿌린 정보화 프로젝트의 열매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미디어 환경과 정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이것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는 22세기에나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육개혁의 방향 또한 사회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시민을 기르는 일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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