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진보주의 교육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는 표준화 시험은 사실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20세기 진보주의 교육의 산물이다. 미국에서 유색인종 학생 등에 대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도록 20세기 중반부터 객관식 시험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이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 부적절하고 평등과 공정성의 가치를 담보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도 대입에서 SAT 비중이 대폭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 비중이 줄어든 것도 비슷한 이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시 수능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사실 표준화 시험은 인지능력 평가에 나름 효율적인 방식이다. 수능시험에서도 단순한 암기 지식을 묻기보다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들이 점점 많이 출제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수학(受學)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수능시험이 아니라 시험문제 풀이에 올인하는 학교교육에 있다. 학교교육이 그렇게 변질되는 이유는 내신과 수능점수가 여전히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학력에 따른 직업 선택 기회의 차이, 임금 차이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입시문화는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
입시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논술과 수시 제도가 등장하면서 수능점수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내신을 위해서라도 시험공부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설책 한 권 읽지 못하고 국어시험 문제만 죽어라 푼 아이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지 못하고 문제풀이 요령만 익힌 아이들이 대학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란 힘들다. 한국 대학의 수준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 스스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기업들은 역량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인 선발과 평가제도를 시행한다. 인사위원이나 상급자의 판단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평가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부모가 항의하는 일도 없다. 간혹 미운털이 박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변수로 인해 인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기업 스스로 보완책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대학 역시 자체적으로 역량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졸업생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하는 것이 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길이다.
자율성이 확대되는 만큼 공공성을 높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불리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다. 혁신학교 정책은 사실상 그 방향에서 시도되고 있다. 혁신학교가 학력을 떨어트린다는 근거 없는 괴담이 횡행하는 것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학력의 기준이 다르다. 자율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공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화의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만큼,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개인 수준의 교육과정을 조율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플립러닝이나 배움의 공동체 등 표준화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유성을 살리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업 방식만이 아니라 평가제도도 바꿔야 한다. 객관식 시험에 의한 상대평가 제도를 고집하게 되는 것은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절대평가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저마다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192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사실상 표준화 교육을 폐기하는 것이다. 획일적인 시간표 대신 모두가 자기만의 시간표를 갖게 된다. 다른 학교나 대학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다. 출석만 해도 졸업이 보장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야 졸업이 가능한 제도로 바뀌는 것이다. 대입제도에도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방향은 이쪽이 맞다.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자율성과 공공성이 균형 잡힌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오늘날 진보주의 교육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는 표준화 시험은 사실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20세기 진보주의 교육의 산물이다. 미국에서 유색인종 학생 등에 대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도록 20세기 중반부터 객관식 시험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이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 부적절하고 평등과 공정성의 가치를 담보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도 대입에서 SAT 비중이 대폭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 비중이 줄어든 것도 비슷한 이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시 수능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사실 표준화 시험은 인지능력 평가에 나름 효율적인 방식이다. 수능시험에서도 단순한 암기 지식을 묻기보다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들이 점점 많이 출제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수학(受學)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수능시험이 아니라 시험문제 풀이에 올인하는 학교교육에 있다. 학교교육이 그렇게 변질되는 이유는 내신과 수능점수가 여전히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학력에 따른 직업 선택 기회의 차이, 임금 차이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입시문화는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
입시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논술과 수시 제도가 등장하면서 수능점수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내신을 위해서라도 시험공부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설책 한 권 읽지 못하고 국어시험 문제만 죽어라 푼 아이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지 못하고 문제풀이 요령만 익힌 아이들이 대학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란 힘들다. 한국 대학의 수준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 스스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기업들은 역량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인 선발과 평가제도를 시행한다. 인사위원이나 상급자의 판단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평가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부모가 항의하는 일도 없다. 간혹 미운털이 박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변수로 인해 인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기업 스스로 보완책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대학 역시 자체적으로 역량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졸업생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하는 것이 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길이다.
자율성이 확대되는 만큼 공공성을 높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불리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다. 혁신학교 정책은 사실상 그 방향에서 시도되고 있다. 혁신학교가 학력을 떨어트린다는 근거 없는 괴담이 횡행하는 것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학력의 기준이 다르다. 자율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공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화의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만큼,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개인 수준의 교육과정을 조율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플립러닝이나 배움의 공동체 등 표준화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유성을 살리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업 방식만이 아니라 평가제도도 바꿔야 한다. 객관식 시험에 의한 상대평가 제도를 고집하게 되는 것은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절대평가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저마다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192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사실상 표준화 교육을 폐기하는 것이다. 획일적인 시간표 대신 모두가 자기만의 시간표를 갖게 된다. 다른 학교나 대학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다. 출석만 해도 졸업이 보장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야 졸업이 가능한 제도로 바뀌는 것이다. 대입제도에도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방향은 이쪽이 맞다.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자율성과 공공성이 균형 잡힌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