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교육계에 파고드는 유사과학(1)

민들레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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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흡, 뇌교육이라는 유사 뇌과학

 

197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불기 시작한 뉴에이지 바람과 국내에서 일기 시작한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세를 확대한 단학은 전통적인 선도(仙道) 사상에 맥이 닿아 있는 양생술의 호흡법과 체조를 체계화하여 대중에게 맞게 개발한 수련법이다. 일지선사로 알려진 이승헌이 198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처음 문을 연 단학선원은 90년대 들어 뇌호흡, 뇌교육을 내세우며 뇌과학과 유사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 속으로도 파고들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세계화 바람을 타고 ‘단월드’로 이름을 바꾸어 전 세계에 지부를 개설하며 세를 확장했다. 뉴에이지와 웰빙 바람에 한류 바람까지 가세하면서 현재 10여 개 나라에 120여 개 사업체를 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전통적 선도사상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단학은 증산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단월드는 증산도와 달리 종교적 외피를 두르는 대신 주식회사라는 법적 지위를 갖고, 현대의 웰빙 바람에 편승하여 수련단체이자 교육기관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최신 뇌과학 이론을 짜깁기해, 뇌호흡 수련으로 집중력이 향상된다거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면역력 증강을 앞세워 프로그램을 홍보한다. 시류에 편승한 탁월한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단월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다양한 단체들을 앞세워 사업 영역을 확대해오고 있다.

단월드는 학교에 단군상을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뇌호흡으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 일찍부터 교육계를 파고들었다. 80년대 국풍 바람에 편승하여 단군을 앞세워 사회적 입지를 다지고, 90년대 이후 뇌과학 바람을 타고 뇌호흡을 앞세워 교육계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많은 학교에서 뇌호흡 특강이 이루어지고, 기업체 등에서도 직원교육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다. 단월드는 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여 초중고에 강사를 파견하고, 교사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교육계에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단월드 계열의 한문화학원이 2009년 설립한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는 뇌교육융합학부가 개설되어 있다.

2천년대 들어 단월드는 한국뇌과학연구원을 설립하여 뇌교육을 전면에 내세워 교육계를 파고들었다.*  단월드의 ‘뇌파진동’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도리도리 동작을 5분 동안 반복하는 것인데, 사실 뇌에 도움될 만한 동작은 아니다. 우리 몸은 뇌를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두개골로 감쌀 뿐만 아니라 뇌척수액이라는 액체 속에 떠 있게 진화했는데, 머리를 흔든다고 뇌파가 바뀐다면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머리를 많이 얻어맞은 권투선수가 파킨슨병에 잘 걸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 뇌가 충격에 취약하다는 반증이다. 6개월 동안 뇌호흡 수련을 한 초등학생이 틱 장애와 정서불안 증세를 보여 걱정하는 엄마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한다.

단월드 뇌교육의 비과학적이고 반교육적인 면모는 한국뇌과학연구원 이승헌 원장이 2003년 ‘초감각 인지능력 시연회’를 열어 뇌호흡 수련으로 투시력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해 제임스 랜디의 방한을 계기로 SBS에서 연 <도전, 100만 달러 초능력자를 찾아라>** 프로그램에서 투시 능력 실험 실패 이후 뇌호흡이란 용어는 뇌교육, 뇌과학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좀더 과학적인 외피를 두른 셈이다. 사기 행각이 드러났음에도 단월드는 청소년수련회 등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카드 알아맞히기 연습을 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겨루는 대회까지 열고 있다. 단월드를 다니는 부모의 자녀들이 주 대상으로, 아이들의 지성과 부모의 돈을 빼먹는 전형적인 사기 행각이다.

그럼에도 단월드의 유사 뇌과학, 유사 역사학이 공교육에 접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라사랑교육이란 이름으로 유사 역사학 주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창의성을 개발한다면서 뇌파진동을 보급한다.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도 단월드와 연계된 뇌교육 연수 관련 공문이 교육청 이름으로 각급 학교에 내려오고 있다. 유사 과학이 교육현장에 파고드는 것을 경계해야 할 교육당국이 오히려 이를 지원하는 셈이다. 2016년 제주에서 열린 10회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 대회는 제주교육청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2019년 한국뇌과학연구원이 개최한 ‘브레인 명상 콘퍼런스’를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것에 대해 과학계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행사 하루 전 후원 명칭에서 빠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사과학을 퍼트리는 단체에 공공 예산이 쓰인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월드는 국학원을 통해 2014년 벤자민인성영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진로를 찾는 1년 과정의 벤자민 갭이어 과정도 열고 있다. 교육계의 최신 트렌드를 좇아가고 있는 셈이다. 단월드에 빠진 부모의 설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교육과정을 보면 단월드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학교임을 알 수 있다. 자체 발급한 뇌교육자격증을 가진 강사들이 뇌파진동이라며 머리를 흔들게 하고, HSP 12단 과정이라면서 물구나무 서서 걷기를 연습시키거나 투시력을 기른다며 안대 끼고 카드 보는 연습을 시키는 등 아이들의 지성을 좀먹는 짓을 영재교육이라며 하고 있다.

단월드, 마음수련 등 많은 수련단체들의 공통점은 창시자를 우러러 모신다는 점이다. 신격화에 가깝게 숭배하기도 한다.(마음수련은 창시자 우명과 그의 부인, 아들까지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은 수련생들로 하여금 다스림 받기 쉬운 상태가 되게 만든다. 단체가 설립되고 조직화가 이루어지면 조직의 생리상 창시자를 높이는 것이 곧 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된다. 창시자를 절대화하면서 그 절대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추종자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의 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진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스승의 인가를 통해서만 승인되는 점도 수련단체가 사기를 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영적 계급 체계에 의해 스승의 권력이 절대화되면서 어느덧 교조화의 길로 접어든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원리는 도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조직화가 진행되면서 조직이 점점 외부와 단절되는 폐쇄성을 띠게 되는 것도 공통된 점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재산과 가족, 친구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세상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게 되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단월드에 들어와 재산을 잃고 인간관계까지 단절된 이들이 늘어나면서 단월드피해자가족연대가 만들어지고, 안티사이비antisybi.org 같은 단체가 단월드의 실체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단월드의 홍보력이 앞서는 실정이다.)  자신이 헌신한 단체를 등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한 심리적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쪽으로 심리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많은 수련단체들이 사실상 사이비 종교단체처럼 운영되고 있음에도 내부인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며 한사코 명상단체 또는 수련단체로 규정하려 애쓰는 것도 공통된 현상이다.

시인 김지하는 일찍이 단학에 심취하여 이승헌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가 내부 비리를 접하고 탈퇴한 뒤 이를 고발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다. 1999년 당시 이미 이승헌 총재의 성 추문과 각종 비리 문제가 떠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리고 십 년 뒤 미국 언론에서 단월드의 성폭력과 노동착취 문제가 보도되기에 이르고, 이듬해 2010년 《신동아》심층 취재에 이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각종 의혹들이 보도되면서 단월드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뇌교육과 관련해서는 법적으로 문제 삼기에 애매해서인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으며, 교육계 역시 이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단월드는 한국뇌과학연구원을 통해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를 주관하면서 오늘날에도 유사뇌과학을 퍼트리고 있다.


*  2002년 단월드가 설립한 한국뇌과학연구원은 2011년 뇌연구촉진법에 의해 설립된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뇌연구원과 유사한 명칭으로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  눈가리개를 한 채 고개를 들면 가리개 아래 틈새로 탁자 위 카드를 볼 수 있다. 카드를 얼굴 정면에 배치하자 거의 알아맞히지 못했다. 초능력 사기꾼 헌터로 알려진 제임스 랜디는 일찍이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자신에게 초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았지만 50년 동안 한 사람도 상금을 타지 못했다.

***  뉴스타파가 보도한 2018년 자료에 의하면 행정안전부는 2009년부터 총 3억6200만 원의 정부보조금을 단월드 계열인 국학원에 지원했다. 보조금은 대부분 나라사랑교육 강사비로 지출되었는데, 『환단고기』에 근거한 유사 역사학을 강의할 뿐만 아니라 뇌교육을 홍보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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