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22년 전, 민들레의 현병호 발행인이 쓴 글입니다., - 민들레가 하고자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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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는 민들레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라는 기치를 걸고 ‘민들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도 일 년이 넘었다.

민들레는 누구보다도 젊은 부모들을 위한 교육잡지다.

선착순 논리에 따라 학교에 다녔고, 또 아이들을 그런 학교에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이른바 ‘교육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와 아직도 교육에 열정을 잃지 않은 선생님들,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배움의 길을 열심히 찾아가는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잡지이다.

교육이란 것이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제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안을 찾는 부모와 교사들,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의 주체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정치적인 주체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총선시민연대를 통해 나타났듯이

교육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제도학교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해 이제 열 몇 개에 이른 대안학교들은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반면,

가정학교(홈스쿨링)는 부모와 아이들이 주체가 되고 있다.

이제 머지 않아 부모들이 나서서 인가받지 않은 작은 학교들도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민들레에 모이는 아이들이 만든 ‘탈학교 모임’처럼 학교를 거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아서 만든 모임도 있다.

‘교육=학교’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삶이 곧 배움이 되는 길을 찾는 이들은,

너를 죽이는 것이 곧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한다.

 

‘탈학교’는 ‘학교 해체‘가 아니라 ‘새로운 교육 질서'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갖는다.

민주국가라면 당연히 일당독재 체제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보장해야 하듯이,

우리 사회가 정말 민주 사회로 가려면 제도학교의 교육독점을 깨뜨려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학교와 학교 밖의 다양한 길들이 열려 있어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어느 길을 가든 제도적으로 더 불리하지 않은 법적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소외된 이들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공교육 체제는 사실상 가진 자를 더 돕는 시스템이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제력이 학력을 결정하고, 그 학력이 또 경제력을 결정짓는 사회로 가고 있다.

어쩌다 가난한 집안의 머리 좋은 아이가 일류대 수석 하는 것을

언론이 과대 포장해서 마치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대낮에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리고서 밤이라고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사회,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못 살게 만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

더 나아가 서로를 살리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민들레 교육통화 시스템은 이처럼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한 가지다.

여러 사람들이 품앗이로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지역통화 시스템과 비슷한 것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 주된 서비스인 점이 조금 다르다.

지역 공동체성이 희박한 도시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살리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민들레 정기구독자 회원들을 중심으로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민들레는 더 나아가 ‘교육’이 아니라 ‘배움’의 길을 열어가자고 주장한다.

일하면서 놀면서 다시 말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교육이 곧 배움이다.

이러한 배움의 열정은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이다.

그 열정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민들레는 그런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서로를 짓누르는 지금의 교육 현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고

그 대안을 찾는 이들이 서로를 도우면서 자신을 도울 수 있도록 연대의 마당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교육’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현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