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우리가 선택한 두 번째 봄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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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천지가 아름답다향기로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사람들은 들뜬 맘으로 봄나들이를 떠나는데여행가는 아이들을 태웠던 낡은 배는 이태째 검푸른 바다 속에 잠겨 있다우리는 이렇게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배가 가라앉은 후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쏟아지고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느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올 만큼 이 일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곳곳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2년이 지난 지금그 많던 말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그 동안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망각을 종용하는 자들의 노력은 끈질기고 철저하며 집요했다시국선언을 한 17천여 명의 교사들은 징계의 위험에 처했고, 1주기 추모식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맞았다책임자를 찾아 엄벌에 처하겠다더니 공직자 중에서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은 구조 당시 123정을 몰던 힘없는 경위 한 명뿐이다해체하겠다던 해경은 이름만 살짝 바꿔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조직 개편됐다(그들은 여전히 경찰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조직명에서만 경찰이라는 단어가 빠져경찰인 듯 아닌 듯 기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사건 초기 왜곡보도를 반성하며 양심선언 했던 언론인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보상금 얘기로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고, 1년 8개월 만에 가까스로 열린 세월호 청문회를 생중계한 지상파 방송은 한 군데도 없었다진도체육관에서부터 잠복하던 사복경찰들은 유가족들을 미행하고 도청했으며얼마 전엔 국정원이 유가족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다음 날 동아일보 1면의 헤드라인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대구 지하철 화재씨랜드 참사 등등 한국사회에는 20여 년 사이 4~5년에 한 번 꼴로 다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다(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지고다리가 끊어지고배가 가라앉은 이 참사를 인재(人災)’라 부르는 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난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재난은 항상 보이지 않는 사회적 선택들물에 빠져 죽거나 돌무더기에 깔린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선택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_주노 디아스(Junot Diaz)

그러나 망각의 힘은 무섭다참사가 터지면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하면서 슬퍼하다가도 기억을 방해하는 자들의 모략에 휘말려 이내 말 잘 듣는 국민의 자리로 돌아간다그 참사들을 겪으며 반복적으로 확인한 것은 켜켜이 쌓아온 이 사회의 병폐와 환부뿐인데도 말이다배가 가라앉은 후 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2년이 지난 지금살아남은 말은 별로 없는 듯하다.

 


세월호 세대와 교육

배가 가라앉은 후 교육에 대해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그러나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교육을 틀어쥐고 있는 국가는 더욱 통제를 강화했다형식적인 안전교육과 인성교육이 강화되고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은 취소되었으며아이들은 학교 안에 갇혀 주입식 교육이 더욱 강화되었다집회에 참석해 의사를 표현하는 어린 학생들을 연행하고출석요구서도 없이 고등학생의 집이나 학교로 경찰이 들이닥쳐 다신 집회에 나오지 않도록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압승을 거둔 결과가 그나마 세월호 여파로 얻어낸 교육적 성과인데교육부 지시사항에 교육청이 고분고분하지 않자 슬며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얘기를 흘려보내고 있다노란리본을 달지 못하게 학교현장에 공문을 내려 보내고 시국 선언한 교사들을 색출해 압박하던 교육부는 이번에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전교조가 제작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 사용금지에 관한 공문을 내려 보냈다경기도교육청이 교육자료 사용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금지처분을 거부하자교육 중립성을 훼손하면 법의 절차에 따라 엄정히’ 대처하겠다며 재차 엄포를 놓았다.

교육부는 416교과서가 현 정권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의견 제시로 학생들에게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그중 하나를 예로 들면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유가족을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문구와 사진이 사진에 포착된 정황만을 가지고 전체적인 정황을 왜곡하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정부를 불신하게 하는 의도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된다고 했다그러나 영화 <나쁜 나라>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살려주세요, 대통령님!"하며 울부짖는 유가족 곁을 유유히 지나던 대통령의 태도가 과연 포착된 정황만으로 전체적인 정황을 왜곡하고 있는 건지.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정치적ㆍ파당적·개인적 편견이 포함된 편향된 시각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416교과서 사용금지 처분을 내린 교육부는 여전히 아이들을 미성숙한 대상으로 바라보며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는’ 국민으로 길들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슬픔을 틀어막아도 이미 이 사건을 목격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경향신문이 2015년 12월 진행한 청년 미래인식 조사에 따르면 자신에게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사회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해서도 가장 높은 23.9%가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서명을 받으러 다녀보면멀리서 흘깃거리며 갈등하는 건 주로 어른이다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그 아이들처럼 교복 입은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걸어와 서명을 하고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노란리본을 한 주먹씩 집어가기도 한다.

작년 4월 18이틀 전인 1주기 추모행사 때 서울 시청광장에 모인 3만 명 추모객들에게 물대포를 쏘고광화문 앞에 유가족들을 고립시킨 것에 항의하는 2차 집회가 열렸다옆에 있던 앳된 청년에게 무심코 말을 걸었다학교 이름이 새겨진 잠바를 입고 있기에 대학생들은 중간고사라 바쁘다던데어떻게 나왔네요?” 하자 조금 머뭇거리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제가 작년에 단원고 3학년이었어요.” 해산하지 않으면 연행하겠다며 왕왕거리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에도 그 친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하루아침에 텅 비어버린 열 개의 교실이 거짓말 같았고후배들의 죽음이 너무나 슬펐다고그런데 자신은 고3이었고 부모님과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몰두하라고 독려했단다스스로도 수능 잘 봐야지’ 하면서 슬픔을 참고 공부해 대학생이 되었다고억눌렀던 감정들이 밀려와 이제라도 후배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이렇게라도 을 갚고 싶다고흔들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학생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그 눈을 보며 이 슬픔을 가슴에 품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분명 국가와 국민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얼마 전 선생님 한 분이 세월호 2주기를 맞아 학교에서 아이들과 추모행사를 하려는데 어떤 활동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왔다리본을 만드는 것도그림을 그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는 아이들과 세월호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3년 3월 20,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동맹군들과 함께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렸을 때나는 대안학교 교사였다교사들은 참담했고 긴급하게 모여 회의를 했다정해져 있던 모든 수업을 취소하고 당장 다음 날부터 일주일 동안 평화수업을 했다예정된 수업보다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배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다 같이 모여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영상을 보며 상황을 나누었다그리고 교사들은 밤늦게까지 수업을 준비했다국어영어수학…과목은 그대로였지만 내용이 달라졌다사회시간에는 최근 보도 자료들을 보며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공부했다국어교사였던 나는 전쟁의 아픔을 담은 단편소설들을 함께 읽고시를 썼다미술시간엔 옷 만들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바느질로 엮어놓은 천에 그림을 그려 커다란 걸개그림을 만들었다영어시간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나 『이매진』같은 반전평화 팝송을 배우고음악시간에 그것을 연주하며 전쟁으로 목숨 잃은 사람들을 추모했다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중요성을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로 체득하게 하고 싶었다아이들에게 적과 싸워 이기는 법이 아니라적을 친구로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작년 4대학교수들과 IT개발자디자이너들이 협력해 세월호 교실이란 온라인 아카이브를 열었다이 온라인 프로젝트는 대학 교수강사들이 모여 도대체 세월호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됐다.

 

어떤 학문 분야도 어떤 이론도 세월호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는 다만 어지럽게 쏟아지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읽을거리와 토론거리를 찾아내고 제안할 뿐입니다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우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학생들과 같이 질문하고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정답은 없고 물음만 있을 뿐인 수업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세월호 교실을 열며(http://teachsewol.org)

 

한국의 근현대사와 정치경제를 이해하고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어떻게 살아갈지를 배우는 데 세월호만큼 살아 있는 교과서는 없다그 안에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철학그리고 법으로 제정할 만큼 중요하다는 인성교육까지 다 담겨있다다만 우리에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최근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는 함께 슬퍼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이 사건을 지겹다혹은 그만하자고 얘기하는 것이다이리도 빨리 외면하는 것은이 일이 지극히 모든 사람에 보편적으로 가닿는 고통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참혹한 사건의 기억은 남겨진 사람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준다. ‘망각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선택일 것이다그러나 난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하기엔 가책이 느껴진다. ‘유가족들이 변했어’ ‘이런 운동 방식은 아닌 것 같아’ ‘이젠 충분히 애도하며 보내줘야 하지 않겠어?’ 하는 합리화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에 더 부담 없는 방법이다.

27년 전 세월호와 비슷한 사건이 영국에서 있었다요즘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경기는 6분 늦게 시작한다. 1989년 4월 15일 힐스보로 참사(Hillsborough disaster) 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당시 힐스보로 경기장에는 FA컵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25천여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는데좁은 공간에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입장시키는 바람에 96명이 압사하고 760여 명이 부상당했다경기는 6분 만에 중단되었다사망자 중 절반은 10대 청소년이었다사건 직후 정부경찰언론이 힘을 합해 사실을 은폐했고경찰은 피해자들은 입장권도 없이 밀고 들어온 술 취한 관중들이었고이들의 난동으로 통제가 불가능해 참사가 났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기나긴 투쟁 끝에 참사 발생 20년 만에 독립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45만 건의 문서를 분석해 경찰의 무능판단 착오대처 미흡이 대참사의 원인임을 명백히 밝혔고, 23년 만에 유가족들은 정부언론정당의 사과를 받아냈다사고 전부터 관중 안전을 위해 시설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힐스보로 경기장 측이 무시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더 놀라운 것은 사후 검시보고서를 분석해 초기 대응이 제대로 되었다면 96명의 희생자 중 41(40명도 아니고정확히 41!)이 살 수 있었다는 정확한 사실까지도 밝혀냈다는 것이다.

그 긴 조사과정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확인하면서유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도왔다이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어왔냐는 질문에 한 유가족은 말했다. “진실 없이는 슬퍼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죠.” 이 사건도 세월호처럼 사람들에게서 잊히고조롱당하고긴 시간 진통을 겪으며 아주 조금씩 전진했다끝내 진상규명이 가능했던 것은 긴 세월의 호도 속에서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민들의 꾸준한 동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2년이다세월호 유가족들이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인 색깔을 입었다고 치부되는 것은그들이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진도 팽목항에서 물에 잠긴 가족을 기다릴 때그들에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챙겨주며 무너진 마음과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그러나 정부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세력과 계란으로 바위 치는’ 긴 싸움을 시작한 지금그들에겐 함께 정치적 의사를 밝히고법을 제정하도록 촉구하고진상규명의 절차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연민과 애도함께하는 방식은 그들의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를 통해 무능하고 무책임한 나쁜 나라를 확인했지만 지난 2년은 그 나쁜 나라에서 살아가는 좋은 시민들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전남자원봉사센터의 기록에 따르면 희생자를 수습하는 동안 진도 팽목항에는 약 7천여 단체와 6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했다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함께 곡기를 끊고함께 길을 걷고거리에 나서 서명을 받으며그 곁을 지키는 시민들이 있었다안산에서 만난 유가족 한 분은 평생 내 새끼내 가족만 챙길 줄 알았지 남을 위해 나서본 적이 없는데세상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은 줄 모르고 살았다며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건 초기각계각층에서 쏟아졌던 자성의 목소리는 이 일을 무능한 정부나 국가만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부정부패를 방관하며 동조한 자신에게도 책임을 물었기 때문일 것이다이 참사는 우리의 선택이다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지 않았다면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고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며행동하는 시민으로서의 존엄을 보여주었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앞으로 우리가 겪을 비극 혹은 희망도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에 돌덩이 같은 짐을 올려놓고 노란리본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자기의 일상으로 돌아와 사소하지만 용기 있는 그 무엇을 당장 하는 일이다깊은 바다 속에 잠긴 한 척의 배가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다세월호 2주기우리에겐 너무 많은 말과 너무 적은 움직임이 있다.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그걸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 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중에서

 

장희숙(격월간 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