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기레기를 위한 변명

민들레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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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해마다 발간하는 언론 신뢰도 보고서에 의하면 2021년 한국 언론의 신뢰도 수준은 거의 꼴찌 수준이다. 젠더, 난민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면서 지지층을 넓혀가는 극우 세력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언론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한국이나 미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언론에 대한 불신이 더 높은 편이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영국의 2014~2015년 회계연도 세전 소득 ‘산술평균’은 31,800파운드, ‘중앙값’은 22,400파운드였다. 연봉 28,000파운드인 교사는 평균 소득 이하를 벌고 있을까 이상을 벌고 있을까? 그의 말로는 둘 다 ‘진실’이다. 선동가는 어떤 평균인지 말하지 않는다. 입맛에 맞게 골라 사용할 뿐이다. 소수에게 부가 쏠린 사회에서 산술평균은 별 의미가 없다.

5년 전 트럼프 취임식 인파 사진을 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오바마 때보다 트럼프 취임식 인파가 더 많았다는 백악관 대변인의 주장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기자가 반박하자 백악관 고문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대안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안적’이란 말은 어디든 붙을 수 있는 수식어다. ‘자유’라는 말 만큼이나 자유롭게 쓰인다. 대안교육의 ‘대안’ 또한 무색무취한 용어가 되었다. 가짜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적’ 뉴스가 되고 있다.

너도나도 뉴스를 생산하고 보급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뉴스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공영방송 뉴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안적’ 방송이 내보내는 뉴스를 고르면 되는 시대다. 몇몇 언론이 뉴스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던 시절에는 싫든 좋든 그 뉴스를 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입맛에 맞는 뉴스를 골라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뉴스 제작자가 소비자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언론이 여론을 선도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눈치 보기에 바쁘다.

후수를 두게 되면 지는 것이 모든 경기의 법칙이다. 언론은 더 이상 권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사회학자 조형근의 말처럼 음모론이 지식의 민주화를 반영한다면, 가짜뉴스는 언론의 민주화를 반영한다. 누구나 뉴스를 생산 보급할 수 있게 되면서 어떤 언론도 절대적 권위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심판의 역할을 하던 언론이 오늘날에는 치어리더가 되어 자기편을 부추기기에 바쁘다.

수준 낮은 기사들이 범람하는 이유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포털 뉴스가 종이신문을 압도하게 되면서 기사의 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틀린 기사들이 여과 없이 포털 메인에 걸린다. 기사 수, 클릭 수만큼 고료가 지급되면서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넘쳐난다. 기자가 ‘기레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한 기자가 브런치에 올린 글 ‘기레기를 위한 변명’에 의하면 인터넷 신문사 기자의 급여 수준은 최저 임금에 가깝다. 메이저 언론사도 대기업에 비하면 급여가 낮은 편이라고 한다. 인터넷 신문사의 경우 1년 이상 근무하는 신입 기자가 드물다 보니 제대로 훈련받을 기회도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광고영업을 위해 기사를 올리거나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언론계를 그의 표현대로 '협박산업'에 비유한다면 기자는 펜을 든 조폭조직의 똘마니인 셈이다. 

사실 ‘기레기’로 불리는 기자들도 나름 억울할 것이다. 언론계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기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표현이니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니 현실이 이럴수록 기레기가 아닌 기자가 되어야 한다며 당위적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평범한 이들더러 영웅이 되라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군계일학처럼 기자다운 기자가 나올 수는 있어도, 이런 언론 상황에서 기자 정신을 발휘하려면 그야말로 영웅적인 분투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자들에게는 최근 '외람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이 하나 더 붙었다. 지난 3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할 때 '정말 외람되오나'라는 멘트로 시작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한동안 윤비어천가 소리가 드높더니 윤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장관을 둘러싸고 한비어천가를 부르는 노랫소리가 높다. 기레기와 외람이들이 기자 행세를 할수록 미디어 문해력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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